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2017년 9월 6일), 삶을 마감한 전 연대 교수 마광수씨가 자살하기 1시간 전 친구와 통화를
한 사실이 알려졌다.
마교수는 그날 12시경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나 지금 너무 힘든데 와줄 수 없니?'하고 말을 건넸다.
친구는 3시까지 가기로 했는데 그로부터 1시간 후 마교수는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마교수는 왜 죽음을 앞두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을까?
힘들었던 그의 외로움을 알리고 싶어설까?
죽음을 결심하고 친구에게 사후 처리를 부탁할 셈이었을까?
죽음을 마주 하고 있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마교수에 대한 판단은 아직도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가 마지막
한 말이 참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 지금 힘든데 와줄 수 없니?'
누구나 다 이럴 때가 있으리라.
그때 자신의 마음을 전할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사람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해서
누구나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랜 조사 끝에 마침내 밝혀낸 장수하는 사람들의 단 하나의 공통점은 놀랍게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진정한 친구가 있느냐, 없느냐?' 였다고 한다.
마음을 깊이 나누는 진정한 친구가 없는 사람일수록 쉽게 병에 걸리고 일찍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친구들이 많고 그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스트레스가 줄며
더 건강한 삶을 유지하였다는 것이다.
친구란 환경이 좋던 나쁘던 늘 함께 있었으면 하는 사람이고,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을 때 저절로 상의하고 싶어지는 사람이다.
친구란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 때 의지하고 싶은 사람,
다른 사람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일도 얘기하고 싶은 사람,
자신이 쓰러져 있을 때 곁에서
무릎 꿇어 일으켜 주는 사람이다.
슬플 때 기대어서 울 수 있는
어깨를 가진 사람이며,
내가 실수했다 하더라도
언짢은 표정을 짓지 않고
언제나 따뜻하게 격려해 주는 사람이다.
시인 용혜원의 '친구가 있는 삶‘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누군가와 동행한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들의 삶은 언제나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움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는 것이고,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친구가 있습니다.
언제나 "친구야!" 불러주면 달려가고픈 정다운 사람들.
우리들의 삶 얼마나 아름답게
될 수 있는 삶입니까?
친구가 있는 삶 말입니다.
연암 박지원도 벗을 한집에 살지 않는 아내요, 피를 나누지 않은 형제라고 했다.
살다가 막막해져서 부모도 아니고 처자도 말고 단 한 사람 날 알아줄 지기지우(知己之友)가 필요한 날이 꼭 있게 마련이다.
마광수 교수가 죽던 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나 지금 너무 힘든데 와줄 수 없니?'하고 말을 건넸던 때가 바로 그런 날이었을 것이다.
그 한 사람의 벗으로 인해 우리는 세상을 다시 건너갈 힘을 추스를 수 있다.
나 아닌 나, ‘제2의 나(第二吾)’가 없는 인생은 차고 시린 밤중이나 다름없다.
YouTube에서 '2012.11.24 정동하 - 친구야 너는 아니 (희망로드 대장정)' 보기
https://youtu.be/Lr-243EKUf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