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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삼한시대 스크랩 단군조선 가림토(표음문자, 소리글자)의 제자(制字) 원리=삼재의 도
天風道人 추천 0 조회 25 13.08.12 15:10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단군조선 가림토(표음문자, 소리글자)의 제자(制字) 원리를 밝히다! 삼재(三才)의 도(道)

 

[가림토(加臨土)의 제자(制字) 원리 고찰]


1. 서설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문자인 한글은 서기15세기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신제(新制) 또는 창제(創制)하였다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주시경 선생에 의하여 한국의 글자라는 의미로 불려지기 시작한 명칭이다.

그러면,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기 이전에 우리에게는 중국문자라는 한자(漢字)만 있었던 것일까? 신라시대 설총이 이두문을 만들어 한자를 이용하여 우리말을 적는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주로 문장은 한자로 된 한문이었다. 향가라는 시를 지으면서 이두를 사용하고, 이름이나 지명등에 이두를 사용하였던 것인데, 조선시대 초기까지 이두를 사용하여 왔으나 우리말과 중국말은 분명이 달랐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우리말을 적는 글자를 만드신 것이다.

그런데, 한단고기(桓檀古記)의 단군세기(檀君世紀)와 소도경전분훈(蘇塗經典本訓)에 가림토38자를 적고 있으며, 일본은 세종대왕의 한글보다 이전에 쓰고 있었다고 자랑하는 아히류문자 등 신대문자(神代文字)를 내세우고 있으며, 경남 함안 땅은 가야시대 아라가야 지역이 되는데, 이 지역에서 한자(漢字)와는 판이하게 다른 부호와 같은 글자가 새겨진 토기가 많이 출토되었는데, 일본의 신대문자와 아라가야의 문자가 서로 엇비슷한 글자가 있으며, 모두 한단고기에서 부르는 가림토 글자와 같거나 유사하다.

그래서 여기서는 가림토 글자가 과연 존재하였던 것인지, 존재하였다면 그 역사가 어떠한지, 그 글자를 만든 원리가 어떠하였는지에 대하여 고찰해 보고자 한다.

(1) 가림토(加臨土)란?

한단고기 단군세기의 기록에 서기전2181년 삼랑 을보륵이 정음(正音)을 만들었으며 이를 가림토38자라고 적고 있다. 정음은 바른소리라는 의미로서 글자를 가리키므로 소리글자인 것이다.

가림토라는 말은 한자로 加臨土로 적고 있으며, 이는 이두식 표기가 된다. 즉 가림토라는 말은 뭔가를 서로 구별하여 가리는 것으로서 말과 관계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로 가림 말이라는 뜻이며, 이것이 글자이므로 가림 말의 글자가 된다. 말을 가리는 글자이므로 곧 소리글자임을 알 수 있다.

가림토(加臨土)는 한자로 가림다(加臨多)라고도 적은데, 다(多)라는 글자는 토라고도 읽으므로 결국 가림토나 가림다나 모두 가림토로 읽으면 된다. 실제 중국대륙의 서쪽 사람들은 다(多)라는 글자를 토라고 읽고 있다.


(2) 가림토 제정의 역사적 동기

한단고기 단군세기에서는 서기전2181년에 삼랑 을보륵이 가림토38자를 찬(讚)하였다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당시에 쓰고 있던 진서(眞書)라는 신전(神篆)을 읽는 소리가 마을마다 나라마다 다르게 읽으므로 이를 통일하기 위하여 만들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가림토를 만든 이유가 주로 당시에 단군조선에서 사용하고 있던 신전(神篆)이라는 상형문자를 읽는 방법을 통일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단군조선의 상형문자인 진서(眞書)인 신전(神篆)은 그 이전의 배달나라 시대부터 사용되어온 문자가 된다. 즉 서기전3897년경부터 상형문자가 쓰여져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단군조선이 건국된 후 약150년에 흐른 즈음에 상형문자를 읽는 소리가 지방마다 제각각이 되었다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상형문자의 발음을 통일하기 위하여 만든 글자가 바로 가림토38자가 된다.


(3) 가림토와 훈민정음(訓民正音)

가림토 글자는 단군조선 3대 가륵단군 때 사람 을보륵이 정선(整選)하여 찬(讚)한 글자가 된다. 당시의 글자가 되는 상형문자인 진서를 읽는 말소리가 지방마아 달라 이를 통일하기 위하여 소리글자를 만든 것이며, 이로써 백성들이 의사소통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한 것이 된다. 이는 홍익인간 세상을 구현하는 한 방편이기도 하다.

훈민정음은 조선시대 초기에 세종대왕이 백성들의 억울함과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중국문자와는 다른 우리말을 모두 표기하고 읽을 수 있는 글자를 찾았으며, 심혈을 기울여 연구하여 내놓은 글자인 것으로서, 이도 또한 백성들을 위한 마음으로 만들어진 글자이며, 바로 홍익인간 이념구현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된다.

아마도 세종대왕은 단군조선 시대의 제도와 유습을 부활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훈민정음 정립작업과 역법 등을 정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조선초기 김시습선생은 자신이 지은 징심록추기에서, 신라 박제상이 지은 징심록(澄心錄)에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28자의 근본을 취하였다라고 단정하고 있는 사실과, 세종대왕이 이 징심록 등의 진귀한 서책을 소장하고 있는 영해박씨 문중을 우대하였다는 정황등을 고려하면, 단군조선의 문화를 되살리려는 의지가 있었음은 충분히 납득이 가는 것이다. 


2. 가림토 제자원리에 관한 근거 기록

지금까지 가림토가 어떤 원리에 의하여 만들어진 글자인지 불명하였다. 부도지와 한단고기 신시본기에서 어렴풋이 가림토라는 소리글자가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상형문자에서 나오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주는 정도로 기록되어 있다. 만약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28자의 근본을 취하였다는 징심록이 있다면 제자원리를 알아내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인데, 너무나 아쉽다. 특히 징심록 중에서 음신지(音信誌)라는 책이 직접적으로 가림토 글자에 관한 기록이 틀림없다고 보인다.

그런데, 가림토 글자가 만들어진 원리에 대하여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기록을 필자가 발견하였다. 즉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인지 서문의 서두에 바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까지는 이 구절을 간과하가나,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면서 해석하거나, 정확하게 해석하지 못하거나 한 것이 된다. 

훈민정음이라는 글자의 원형이 무엇을 가리키고, 훈민정음의 제자(制字) 원리가 어떠한 것인지 정확히 알면, 결론은 훈민정음의 원래의 글자가 바로 단군조선 시대의 가림토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1) 부도지(符都誌)

신라시대가 되는 서기400년경 신라의 박제상이 지었다는 부도지(符都誌)에서는 마고성(麻姑城) 시대에 율려(律呂)의 음(音)을 맡았다 하고, 천음(天音)을 듣기 위하여 오금(烏金)을 귀거리로 하고 다녔다 하며, 한웅씨(桓雄氏)는 8음2문(八音二文)을 수학(修學)하였다 하고, 임검씨(壬儉氏)는 천부(天符)의 음(音)에 준(準)하여 그 어문(語文)을 정리(整理)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음(音)은 악기의 소리이며, 악기의 소리는 일정한 법칙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그래서 음은 법(法)과 통한다. 그래서 음을 표시하는 글자로 법과 통하는 글자인 율(律)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천음(天音)은 곧 천지자연의 소리이며 천지자연의 법이 된다. 오금을 귀거리로 하고 다녔다는 것은 천지자연의 소리를 득기 위함인 것이다. 특히 한웅씨가 8음2문을 배웠다는 기록은 배달나라 당시의 임금이던 한웅이 8가지 언어와 2가지 문자를 배웠다는 것이며, 이 2가지 문자는 하나는 틀림없이 상형문자가 되며, 다는 하나는 상형문자와 상대적인 문자가 되는 표음문자 즉 소리글자가 아닌가 하며 거의 틀림없다고 본다.

임검씨는 단군왕검을 단적으로 가리키는 것이며, 천부(天符)의 음(音)에 준(準)하여 어문(語文)을 정리하였다는 기록은 바로 한단고기의 단군세기와 소도경전본훈, 그리고 단기고사(檀奇古史) 등 여러기록에서 가림토38자를 만들었다는 구절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 천부(天符)의 음(音)에 준(準)하여 어문을 정리하였다는 문구에서, 바로 가림토 글자를 가리키며 이 가림토 글자는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원리에 의하여 만들어진, 천지자연의 소리를 적는  소리글자임을 바로 알 수 있게 된다. 이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인지 서문의 문구와 바로 통하는 것이 된다.

(2) 한단고기 신시본기(桓檀古記 神市本紀)

한단고기 신시본기에서는 배달나라 초기에 이미 ㄱ과 같은 문자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ㄱ이라는 글자는 모양으로 보면 상형문자임이 틀림없으나, 후대의 소리글자인 ㄱ과 함께 고려하면 이때 이미 표음문자가 시작된 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것이 된다.

모든 문자는 거의 그림문자인 상형문자에서 시작되어 나중에 간략화 되거나 상징화 되어 소리글자로 변형발전된다. 영어 알파벳도 처음에는 상형문자였으며, 이집트 문자도 이러한 것을 단적으로 나타낸 준다.

이는 우리 한글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즉 한글의 원형은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나오듯이 고전(古篆)을 본딴 것이라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 고전이 상형문자인지 표음문자인지 지금까지는 알지 못한 상태였고, 중국문자가 되는 상형문자로 생각하기 일수였던 것이 된다. 그러나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인지 서문의 서두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훈민정음이 본딴 글자인 고전(古篆)은 바로 소리글자였음이 바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3)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 서(訓民正音 解例本 鄭麟趾 序)

有天地自然之聲 則必有天地自然之文 所以古人因聲制子 以通萬物之情 以載三才之道 而後世不能易也. 然四方風土區別 聲氣亦隨而異焉. 蓋外國之語 有其聲而無其字 假中國文字 以通其用 是猶鑿之也. 豈能達而無乎. 要皆各隨所處而安 不可强之使同也. 五東方禮樂文章 擬華夏 但方言之語 不與之同....象形而字倣古篆...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니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자가 있다. 그래서 옛 사람이 소리에 따라 글자를 만들어 만물의 뜻을 통하게 하고, 삼재(三才)의 도(道)를 실었으므로 후세에도 능히 바뀌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사방의 풍토가 나뉘어져 다르게 되니 소리의 기운도 역시 따라 달라졌다. 대개 외국의 말은  소리는 있으나 그에 해당하는 글자가 없어 중국의 문자를 빌어 통용케 한 것은 오히려 그 소리에서 벌어지게 하는 것이 되었다. 어찌 능히 통달한다 하여도 착(鑿)이 없으리오? 대개 그 처한 바에 따라 편안하게 할 필요가 있으나 가히 억지로 같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동방의 예악과 문장은 화하(중화)와 같으나 방언의 말이 그(중화)와 같지 아니하다...

이상의 내용을 보면, 옛 사람이 만든 글자는 천지자연의 소리에 따른 천지자연의 글자로서 곧 소리글자이며, 삼재(三才)의 원리를 싣고 있는 것이 된다. 훈민정음은 고전의 글자를 본딴 것이며, 삼재와 이기(二氣, 음양)의 원리를 담고 있다. 그런데, 옛 사람의 소리글자도 삼재(三才)의 원리를 싣고 있었다라고 단정하고 있다. 이 옛 사람이 만든 소리글자가 바로 부도지에서 임검씨가 천부의 소리에 준하여 어문을 정리한 것이라는 그 글자이자, 한단고기 단군세기와 단기고사 등에서 기록하고 있는 서기전2181년에 만들어진 단군조선 시대의 가림토 글자가 되는 것이다.

삼재(三才)는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이다. 훈민정음의 삼재는 천지인이 되는 . ㅡ ㅣ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 ㅡ ㅣ는 원래 ㅇ,ㅁ 각(세모)에서 나온 글자이다. 그래서 천지인 삼재는 원래 ㅇ ㅁ 각인 것이다. 훈민정음의 자음과 모음의 형태를 보면 모두 ㅇ, ㅁ, 각(세모)과 . ㅡ ㅣ에서 나온 글자가 된다. 가림토와 훈민정음의 모음은 물론이고, 자음도 . ㅡ ㅣ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는 격음, ㅡ는 경음을 적는 표시가 되고 있다.

이리하여 단군조선의 가림토 글자는 삼재의 원리에 의하여 만들어진 소리글자가 된다. ㅇ ㅁ 각(세모)는 천부삼인(天符三印)의 부호(符號)이다. ㅇ은 하늘을 나타내고, ㅁ은 사방이 있는 땅을 나타내며, 각(세모)는 서서 다니는 사람을 나타낸다. 이 천부삼인이 바로 천지인 삼재(三才)가 되는 것이다.

부도지에서 천부(天符)의 음(音,소리)에 준하여 어문(語文)을 정리하였다는 그 글자가 바로 ㅇ ㅁ 각(세모)에서 나온 글자로서, 모든 자음과 모든 모음이 곧 ㅇ ㅁ 각(세모)에서 만들어진 글자이면서 . ㅡ ㅣ와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글자가 되는 것이다. 천부삼인의 상징부호인 ㅇ ㅁ 각(세모)로 만들어진 단군조선의 가림토 글자가 삼재(三才)의 도(道)를 싣고 있다는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인지 서문의 서두의 기록은 당연한 것이 된다.
 

3. 상형표음문자와 가림토 글자의 정선(整選)

서기전2181년에 삼랑 을보륵이 가림토 38자를 지었는데, 천지자연의 소리에 따른 글자가 된다. 천지자연의 모습은 그 사물마다 나타낼 수 있는 모양이 무한하다. 그 중에서 가장 잘 나타내는 글자를 가려서 봅아 정리한 것이 바로 가림토38자가 된다. 즉 서기전2181년에 이전에도 소리글자가 되는 문자가 쓰여져 오고 있었던 것이 되며, 이 소리글자는 상형문자의 일부분으로서 소리를 나타내는 핵심글자가 되는 것으로 된다. 가림토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글자는 과연 어떠한 글자였을까?

(1) 배달나라 시대 상형문자와 상형표음문자

배달나라가 건국된 때는 서기전3897년이며, 이 당시부터 상형문자가 만들어졌다고 기록되고 이다. 이때 상형문자는 녹도문(鹿圖文), 녹서(鹿書)라고 불리는데, 사슴의 특징을 나타내는 글자를 가장 먼저 만들었기 때문에 불리는 명칭이 된다. 그런데, 배달나라 초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이미 ㄱ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졌다고 기록되고 있는데, 이는 ㄱ이라는 글자가 상형문자로서 사용된 단적인 예가 되며, 자연의 소리를 나타내는 부호가 되는 것이다. 즉 ㄱ이라는 모양은 굽은 모양을 나타낸 그림이 되는 것이고, 이것이 글자가 되면 소리글자가 되는 것이다. 자연의 사물은 무수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그 중에는 ㄱ, ㄷ, ㄹ, ㅁ, ㅂ, ㅅ, ㅇ, ㅈ...처럼 생긴 모양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글자가 각각 굽은 모양, 닿은 모양, 굽어서 흐르는 모양, 뭉쳐진 모양, 벌어진 모양, 서있는 모양, 둥근모양, 지붕이 있는 모양을 나타낸 글자라면 바로 상형문자가 되는 것이며, 이들의 소리가 각각 가, 다, 라, 마, 바, 사 아, 자 ...처럼 나는 글자라면 바로 소리글자가 되는 것이다.  

(가) 표음-상형문자와 상형문자에 내포된 표음문자

배달나라 시대의 문자들 중에는 소리글자가 되는 하나 또는 몇개의 글자로 이루어진 합자된 글자도 있었다고 보이며, 상형문자 자체에 소리글자가 되는 글자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소리글자가 곧 배달나라 문자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 글자를 읽는 소리가 가림토 글자와 유사한 형태의 글자를 읽는 방법이 아니었나 추정하는 것이다.

표음-상형문자는 가림토글자와 같은 형태의 글자가 주가 되어 간단한 글자를 가리키고, 일반적인 상형문자는 복잡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 글자 안에 가림토 글자의 형태를 가진 부분이 있으며, 그 글자의 소리는 곧 가림토 부분을 읽는 소리가 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나) 상형문자의 소리는 곧 표음부분을 읽은 소리

예를 들면 同이라는 글자의 원래 형태는 동굴과 같은 모양을 나타낸 글자로서 ㄷ모양으로 된 글자와 ㅡ모양의 글자와 ㅇ모양의 글자로 이루어져서 읽는 소리가 "등"으로 읽고 이것이 변음이 되어 지금과 같은 "동"이 된 것이로 보인다. 이와 같이 배달나라 당시에 쓰고 있던 상형문자를 읽는 방법이 곧 자연의 소리로서 그 글자 자체에 내포된 글자로서 읽는 것이 된다. 이대 그 소리나는 글자가 바로 표음부분으로서 나중에 가림토 글자로 도출된 것으로 된다.


(다) 상형-표음문자와 표음-상형문자와 표음문자

이렇게 배달나라 문자는 가림토38자가 정립되기 이전의 글자이므로, 일반적으로는 상형문자가 되며, 그 상형문자를 읽는 표음부분도 상형문자의 일부로서 또는 ㄱ과 같은 간단한 글자는 독립적인 상형문자로서 소리글자를 겸하는 글자인 셈이 된다. 이러한 글자는 상형-표음문자라 할 수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상형문자가 된다. 대부분의 배달나라 문자와 단군조선 이후의 일반적인 상형문자는 바로 이에 해당하게 된다. 명도전의 전시대에 주조된 화폐인 침수도, 첨수도에 새겨진 많은 글자가 여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된다.

상형-표음문자와 구별하기 위하여 표음문자인 가림토글자가 만들어진 이후에, 가림토글자로서 상형에 맞추거나 상형문자를 간략히 함으로써 가림토글자로만 이루어진 문자를 표음-상형문자라 할 수 있다. 이는 표음문자로써 상형화 한 글자가 된다. 소위 명도전에 새겨진 문자의 거의 대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상형에 맞추지 않고 가림토글자로만 적은 경우에는 한글과 같은 일반적인 표음문자가 된다. 즉 글자의 형태를 상형에 다라 변형시키지 않고 가림토 글자 그대로 적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명도전에 새겨진 "소"라는 글자는 순수한 표음문자로 볼 수 있게 된다.


(2) 정선된 자음

서기전2181년에 가림토38자가 뚝딱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배달나라 초기부터 가림토 글자의 모태가 되는 글자들이 쭉 축적되어 내려온 것이 되며, 대표적으로 ㅇ ㅁ 각(세모)으로 이루어진 글자들이 상형문자의 구성부분이 되고 그 글자의 소리부분이 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가림토 글자로 볼 수 있는 글자로만 형성된 상형문자도 있었던 것이 된다.

그리하여 기본적으로 배달나라 초기에 정립되어 있었던 ㅇ ㅁ 각(세모)에 해당하는 글자에서 변형된 형태의 글자의 형태로서 자연에 있는 모습 그대로의 글자로 반영되어 ㄱ, ㄴ, ㄷ, ㄹ, ㅁ, ㅐ, ㅅ, ㅇ, ㅈ ,ㅍ에 가까운 모양으로 정리되어 오다가, 서기전2181년에 ㅇㅁ각(세모)의 변형된 모습으로서 ㄱ, ㄴ, ㄷ, ㄹ, ㅁ, ㅐ, ㅅ, 세모, ㅇ, ㅈ, ㅍ으로 정선(整選)된 것이 된다.

또, 삼재(三才)가 되는 ㅇ ㅁ 각의 축소화된 글자로서 . ㅡ ㅣ의 형태도 자연에 있는 소리가 되므로 이 . ㅡ ㅣ와 기본자음이 결합된 모양의 글자도 자연에 있는 소리를 나타낸 글자가 되므로 ㄱ안에 . (ㅋ), ㅡ아래 ㄱ(ㄲ), ㄷ안에 . 이나 ㅡ(ㅌ), ㅐ에 ㅡ를 더한은 ㅒ(ㅃ), ㅡ아래 세모(세모세모), ㅡ아래 ㅇ(ㅇㅇ), .아래 ㅈ(ㅊ),  ㅡ아래 ㅈ(ㅉ), ㅡ아래 ㅍ(ㅍㅍ), P(디=>치)로 정리된 것이 된다.

그외 다른 자음끼리 결합한 형태로는  M(ㅅㄱ). ㅅ아래 ㄷ(ㅅㄷ), ㅅ아래 ㅁ(ㅅㅁ), X(ㄳ)을 만들고, 같은 자음끼리 결합한 형태로는 工(ㄴㄴ ㄴㄴ), ㅅ아래 ㅅ(ㅆ)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정선된 자음은 모두 27자가 된다. 


(3) 정선된 모음

삼재(三才)가 되는 ㅇ ㅁ 각(세모)의 축소형인 , ㅡ ㅣ로 만들어진 모음은, 이 세가지에 다시 각 결합한 형태가 되는  ㅏ, ㅑ, ㅓ , ㅕ , ㅗ , ㅛ , ㅜ , ㅠ 등 8가지를 기본으로 하여 모두 11개로 정선한 것이다.



4.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와 가림토 글자의 제자원리 및 음가

서기전2181년에 삼랑 을보륵은 가림토 글자를 38자로 정선하였다. 물론 그 외에도 많은 글자가  있었다고 보이는데, 실제로 침수도, 첨수도, 명도전에는 변형된 형태가 되는 글자들이 쓰이고 있으며, 이는 가림토38자가 정립되기 이전부터 쓰여오던 글자를 상형에 맞추어 변형시킨 글자가 된다. 물론 가림토 글자든 그 이전에 쓰여지는 글자이든 모두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원리를 담고 있는 글자가 된다.

(1) 가림토는 천지자연의 소리를 적는 천지자연의 문자로서의 소리글자

가림토는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 서의 서두에서 적고 있듯이 천지자연의 소리를 적는 글자로서 소리글자이다. 글자에는 크게 나누어 그림글자인 상형문자와 소리글자인 표음문자가 있는데, 이 가림토는 소리글자인 표음문자가 되는 것임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천지자연의 소리는 그 수에 한정이 없다. 이러한 무수한 소리를 나타내는 글자가 가림토 글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천지자연의 문자라 한다. 천지자연의 소리에 부합하는 천지자연의 글자인 것이 바로 가림토 글자이다.

천지자연의 모습도 천지자연의 소리에 해당한다. 즉 천지자연의 형상(形象)은 곧 소리가 모습으로 나탄나 것이다. 소리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사물로는 바람과 온도가 있다. 이는 모두 보이지 않는 공기와 보이지 않는 수증기과 보이지 않는 열로 인한 것이다. 이 공기, 수증기, 열은 모두 기(氣)의 형태에 해당한다. 기(氣)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형상은 형체(形體)이며, 형체는 바탕(質)에서 이루어진다. 사물의 바탕은 틀(機)에서 이루어진다. 틀(機)은 기(氣)로 이루어진다. 기(氣)는 신(神)의 작용이다. 그리하여 우주만물이 곧 신(神)에서 나와 기(氣)의 작용으로 이루어진 것이 된다. 이리하여 보이는 기(氣)는 모습이 있어 형상을 가지며, 보이지 않는 기(氣)는 열, 소리, 빛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즉 자연의 소리가 바로 자연의 모습의 하나에 해당하는 것이다.

가림토 글자가 천지자연의 소리를 적는다는 것은 천자자연의 모습을 적은 것이라는 말과 상통한다. 그리하여 가림토 글자는 자연히 천지자연의 모습과도 닮은 것이 되며 결국은 상형문자에서 나온 것이 되고 상형문자이기도 한 것이다.


(2) 가림토는 천지인 삼재(三才)의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소리글자

천지인 삼재는 ㅇ ㅁ 각(세모)이다. ㅇ은 하늘을 나타내고, ㅁ은 사방이 있는 땅을 나타내며, 각(세모)는 서 있는 존재인 사람을 나타낸다. ㅇ ㅁ 각(세모)이 바로 천부삼인(天符三印)의 도형(圖形)으로서 부호(符號)이다.

ㅇ ㅁ 각(세모)는 다시 축소화 상징화되어 . ㅡ ㅣ로 나타내어 진다. 이것 또한 천지인 삼재(三才)에 해당한다. ㅇ ㅁ 각은 기본자음으로서 천지인 삼재이며, . ㅡ ㅣ는 기본모음으로서 천지인 삼재가 되는 것이다.


(3) 기본자음과 제자원리에 의하여 만들어진 자음과 음가

(가) 기본자음

가림토38자 중에서 원래의 천지인 삼재가 되는 ㅇ ㅁ 각(세모)에서 만들어지는 기본 글자는 ㄱ, ㄴ, ㄷ, ㄹ, ㅁ, ㅐ(ㅂ), 각(세모), ㅅ, ㅇ, ㅈ , ㅍ이 된다. 

(나) 제자원리에 따라 만든 자음

또 다른 천지인 삼재 . ㅡ ㅣ과 위 기본자음이 결합하여 새로운 자음이 만들어진다. ㄱ안에 .(ㅋ), ㅡ아래 ㄱ(ㄲ), ㄷ안에 점 또는 ㅡ(ㅌ), ㅡ아래 각(세모), ㅡ아래 ㅇ(ㅇㅇ), ㅊ(. 아래 ㅈ), ㅡ아래 ㅈ(ㅉ), ㅡ아래 ㅍ(ㅍㅍ), P(디->치)이 있다.

또 기본자음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자음도 있다. 여기에는 工(ㄴㄴㄴㄴ), ㅒ(ㅃ), M(ㅅㄱ), ㅅ아래 ㄷ(ㅅㄷ), ㅅ아래 ㅁ(ㅅㅁ), ㅅ아래ㅅ(ㅆ),  X(ㄳ->ㅋㅅ, ㅋ, ㅎ)이 있다.

(다) 음가

각 자음은 원래 상형에서 나온 글자이므로 그 상형에서 파생된 뜻을 가진다.

ㄱ : 훈민정음의 ㄱ과 같다. 굽은 모양을 나타낸 글자가 된다.

ㄴ : 훈민정음의 ㄴ과 같다. ㄱ과 ㄴ을 니은(이은) 모양을 나타낸 글자로서 이어져 있는 모양을 나타낸 글자가 된다.

ㄷ : 훈민정음의 ㄷ과 같다. ㄱ과 ㄴ이 ㄴ과는 다른 방향으로 결합된 모양을 나타낸 글자로서 C모양의 형태를 띠므로 닿아 있거나 떨어져 있는 모양을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ㄹ : 훈민정음의 ㄹ과 같다. ㄱ과 ㄴ과 ㄷ을 결합한 형태로서 굽어(ㄱ) 이어져(ㄴ) 닿거나 떨어지는(ㄷ) 모양을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그래서 물이 흐르거나 새가 날으거나 돌이 구르는 모양과 같은 뜻을 나타낸다.

ㅁ : 훈민정음의 ㅁ과 같다. ㄱ과 ㄴ과 ㄷ을 결합한 형태로서 열려 있지 않고 뭉쳐진 모양을 나타낸 글자가 된다.

ㅐ : 양쪽으로 벌어진 모양을 나타낸 글자가 된다. 가림토38자에는 ㅍ은 있으나 훈민정음의 ㅂ이라는 글자가 없는데, 명도전에는 ㅐ라는 글자가 "집"이라는 글자의 사다리 모양으로 나와 "ㅂ" 소리로 쓰이고 있는데, 이 ㅐ가 훈민정음의 ㅂ소리로 확실한 것이 된다. 훈민정음의 ㅂ은 ㅁ을 변형시킨 글자로서 입을 벌린 모양의 글자가 된다.

각(세모) : 훈민정음의 소리와 같다. 천지인 삼재의 하나인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로서 "유성음 ㅅ"소리가 된다. ㅅ아래 ㅡ로 막은 글자로서 저장하는 공간을 나타내는 글자가 되어 ㅈ과 같은 뜻을 가지는 것이 된다.

ㅅ : 훈민정음의 ㅅ과 같다. 서 있는 모양을 나타낸 글자이다.

ㅇ : 훈민정음의 ㅇ과 같다. 천지인 삼재의 하나로서 하늘을 나타내는 글자이다. 둥근모양을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ㅈ :  훈민정음의 ㅈ과 같다. ㅅ위에 지붕이 되는 ㅡ를 얹은 글자로서 지붕이 있는 모양으로서 뭔가를 저장할 수 있는 모양을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ㅡ아래 ㅅ으로서 용례에 의하면 ㅆ과 같은 글자가 되므로 음가를 달리하여 ㅆ은 가림토에서 ㅅ아래 ㅅ을 쓴다.

ㅊ : 훈민정음의 ㅊ과 같다. ㅈ위에 기본모음의 삼재(三才)인 . 을 찍은 글자로서 ㅈ의 격음(센소리)을 나타낸다. 저장소에 구멍이 뚤리는 모양으로서 꽉 찬 모양이나 넘치는 모양을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ㅋ : 훈민정음의 ㅋ과 같다. ㄱ안에 기본모음의 삼재(三才)인 . 을 찍은 글자로서 ㄱ의 격음(센소리)을 나타낸다. 굽은 모양이 펴지거나 세찬 모습을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ㅌ : 훈민정음의 ㅌ과 같다. ㄷ안에 기본모음의 삼재인 . 이나 ㅡ를 더한 글자로서 ㄷ의 격음(센소리)을 나타낸다. 닿거나 떨어지는 정도가 세찬 모습을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가림토38자의 ㅌ은 좌우가 바뀐 글자이다.

ㅍ : 훈민정음의 ㅍ과같다. 벌어진 모양이 세찬 모양을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ㅡ아래 ㅇ : 훈민정음의 소리와 같다. ㅇㅇ과 같은 글자가 되는데, ㅇ은 하늘을 나타내는 글자이고 ㅇㅇ은 하늘의 태양을 나타내는 글자가 되며, ㅇ의 경음(된소리)이 된다.

X : 훈민정음에는 없는 글자인데, ㄳ, ㅋㅅ, ㅋ, ㅎ 등과 유사한 소리를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ㅒ : 훈민정음에는 없는 글자이나 ㅐ(ㅂ)의 경음이 되는 ㅃ과 같은 소리이다.

ㅡ아래 ㄱ : 훈민정음의 ㄲ과같다. 

ㅡ아래 각(세모) : 유성음 ㅅ의 경음(된소리)이 된다. 

ㅡ아래 ㅈ : 훈민정음의 ㅉ과 같다.

ㅡ아래 ㅍ : ㅍㅍ을 나타낸 글자로서 ㅍ의 경음(된소리)이 된다. 

P : ㄷ과 ㅣ가 결합된 소리로 구개음화 되어 [치]에 가까운 소리를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M : ㅅ과 ㄱ을 결합한 글자 ㅅㄱ이 된다.

ㅅ아래 ㄷ : ㅅ과 ㄷ을 결합한 글자 ㅅㄷ이 된다.

ㅅ아래 ㅁ : ㅅ과 ㅁ을 결합한 글자 ㅅㅁ이 된다.

ㅅ아래 ㅅ : 훈민정음의 ㅆ과 같다.

工 : 훈민정음에는 없는 글자로서, ㄴ과 ㄴ이 결합된 글자로서 발음은 [ㄴ나]이며, [나(我), 자(自)]를 뜻하는 글자가 된다.


(4) 기본모음과 제자원리에 의하여 만들어진 모음과 음가

(가) 기본모음

가림토38자 중에서 원래의 천지인 삼재가 되는 ㅇ ㅁ 각(세모)에서 축소화 상징화된 삼재(三才)가 되는 . ㅡ ㅣ이 기본모음이 된다. 

(나) 제자원리에 따라 만든 모음 

 . ㅡ ㅣ의 상호결합으로 만들어진 모음은 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가 있다.

(다) 음가

훈민정음의 음가와 완전히 일치한다. 각 모음은 원래 상형에서 나온 글자이므로 그 상형에서 파생된 뜻을 가진다.


ㅏ : ㅣ의 오른쪽에 태양을 상징하는 . 을  찍어 태양이 기준선에서 나온 모습으로서, 낮에 운행을 하는 모양을 나타낸 글자가 된다.

ㅑ : ㅏ보다 태양이 하나 더 있으므로, 어감상으로 가볍고 밝은 소리를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ㅓ : ㅣ의 왼쪽에 태양이 있어 기준선을 향하여 다가가는 모습으로서 해가 지는 모습을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ㅕ : ㅓ보다 태양이 하나 더 있으므로, 어감상으로는 ㅓ보다 가볍고 여린 느낌을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ㅗ : ㅡ위에 태양을 상징하는 .을 찍어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ㅛ : ㅗ보다 태양이 하나 더 있어 ㅗ보다 어감상으로 가볍고 더 밝은 모습을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ㅜ : ㅡ아래 태양이 숨어 있는 모습을 나타낸 글자로서 어둡고 무거운 느낌을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ㅠ : ㅜ보다 태양이 하나 더 있어 ㅜ보다는 가볍고 여린 모습을 나타내는 글자가 된다.


5. 가림토 글자를 가진 유물

(1) 침수도, 첨수도, 명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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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수도-주나라 춘추시대에 해당 추정-허대동선생의 자료 중에서>

침수도와 첨수도는 명도전 이전에 주조발행된 도전으로서 주나라 춘추시대 이전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학자들도 흉노도라 하든지 산융부족이 주조하였다는 등으로 주나라 밖에서 주조된 화폐로 인정하듯이 이 침수도와 첨수도는 바로 단군조선에서 주조되어 발행되고 사용된 화폐이다.

침수도와 첨수도 상의 글자는 명도전의 글자보다 상형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는 명도전의 화폐보다 먼저 주조된 화폐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즉 침수도, 첨수도와 명도전의 주조연대를 정확히 밝히려면 시간이나 비용이 들겠지만, 우선 명도전의 글자가 단군조선의 가림토38자와 같거나 유사한 글자가 많아 자음과 모음을 분리한 글자로 파악이 되고, 침수도와 첨수도의 글자는 상형에 가까운 글자로서 자음과 모음이 거의 일체로 된 글자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단군조선에서는 서기전2133년에 원공패전(圓孔貝錢)을 주조하였다라고 하고, 서기전1680년경에 자모전(子母錢)을 주조하였다라고 하고, 서기전1426년경에는 패엽전(貝葉錢)을 주조하였다라고 하며, 서기전643년에는 방공전(方孔錢)을 주조하였다하고 기록되고 있는데<한단고기 단군세기, 단기고사 참조>,  이 침수도와 첨수도와 명도전은 바로 자모전과 관련이 깊은 것이 된다. 왜냐하면, 자모전은 작은 단위의 화폐와 큰 단위의 화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림토 글자의 자음과 모음을 새긴 화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수도, 첨수도, 명도전은 자모도전(子母刀錢)이 된다.

단군조선에서는 상형문자로 신전(神篆)이라 불리는 진서(眞書)가 있었으며, 서기전2181년에 이 진서의 발음을 통일하기 위하여 가림토38자를 만들었다라고 기록되고 있다. 이후 약500년이 지난 서기전1680년에 자모전을 주조하였다는 것은 가림토의 글자를 도전에 새겨 단군조선 영역에 유포한 것이 된다. 이는 곧 말을 통일시키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추정된다. 

침수도와 첨수도가 발행되기 시작한 때가 서기전1680년이라면, 이후 글자는 더 발전된 향태로 주조되었다고 보인다. 주나라 춘추시대는 서기전770년부터 서기전404년까지에 해당하는데, 침수도와 첨수도는 늦어도 이 시기에 주조된 것이 되고, 그 이전에도 수시로 주조발행된 것이 거의 확실하게 된다. 그래서 침수도와 첨수도는 서기전1680년경부터 춘추시대 말기가 되는 서기전400년경까지 줄곧 주조발행된 화폐가 되는 것이다.

   


<명도전에 새겨져 있는 문자의 실례-허대동선생의 자료 중에서>

명도전은 침수도, 첨수도 이후에 주조된 것으로 인정되고 있는데, 중국학자들에 의하면 주나라 춘추시대 말기에서 전국시대에 주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기록에 의하면 침수도와 첨수도가 춘추시대 이전부터 이미 주조된 것으로 되며 명도전은 침수도와 첨수도의 뒤를 이어 주조된 화폐가 되므로 춘추시대 발행된 것이 거의 명백하며 전국시대까지 줄곧 주조발행된 것으로 된다. 침수도, 첨수도, 명도전의 글씨 자체가 은나라 갑골문과 유사한 글자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은나라 갑골문은 곧 단군조선의 문자의 아류가 되는 것으로 된다, 그 이전의 하나라시대에는 단군조선의 상형문자인 신전을 사용한 것으로 된다. 이는 소위 하나라 우왕의 치수기념비라고 불리는 우왕비에 새겨진 글자가 과두문이며, 과두문은 서기전2700년경 배달나라 시대에 창힐이라는 사람이 개발한 상형문자로서 황제헌원에게 전수된 문자라고 전해지는 바, 단군조선의 상형문자가 배달나라 상형문자이고, 창힐은 배달나라 시대의 동쪽 지역을 다스리던 청제(靑帝)라는 천자격의 제후였으며, 그 다스리던 영역이 지금의 산동지역과 발해만 연안 지역의 동쪽 지역에 해당되고, 이 창힐이 다스리던 땅에 세워진 단군조선이 창힐의 문자를 계승한 것이 분명하므로 , 하나라 시조 우가 사용하였던 과두문은 곧 단군조선의 문자이기도 한 것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명도전에 새겨진 문자는 가림토의 자음과 모음과 그 형태가 같거나 유사하며, 그 유사한 형태를 글자는 아마도 상형에 맞추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명도전에 새겨진 글자는 표음문자를 상형에 맞춘 표음-상형문자가 되는 것이다. 

중국문자와 우리의 문자가 달라지기 시작한 때는 은나라 말기로 추정된다. 은나라가 망한 때인 서기전1122년경에 은나라 왕족 기자가 단군조선의 서쪽 땅에 망명한 후 사사 왕수긍에게 부탁하여 단군조선의 삼일신고를 단목판에 은나라 문자인 은문으로 새기게 하여 읽었다 하는 데서, 이 당시 은나라 문자와 단군조선의 문자가 상당히 달랐던 것으로 되는데, 이는 은나라가 건국된 이후 약600년이 흐른 뒤가 되므로, 처음 은나라가 하나라가 쓰던 문자나 단군조선의 문자를 쓰다가 글자를 새로이 만들거나 형태가 달라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이 된다. 실제로 단군조선의 삼일신고를 기록한 고서체가 은나라의 갑골문과 같거나 유사하거나 다른 형태가 있다. 이를 알 수 있는 근로거는 고려시대 농은선생의 천부경이 있다. 이 천부경에 새겨진 글자들에 갑골문과 동일한 글자도 있고 다른 글자도 있으며 유사한 글자도 있다. 이로써 은갑골문과 단군조선의 문자는 상당한 정도로 닮아 있으면서 은나라의 폐쇄적인 정책으로 인하여 단군조선과의 문화교류가 단절된 경우가 있을 수 있어 충분히 다른 글자가 생기거나 변형된 글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중국의 도전은 주로 전국시대가 된다. 특히 제, 연, 조나라의 도전이 대표적이다. 전국시대 당시 서기전296년까지 존속하였던 선우중산국에서 침수도, 첨수도, 명도전이 무더기로 출토되기도 하였는데, 이들 화폐가 바로 흉노도라든지 산융의 화폐라고 불리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런데, 선우중산국은 역사적으로 기자국의 후예국이 된다. 기자국은 서기전650년경에 고죽국과 거의 동시대에 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기자의 먼 후손들이 동과 남으로 이동하여 동쪽으로서 서기전323년에 번조선왕이 된 기후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선우중산국이 세워진 것이다.

연제조의 도전은 바로 이 선우중산국이나 산융의 화폐를 본따 만든 것이 된다. 애당초 연나라의 명도전은 없었다고 보인다. 제나라가 세력이 강할 때 도전을 만들었던 것이 되고, 이후 연나라가 세력이 커진 서기전323년경부터 제나라를 제압한 시기가 되는 서기전311년경에 소위 연나라 도전을 만든 것으로 된다. 그래서 소위 명도전은 연나라의 화폐가 아니라 단군조선의 화폐이며, 전국시대 중후기에 연나라가 도전을 본따 만든 것이 된다. 연나라는 그 이전에는 제나라의 화폐를 사용한 것이 된다. 제나라는 도폐를 사용하기 이전에는 포폐 등을 사용하였다. 제나라가 도전을 주조한 것은 대량이 아니라 기념화폐로 주조한 것이 된다. 제나라 영역에서 출토되는 침수도, 첨수도, 명도전은 바로 단군조선의 제후국들의 화폐가 되는 것이다. 제나라 부근에 단군조선의 제후국이 되는 나라로 엄(淹), 남(藍), 회(淮), 래(萊), 개(介), 양(陽), 우(隅), 서(徐)라는 8이(夷)가 있었는데, 서기전1236년에 엄, 회, 서가 세워지고, 남(藍)은 서기전2333년부터 존속하고 있었으며, 그외 래, 개, 양, 우는 산동반도 내에 있었다. 엄(淹)은 서기전900년경까지 존속한 것이 되고, 서(徐)는 서기전512년에 오나라에 완전히 망하였고, 회(淮)는 서기전221년경 진시황의 진나라 때 완전히 망하였다. 그외의 나라에 대한 역사기록은 없어서 불명이다. 특시 서(徐)는 서기전1236년에 세워진 후 서기전684년경에 서언왕이 나타나 주나라를 쳐서 36군을 차지하였으며, 동이족의 종주국으로 행세하였고, 초나라 문왕에게 수도를 함락당하고 서산(徐山)으로 쫓겨간 후 제나라의 속국이 되었다가 다시 부활하는 기세를 보였으나 결국 오나라 합려왕에게 서기전512년에 망하였다.

제나라 영역이 되는 산동반도 지역에서  출토되는 소위 제나라 명도전은 결국 주나라가 아니라 단군조선의 제후국이 되는 동이족들이 주조하고 사용하던 화폐가 틀림없는 것이 된다. 

(2) 낭하리 석각 등



<왼쪽부터 1. 낭하리 석각  2. 평양부근 영변 법수교 문자  3. 중국에 세워진 창성조적비  4. 은나라 갑골>

낭하리 석각에 대하여는 배달나라 시대 한웅천왕이 사냥을 갔다가 하늘에 제사지내고 돌아온 내용을 적을 것이라 전하고 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상형문자로 보인다. 그러나, 가림토라는 글자 자체가 원레 상형문자에서 파생되거나 도출된 문자이므로 간단한 형태의 글자는 가림토 글자로 읽어도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배달나라 초기부터 ㄱ이라는 문자와 같은 글자를 사용하였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이는 삼재(三才)의 원리에 의하여 만들어진 글자에 속하기 때문이다. 삼재는 천지인(天地人)을 의미하고, 천지인을 나타내는 도형은 바로 ㅇ ㅁ 각(세모)으로 바로 기본자음이 되며, 이것의 축소상징화된 글자가 바로 기본모음이 되는 . ㅡ ㅣ 인 것이다.

가림토 글자는 모두 삼재의 원리에 의하여 만들어진 글자이다. 자음과 모음이 모두 ㅇ ㅁ 각과 . ㅡ ㅣ가 결합된 형태이다. 서기전2181년에 만들어진 가림토38자는 곧 배달나라 초기부터 있어온 ㄱ과 같은 상형문자이자 표음문자와 수많은 상형문자에서 그 표음부분이 되는 글자가 도출되어 정선된 글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림토 글자는 모두 상형문자이며, 상형문자에서 도출된 글자이므로 상형을 지니고 있고 뜻글자이며 소리글자인 것이다. 결국 배달나라 시대에도 이미 상형문자와 표음문자의 체계가 어느정도 혼용되고 있었던 것이 된다. 이를 소리글자만 뽑아 내어 정리한 것이 바로 서기전2181년에 만들어진 가림토38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단군조선의 유물에 해당하는 것에 새겨진 글자들이 가림토38자에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같거나, 유사하거나 변형된 형태의 글자들이 많은 것이 된다.


(2) 산동 환태시 유물


<산동 환태시 출토 유물>

위 산동 환태시에서 출토된 유물에 새겨진 글자는 분명히 가림토글자이다.  하나라나 은나라의 문자가 아니라 서기전2181년 이후에 새겨진 글자인 것이며, 글자의 형태가 바로 가림토 글자가 되는 것이다.

위 글을 나열하면, ㅅ, ㅈ, v 또는 ㄴ, x, ㅜ 가 되는데, 모두 가림토38자에 해당하는 글자이다. 다만, ㅈ의형태가 불명확하고 ㄴ의 형태가 v에 가까운데, ㅅ, ㅈ, ㄴ, x, ㅜ로 읽게 되면, "ㅅ ㅈ ㄴ xㅜ"가 되고 이는 기본모음 아래.를 넣어 읽으며, "ㅅ. ㅈ.ㄴ xㅜ"가 되고 이는 "소 전 후"가 된다. x는 ㄳ의 합자로서 발음은 ㅋㅅ, ㅋ, ㅎ에 유사한 소리가 되며 ㅎ으로 읽으면 된다. 소전후와 연관되는 한자는 少典侯가 있는데, 만약 이 소전후라는 글자를 나타낸 가림토글자라면, 역사적으로도 일치하는 것이 된다. 즉 산동지역에는 소전씨(少典氏)의 후손이 되는 나라로 염제신농국이 서기전3218년부터 서기전2333년까지 존속하였고, 소전씨의 별파로서 공손씨의 나라로가 되는 유웅국(有熊國)은 중원지역이 되는 서안~탁록 사이에 있었다. 공손씨의 나라는 서기전2698년부터 황제헌원이 왕이 된 나라이다. 염제신농국은 서기전2697년에 배달나라 치우천왕에 의하여 단웅국(檀熊國)으로 다시 봉해졌고, 이 단웅궁의 말왕이 되는 홍제(洪帝)의 외손자가 바로 단군왕검으로서 섭정을 하던 나라이다.  그래서 단군조선 시대이자 하나라 말기가 되는 시대에 산동지역의 소전후(少典侯)에 해당하는 나라는 염제신농국의 후손이 되는 자들이 봉해진 나라로 추정된다. 


(3) 은나라 시대 유물


<제일 아래 쪽 중국 갑골문자로 표시된 문자=은나라 시대(서기전1766년경~서기전1122년경) 가림토>


위 그림에서 가장 밑에 있는 글자가 바로 은나라 갑골문이라는 글자인데, 그러나 이는 일반적으로 갑골문과는 다른 서체가 되며, 바로 단군조선의 표음문자인 가림토가 되는 것이다. 

은나라는 역사적으로 단군조선의 군사력을 얻어 하나라를 멸망시키고 건국된 나라이다. 서기전1766년경에 하걸왕이 도를 잃자 은탕이 군사를 일어켰는데, 이때 하걸왕은 단군조선에 구원을 요청하였고 단군조선에서 군사를 파견하자 은탕이 아직 때가 아님을 알고 전쟁을 그치고 사죄하였으며, 이에 단군조선의 군사가 회군하려 하자 하나라 군사들이 조약을 위반하고 앞을 가로막으므로, 단군조선의 군사가 은탕의 사람들과 모의하여 하나라를 치기로 하여 협공으로 공격하자 하걸왕은 남쪽으로 도망갔으며 이내 하나라가 멸망하였던 것이다. 서기전1766년에 은탕은 은나라를 건국하였으며, 이때 단군조선의 번한이 묵태씨를 보내어 즉위축하를 해주게 하였다. 실제로 중국의 기록에서도 은탕의 군사와 동이족의 군사가 하나라 군사를 상대로 하여 전쟁을 벌인 기록이 나타나며, 은나라가 동이족의 힘으로 건국된 나라임이 드러나고 있다. 이때 아마도 정황으로 보면 고죽국의 군사가 은탕의 군사와 협공으로 하걸왕을 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번한이 묵태씨를 파견하여 은탕의 즉위를 축하하도록 하였다는 기록을 보면, 묵태씨는 바로 고죽국의 왕족 성씨가 되므로, 서로 연관성이 있는 것이다. 고죽국은 은나라의 제후국이 절대 아니다. 고죽국은 하나랑 이전부터 존속해오던 나라이며 단군조선의 요서지역에 위치한 단군조선의 제후국인 것이다. 고죽국은 대체적으로 지금의 태항산 동쪽 지역으로서 영정하를 중심으로 북경과 천진과 탁수에 걸치는 땅이 된다. 그래서 고죽국의 동해는 바로 발해만이다. 고죽국의 수도는 천진 또는 탁주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죽국이 있을 당시에 연나라는 고죽국의 남쪽에 위치한 나라이며 그 수도는 안(安)이라 불리는 지금의 안국시(安國市) 또는 이(易) 또는 역이라 불리는 역현(易縣)이 틀림없는 것이 된다.

위 은나라 시대의 유물은 서기전1766년경부터 서기전1122년경까지 존속하였던 은나라를 고려하면, 단군조선의 후원으로 건국된 나라로서 단군조선의 문자를 가져간 것이거나, 건국기념으로 새긴 것이거나, 단군조선의 제후국에서 나온 것이 될 것이다. 물론 은나라도 단군조선의 천자국으로서다른 말로는 제후국에 해당한다. 천자국은 천하의 나라에서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이며, 단군조선은 천왕국으로서 삼한관경이 바로 천상이 되는 하늘나라가 되며, 삼한관경 밖의 나라를 천하라 부른 것이 된다. 이리하여 은나라는 삼한관경에 속하지 못한 땅의 나라가 되며, 그 땅나라의 왕이 바로 천왕의 제후가 되는 천국(天國)의 자작(子爵) 즉 천자(天子)인 것이다.


(4) 일본 땅에 있는 유물


<일본 이세신궁 문헌>

일본의 이세신궁(伊勢神宮)에 소장되어 있는 위 문헌에는 일본사람들이 세종대왕 이전에 일본에서 쓰던 신대문자(神代文字)라 자랑하는 글이 기록되어 있다. 신대라는 시기는 서기전660년 이전의 시기를 말한다. 서기전660년에 신무(神武)천황이 일본의 최초 왕이 되었다고 일본서기에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기록에는 서기전668년에 일본 땅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단군조선이 토벌하기로 하여 마한(馬韓)이 협야후(俠野侯) 배반명에게 명하여 난을 평정하도록 하였는데, 이후 7년이 지난 서기전660년에 이 협야후의 무리였던 신무가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스스로 천황을 참칭함으로써 신무는 협야노(俠野奴)로 적인 인물이 된다.

이세신궁은 서기전5년경에 이세국에 세워진 신궁이며, 오십령천 위에 세워져 있다. 그래서 위 문헌에는 시냇물과 관련된 구절이 있으며, 단군조선의 역사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 된다. 위 글을 읽어보면,

우미가 유거하고 시나두 무오호가하라
노우어구사 우미가 하이사 요후
하마 두디도리 하마 요하유가
시우시두다후

가 된다.

이는 곧,

바다는 유유히 머물고 시냇물은 꺼리낌없이 즐거이 노래하라 
바다로 인하여 성난 파도가 성스러운 언덕에 부딪히는 도다
높고 높으신 두도도리 요하유가
수이 쉬시도다

이다.

여기서 두디도리는 바로 단군조선의 두지주 예읍의 추장을 가리키는 것이 되는데, 두디는 두지주(豆只州)를 가리키고 도리는 우두머리인 공(公)과 같은 말로서 추장을 가리킨다. 실제로 우리기록에는 서기전2173년에 두지주 예읍(濊邑)의 추장이던 소시모리가 반란을 일으키므로 예국의 제후이던 여수기가 이 반란을 진압하고 소시모리의 머리를 베었는 바, 이후 두지주 예읍은 소시모리의 나라라는 의미로 우수국(牛首國)이라 불리게 되었다. 위 우수국의 위치는 예국(濊國)이 되는 백두산의 동쪽에 해당하는 지역이 되며, 후대에 이 예국 사람들이 남하하여 한반도 춘천까지 진출한 것이 되어 동예라고 불리게 되고, 소시모리의 후손들도 춘천으로 이동하여 살면서 춘천이 우수국으로 불리게 되는 것이며, 신무가 천황을 참칭한 서기전660년 이전에 일본의 국조신이 되는 천조대신이 우수국에서 일본땅으로 이사를 한 것이 된다. 천조대신은 바로 우수국의 왕족이 되며, 멀게는 소시모리의 후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천조대신을 두지도리라 부른 것이 된다. 요하유는 대일령(大日靈)을 훈독과 음독으로 읽은 것이 된다.

위 이세신궁의 문헌에서는 세종대왕의 한글과는 다른 글자가 있으며, 이는 곧 단군조선의 가림토 글자와 같거나 유사한 글자인 것이다. 특히 반모음 [y]로 쓰인 工이라는 글자는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에는 없는 글자로서 단군조선 가림토에 있는 글자가 되는데, 다만, 가림토에서 [ㄴㄴ]으로 읽히는 것과는 음가가 다른 것으로 나타난다. 

또, ㄹ을 ㄷ의 반대방향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ㄹ의 아랫부분을 생략한 형태가 된다. ㅎ에 해당하는 글자로 ㅅ아래 ㅇ을 쓰고 있는데, 이는 ㅡ아래 ㅇ의 변형된 형태가 된다. ㅡ아래 ㅇ은 가림토와 훈민정음에 모두 있는 글자이다.

工, ㄷ의 반대방향, ㅅ아래 ㅇ을 제외한 글자는 훈민정음과 가림토 모두에 있는 글자로서 이 이세신궁의 글자가 훈민정음을 본 딴 것인지, 아니면 신대문자로서 단군조선의 글자인지는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工이라는 글자를 사용하고 ㅣㅇㅆ고, ㅅ아래 ㅇ을 응용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단군조선의 가림토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이세신궁의 글자는 자음과 모음이 가로로 쓰였으나 아래 호은신사의 글은 세로로 쓰이고 있는 바. 이는 훈민정음의 가로쓰기와는 다르고 단군조선 가림토에서 사용되는 방법의 하나로서 소위 명도전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서 가림토라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본다.


<일본 호은신사 문자-천일창의 후손을 모신 신사로 추정 >

낱 글자의 모양은 이세신궁의 글자와 같으나 자음과 모음이 세로쓰기로 되어 있다. 세로쓰기로 보아 단군조선 가림토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그리고 반모음 [y]로서 工, ㅅ아래 ㅇ, ㄹ발음으로 ㄷ의 반대방향으로 된 글자를 사용하고 있어 훈민정음보다는 가림토 글자에 가까운 것이 된다.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 서문에, 사방의 풍토가 나뉘어져 달라지니 이에 따라 소리기운도 따라 달라졌다 함으로써, 결국 옛 사람이 삼재(三才)의 도(道)를 실어 천지자연의 소리를 나타내는 소리글자를 만들었으나 오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읽는 소리가 달라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는 바, 일본 땅에 남겨진 소위 신대문자는 바로 단군조선이 소리글자인 가림토가 일본 땅에서 약간식 변형되거나 읽는 소리가 다르게 된 것임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된다.    


(5) 아라가야 유물

<아라가야(경남 함암)에서 출토된 토기상의 문자-허대동선생의 자료중에서>

아라가야는 한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가야시대의 나라 중의 하나이다. 서기42년경에 금관가야 등 6가야가 세워지고 서기532년에 금관가야가 신라에 병합되고 서기562년에 대가야가 신라에 병합됨으로써 신라 땅이 되었는데, 이때 아라가야는 지금의 함안지방에 있던 나라로서, 위와같은 문자를 토기상에 남긴 것이다.

대체로 6가야는, 김해의 금관가야, 고령(高靈)의 대가야, 함안의 아라가야, 고성의 소가야, 성산의 성산가야, 고령(古寧)의 고령가야이다. 후대에는 창녕가야를 넣기도 하는데 창녕의 옛이름은 비사벌(比斯伐:빛벌)이다. 이외에도 가야지역은 원래 변지12국이있던 자리로서 이들 중 일부는 6가야 외에 포함되지 아니하고 별도의 소국으로 남겨지기도 한 것으로 된다.

위 토기상에 나타난 글자는 훈민정음과는 판이하게 다른 글자로서 상형문자와 유사한데, 가림토가 분명한 것이다. 왜냐하면 소위 명도전 상에도 이들과 유사한 문자가 수없이 나타나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상형에 맞춘 글자들이다. 즉 가림토의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되 상형문자화 한 것이 된다. 그래서 표음-상형문자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一, 二 등의 글자는 숫자일 수도 있고 모음인 ㅣ나 장모음인 ㅣㅣ일 수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ㅣ를 ㄹ로 읽힐 수도 있게 된다. x라는 글자는 훈민정음에는 없으며 가림토38자에 속한 글자이므로 결정적으로 위 글자들이 표음문자로서 가림토가 되는 것이다. 또 "시"를 세로쓰기로 "ㅅ아래ㅣ"를 쓰고 있으므로 가림토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단군조선의 가림토 글자는 서기전2181년에 38자로 정리된 이후에도, 그 이전에 사용되던 원래 형태의 글자를 계속 사용한 것이 되거나, 변형시킨 형태로 사용한 것이 되고, 자모전(子母錢)을 이어, 한반도의 남쪽 지역과 심지어 일본 땅에도 전파되어 사용된 것이 된다.

이렇게 보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에 이미 단군조선의 가림토 문자를 신라시대 박제상이 지은 징심록(음신지)라는 책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유물에서도 확인하였을 수도 있는 것이 된다. 명도전 등의 화폐나 토기 등의 유물에서 확인하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6. 단군조선 역사의 결정적 증거인 가림토

(1) 명도전 연구대가 허대동선생의 명도전 문자 연구결과

침수도, 첨수도, 명도전에 새겨진 글자를 해독하기 위하여 2~3년의 연구를 거듭한 끝에 허대동선생은 결국 이들의 문자가 단군조선의 가림토 문자임을 밝혔다. 즉 이들 도전에 새겨진 문자는 연나라의 문자가 아니며 고대중국 전구시대의 6국의 문자와는 판이하게 다른 문자로서 한글과 같이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된 소리글자임을 밝힌 것이다.

필자가 허대동선생의 해독연구를 검증한 결과, 거의 모든 글자가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글자이며, 상형에 맞춘 글자임을 파악하였던 것이며, 읽는 소리도 필자와 같거나 유사하거나 하였다. 그리하여 필자도 결론을 내리기로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가림토글자임을 단정하였으며, 이들 도전에 새겨진 문자 중에는 상형문자로 볼 수 있는 글자와 상형-표음문자, 표음-상형문자, 표음문자로 볼 수 있는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르러 결정적인 단서를 찾게 되어, 명도전에 새겨진 글자는 100% 단군조선의 문자이면서,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된 가림토 글자임을 단정하게 되었다. 그 단서는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인지 서문이다. 여기서 훈민정음 이전에 소리글자가 있었으며 훈민정음28자가 본땄다는 고정(古篆)이 바로 단군조선의 소리글자인 가림토가 된다는 것이다.
 

(2) 명도전 출토지와 거의 일치하는 단군조선 영역

필자가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단군조선의 영역은 명도전이 출토되는 지역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 되는데, 이로써 명도전이 출토되는 지역은 단군조선의 삼한 관경이 분명하고 단군조선에서 주조되어 사용된 화폐임이 명백하게 된다. 즉 지금까지 학자들이 주장한 연나라 화폐라는 설은 이치에도 맞지 않고 근거가 없는 주장인 것이다.

침수도, 첨수도, 명도전에 관한 중국학자들의 견해도 그들 스스로 흉노도라 하든지 산융의 화폐라 하든지 하면서 연나라의 화폐가 아님을 인정하고 있는데, 이는 반대로 해석하면 바로 단군조선의 화폐였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된다.

흉노는 원래 단군조선의 한 부족집단이다. 주로 만리장성 북쪽 지역에서 서쪽으로 활동하던 족속으로서 서기전6세기경부터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서쪽으로는 훈족이라 불리는 족속으로 유럽대륙으로 진출하였으며, 동쪽으로는 단군조선의 구려땅까지 진출하는 등하여 호(胡)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산융은 주나라 춘추시대의 제나라가 연나라의 구원 요청으로 정벌하였다는 나라가 되는데, 고죽국의 북쪽에 있는 나라이며 지금의 내몽골 지역에 있던 구려국의 일부를 나타내는 것이 된다. 즉 산융(山戎)은 단군조선의 전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단군조선의 한 제후국인 구려국(고리국) 중에서 고죽국의 북부에 위치하는 땅을 가리키는 것이다.

고죽국은 서기전650년경에 제나라와 연나라의 침략으로 멸망한 것이 되는데, 이때 고죽국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던 기자국도 멸망하였으며, 기자의 후손들은 일부는 남하하여 선우중산국을 세워 서기전296년까지 존속하였으며, 일부는 동쪽의 번한 땅으로 이동하여 서기전323년에 읍차 기후가 번조선왕이 되기도 하였다.

선우중산국에서도 침수도, 첨수도, 명도전이 무더기로 출토되었는데, 산융의 침수도, 첨수도, 명도전과 같은 것으로서 기자국이 원래 단군조선의 제후국임이 증명되는 것이 된다.

명도전의 출토지는 대략적으로 산동지역, 발해만 서쪽에서 북쪽을 거쳐 만주, 한반도의 북부에 걸치는데, 이는 단군조선의 번한, 진한, 마한에 모두 걸치는 것이 되므로 단군조선의 전역에서 유통된 화폐로 보이는 것이다.

연나라는 전국시대에 세력이 강해졌는데, 서기전323년에 칭왕을 하였으며 이후 제나라를 압도하는 등 하였으나 고작 약100년도 안되는 바, 이 100년이라는 시기에 연나라 화폐인 명도전을 단군조선의 전영역에 사용하게 하였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역사의 역자로 모르는 역사학자라 할 수 없는 자들의 망발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명도전은 그 이전의 침수도, 첨수도를 계승한 화폐임을 중국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는 바, 명도전의 주조연대를 밝히면 단적으로 연나라의 화폐인지 단군조선이 훨씬 이전부터 심지어 춘추시대 아니면 그 이전부터 주조발행해 온 화폐인지 밝혀질 것이라 본다.    


7. 여론

(1) 세계역사의 위치를 바로잡는 가림토 글자

명도전의 글자가 단군조선의 문자임이 밝혀진 것이나 다름 없는 바, 이러한 연구결과가 세계사적으로 인정되면, 세계의 문자의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 훈민정음은 우리역사에 있어서 가림토 다음으로 정립된 표음문자이다.

가림토 문자는 서기전2181년에 정립된 글자이므로 수메르문자나 이집트문자나 인도 브라미문자 그리고 우리의 상형문자의 아류가 되는 지금의 한자와 더불어 세계사의 한 획을 긋는 대사건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된다. 특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훈민정음의 모태가 바로 단군조선의 가림토임을 드러내면서 단군조선의 역사도 함께 드러내는 것이 된다.

(2) 가림토와 한글을 연결시키는 징심록(澄心錄)의 음신지(音信誌)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 서에서 기록하듯이 훈민정음은 단군조선의 가림토 글자를 본따 만든 것으로서, 김시습선생은 이를 그가 지은 징심록추기에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28자를 신라시대 박제상이 지은 징심록에서 그 근본을 취하였다라고 단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글자의 근본을 취한 근거가 되는 책은 징심록 중의 한 책이 되는 음신지인 것이 분명하다.

음신지는 글자에서 보듯이 음은 소리를 의미하고 신은 부호를 의미한다. 그래서 음신은 곧 소리를 나타낸 글자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 그리하여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의 근본을 취한 글자가 실린 책은 바로 징심록의 음신지가 분명한 것이다.
 

(3) 훈민정음(한글)은 곧 가림토 글자의 부활

훈민정음 해례본 정인지 서에서 훈민정음은 옛 사람이 만든 소리글자에서 본딴 글자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 소리글자는 곧 조선의 원래 조선인 단군조선에서 서기전2181년에 만들어진 것으로서, 오랜기간 최소한 약1,260년 이상을 단군조선의 전영역에서 쓰여오다가 서기전924년에 만들어진 이두법에 의하여 차차 그 쓰여짐이 소홀히 되다가 단군조선이 망한 후 각 제후국들이 왕을 칭하면서 독자적으로 영위하다보니 원래 글자의 발음이 달라지거나 혹은 이두법을 사용함으로써 잊혀지게 된 것을,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중국문자인 한자가 다 하지 못하는 우리 발음을 적기 위하여, 백성들의 편의를 위하여 부활시킨 것이 된다.

그야말로 잊혀질 뻔 하였던 문자를 되살린 것이 된다. 그리하여 단군조선의 가림토 글자는 세종대왕의 부활작업에 의하여 자손들에 의하여 영원히 사용되어 지게 된 것인 바, 세종대왕의 업적은 옛 역사를 되살린 위대한 업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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