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사람이 만든 것 중에 셈할 수 없는 게 거의 없습니다. 사람이 지은 집이나 거기에 들어간 벽돌의 개수, 혹은 자동차, 길거리의 상점. 그 상점에서 파는 물건의 개수까지도 물리적으로 셈이 가능합니다. 소유를 전제로 한 상품은 모든 물량을 셀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사람의 것, 내 것이 됩니다. 그러니 사람은 상품을 제조하는 기계와도 같습니다.
자연의 것 중에는 셈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당장 손에 들고 있는 커피 잔의 최소 입자가 무엇인지 또는 그 입자를 몇 개쯤 모아야 커피 잔을 완성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헤아릴 수 있는 것이라면 고작해야 전 세계 인구가 몇 억명 쯤 된다더라 정도일 겁니다.
모든 사람이 무드셀라 증후군(moodcela syndrome)의 환자인 것처럼 나도 어릴 적 기억을 좋은 추억으로 담고 있습니다. 무지개를 쫓던 날의 바람 냄새를 지금도 간간이 기억합니다. 패랭이, 개망초, 나리꽃 지천이던 언덕도 기억하고 장마비에 얕은 여울을 넘쳐흐르던 황톳빛 물결도 기억합니다. 무엇보다 그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었음을 지적해 주신 어머니의 말씀 한마디를 기억합니다.
제대에 이은 복학 후 일 년 내내 꼬깃꼬깃 찌든 때물든 군복만 입고 다니며 세상을 어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무척 많이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읽지도 않는 〈철학의 기초이론〉이나 〈역사란 무엇인가〉, 〈해방신학의 이론과 실천〉 등 전공과는 무관한 책을 가방에만 넣고 다니며 그해 늦가을을 맞았었습니다. 낙엽의 쓸쓸함 마저 긴 소매 끝의 찬바람으로 들어와 뜻모를 외로움에 빠져들었던 그 가을의 어느 저녁, 나는 내가 다니고 있던 학교의 전철역사 끝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식탁을 보았습니다.
이미 지하철 내에서도 마주친 적이 있는 맹인 부부가 그 역사의 끝을 찾아와 보따리를 풀고 거기서 도시락을 꺼내 서로의 고단함을 달래주듯 한입 두입씩 서로에게 먹여주는 모습이었지요. 어떨 땐 밥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입가에 묻거나, 몇 개 안되는 반찬이 흘러 바지에 떨어져도 아랑곳 하지 않고 서로의 손과 얼굴을 더듬으며 확인하고 밝게 웃던 그 아린 사랑의 식탁. 마치 세상이 끝나는 지점을 찾아와 마지막 간절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 같은 그들만의 성스러운 식탁을 보며 나는 그 자리에서 10분도 넘게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역사 위로 노을이 찾아들고 그들의 도시락에 저녁햇살이 반사 되었습니다. 사람도 사랑하면 저리 아름다운 모습이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게 그 즈음입니다.
- 이글은 이지상 가수겸 성공회대 교수가 시민사회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첫댓글 내것이 아닌 우리의 것 참 멋진글이어서 퍼왔습니다.
좋아요. 좋아. 바오밥을 다시 만나니 차암~좋아요. 토욜에 꼭 참석 하세요. 아이들이 좋아할 추석 선물 있어요. 꼭이요. 꼭 약속해죠~~~
흔히들 말하죠 무지개는 멀리 있느것 같지만 바로 내 곁에 있다고요. 그걸 깨닫기까지는 많은 고통을 겪어야 터득한다고요. 글 잘 읽었습니다.
무지개^^ 꿈 꿈을 꾸는것으로 행복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