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무서워 말을 못하겠다. 이번 일로 반공은 바로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김포 공항에서 내려 기자회견장에 도착한 윤태식은 이렇게 말했다.
이 기자회견은 전국으로 생중계 되었다.
무슨 일이 있던 걸까?
1986년말 재야·야당의 직선제 개헌요구가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5공 군부정권은 심각한 위기국면에 처했다.
미모의 여간첩에게 납북될뻔한 남자의 이야기는 그 위기국면을 한 숨 돌리게 할 만한 사건이었다.
과연 윤태식은 여간첩에게 납치될뻔 한 것인가?
윤태식은 자신이 " “아내는 북한 공작원으로 그와 함께 조총련계 공작원들에 의해 납북될 뻔 했다가 탈출했다"
고 진술했다.
1.
안기부는 수지김의 가족들 집에 들이닥쳤다. 가족들은 조사를 받았으며 집안에 상주해서 전화조차 받지 못했다.
구타와 욕설이 동반되었다. 노모는 수지김이 사다준 밍크 코트마저 증거물이라고 가져가는 바람에 차가운 거리에
홀옷으로 나와야 했다.
그로 부터 보름뒤...
이 사건은 수지김이 홍콩의 한 아파트에서 피살된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정리되는것 같았다.
하지만 비극은 이제 시작이었다.
국내 언론 어디에도 수지김이 간첩이 아닌 남편에게 살해된 불쌍한 여인. 피해자라는 것은 단 한 줄도 실리지 않았다.
tv 에서는 남십자성이라는 간첩을 다룬 반공 드라마가 방영되었으며 수지김 사건이후 아예 여간첩의 이름을
"수지김"이라고 고쳤다.
수지김의 맏 언니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다 거리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
어머니는 외부사람과의 접촉을 끊고 집안에서 지내다 홧병과 혈압으로 인해 사망했다.
자식의 억울한 죽음과 비극적인 맏딸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수지김의 오빠는...
회사를 타의반 자의반으로 그만두고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술을 끼고 살았다.
역시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살며 찾아오는 기자들을 피했던 그는 한 방송국의 보도 이후 용기를 내어 살인범 윤태식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다시 세상에 나오는가 싶었다.
하지만...
고소장을 내고 9개월 후에 교통사고로 여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려던 오빠역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결혼을 한 수지김의 여동생들은 시댁과 남편의 눈치를 보며 마음을 졸였으며, 결국 여동생 4명중 셋은 이혼을 당한다.
비극은 어른들의 것 만은 아니었다.
수지김이 홍콩에서 출산한 딸은 생부에게 맡겨지지만 계모의 밑에서 눈치를 보며 자라나게 되었으며 이혼당한 여동생은
양육권을 지닌 남편이 새로 결혼을 하면서 젖먹이인 아들을 버렸다.
여동생은 한 참의 시간이 지나서 우연스럽게 절에서 아들을 만나 지금은 같이 살고 있다.
수지김의 조카는 학교에서 빨갱이 집안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으며 그로 인해 자퇴를 하였다.
2.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
이런 모든 것이 알려지게 된것은... 수지김의 사건이 일어난지 15년 후였다.
그 동안 살인자 윤태식은 ..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성공한 벤처 사업가로 살아갔다.
물론 그 이전에도 기자들이 진실을 찾으려 했지만 늘 데스크에서 반려되거나 보이지 않는 손에 막혔다.
하지만 결국 정권이 바뀌면서 수지김의 억울한 죽음은 수면위로 올라왔으며 "그것이 알고 싶다" 에 방영되었다.
결국... 수지김 가족의 고소로 윤태식은 공소시효를 50일 남기고 체포되었다.
법원은 ... 2002년 5월 14일.
'아내를 살해한 뒤 주검을 숨기고, 납북될 뻔했다가 탈출한 것처럼 거짓 기자회견을 여는 등 죄질이 나쁘다'며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와 더불어 유족들에게 15년동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도 전혀 반성하는 기미가 없어
중형을 선고받아 마땅하다'고 밝히고 윤태식에게 살인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러나 수지김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은폐 및 조작을 주도했던 장세동씨등 안기부 관계자들에 대해,
2002년 6월 검찰은 직권남용죄(공소시효 3년)와 직무유기죄(공소시효 1년)의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유족 10명은 같은 해 국가와 윤태식을 상대로 108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법원은 2003년 8월 14일 42억 원의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 비용은 당시 유사소송과 비교했을 때 최고의 배상 금액이었다.
국가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공무원에게 구상권을 청구한 것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된 박처원 전
치안감 이후 두 번째였다. 국가정보원은 2003년 8월 21일 고인의 명복을 빌며 사건조작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법무부는 수지김 사건의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사건을 종결시켰고, 국가는 장세동씨 등 당시 안기부 책임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배상액을 물리기로 결정했다. 장세동씨는 구상권에 의한 배상액 지불을 피하기 위해 8억 원대의
빌라를 처분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국가에 의한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 공소시효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 위키백과에서 -
3.
반공이라는 논리를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국민을 희생양으로 삼은 행위.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이런 행위는 과연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것일까요?
하지만 사실 지금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특정한 세력을 지지하기 위해, 논리로 설명하거나 대화하려고 하기 보다는 "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덧칠하는 행위가
지금도 심심치 않게 보이니까요.
단지 노동자가 파업을 한다는 이유로. 정부의 시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또는 자신이 살던 주거지가 파괴되는 것에
항의 한다는 이유로, 좌좀이니 빨갱이니... 김일성을 추종한다고 하는 분들이 아직까지 있으니까요.
정부는 혹은 언론은 늘 이야기 합니다.
선진국...을 본받자. 미국은 이렇게 한다. 민주주의는 이런 것이다.
하지만 ...
그것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정신. 다양성에 대한 포용과 사상의 자유. 집회의 자유에 대해서는 북한이나 중국. 또는 독재국가
방식의 의식수준을 보여 주고 있지요.
민주주의의 가치는 반공이 아닙니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다양성에 대한 인점. 다름에 대한 포용.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