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역할모델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어도 온전한 ‘나’입니다.
그 모습 인정하면서도 아침에 눈 뜨면 갈 곳이 있고, 만날 사람이 있게 거듭니다.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어도 누군가의 ‘벗’이 될 수 있습니다.
때때로 나눌 사람, 기댈 사람이 있으면 살아갈 만합니다.
사회사업가는 그런 둘레 사람 한두 명 세우는 일을 거듭니다.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어도 단 한 사람의 조건 없는 응원을 받는다면, 당사자는 다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당사자 역시 그런 사람이 되어 누군가를 응원할 겁니다. 사회사업가는 그런 상호호혜적 관계를 주선하고 생동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 구실, 사람 노릇 하며 살아가게 거듭니다.
그 가운데 희망이 보이고 풀리지 않던 일의 실마리가 보일지 모릅니다.
일상 속 다양한 관계의 그물에 놓여 있을 때 삶의 생기가 돋습니다.
사회역할모델, 사회 속에서 역할을 찾게 거드는 방식입니다.
2. 공동체모델
당사자의 강점 희망 역량 따위를 사회사업가 혼자 찾고 세우고 응원하기에는 한계가 많습니다.
당사자가 다양한 관계 속에서, 다채로운 활동에 참여하면서 평소와 다른 모습을 만나고 그 가운데 여러 장점이 드러납니다.
특히,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이루고 누리게 거들었을 때
둘레 사람으로부터 오는 칭찬과 감사는 나도 쓸모 있다고 느끼게 합니다.
이것이 유능감입니다. 여기서 자존감이 만들어집니다.
자존감은 탄력성의 바탕입니다.
탄력성은 문제를 만나도 이겨내게 하고, 그 과정에서 문제를 경험적 자산이게 합니다.
사람은 살아가면 다양한 문제를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탄력성이 있다면 문제를 만나도 큰 어려움 없이 그럭저럭 살아가게 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고 이로써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탄력성이 있으니 그 과정을 거뜬히 통과해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탄력성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 자존감이 있어야 하며,
이를 만들 수 있는 유능감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다양한 타자와 연결된 관계의 그물 속에 있으면,
사회사업가 외에 함께 관계하는 다양한 이들이 또 다른 당사자의 강점을 보고 북돋고 응원하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기대고 비빌 작은 언덕이 필요합니다.
사례관리 사회사업으로 만나는 당사자를 생각합니다.
당사자 대부분이 사회적 관계가 거의 없거나 완전히 단절되어 있습니다.
사회적 관계가 없어서 삶이 어려워졌는지, 삶이 어려워서 사회적 관계를 단절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당사자를 수년 간 지원한 경험과 그렇게 일하는 여러 사회사업가와 꾸준히 공부한 결과,
좋은 삶과 사회적 관계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
사회역할모델과 공동체모델의 구분 ‘역할’입니다.
사회역할모델은 함께할 사람을 연결하는 일을 너머, 당사자의 공동체 안에서 ‘역할’까지 나아갑니다.
당사자도 잘하는 일, 해볼 만한 일로 공동체에 기여하게 돕는 일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지역사회 사람살이는 둘레 사람과 인격적으로 동등한 자리에서 왕래 교제하며 어울리는 모습입니다.
서로 존중하고 상호 의존하면서도, 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3. 사회역할모델에서 사회사업가의 실천 지점
심리·상담·치료 같은 영역에서 일하는 전문가는 당사자에게 직접 관여함으로써 변화하게 합니다.
그런 일을 전문적으로 배워 기술·능력·경험이 있다면 그렇게 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반면, 사회사업가는 관계에 주목하는 사람입니다.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법 모두 관계에서 찾습니다.
따라서 사회사업가는 당사자의 변화를 위하여 다른 사람과 어울리게 돕습니다.
다른 사람과 교류 교제하는 가운데 자기 인식이 이뤄집니다.
타자를 통한 자기 인식이 자기 삶의 변화를 이룰 거라 믿습니다.
나아가 당사자를 공동체 안에 놓이게 하는 일은 지금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걸 너머
앞으로 다가올 문제를 ‘예방’하는 근본적인 실천이기도 합니다.
*실천 현장 현실도 생각합니다.
한 명의 사회사업가 감당할 수 있는 당사자의 수나 지원 수준(service coverage)을 생각합니다.
사회사업가가 당사자의 심리 정서 따위에 직접 지원하는 방법은 금세 한계를 만납니다.
소수의 변화는 이룰 수 있을지라도 지역사회를 상대하기에는 버겁습니다.
서울은 지역주민 10만 명에 종합사회복지관 한 곳이 있습니다.
즉, 사회복지관은 주민 10만 명을 생각합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현실을 생각하여 일의 방식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좋은 공동체란 모두 같은 것이 아니고 서로 다른 사람이 조화를 이룰 줄 아는 것입니다.
세상에 없어도 좋을 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성격이 온유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있어야 공동체는 지속될 수 있으나, 그런 사람만 있으면 정체 상태를 면할 수 없습니다.
성질이 조금 급한 사람도 있어야 그 공동체는 역동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소 성급해 보이는 사람들로 인해 불편한 마음을 갖기 보다는 그 사람의 장점을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다소 느려 보이고 게을러 보이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게으름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이 공동체를 어떻게 유지해 가고 있는지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공동체에는 머리 쓰는 일에 익숙한 사람도 있고 몸 쓰는 일에 익숙한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누구 하나 불필요한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공동체를 생각할 때마다 갖가지 돌로 쌓아올린 담장을 떠올립니다.
벽돌로 쌓아올린 일사불란한 담장을 보면 감동이 없지만,
그런 담장이 우리 시선을 끄는 까닭은 인위적이지 않은 그 자연스러움 때문일 겁니다.
둥근 돌과 모난 돌, 큰 돌과 작은 돌들이 서로 받쳐주며 하나의 일체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하나님은 마치 담을 쌓는 장인과 같아서 세상의 모든 것들이 서로 의존하고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너’ 없이는 ‘나‘도 없습니다. 생명은 그 자체로 공동체 지향적입니다.
이때 공동체란 구체적인 어떤 조직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관계를 맺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김기석 목사, 청파교회 설교문> (2008년 3월), 『곡선의 시선』 가운데 김세진의 ‘이 씨 아저씨’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