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2일 수요일 흐림, 오랜만에 강의를 시작하다.
《서정시학》 모임에서 해오던 당시 강의를 오늘 몇 달만에 나가서 다시 속강하였다. 내가 입원한 사이에도 자기들끼리 모여서 윤독을 하였다니, 참 차분한 사람들의 실속 있는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은 왕유의 시 2수를 읽었는데, 왕유 본인에 관한 이야기 이외에 오늘날 중국의 저명한 문학자들인 전종서(錢鐘書: 문화대혁명 때 모택동이 자기의 영문 비서라고 하여 보호하였다는 일화가 있음. 북경 사회과학원 부원장으로 몇 년 전에 작고), 엽가영(葉嘉塋: 북경의 몽고족 명문 후예, 카나다의 브리티쉬 컬럼비아 대학 여교수, 90세에 가까우나 아직도 학술활동 중) 등이 오늘 읽은 시에 관련된 평을 한 말이 한두 마디씩 보이기에 그들에 관한 잡담도 많이 늘어놓았다. 두 분 다 전통 명문 학자 가문의 후예들로, 동서양의 인문 고전에 박통한 놀라운 학자들이다. 특히 엽 교수는 내가 대만에 유학할 때에는 대만대학의 교수였는데, 내가 퇴직 후에 카나다에 있는 그가 재직하다가 퇴임한 그 대학에 가서 몇 달 동안 머물고 있을 때에, 자주 그 대학의 동양학도서관에서 만나 뵙고 이따금 한담을 나누기도 한 적이 있다.
오늘 처음으로 남의 앞에서 보청기를 끼고서, 몇 달 만에 말을 가장 많이 한 것이다. 끝나고서 이 모임의 주관자인 최동호 교수가 오랜만에 만났으니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해서 몇 명이 함께 저녁을 같이 먹었다. 최 교수 말이 “선생님께서 쓰시는 한글 문장이 매우 좋은 데요.… 지금 적고 있는 일기를 책으로 내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데요” 한다. “시인이고 평론가인 분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용기가 나는 데요. 나도 사실은 내가 하는 말보다는 적는 글을 좀 낫게 쓴다고 여기고 있기는 하지요”하였더니, “오늘 일기에도 제가 한 말을 꼭 적어 주세요” 하여 웃었다.
역시 평생을 남의 앞에서 떠들고 살아온 것이 습관이 되어, 모처럼 다시 두어 시간 떠들다가 보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 것 같다.
첫댓글 축하드립니다. 선생님! 요즘 선생님의 일기를 보면 마치 갓 태어난 아이의 성장일기를 보는 것 처럼 하루하루 회복되어 가시는 선생님의 비상에 저희들도 힘이 납니다.
많이 늦었지만 퇴원과 속강을 축하드립니다. 자주 방문하겠습니다. 맛깔스런 글 감사합니다.
드디어 선생님께 가장 어울리는 옷을 다시 입으셨습니다. 옷이 더욱더 광채가 날 것입니다.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다시 강의까지 하시게 되었다는 소식 들으니 안심 됩니다. 하지만 한꺼번에 너무 무리 하시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