요양원의 꿈
-장수노인전문요양원 실습을 마치고-
정 규 준
홍성에서 구항을 거쳐 구절양장 같은 산길을 지나 결성 골로 가는 숲 속에는 황혼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팔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고개마다 나타난 호랑이한테 몸 한 쪽씩 떼어주고 반신불수가 되어 잠시 몸을 기댔다는 바위 터에 요양원이 서 있었다. 힘들었던 시대를 감당하고 살아온 어르신들이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잠시 머물러 계신 곳이다.
요양보호사 실습을 나왔다고 인사하는 우리를 어르신들이 생경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처음 보는 이방인을 보는 듯 한 눈, 아니, 머나먼 세계로 떠나가던 이들이 뒤를 돌아보며 현재를 기억하려는 눈빛. 어느 게 주체인지 모를 혼돈이 머물고 있었다. 저 혼돈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물꼬를 트고 생명의 수액을 흐르게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는 생각이 벼락같이 달려들었다.
거동불능으로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는 분, 휠체어를 타거나 걸어서 겨우 산책이라도 할 수 있는 분, 심한 치매로 자신을 망각하고 헤매시는 분, 의식이 없어 위에 관을 넣어 영양공급을 해줘야 하는 분… 저들에게 더 이상 삶은 의미 없는 연장일 뿐으로 보였다. 그런 어르신들을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가 나무랄 데가 없다. 숙달된 솜씨로 능숙하게 일을 처리한다. 쾌적한 시설과 안락한 분위기, 요양원으로서 장수원은 더 이상 부족함이 없는 듯하였다.
노인의 4대 고통이 빈곤, 질병, 무위, 고독이라 한다. 생리적 욕구가 해결되면 자아실현의 욕구가 기다린다고 심리학자 매슬로우가 갈파했던가. 끝 모를 평온이 오히려 무거운 적막이 되어 고독의 심연 속으로 자꾸만 빠져드는 때 생의 의미를 되살리고 팽팽한 충만감으로 채워 줄 무언가가 필요한 듯하였다.
이때 한 요양보호사가 적극적인 언동으로 어르신들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집이 어디냐, 애인은 있느냐, 인생 무용담 좀 들려 달라, 콕콕 쑤셔대니 의외로 어르신들이 반응을 보이신다. 신상 털기라도 하듯 기발한 질문들 앞에 살아오신 생을 회고라도 하듯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이었다. 그는 마치 로봇에게도 말을 시킬만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듯하였다. 매일 똑같은 질문들을 하는데도 늘 처음 듣는 것처럼 재밌어 한다 했다. ‘옳거니!’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적적한 어르신들에게는 놀아줄 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요양원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어르신들의 행복을 깨우고 있었다. 산책으로 기분전환을 시키더니 풍물, 댄스로 절정으로 몰아갔다. 강사가 앞에서 끌고 요양보호사들이 뒤에서 밀며 흥을 돋운다. 나도 덩달아 흥얼거리고 어깨춤을 추어본다. 몸이 힘들 때는 마음이 몸을 이끌고, 마음이 힘들 때는 몸이 마음을 이끈다고 어느 현자는 말했었다. 어르신들의 마음에 바람이 인다. 정물 같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고목이라도 일어나 춤추게 한다는 신명! 그 오라가 병동을 돌고 밖으로 휘몰아쳐 나가니 낮 꿈에 빠져있던 숲들도 깨어나 꿈틀대며 화답하는 것이었다.
요양원은 꿈을 꾸고 있었다. 떠나려는 이들과 머물게 하려는 이들 사이의 소리 없는 소요. 그것은 사그라지는 것들의 슬픔을 한데 모아서 기쁨이라는 영원한 노잣돈을 만들어주려는 혼신의 아우성이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7.10 1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