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설교(12)
-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 있다 -
마태복음 5장 10-12절/ 10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11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복 있다 - 그 여덟 번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다”
예수님은 산상설교 첫 번째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주께로부터 받은 ‘천국을 소유한 복’에 있을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여덟 가지를 들어서 말씀하셨는데, 본문은 그 여덟 번째로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를 세상에 속한 자들은 자기들과 같지 않음으로 배척합니다. 배척이란 따돌리거나 거부하여 밀쳐낸다는 것인데, 이것이 구약의 아벨의 피에서부터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인 예수님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의로운 피가 이후의 모든 세대에게 다 돌아갈 때까지 계속되는 것에서 있습니다(마 23:35, 36).
그런 이유로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에게 있게 될 복인 ‘천국이 저희 것임’을 말씀하시는 마지막과 결론으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라고 하시면서 이를 예수님 자신과의 연결에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10-12).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제자에게 있게 될 복을 예수님을 인하여 받는 핍박과의 관련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가 당할 핍박을 먼저 ‘나를 인하여’ 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핍박을 받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자신을 따르는 제자가 ‘나를 인하여’ 핍박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핍박 받음은 시편 31:15에서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 시편 119:86에서는 “주의 모든 계명은 신실하니이다 저희가 무고히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시편 119:161에서는 “방백들이 나를 무고히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49:13에서는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 -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해방시키시고 짓눌려 살던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겨 위로해 주셨다‘, 현대어성경)”라고 하여서 언약 백성이 핍박을 받아 간구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언약하신 영원한 기업을 주신다는 예언을 하신데 따른 성취, 곧 구약의 예언 성취로 예수께서 핍박을 받은 자에게 예언된 복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편에 계시해 주시고 있는 메시야 사상에 의해서 무고히 핍박하는 악한 자를 고발하고 하나님이 도우실 그 핍박받는 자인 메시야로 영원한 나라를 기업으로 주실 언약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언약대로 예수께서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자에게 예언된 복이 성취됨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배척하는 일은 구약의 아벨의 피에서부터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에서 증거되어 왔었고 그리고 또한 종말론적인 세상 끝 날에까지 있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들에게 있는 것에서 계속될 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 의로운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이 그를 핍박한 자의 불의를 고발하는 입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예수님이 흘릴 의로운 피 안에 있게 될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그들이 소유한 천국의 의를 세상으로부터 끊임없이 배척당하는 모습에 있게 됩니다. 이는 그들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고 예수님에게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배척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배척을 당하여 죽임을 당함으로 흘린 피의 의로움은 또한 그를 따르는 제자에게도 함께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죽음의 고난을 당한즉 그들도 고난을 당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신들이 주로 받아 섬기며 따르는 예수님 안에서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죽음을 당하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가령 베드로의 죽음이나 바울의 죽음이나 야고보의 죽음이나, 이들 사도들의 죽음은 그들이 능히 주님을 위해서는 죽을 수 있는 용기와 그 용맹함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말해 주시고 있는 그 많은 신앙인들이 자신을 배척하여 대적하는 자들에 의해 칼에 맞아 죽고 몸이 톱에 잘려 죽고 화형을 당하여 죽고 사나운 사자에 물리고 찢겨 죽고 이런 저런 몸서리쳐지는 무섭고 고통스럽고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을 당하여도 그들이 놓지 않고 꼭 붙들고 죽어간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말입니다. 그들의 주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이요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준비하신 영원한 도성을 바라봄입니다(히 11:10).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고 다녔으며 또한 예수님 안에서 자신의 생명을 놓는 죽음에 항상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는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이 그들의 죽음 너머에 있는 영원한 도성을 가져오고 있음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제자인 사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에게도 로마 황제에 의한 10대 박해 시대에까지에서 보게 되는 그들에 대한 직접적인 박해에서 배척이 있을 때 그들은 세상으로부터는 그들의 생명을 위협하며 빼앗는 불행에 있었습니다만, 그들은 믿음으로 영원한 도성을 바라보는 즐거움에 있었습니다. 오늘날에서 세상에 속한 사람이 천국에 속한 사람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존귀히 여기며 천국의 보배로움을 알고 살아가지,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천국에 아무런 관심도 눈길도 두지 않습니다. 그렇게 전혀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 예수님 안에 있으며 천국 안에서 우리는 죽어가는 것입니다. 마지막 숨이 끊어짐을 당하면서도 우리는 그것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세상은 이기지 못하였습니다(히 11:38). 이는 세상은 이런 사람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은 이런 이들을 받아들일만한 곳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그것은 세상은 그들을 담을만한 가치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은 그들이 살 만한 곳이 되지를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에게는 그들의 주이신 그리스도만이 가장 존귀했으며, 그리스도 외에는 모두 배설물처럼 여겼으며, 그래서 그 모두를 다 버렸습니다.
이것으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것이 세상으로부터 그들이 배척당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배척당함은 육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에게 배척당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기까지 하시는 죽음의 고난을 받으심은 그분을 따르는 제자인 사도들에게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배척은 직접적인 육체에 박해가 가해져 그들 또한 죽음의 고난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박해에 의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자신들의 목숨을 버리는 죽음의 고난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제자는 자신의 죄와 잘못 때문에 그러한 죽음의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로 섬기며 따르는 믿음으로 인하여 모욕하며 핍박하고 온갖 터무니 없는 말로 비난하는 까닭에서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말입니다. 예수께서 가룟 유다와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의 음모에 의해 체포되고 빌라도 총독에게 심문을 받으시는 것에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며 물을 때 “나는 이 세상의 임금이 아니다. 내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나는 네가 말한 대로 왕이다. 나는 세상에 진리를 가지고 왔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내 제자이다”(요 18:33-38)라고 대답하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진리를 알지 못함으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래서 진리를 따르지 못하며 사랑하지 못하는 것에 있는 일입니다.
이로 인해서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에게도 지속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함께 한 믿음의 형제들의 죽음을 보고 그 불행을 인하여 그 슬픔으로 가슴 아파하고 울부짖음을 가질 뿐만 아니라, 자신 또한 주님과 함께 동일한 고난에 있음으로 죽음을 당하는 불행을 겪음으로 그 앞에 놓인 육체는 심한 울부짖음과 눈물을 쏟게 되지요. 이렇게 그 목숨을 내놓을 때 그 육체는 그 당하는 불행을 인하여 슬픔과 울음을 동반합니다. 이는 안 당할 일을 당하는 억울함에서겠습니까? 그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지는 죽음에 이르는 고난에 의한 고통을 수납하고 감당하는 것에서입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받을 고난의 전형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름에 있어서 그분만을 가장 존귀히 여기며 이로 인해서 곧 모욕과 핍박과 거짓에 의한 비난을 당할 때마다 우리에게서는 세상 너머에 있는 영원한 도성을 바라봄에 있는 까닭에 세상은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살만한 곳이 되지 못하며 그래서 그곳에 몸 담지 않는 이 육의 부정에 있는 것입니다. 이 육의 부정의 마지막인 최종은 예수님 안에서 내 죽음을 받아들이고 눈을 감는다는 것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믿는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육체를 그 목숨으로부터 손 놓아 버리는 것이며,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자기 목숨을 내놓는 것입니다.
거기에 있을 제자에게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저들의 위로가 됩니다. 자신들이 믿음으로 따르며 섬겨온 주님의 곁 가까이에서 주님이 함께 하시는 주님의 나라인 천국에 영원히 있으니 말입니다. 천국이 저희 것이 되는 것은 저들이 하늘에서 받을 상이 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종말론 강화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 이렇게 그들에게 예비된 나라인 천국을 상속받게 하시는데,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주로 섬겨온 예수께서는 천국이란 하나님의 왕국을 다스리는 왕으로서 자기 백성이 이 나라에서 받을 상을 이미 창세전에 자신 안에 작정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주십니다. 그것은 심한 핍박을 겪는 것 속에서 어린양의 피로 빤 흰 옷을 입은 자들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로 나아와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시는 영원한 생명에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에게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하신 말씀과 “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는 말씀은 저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인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안에서 육체의 목숨을 심어 영원한 생명을 거두는 참으로 복 있는 자이며, 그 생명에 있는 참된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에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 해서 말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에 있음에서 예수께서 선포하신 천국과 영생이 자꾸 보이고 또한 생각할 것을 내다보신 까닭이 아니겠는지요. 그러한 그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결코 세상이 알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은 세상으로부터 받았던 모욕과 핍박과 온갖 비난을 그들의 죄와 죽음이 삼킨 것과 함께 삼킬 것입니다. 해서 말입니다. “예수님을 인하여 핍박을 받거든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그러한 그들은 참으로 복 있는 자입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