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산 상원사(龍門山上院寺) / 전통사찰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
창건연대는 미상이나 <봉선사 본말사지> 기록에 따르면 용문사와 같은 시기 913년에 절이 있었다고 한다.
1330년(충숙왕 13) 원증국사 태고 보우께서 30세 때 12가지 큰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였다.
1398년(태조 7) 조안선사(祖安禪師)가 중창,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왕사(王師)를 그만 둔 뒤에 이곳서 수도하였다.
효령대군이 이곳을 원찰로 삼고 수도 생활을 하였다.
1463년(세조 9) 왕이 이곳에 들러 담화전 위로 누런빛 올라 백의관음보살(觀音菩薩)로 화현하였다고 한다.
어명을 내려 크게 중수하게 하였는데, 최항(崔恒)이 그 모습을 기록한 「관음현상기(觀音現相記)」가 전해지고 있다.
1907년의 의병 근거지로 왜국이 방화하여 모두 타고 겨우 법당(法堂)만 남았다.
1918년 주지 최화송(崔華松)이 화주(化主) 차상원(車祥元)과 대방(大房)을 재건하였고,
1934년 주지 최경언(崔璟彦)이 중수하였으나 6·25전쟁 때 용문산전투를 겪으면서 다시 모두 타버렸다.
1969년 주지 덕송이 초막을 짓고 복원에 나섰다.
1970년부터 주지 경한(비구니)이 요사, 삼성각, 대웅전, 용화전 등을 복원하였다.
2001년 주지 청암이 불사를 하였고, 진입로 개설, 용문선원을 개원하였다.
(상원사 안내문과 인터넷 찾아보기, 안내문 위주로 정리)
상원사가 많다. 이곳 상원사도 상원암이었다.
상원사, 치악산 상원암과 오대산 상원사가 먼저 떠오른다.
용문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차량으로 진입이 가능하다.
오전엔 날이 흐렸다. 절을 보고 나설 때 하늘이 맑게 열렸다. 산행하고픈 충동이 강하게 들었다.
용문면 면소재지에서 밤을 보냈다. 상원사 가는 길에 용문산을 본다. 장군봉(좌측)이 보이질 않는다.
장군봉이다. 어제 본 장군봉의 반대편이다.
어지간히 올라왔다. 길은 험하지 않다. 아직 절까지 제법 남았는데 미륵전이 있다.
승탑전, 근대 입적한 선사들의 승탑이다.
삼층석탑과 대웅전, 용문산, 잘 어우러져 아름답다.
청운당, 요사인 것 같다.
재월당, 종무소가 있다.
상원사 동종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74호(2021년 9월 등록)
한국과 중국 및 일본의 혼합 양식을 보여주는 범종으로서 한국 종의 미감이 도드라지며 전반적인 문양의 구성과 종신에 표현된 주악비천상은 고려전반기(11~12세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제작방식의 측면에서 한국 장인의 중국교류 및 영향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종에서 신라 종으로 변화과정을 보여주는 국내 유일의 범종으로 진품이며 제작연대는 7세기말로 신라 종의 근원이 되는 매우 귀중하고 우수한 작품이라는 견해와 범종 성분에 의하면 통일신라시대 범종의 구성성분과 같으며 특히 에밀레종(서기 780년 주조)과 같다는 견해 등이 있어 향후 보다 과학적이고 심도 있는 연구 결과를 통해 본 동종의 가치를 재확인하고자 한다. (안내문에서 그대로 가지고 옴)
국보 제367호, 1962년 국보 해제 / 황수영 박사 주장...위품이고 진품은 왜인이 빼돌렸다.
진품이냐 가짜냐 하는 문제는 아직도 진행 중인 모양이다.
선방, 관광객은 출입금지
철조 여래좌상을 보진 못하였다.
백의관음보살 현상기, 사실일까? 이런 의문도 불필요하다.
옛 기록은 과장이 많다. 임금과 관련한 일이라면 더욱 과장을 하였을 것이다.
법당 안에서 재물을 준비 중이라 법당 안엔 들어가지 못하였다.
삼성각
날이 맑아진다. 절 그림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용문산에 있는 있는 전통사찰 사나사, 상원사, 용문사 등은 모두 현충시설이다. 1907년 의병 본거지였다.
3월 6일(월), 사나사에서 나와 두물머리로 갔다.
두물머리, 보름달이 뜬다. 두물머리 주변을 다 돌아봤으면 좋겠다. 다음 기회에.
3월 7일(화), 용문산 산행 요김을 내려 놓았다. 해가 질 때까지 양평군에 머물었다.
상원사,,,용문사,,,불곡리 석불,,,대성사,,,지평초등 교정 삼층석탑,,,양평 마애불, 여주 파사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