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백두산(白頭山)의 역사적 배경
우리 한민족의 영산(靈山)으로 부르는 백두산(白頭山)은 중국에서는 장바이샨(長白山)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도 이 백두산과 정상의 천지(天池)를 신성하게 여기는데 중국에는 신장위구르자치주의 우루무치(乌鲁木齐) 천산산록(天山山麓)에도 또 다른 천지(天山天池)가 있다.
이 백두산은 우리 한민족의 성산(聖山)일뿐더러 이 지역의 소수민족인 여진족(女眞族), 말갈족(靺鞨族)들도 자기 민족의 성산이라고 하며, 각각 개국신화(開國神話)들이 있다고 한다.
백두산(白頭山)은 천지(天池)를 정점(頂點)으로 동남쪽으로는 마천령산맥(摩天嶺山脈)의 대연지봉(大臙脂峰, 2,360m), 간백산(間白山, 2,164m), 소백산(小白山, 2,174m), 북포태산(北胞胎山, 2,289m), 남포태산(南胞胎山, 2,435m), 백사봉(白沙峰, 2,099m) 등 2,000m 이상의 산들이 연봉을 이루면서 종단하고 있다.
한반도의 지붕이라 일컫는 개마고원(蓋馬高原)은 백두산 남쪽 마천령산맥(摩天嶺山脈)과 낭림산맥(狼林山脈), 부전령산맥(赴戰嶺山脈)으로 둘러싸인 분지(盆地)로 평균 해발 1,300m가 넘는다.
중국에서는 한대(漢代)에 백두산을 ‘단단대령(單單大嶺)’, 남북조의 위대(魏代)에는 ‘개마대산(蓋馬大山)’이라 하였고 또는 ‘도태산(徒太山), 태백산(太白山)’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산해경(山海經)은 고대 중국 선진(先秦) 시대(BC 200년)에 저술된 국외의 지리를 다룬 지리서인데 여기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백두산 이름은 불함산(不咸山)이었다.
따라서 백두산(白頭山)의 명칭은 불함산(不咸山)으로부터 시작하여, 단단대령(單單大嶺)-개마대산(蓋馬大山)-도태산(徒太山)-태백산(太白山)-백산(白山)-장백산(長白山)-백두산(白頭山) 등으로 불리어왔으나 한대 이후 불리기 시작한 명칭의 공통점은 백(白), 즉 희다는 뜻이다. ‘머리가 하얀 산’이란 뜻의 백두산이라는 이름은, 화산 활동으로 생성된 흰색 부석(浮石)이 온 산을 뒤덮고 있어 붙여졌다고도 하고, 1년 중 겨울이 230일 이상으로 정상에 흰 눈이 쌓여 있는 기간이 길어 붙여졌다고도 한다. 중국인들은 백두산(白頭山)을 ‘창바이산(長白山)’이라고 부르는데 그 의미는 같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조에 백두산을 ‘태백산(太伯山)’이라고도 했는데 백두산은 산세가 장엄하고 자원이 풍부하여 일찍이 한민족(韓民族)의 발상지로, 또 개국의 터전으로 숭배되었던 민족의 영산(靈山)이었다.
단군신화에서 하늘의 ‘환인천제(桓因天帝)께서 아들 환웅(桓雄)에게 신하 3,000명을 주어 땅으로 내려보내니 태백산으로 내려와 신단수(神檀樹)아래 신시(神市)를 베풀었다.’고 하는데 태백산이 바로 백두산을 말하는 것이다.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성산이지만 여진족, 말갈족의 개국신화에도 등장하는 그들의 성산이기도 하다.
압록강과 두만강은 백두산의 비탈진 면에서 샘으로 솟아 시작되고, 천지의 물이 폭포로 흘러나와 북쪽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송화강(松花江)의 원류이다.
1962년, 중국과 북한 정부가 영토의 경계를 나누어 백두산의 60%는 중국 땅, 40%는 북한 땅으로 확정하고 천지호(天池湖)도 절반으로 나누었다.
예전에는 백두산은 기슭을 포함하여 모두 우리 국토였으니 기가 막히는 북한의 결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