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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셀도르프는 1186년 베르크의 지배에 놓였으며, 1288년 도시 특권을 얻었다. 1815년 프로이센령이 되었으며, 19세기에는 산업 혁명으로 10년동안 인구가 두배가 되는 등의 급속한 발전을 하였다. 뒤셀도르프는 제 2차 세계대전때는 공중 폭격의 표적이 되어 도시의 90%이상이 폐혀가 되었다. 하지만 1946년에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연방주의 새로운 주도가 되고 경제의 급속한 성장과 변화로 무역, 행정, 서비스 산업을 담당하는 오늘날의 부유한 도시로 재탄생하였다. 일본인등 다양한 아시아인이 거주하고 있다
본문[편집]
뒤셀도르프 강변에서 7-8세기 사람들의 거주지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이곳에는 아마도 강변을 끼고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흔히 바르바로사(Barbarossa, '붉은수염')로 불리는 신성로마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Friedrich I)시절 뒤셀도르프는 처음 정식적으로 문헌에 등장을 한다. 이후 이곳은 베르그(Berg)의 백작령 일부 지역으로 편입이 되어 발전하다가, 유럽 중세시대 중기의 가장 중요한 전투의 하나인 부링겐 전투(Battle of Worringgen)를 승리로 이끌며 독자적인 도시법(Town Privileges)을 부여받게 되었다. 즉 자체적으로 이웃도시들과 교역을 하고, 길드를 설치하거나 화폐를 찍을 수도 있었으며, 도시의 재판권등을 자체적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279년 림부르크(Limburg)의 공작인 웨일런 4세(Waleran IV)가 아들을 남기지 못하고 죽자, 이웃 겔더스(Guelders)의 백작 레이나우드 1세(Reinoud I)에게 시집을 갔던 딸 에르망가르드(Ermengarde)가 아버지의 영지를 상속받았으나, 그녀 역시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곧 죽는다. 순식간에 소유자가 없게 된 림부르크의 드넓은 영지를 에르망가르드의 남편인 백작 레이나우드 1세가 당시 신성로마황제였던 루돌프 1세(Rudolph I)를 움직여 소유권을 인정받는다. 비록 황제가 인정을 했다고는 하나 당시 독일의 지방 영주들은 독자적인 군사력과 지배력을 가지고 각자의 영지를 직접 통치하던 시절이었고, 주변의 공작과 백작들은 결국 림부르크의 영지가 사위에게 넘어가는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웨일런 4세의 큰조카인 백작 아돌프 8세(Adolf VIII)가 당시 뒤셀도르프가 속한 베르그의 영주였는데, 그는 이곳의 소유권을 주장하였으나 인정되지 않자, 림부르크 영지의 소유권을 그대로 이웃 브라반트의 공작 요한 1세(Johann I)에게 팔아 버린다. 이런 와중에 백작 레이나우드 1세 역시 이곳의 소유권을 룩셈부르크의 백작 하인리히 6세(Heinrich VI)에게 다시 팔아 버렸고, 이로 인해 뒤엉킨 림부르크의 소유권을 두고 주변의 영주들은 서로 동맹하여 1288년 '부링겐 전투'를 일으킨다. 일종의 국제전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이 전투는 유럽 중세의 전쟁사에서 중요하다. 당시 대주교가 황제으로부터 세속적인 도시의 지배권을 위임받아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쾰른(Köln)이 겔더스와 룩셈부르크의 편에 가담하자, 브라반트와 뒤셀도르프가 속해 있던 베르그는 쾰른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호시탐탐 노리던 마크(Mark)의 백작을 이 전투에 끌어 들여 대응하였다. 브라반트의 공작 요한 1세는 룩셈부르크의 백작 하인리히 6세와 그의 동생을 죽이고, 쾰른의 대주교 지크프리트(Siegfried)를 사로 잡아 베르그의 백작 아돌프 8세에게 넘겨 버린다. 베르그의 성에 갇힌채 1년을 지낸 쾰른의 대주교는 이후 엄청난 보상금을 주고 겨우 목숨을 건저 살아 나왔으니 이후부터 쾰른은 대주교를 가지지 않았고 종교의 구속에서 벗어나 완전히 독립적인 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현대까지도 강력하게 이어져 오는 뒤셀도르프와 쾰른의 불편한 관계는 이미 이렇게 역사적으로 700년이 넘은 셈이다. 겔더스의 백작 레이나우드 1세 역시 전투 중 사로 잡혀 탐내던 림부르크의 영지를 브라반트에 완전히 다 넘겨주고서야 풀려 났다. 이 전투를 이기고 돌아 온 병사들을 축하하기 위해 뒤셀도르프의 아이들이 수레바퀴 모양을 만들며 옆으로 재주넘기(cartwheeling)를 했다고 한다. 이후 1380년 뒤셀도르프는 베르그 공국의 수도가 되었다.
독일의 수많은 영주들은 자식들을 교환하며 서로 결혼시켜 연합하기를 반복하였는데, 그들의 작위는 보통 유지하여 상속이 되었기 때문에 후사가 없는 경우 한 명의 영주가 나중에는 여러개의 작위를 동시에 가지기도 하였다. 뒤셀도르프는 윌리히-클레베스-베르그(Jülich-Cleves-Berg)연합공국의 일부가 되어 있었는데, 공작 요한 빌헬름(Johann Wilhelm)이 1609년 후사가 없이 죽자 그의 누이들이 연합공국을 반으로 나눠 가진다. 큰누이 마리 엘레오노르(Marie Eleonore)는 개신교도로 프로이센(Preußen) 공작에게 시집을 갔는데, 남동생이 죽자 클레베스 공작령, 마크 백작령, 라벤스베르그 백작령등의 영지를 차지하였고, 둘째누이 안나(Anna)는 가톨릭교도로 팔츠-노이부르그(Palarinate-Neuburg) 백작에게 시집을 갔는데, 남아 있던 윌리히 공작령과 베르그 공작령의 영지를 가진다. 이로 인해 베르그 공작령에 속해 있던 뒤셀도르프는 팔츠-노이부르그 백작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뒤셀도르프 최고의 번성기는 선제후 요한 빌헬름(Johann Wilhelm)의 통치를 받던 시기다. 뒤셀도르프 시청사 앞에 있는 바로 그 동상의 주인공이다. 1658년에 뒤셀도르프에서 태어난 그는 1716년 고향에서 죽을때까지 후사를 남기지 못했고, 그의 남동생이 뒤를 이었으나 그 역시 딸만 낳았기 때문에 결국 노이부르그 가문은 후계자가 없이 몰락하였다. 이후 통치권을 가진 지배권력이 독일 남부의 바이에른으로 이동을 하자, 뒤셀도르프는 역시 급격히 쇠락하였다. 당시 뒤셀도르프와 이웃 도시들의 많은 예술작품들과 문화재들이 프랑스 나폴레옹의 전쟁위협을 피하기 위해 뮌헨으로 옮겨 졌으며, 현재 뮌헨의 미술관 알테 피나코텍(Alte Pinakothek)을 이룬 근본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1806년 나폴레옹이 신성로마제국을 위협하여 해체시키자, 독일 지역의 영주들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사이에서 살길을 모색해야만 했었다. 바이에른 왕국의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Maximilian I Joseph)는 오스트리아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와 단독으로 강화를 맺고 라인강변에 남아 있던 베르그의 영지를 프랑스에게 모두 넘겨준다. 나폴레옹은 베르그 지역을 대공국(Grand Duchy)으로 격상시키고 뒤셀도르프를 수도로 삼아 여동생의 남편이자 자신의 최측근중 하나인 요아힘 뮈라(Joachim Murat)를 이곳으로 보내어 통치하게 하였다. 이후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를 견제할 목적으로 라인강변을 따라 라인동맹(Rhine Confederation)이라는 꼭두각시와 같은 위성국을 만들었고, 라인강변 대부분의 지역은 이 동맹에 가입한다. 나폴레옹이 무너지고 열린 '빈 회의'를 통해 라인동맹의 대부분 지역은 프로이센 왕국(Kingdom of Prussia)으로 넘어가게 되었는데, 프로이센은 쾰른과 뒤셀도르프를 포함한 이 지역을 윌리히-클레베스-베르그주(Province of Jülich-Cleves-Berg)로 새롭게 개편하고 주도를 쾰른으로 삼았다. 19세기 중반 뒤셀도프르는 라인강변을 따라 일어난 산업화를 빌미로 하여 빠른 발전을 이루었으나, 이것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연합군의 집중적인 표적이 되는 바람에 도시의 90%이상이 폐허가 되어 버렸다. 전후 독일은 뒤셀도르프를 노르트 라인-베스트팔렌(North Rhine-Westphalia)주의 주도로 삼아 발전시켰는데, 현재 뒤셀도르프는 독일내 가장 살기 좋은 도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로 안정적이며 완벽한 발전을 이루어 냈다.
인구[편집]
뒤셀도르프에는 약 57만명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어 독일에서 9번째로 큰 도시다. 외국인 인구는 109,880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20%를 차지하며, 그 중 터키인, 그리스인, 이탈리아인들이 가장 많다. 뒤셀도르프에는 약 5,000명의 일본인들이 살고 있어 (인근 도시들 포함시 약 10,000명) 독일에서 일본인들이 가장 많은 도시로 알려져있다. 한국인의 수는 약 1,000명으로 집계된다.
경제[편집]
뒤셀도르프는 독일의 광고와 패션 산업의 중심지일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독일의 전자통신(Telecommunications)산업의 중심지로 인지된다. 이 도시에는 18개의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이 위치하고 있다. 또한, 보다폰(Vodafone)과 이플루스(E-Plus)등의 대형 이동통신사들이 있어, 독일 모바일 시장의 선두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전신전화, 에릭슨, 노키아 등의 무역 센터들도 뒤셀도르프에 위치하고 있다.
뒤셀도르프에는 약 170개의 자국/해외 금융 회사들과 약 130개의 보험회사들이 있으며, 규모가 가장 큰 독일 주식 시장들 중 하나인 뒤셀도르프 주식시장(Börse Düsseldorf)이 있다. 1960년 전후로 부터 일본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기 시작하여 현재 약 520개의 일본 회사들이 뒤셀도르프와 인근 도시들에 위치해 있다. LG전자, 포스코, 두산 등 대한민국의 회사들도 다수 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교통[편집]
뒤셀도르프 국제공항
뒤셀도르프 공항(Flughafen Düsseldorf)이 뒤셀도르프 시내에서 북쪽으로 8km 떨어진 곳에 있다. 뒤셀도르프 공항은 프랑크푸르트와 뮌헨 다음으로 독일에서 3번째로 큰 공항이며, A380의 수용이 가능하다. 4대륙의 180여개의 목적지에 70개 내외의 항공사들이 운항하고 있다. 대한민국 직항은 없으며, 프랑크푸르트에서 내린 후 철도로 이동해야 한다.
뒤셀도르프 시내에 위치하고 있는 뒤셀도르프 중앙역(Düsseldorf Hauptbahnhof)은 독일 철도(Deutsche Bahn)의 중요한 허브 중 하나로 손꼽히며 매일 1,000여대의 기차들이 이 역에 정차한다. 시내의 버스, 지하철, 전차 운항은 시에서 소유하는 라인반(Rheinbahn)이 담당한다.
교육[편집]
뒤셀도르프에는 뒤셀도르프 대학교(Heinrich Heine Universität 공식홈페이지)가 시내의 남부에 위치 하고 있다. 이 학교는 약 20,000명의 학생들이 자연 과학, 수학, 컴퓨터 공학, 철학, 사회 과학, 예술, 언어, 약학, 경제, 법 등의 전공을 공부한다.
뒤셀도르프 대학교
그 외 다음의 교육기관들이 있다.
초중고등학생들을 위한 외국인 학교에는 대표적으로 뒤셀도르프 북부의 카이저스베르트(Kaiserswerth)에 위치하고 있는 뒤셀도르프 국제학교 (International School of Düsseldorf 공식홈페이지)가 있다. 이 학교에는 50여개국에서 온 약 1000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이며, 특히 일본 학생수가 전체 학생의 30%를 차지한다. 한국인 학생들도 재학하고 있다. 한국어 수업은 2015년 폐지되었다.
그 외 다음의 외국인 학교들이 뒤셀도르프와 인근 도시들에 위치하고 있다.
스포츠[편집]
뒤셀도르프에는 369개의 스포츠 클럽에 112000여명의 사람이 등록되어 있다.[1] 뒤셀도르프의 대표적인 스포츠 클럽으로는 축구클럽인 포르투나 뒤셀도르프(독일어: Fortuna Düsseldorf)와 하키 클럽인 데에게-메트로-스타스(독일어: DEG Metro Stars)가 있다. 2012년 올림픽 유치에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였다.[2]
기후[편집]
접기Düsseldorf (1985-2018)의 기후월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년최고 기온 기록 °C (°F)평균 최고 기온 °C (°F)일 평균 기온 °C (°F)평균 최저 기온 °C (°F)최저 기온 기록 °C (°F)평균 강우량 mm (인치)평균 월간 일조시간
10.2 (50.4) | 14.3 (57.7) | 28.5 (83.3) | 31.3 (88.3) | 33.0 (91.4) | 36.5 (97.7) | 38.3 (100.9) | 37.3 (99.1) | 34.6 (94.3) | 26.1 (79.0) | 20.2 (68.4) | 15.4 (59.7) | 38.3 (100.9) | |
5.5 (41.9) | 6.9 (44.4) | 12.9 (55.2) | 16.2 (61.2) | 22.4 (72.3) | 26.1 (79.0) | 31.2 (88.2) | 28.0 (82.4) | 21.8 (71.2) | 15.0 (59.0) | 9.5 (49.1) | 5.7 (42.3) | 14.9 (58.8) | |
3.4 (38.1) | 4.1 (39.4) | 7.1 (44.8) | 10.4 (50.7) | 14.4 (57.9) | 17.1 (62.8) | 19.4 (66.9) | 19.1 (66.4) | 15.5 (59.9) | 11.6 (52.9) | 7.1 (44.8) | 3.7 (38.7) | 11.1 (52.0) | |
1.2 (34.2) | 1.3 (34.3) | 3.3 (37.9) | 5.5 (41.9) | 9.3 (48.7) | 13.0 (55.4) | 17.4 (63.3) | 14.1 (57.4) | 11.2 (52.2) | 8.1 (46.6) | 4.6 (40.3) | 1.7 (35.1) | 7.3 (45.1) | |
−12.5 (9.5) | −13.8 (7.2) | −10.5 (13.1) | −4.3 (24.3) | 3.5 (38.3) | 7.9 (46.2) | 9.5 (49.1) | 8.3 (46.9) | 5.2 (41.4) | −0.4 (31.3) | −4.8 (23.4) | −7.5 (18.5) | −13.8 (7.2) | |
61.1 (2.41) | 55.7 (2.19) | 54.6 (2.15) | 50.8 (2.00) | 57.6 (2.27) | 71.5 (2.81) | 77.0 (3.03) | 74.5 (2.93) | 100.5 (3.96) | 65.3 (2.57) | 66.1 (2.60) | 71.1 (2.80) | 805.8 (31.72) | |
55.7 | 76.2 | 112.2 | 165.0 | 198.8 | 194.0 | 207.6 | 190.7 | 140.1 | 110.4 | 59.0 | 45.2 | 1,554.9 | |
출처: www.weatheronline.deSource 2: Sun = http://meteo-climat-bzh.dyndns.org |
자매 도시[편집]
뒤셀도르프는 다음 7개의 도시들과 자매 결연을 맺었다.
기타[편집]
뒤셀도르프는 2009년에 발표된 머서의 삶의 질 조사(Mercer's Quality of Living Survey)에서 독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세계에서 6번째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집계되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
전거 통제
분류:
그레벤브로이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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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벤브로이흐 시토회 수도원
그레벤브로이흐(독일어: Grevenbroich)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위치한 도시로 면적은 102.6km2, 높이는 54m, 인구는 63,051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 밀도는 610명/km2이다.
노이스에서 남서쪽으로 약 15km,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남동쪽으로 약 15km, 쾰른에서 북서쪽으로 약 3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독일 에너지의 수도"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여러 발전소들이 들어서 있다.
시 문장
외부 링크[편집]
좌표:
전거 통제
분류:
크레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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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이름을 가진 벨기에의 도시 에선에 관해서는 해당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크레펠트 | |
Krefeld | |
크레펠트 시청 | |
행정 |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 |
인구 | |
227,020 명 (2018년) | |
1,600 명/km2 | |
지리 | |
137.68 km2 | |
39 m | |
기타 | |
중앙유럽 표준시 (UTC+1) | |
47701-47839 | |
02151 | |
https://www.krefeld.de/ |
크레펠트(독일어: Krefeld)는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있는 도시이다. 인구는 238,031 명이다. (2009년 기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서부, 라인 강 연안에 위치한다. 뒤셀도르프·뒤스부르크 등과 인접해 있다. 12세기에 Krinvelde로 문헌에 처음 언급되었다. 1600년 오라녜가에 넘아갔다가 1702년 윌리엄 3세의 죽음 이후 프로이센 왕국에 넘어갔다. 한편 이 곳은 30년 전쟁 이후 발전하기 시작하여 인구가 급속히 늘어났는데, 인구 증가를 피해 1683년 이 곳의 메노나이트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의 필라델피아 지역에 저먼타운을 건설하였다. 1758년부터 프랑스와의 사이에 7년간 크레펠트 전투가 일어났다. 19세기 후반 산업과 교통의 발달로 더욱 발전했으며, 부근 도시와 마을을 합병하여 라인 강 유역의 주요 항구도시가 되었다. 1929년 인근의 위어딩겐(Uerdingen)을 합병하여 크레펠트위어딩겐이라 하다가 1940년부터 위어딩겐을 빼고 크레펠트로 불렀다. 제1차 세계대전·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에 점령되고 큰 폭격을 받았다.
자매 도시[편집]
외부 링크[편집]
분류:
뒤스부르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나라지역행정구역인구인구밀도광역인구면적해발시간대우편번호지역번호
뒤스부르크 | |
Duisburg | |
행정 |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뒤셀도르프 현 | |
시 | |
인구 | |
498,590 명 (2018년) | |
2,100 명/km2 | |
11,316,429 명 | |
지리 | |
232.82 km2 | |
31 m | |
기타 | |
CET / CEST | |
47001–47279 | |
0203 | |
[1] |
뒤스부르크(독일어: Duisburg)는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있는 도시이다. 인구 494,920(2008).
라인 강과 루르 강의 합류점에 위치하는 중요한 항구도시이다. 중세 시대 제국 자유 도시였으며, 한자 동맹에 가입하여 번영하였다. 그 후 클레베 공작령에 속했으며, 16세기에 클레베 공작령의 후원으로 지리학자 메르카토르가 이 곳에서 활약하며 지도를 제작하였다. 1666년 클레베 가문이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제국에 넘어가며 그에 속했으며, 이후 대학도시로 발전했다. 19세기에 산업화와 교통의 발전으로 일대의 중요한 공업 도시가 되었다. 특히 철강 산업이 중요하여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철강 공업 도시 중 하나이며, 항구는 강 연안에 있는 내륙의 하항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이다. 뒤스포트로 불리는 항구는 라인 강을 통해 북해로 직접 연결되며, 그 외의 많은 운하로 사방으로 통하는 국제 무역항이다. Duisburg-Essen 대학이 위치해 있다.
뒤스부르크의 위치
기후[편집]
접기Duisburg의 기후월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년평균 최고 기온 °C (°F)일 평균 기온 °C (°F)평균 최저 기온 °C (°F)평균 강수량 mm (인치)
4 (39) | 5 (41) | 8 (46) | 12 (54) | 17 (63) | 20 (68) | 22 (72) | 22 (72) | 18 (64) | 14 (57) | 8 (46) | 5 (41) | 13 (55) | |
2 (36) | 3 (37) | 5 (41) | 8 (46) | 13 (55) | 16 (61) | 17 (63) | 17 (63) | 14 (57) | 11 (52) | 6 (43) | 3 (37) | 10 (49) | |
0 (32) | 0 (32) | 2 (36) | 5 (41) | 9 (48) | 12 (54) | 13 (55) | 13 (55) | 11 (52) | 8 (46) | 3 (37) | 1 (34) | 6 (44) | |
81.3 (3.20) | 55.9 (2.20) | 76.2 (3.00) | 68.6 (2.70) | 73.7 (2.90) | 96.5 (3.80) | 88.9 (3.50) | 76.2 (3.00) | 73.7 (2.90) | 71.1 (2.80) | 83.8 (3.30) | 88.9 (3.50) | 934.8 (36.8) | |
출처: weather.com[1] |
자매 도시[편집]
각주[편집]
전거 통제
분류:
에센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다른 뜻에 대해서는 에센 (동음이의)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비슷한 이름을 가진 리히텐슈타인의 도시 에셴에 관해서는 해당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비슷한 이름을 가진 벨기에의 도시 에선에 관해서는 해당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에센 | |
Essen | |
에센 시가지 | |
행정 |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 |
인구 | |
583,109 명 (2018년) | |
2,800 명/km2 | |
지리 | |
210.32 km2 | |
116 m | |
기타 | |
중앙유럽 표준시 (UTC+1) | |
45001–45359 | |
0201, 02054 (Kettwig) | |
https://www.essen.de/ |
에센(독일어: Essen)은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도시로 면적은 210.32km2, 높이는 116m, 인구는 582,624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인구 밀도는 2,800명/km2이다.
루르 지방에 위치한 철강, 석탄 산업의 도시로서 루르 강 북안과 접한다. 인근에는 겔젠키르헨, 보훔, 뮐하임안데어루르가 위치한다.
목차
역사[편집]
845년경에 힐데스하임(Hildesheim)의 알트프리트(Altfrid) 주교에 의해 건설되었다. 852년경부터 870년 사이에 에센 수도원이 건설되었다. 이 수도원은 946년에 일어난 대화재로 인해 소실되었지만 나중에 재건되었다. 898년 문헌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1003년에는 1,041개의 시장권을 부여받은 도시가 되었다. 신성 로마 제국 시대였던 1377년에는 카를 4세 황제에 의해 제국자유도시 칭호를 받았으며 1354년에는 은 광산이, 1450년에는 석탄 광산이 문을 열었다.
1811년 프리드리히 크루프가 이 곳에 철강 공장을 설립하면서 공업 도시로 성장했다. 특히 19세기에 형성된 탄광 지대인 체체 촐버레인은 에센을 대표하는 산업 유산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였던 1943년 3월 5일부터 3월 6일 사이에 일어난 영국 군대의 대규모 공습으로 인해 파괴되었지만 1951년부터 1958년 사이에 재건되었다. 2010년에는 유럽 문화 수도로 지정되었다.
기후[편집]
접기에센의 기후월1월2월3월4월5월6월7월8월9월10월11월12월년평균 최고 기온 °C (°F)일 평균 기온 °C (°F)평균 최저 기온 °C (°F)평균 강수량 mm (인치)평균 강수일수평균 상대 습도 (%)평균 월간 일조시간
4.5 (40.1) | 5.5 (41.9) | 9.1 (48.4) | 12.7 (54.9) | 17.6 (63.7) | 19.9 (67.8) | 22.2 (72.0) | 22.3 (72.1) | 18.3 (64.9) | 13.7 (56.7) | 8.2 (46.8) | 5.6 (42.1) | 13.3 (55.9) | |
2.4 (36.3) | 2.9 (37.2) | 6.0 (42.8) | 8.9 (48.0) | 13.4 (56.1) | 15.8 (60.4) | 18.0 (64.4) | 18.0 (64.4) | 14.7 (58.5) | 10.7 (51.3) | 5.9 (42.6) | 3.6 (38.5) | 10.0 (50.0) | |
0.2 (32.4) | 0.3 (32.5) | 2.9 (37.2) | 5.0 (41.0) | 9.1 (48.4) | 11.6 (52.9) | 13.7 (56.7) | 13.7 (56.7) | 11.1 (52.0) | 7.6 (45.7) | 3.6 (38.5) | 1.6 (34.9) | 6.7 (44.1) | |
84.5 (3.33) | 58.1 (2.29) | 78.2 (3.08) | 61.0 (2.40) | 72.2 (2.84) | 92.8 (3.65) | 81.2 (3.20) | 78.8 (3.10) | 78.0 (3.07) | 75.1 (2.96) | 81.1 (3.19) | 93.1 (3.67) | 934.1 (36.78) | |
14.1 | 10.5 | 13.6 | 11.1 | 11.1 | 12.0 | 10.4 | 9.9 | 11.2 | 10.9 | 13.6 | 14.1 | 142.5 | |
83 | 82 | 78 | 75 | 74 | 76 | 78 | 80 | 79 | 81 | 82 | 80 | 79 | |
43.4 | 78.3 | 102.3 | 147.0 | 192.2 | 183.0 | 186.0 | 182.9 | 135.0 | 111.6 | 57.0 | 40.3 | 1,459 | |
출처: 세계 기상 기구 (UN),[1] Hong Kong Observatory[2] for data of sunshine hours |
자매 도시[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
접기
|
전거 통제
분류:
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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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네 | |
Herne | |
행정 | |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 |
인구 | |
156,374 명 (2018년) | |
3,000 명/km2 | |
지리 | |
51.41 km2 | |
65 m | |
기타 | |
중앙유럽 표준시 (UTC+1) | |
44601-44653 | |
02323, 02325 | |
https://www.herne.de/ |
헤르네의 위치
헤르네(독일어: Herne)는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있는 도시이다. 인구 165,632(2009)[1].
라인 강의 지류 엠셔 강 연안에 위치하며, 에센·도르트문트·겔젠키르헨·보훔·레클링하우젠 사이에 있다. 원래 작은 마을이었으나, 19세기 중반부터 루르 지방의 주요 석탄 생산지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대표적인 광업 도시로 알려졌고, 주변 지역을 병합하여 시역을 확장했다. 뒤스부르크 방면의 라인 헤르네 운하가 통한다.
자매 도시[편집]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
전거 통제
분류:
도르트문트(Dortmund, IPA: [ˈdɔɐ̯tmʊnt]
듣기 (도움말·정보))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도시이다. 노르트라인페스트팔렌 주의 지리적 중심부에 자리 잡아 경제적, 상업적 중심지 역할을 수행한다. 2014년 12월 기준 인구 580,511명으로 독일에서 8번째로 큰 도시이며, 라인-루르 대도시권의 일부이다.
루르 강이 시의 남쪽을 지나며, 그보다 작은 엠셔 강도 시를 지난다. 도르트문트-Ems-운하의 종점인 도르트문트 항은 유럽에서 가장 큰 운하 항구로, 도르트문트와 북해를 연결시킨다.
도르트문트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그린 메트로폴리스'(생태주의 거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지역의 절반 가량은 수로, 삼림, 농경, 넓은 공원들이 있는 생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백 년에 가까운 대규모의 석탄 채굴과 제강의 역사와 대조를 이룬다.
독일에서 공업이 가장 발달한 도시들 중 하나다.
목차
역사[편집]
현 도르트문트 시 지역에서 인간 정착의 첫 흔적은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도르트문트는 882년 "트로트마니(고대 작센어: Throtmanni)"라는 이름으로 문헌상 최초로 언급된다. 도르트문트 시장권(Marktrecht)은 990년에 최초로 언급된다. 11세기에는 라이놀두스(Reinoldus)의 전설이 도시의 수호성자가 된다. 1152년에는 나중에 황제가 되는 프리드리히 왕에 의해 도르트문트에서 황실의회(Hoftag)가 개회되었다.[1] 그 결과 궁궐 주위에 많은 장인들과 상인들이 정착했고 이것이 모여 도르트문트라는 도시의 기원에 이바지했다. 1200년에는 이미 오늘날 도심 면적인 82 핵타르가 도달되었고 도시성곽이 건축되었다. 1232년에는 도시 대화재가 발생했다. 방화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화재로 도시 전체가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다. 화재는 왕의 길(Hellweg) 북쪽의 밀집된 도심에서 심했고 소상인과 장인의 목재로 된 집뿐만 아니라 돌로 된 라이놀트 교회까지 파괴했다. 화재로 인하여 도시의 고문서 보관소가 소실되었고 이와 함께 대화재 이전 시기의 모든 문서도 사라졌다. 화재로 인해 사라진 도르트문트의 옛 특권은 1236년 프리드리히 2세가 도르트문트를 최초로 제국도시로 지정하며 되살린다.
1293년 도르트문트는 맥주 양조권을 부여받고 도시 내에서 시범적인 맥주산업의 전개가 시작된다.
1956년엔 이미 도르트문트 인구는 624,000명을 기록했고, 1965년에는 658,075명의 주민으로 역사상 최다인구에 도달했다.
스포츠[편집]
도르트문트는 분데스리가에 속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연고지이다. 홈구장 또한 지그날 이두나 파크로 도르트문트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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