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영토 이미지』 2023년 겨울호(30호), 한국장애예술인협회, 2023년 11월 1일 간행.
표지화 : 백지은
안녕, 치킨
이명윤
이번엔 불닭집이 문을 열었다
닭 초상이 활활 타오르는 사각 화장지가
집집마다 배달되었다
더 이상 느끼한 입맛을 방치하지 않겠습니다
공익적 문구를 실은 행사용 트럭이 학교 입구에서
닭튀김 한 조각씩 나눠 주었다
아이들은 불닭집 주인의 화끈한 기대를
와와, 맛깔나게 뜯어 먹는다
삽시간에 매운바람이 불고 꿈은 이리저리 뜬구름으로 떠다닌다
낙엽, 전단지처럼 어지럽게 쌓여가는 십일월
벌써 여러 치킨 집들이 문을 닫았다
패션쇼 같은 동네였다. 가게는 부지런히 새 간판을 걸었고
새 주인은 늘 친절했고 건강한 모험심이 가득했으므로
동네 입맛은 자주 바뀌어 갔다
다음은 어느 집 차례
다음은 어느 집 차례
질문이 꼬리를 물고 꼬꼬댁거렸다
졸음으로 파삭하게 튀겨진 아이들은 종종 묻는다
아버지는 왜 아직 안 와
파다닥, 지붕에서 다리 따로 날개 따로
경쾌하게 굴러떨어지는 소리
아버진 저 높은 하늘을 훨훨 나는 신기술을 개발 중이란다
어둠의 두 눈가에 올리브유 쭈르르 흐르고
일수쟁이처럼 떠오르는 해가
새벽의 모가질 사정없이 비튼다
온 동네가 푸다닥,
홰를 친다.
(38~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