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비공개 입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방법/이사야 56:3-5
이한배 목사
I. 서 론
세상에는 가슴아프게 하는 일들이 많이 있읍니다.
우리를 가슴아프게 하는 일 중에 가장 안타까운 일은 불능하게 된 일을 만났을 때입니다.
그런데 살다가 보면 우리는 다 불가능한 일을 만나게 됩니다.
인생은 살아가면서 서서히 하나 둘 불가능한 일들이 생기게 됩니다.
처음에는 자라고, 빠지면 다시 나던 치아도, 어느 때가 되면 빠지면 다시는 나지 않읍니다.
자라던 손가락 발가락도 어느 때가 되면 자라지 않고 없어지면 다시 생기지 않읍니다.
이렇게 인생은 살아가면서 불가능한 일들이 하나 둘 생기다가 나중에는 모든 것이 다 불가능하게 되는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본문에 나오는 고자는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남자입니다.
이 고자를 사람들은 “마른 나무”고 합니다.
마른 나무는 죽은 나무 즉 생명이 떠나간 나무란 뜻이며, 다시는 살 수 없는 나무란 뜻입니다.
나무가 원가지에서 잘려도 어느 기간 동안은 다시 살 수 있읍니다.
그러나 마른 나무가 되면 영원히 다시 살 수 없읍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얼마나 슬픈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말고 자식을 낳아야만 할 내 자신이, 아니 내 자식이 고자가 되었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요.
얼마나 안타깝겠읍니까 ?
제 주위에도 자식을 낳지 못하는 친구들이 몇 있읍니다.
바로 이 한아름에 살던 신학교 때 친구는 자식을 낳지못하여 아들 둘을 양자를 데려다가 키웠읍니다.
그는 그렇게 아들 둘을 데려다가 키우다가 철도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읍니다.
자식을 낳을 수 없어서 어린 아이 둘을 자식이라고 데려다가 키우다가 세상을 떠나는 그의 모습을 보니 매우 슬펐읍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의 모든 흔적이 이세상에서 다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자식을 낳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은 이렇게 답답하고 슬픈 일입니다.
그런데 (마19:12)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렇게 자식을 낳지 못하게 된 고자에는 3가지 종류가 있읍니다.
①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가 있읍니다.
이런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고자로 태어난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불가능한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그런 자식을 낳은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며, 고자가 된 자식은 자기를 그렇게 낳은 부모가 얼마나 원망스럽겠읍니까 ?
② 사람이 만든 고자가 있읍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강제로 거세를 한 자들입니다.
내시와 같은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더욱더 슬프게 합니다.
어렸을 때 어린 돼지를 거세를 하는 것을 보았읍니다.
그때 거세당하는 돼지가 얼마나 불쌍해 보였는지 모르며, 돼지에게 거세를 하는 자들이 얼마나 잔인해보이고 미웠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타인에 의하여 불가능한 자가 된 자들이 있읍니다.
그런 자들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릅니다.
야인시대를 보면 시라소니의 눈에 고추가루를 뿌려 무너뜨린 동대문파의 이석재가 시라소니로 다시는 보복을 못하게하고 주먹세계를 떠나게하겠다고 쇠절구로 그의 남은 다리를 테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장면을 보면 얼마나 끔찍하며 그런 테러를 당하는 시라소니가 얼마나 불쌍한지 모릅니다.
이렇게 타인에 의하여 불능이 된 자들은 더욱더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③ 스스로 된 고자가 있읍니다.
이런 자들은 매우 존경스러워 보이나 그러나 그래도 불쌍한 것은 면할 길이 없읍니다.
이렇게 불능한 일을 당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하고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아무런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혹시 성도님들 중에 이렇게 여러분의 어떤 능력이 불능이 되어서 절망하는 자는 없읍니까 ?
이렇게 능력이 불능하게 된 것을 영어로 impotent라고 하는데 혹시 이렇게 인생에 불능을 만난 분은 안계십니까 ?
이렇게 불능하게 된 자에게 그 불능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얼마나 기쁜 소식이겠읍니까 ?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자가 자식을 낳을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
우리의 불능하게 된 것이 가능하게 되는 길이 열렸다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
중풍을 맞은 반신불수가 된 지체가 다시 회복되는 길이 있다면 기쁜 일이겠읍니까 ?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이렇게 불능하게 된 자에게 가능하게 하는 길이 있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자식을 낳을 수 없는 고자에게
① “내가 내 집에서 내 성안에서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주시겠다”고 하셨읍니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신23:1; 레21:20)을 보면 고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백성도 될 수가 없읍니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의 집과 성에 들어갈 수가 없었읍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이 하나님의 집과 성에 들어갈뿐만 아니라, 자녀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얻게 되었읍니다.
그러니 이들이 얼마나 기쁘겠읍니까 ?
② “영영한 이름을 주어 끊치지 않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대가 끊어질 자에게 대를 이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될 수 있을까요 ?
오늘은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불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II. 본 론
1.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자에게 대를 잇는 기적을 보여주시는 첫번째 조건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들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첫번째 조건은 주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식일을 어떤 것일까요 ?
1)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의 절정입니다.(창2:1-3)
① 하나님의 창조의 이야기는 6일 간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이 일곱째 날에 완성되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므로 일곱째 날은 하나님의 창조의 극치입니다.
② 그래서 하나님은 이 일곱째 날에 안식을 하셨읍니다.
③ 그리고 이 안식일에 복을 주셨읍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복받은 날입니다.
2) 안식일은 우주의 질서입니다.(출20:8-11)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엿세 동안 만드시고 제7일에 쉬셨기 때문에 이것이 우주의 질서가 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이대로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전세계가 이 안식일 제도를 지키고 있읍니다.
참으로 놀랍지않읍니까 ?
우리나라 강원도만한 나라의 백성들이 지금으로부터 약 4,500년 전부터 지켜오던 것을 전세계 사람들이 다 지키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것이 아닙니까 ?
그것은 유대인들이 놀라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의 질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안식일을 꼭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7일에는 안식하라”(출20:9-10)
우리는 엿새 동안은 힘써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7일에는 안식일로 지켜야 합니다.
모세는 우리가 이렇게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그것이 하나님이 우주를 만드신 우주의 질서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우리가 불가능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안식일 제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 제도를 지키면 절대로 우리에게는 불가능하게 되는 일이 없읍니다.
그러므로 안식일 제도를 잘 지키면 우리의 불가능하게 된 것들이 다시 회복이 됩니다.
오래전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의 박애주의자인 스티번 기라드(Stephen Girard)씨에게 있었던 일이 신문에 났다. 토요일에 그는 그의 모든 직원들에게 내일 새로 도착한 배의 하역작업을 하도록 부두로 나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한 젊은이가 공손하게 “사장님 저는 주일날 일할 수 없읍니다”하고 말씀을 드렸다. 사장은 “너, 사장 명령에 불순종하면 해고 당한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하고 소리쳤다. “예 잘압니다. 그리고 저는 부양할 어머님이 계십니다. 그러나 저는 주일에 일할 수 없읍니다”라고 젊은이는 대답했다. “그럼 너 경리실로 가거라. 그리고 경리에게 퇴직금을 받아가라”고 사장은 그 자리에서 해고를 시켰다.
3주일 동안 이 젊은이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읍니다. 그런데 어느날 은행장이 Girard씨에게 와서 “새로 세운 은행을 총지배할 지배인을 한 사람 추천할 수 없겠느냐 ?”고 물었읍니다. Girard씨는 즉시 해고당한 젊은이를 적극적으로 추천했읍니다. 그러자 은행장은 “그 젊은이는 당신이 해고한 사람이 아니냐?”하고 물었읍니다. 그러자 Girard씨는 “예 나는 그 사람이 주일에 일하지 않기 때문에 해고 했읍니다. 그러나 자기의 신앙과 양심을 지키기 위하여 직장을 잃은 사람은 은행지배인으로 가장 믿을만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젊은이는 그 은행의 총 지배인이되었다.
이렇게 주일을 지키면 기적을 보게 됩니다.
3) 안식일은 우리를 지켜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70년을 지냈읍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버리고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순수성을 잃어버렸읍니다.
그러나 그 기간에도 신앙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수성을 지킨 자들이 있읍니다.
그러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과 그들의 순수성을 지켜준 것이 무엇이였을까요 ?
그것은 바로 안식일 준수였읍니다.
이 안식일을 지킴으로 그들은 신앙을 지킬 수 있었으며, 이스라엘 백성의 순수성도 지킬 수 있었읍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안식일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곱째 날에는 주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니까 신앙을 지키지, 그것이 없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신앙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이렇게 안식일을 우리의 신앙을 지켜줍니다.
우리 자신을 지켜줍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자가 대를 잇게 되는 조건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하는 것”을 들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우리에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마른 나무에서도 입이나고 꽃이 핍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시37:4)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까지 이루어주신다고 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일까요 ?
하나님은 어떤 일을 좋아하실까요 ?
1)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욥22:26; 빌4:4)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돈보다도, 보석보다도, 부귀영화보다도, 명예보다도 하나님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뻐하고 좋아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했읍니다.
여러분의 삶에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되기를 원하시면 세상의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좋아하시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2)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히11:6)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두가지를 믿고 살아야 합니다.
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②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고 나아갈 때 기적을 보게 됩니다.
3.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자가 대를 잇는 기적을 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잡아야 한다”고 하셨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잡으면 이방인도 하나님의 집에 들이고 기쁘게 하시겠다고 하셨읍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것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준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악으로 죽을 죄인들을 구워하라는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이땅에 보내심을 받으셨읍니다.
이 사명을 가지고 이땅에 오신 예수님은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목숨을 버리셨읍니다.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생명을 버리셨읍니다.
이렇게 목숨을 바쳐서까지 맡겨진 책임과 의무를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주셨읍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기적의 주인공이 되게 하셨읍니다.
이렇게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인류의 100대 과학 사건에 드는 “전자기 유도현상”을 발견한 영국의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가 있다. 하루는 패러데이가 수 많은 훌륭한 과학자들이 가득찬 곳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는 한시간 동안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전기의 특성에 대하여 설명을 했다. 청중은 넋을 잃고 들었다. 그는 그의 강의를 진기하고 놀라운 실험으로 마쳤다. 그리고 자기의 자리에 들어가 앉았다. 그러자 박수 소리가 그 홀을 진동을 시켰다. 그러자 후에 영국의 왕 에드워드 7세(Edward VII)가 된 웰일즈의 왕자가 일어나서 청중들에게 기립박수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청중은 일제히 일어나 홀이 떠나갈정도로 박수 갈채를 보냈다. 그러데 갑자기 그 소란하던 곳이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상한 침묵이 그 홀을 덮었다. 청중들은 그러한 기립박수에는 박수를 받는 패러데이가 나와서 인사를 해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패러데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였다. 오직 그의 친한 친구 몇 사람만이 그가 지금 어디에 갔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는 20명이 넘어보지 못한 샌디매니언(Sandemanian)이란 작은 교회의 장로였다. 그리고 그가 그의 강연을 끝낸 시간은 그 교회에서 매주말 밤에 모이는 기도시간이였다. 패러데이는 그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왕자가 참석한 강연도 일찍 끝내고 교회로 달려갔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이 맡겨주신 책임과 의무를 다할 때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게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 아 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