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기록, 책 그리고 도서관에 대한 조명, 그 밝기는 따뜻한 시선으로
-책장에서 책을 뽑아보지 않아도 그 안에서 당신에게 말을 걸기 위해 기다리는 목소리가 있고, 말을 하면 누군가가 들어줄 거라고 진심으로 믿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그런 확신이었다.
“내가 여기 있어, 부디 네 이야기를 들려줘. 여기 내 이야기가 있어, 제발 들어줘…”라는 약속. (본문 중에서)
그건 사람과 삶에 대한 다르고도 특별한 이야기 방식인데, 논픽션으로서 소설처럼 적절한 장면 전환과 아울러 속도감을 지닌 채 전개되는 양상과 더불어 사실 그 자체에 덧입힌 작가의 섬세한 감성과 성실하게 자료를 탐구한 노력의 결실이 읽는 독자로 하여금 거부하기 힘들 정도로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일으킨다.
현대 문명(1986년)의 거대한 도시(미국 로스엔젤레스)의 역시 거대한 도서관(시립 중앙도서관)에 어느 날 조그만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화염으로 돌변, 도서관 전체를 화마로 뒤덮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건물이 일부 전소되고 수많은 책이 소실 혹은 화재를 진화하려고 사용한 물에 잠겨 손상을 당하게 되며, 하루 이용객 수가 수 천 명에 달하는 도서관이 복구까지 한동안 폐관됨으로서 문명과 문화의 한순간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그 후유증으로 이 도시는 도서관 화재에 따른 충격과 아울러 정신적 공황까지 초래하게 됨으로서 파생된 현대 세계에서 도서관이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 그리고 그 확대되고 있는 역할까지 작가의 새삼스럽고도 특별한 관심 속에서 독자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늘 마주치는 공기와 주변의 하천에서 흐르는 물처럼 도서관은 언제부턴가 우리 곁에서 늘 집과 같이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왕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공건물로서 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던 막중한 공간임에도 일상에서는 그 누구도 어떤 식으로든 애정을 표현해주는 법이 없는 그저 그만인 존재로 치부되며 넘어가기가 다반사였다. 작가의 책 속에서의 표현을 빌자면 도서관의 오랜 역사를 감안하면 그 영욕의 삶을 인류와 더불어 영유해왔고, 지금의 운영방식-도서관 이용에 대한 어떠한 인종적, 계급적, 성적 차별이 없으며 무상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인 공동체의 표상-은 가장 민주적이고도 정치적 이상을 실현시킨 현대문명의 역작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화재로 인한 세인의 주목을 끌지 못하면 일상에서는 그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는 데에 대한 분노의 일성도 일변 깔려 있다.
작가는 화재의 원인과 방화로 판명되면서 쫓기 시작하는 범인 추적과정을 세심하게 구성요소로 편입시킴과 아울러 현대 도서관 사서들의 다양해진 역할과 그들의 노고, 도서관 풍경, 작가의 도서관에 얽힌
어린 시절의 애틋한 추억, 도서관 시설에 대한 대중의 의식과 행정부의 지원 현황, 세계 각국의 도서관에 근무하는 사서들에게 공통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책과 도서관의 고매한 역할과 그에 따른 사명 의식들을 기억의 시간차와 여러 사건과 이야기의 전환을 통해 전혀 지루함이 없이 전개해 나갔다.
책과 도서관과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두면 기억에 오래 남을 책이다.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 수전 올리언 / 박우정 역 / 글항아리 2019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