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립극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신정옥 역 김철리 각색 연출의 리어왕을 보고
공연명 리어왕
공연단체 인천시립극단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번역 신정옥
각색 연출 김철리
공연기간 2013년11월22일~12월1일
공연장소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관람일시 12월1일 15시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인천시립극단의 셰익스피어 원작, 신정옥 역, 김철리 각색 연출의 <리어왕>을 관람했다.
<리어왕(king Lear>)에 나타난 가치관의 갈등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1550년대에서 1600년대 초까지의 영국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리라고 본다. 1601년 에섹스(Essex)백작은 반역죄로 사형에 처해지고, 엘리자베스 여왕은 아직 후계자를 두지 못한 상황에서 전통귀족과 신흥귀족 그리고 중산계급은 1610년대에 이르러 상호간의 대립을 드러냈다. 특히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Spanish Invincible Armada)를 격퇴하는데 중산계급의 주도적 역할과 세력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의회에서의 중산계급의 역할이 강화되면서 타협과 균형이 깨지게 되었고, 이는 엘리자베스 사후 제임스 I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더욱 심해졌다.
<리어왕>이 집필된 시기로 추정되는 1604-5년경은 이런 정치적 갈등이 엘가치관의 분열과 결부됨으로써 영국과 전 세계에 대 혼란이 닥쳐올 것이라는 비관적 견해가 팽배했던 시기였다. 따라서 작품 속엔 정치적 질서체계는 물론 인간과 세계를 연관시켜주는 종교적, 철학적 혼란까지 나타나고 있다.
I막에서는 리어왕의 비극적 결함이 드러난다. 그것은 곧 그의 통찰력의 결핍, 고집과 노망, 규정해 놓은 질서의 파괴 행동 등이 바로 그것이다. 아첨을 거부하고 물질적인 이익을 위해 사랑을 거래하기를 거절한 코딜러어와 코딜리어를 변호하는 켄트를 리어왕이 추방하는 것은 그가 진실을 직시하지 못했기에 일어난 일이고, 이 때문에 리어왕은 받아 마땅한 불행을 겪게 된다. 그가 왕국을 분할하고 왕권을 이양하는 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왕권을 방기하는 것이며, 신으로부터 위임받은 의무를 저버리는 질서파괴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리어가 왕관을 벗는 순간 중세적 위계질서는 무너져버린다. 그가 왕관을 벗고도 왕으로서의 권위를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중세적 위계질서의 체계가 갖는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사실을 인정하려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게 된다. 그는 광인이 되어 누더기를 걸치고 폭풍우 속을 헤매고 난 후에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코딜리어는 이 극에서 기존 질서체계를 지탱해주는 경직된 형식의 한계를 제일먼저 깨달은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진심을 경직된 형식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언니들의 말을 흉내 내지 않고, 리어왕의 요구에 '아무 말씀도 드릴 것이 없다'라고 대답한다. 그녀의 '없다'라는 대답은 리어왕을 정점으로 하는 질서체계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붕괴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극적으로 보면 그녀는 불란서 왕과 결혼하여 영국을 떠남으로써 기존의 질서가 붕괴되고 혼돈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질서체계가 대두 되는 과정에서 하나의 이상적 관념으로 존재하게 된다.
인간의 사회적 존재양식이 내용과 형식의 조화라고 하는 이상을 지향하고 있다면, 리어왕의 세계에서의 합당한 인간관계는 거너릴과 리건으로 대변되는 형식과 코딜리어로 대변되는 내용이 조화를 이룸으로써 가능한 것이 된다.
코딜리어가 영국을 떠나게 된 후, 거너릴과 리건은 통치권을, 에드먼드는 상속권을 위해 기존의 가치와 규범과 인륜을 파괴하는 행동을 보인다.
작가는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과정을 에드거와 올버니를 통해 이루어 나간다. 에드거가 극한적 고통을 경험함으로써 삶에 대한 깨달음에 도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구축해 나가는가 하면, 올버니는 그와 같은 인간관계를 근거로 하여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올버니는 극의 전반에는 에드거처럼 소극적인 인물로 그려져 있다. 또한 사회가 혼돈 속에 빠져들어도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4막 2장에서부터는 전혀 다른 인물로 나타난다. 그가 자신을 '공명정대하지 않는 경우에는 결코 용기를 발휘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듯 그는 혼돈 속에 방황하고 있는 다른 인물들과는 달리 분명한 판단기준과 공평한 안목을 갖춘 인물로 바뀌어 에드거와 함께 혼란된 질서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대단원에서 코딜리어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 리어가 코딜리어와 화해하지만, 이미 두 사람은 더 이상 생존하지 못하고 생을 마무리한다.
역사란 끊임없이 경직된 기존질서체계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인간의 고통과 회생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면 ,<리어왕>은 그런 역사적 전환기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혼돈과 그것의 극복과정을 냉철하게 탐색하는 극이라고 할 수 있다.
무대는 배경 가까이 등퇴장 로를 만들어 놓고, 그 아래로 여러 개의 계단과 중간무대 그리고 경사진 무대로 이어진다. 무대 좌우로도 출연자들이 등퇴장을 하고 철제 빔에 수많은 조명을 달아 극의 후반 광야에서의 기상변화를 조명색상의 변화와 효과음으로 적절하게 표현한다. 벽 형태의 조형물을 천정에서 하강, 상승시켜 장면변화에 사용하고, 소품으로 네 개의 의자로 리어왕과 세 명의 딸이 앉는다. 이 의자는 종반부에 광대에 의해 쓰러뜨려진다. 연출자가 강조한 광대역의 등장과 마무리가 효과를 발하는 느낌이다.
서국현이 리어왕으로 출연해 독특한 성격창출과 중후한 기량과 열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조윤경과 정순미가 거너릴로 출연하고, 강주희와 강성숙이 리건으로 출연해 각자 탁월한 성격창출과 관능미 넘치는 호연으로 남성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황혜원과 이신애가 코딜리어로 출연해 관객의 동정과 사랑을 듬뿍 받는다. 차광영이 글로스터, 김현준이 에드먼드, 김희원이 에드거, 이범우가 켄트, 심영민이 콘월, 김세경이 올버니로 출연해 제각기 탁월한 성격창출과 열연으로 관객을 극에 몰입시킨다. 최진영이 광대, 김태범이 오스왈드, 서창희가 프랑스 왕, 권순정이 버건디, 김문정이 전의로 출연해 각자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무대디자인 이유정, 조명디자인 이상봉, 의상디자인 정경희, 분장디자인 손진숙, 소품디자인 김혜지, 음악 이나리메, 사진 류재형, 헤어디자인 빅토리아, 무대감독 이완희, 조연출 손경희, 단무장 김화산, 기획 홍보 이옥희 이돈형 김새롬 등 스텝 모두의 노력과 열정이 돋보여, 인천시립극단의 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신정옥 역, 김철리 각색 연출의 <리어왕>을 연출력이 감지되는 독특하고 색다른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
12월1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