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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환 목사
오늘 읽은 말씀 중에 특히 17-18절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에게 유익한 일을 가르치며 마땅히 가야 할 길로 너희를 이끈다. 너희가 내 명령에 복종했으면, 평화가 강같이 흘렀을 것이며, 좋은 일이 파도처럼 몰려왔을 것이다.” 이 말씀이 NIV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I am the LORD your God, who teaches you what is best for you, who directs you in the way you should go. If only you had paid attention to my commands, your peace would have been like a river, your righteousness like the waves of the sea.”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항상 최선의 것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항상 최선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같은 말씀이 신약성경 로마서 12:2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And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at you may prove what the will of God is, that which is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기 위해서 너의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일에 민감하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하나님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다는 바알신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없다(But there is no peace for the wicked, 22절)”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이 말하는 악한 사람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이방 나라들도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악한 사람은 이스라엘 신앙공동체 안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사야서 말씀을 읽으면서 이사야의 말씀이 신약성경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사야서에 있는 많은 말씀들이 알게 모르게 신약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이사야서의 말씀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로마서 2:9-11 말씀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악한 일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환난과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유대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방인들에 이르기까지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나 선한 일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유대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방인들에 이르기까지 그러할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에도 악한 사람이 누구냐 하고 말하면서 먼저 유대인에게서 악한 사람을 찾습니다. 악한 사람에게는 평화가 없고, 환난과 고통이 있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에게는 평안과 영생을 주신다고 합니다.
이제 오늘 이사야서 말씀으로 들어가 보시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이 새벽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읽은 말씀 처음에 보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잘 알고 계신다고 합니다.
4절에 “너희가 고집이 세다는 것을 내가 안다. 너희 목 힘줄은 쇠 같고 너희 이마는 놋쇠 같다.”
또 8절에 “나는 너희가 틀림없이 나를 배반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너희는 태어날 때부터 반역을 일삼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의 모든 것을 이렇게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는 이스라엘은 고집이 센 백성입니다.
성경에 “고집이 세다”는 말을 아주 재미있게 표현했습니다. “너희 목의 힘줄이 쇠 같다”고 합니다. 우리 말에 고집이 센 사람을 황소 고집이라고 합니다. 주인이 아무리 황소 고삐를 잡고 끌어도 황소는 그리고 가지 않겠다고 목에 힘을 주고 버팁니다. 그러면 목에 힘줄이 서게 되겠지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이렇게 고집이 세다는 것을 잘 아신다고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고집 센 황소처럼 목에 힘을 주고 따라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우리에게 유익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따라야 할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집 센 황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고집 센 자기 백성들을 보시면서 “너희는 태어날 때부터 반역을 일삼았다(8절)”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고집을 부린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머니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고집을 부렸다는 것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는지 모르지만, 이스라엘의 배반과 패역했던 역사가 뿌리가 그렇게 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과거를 한번 돌아 보십시오. 성경 말씀을 순순히 믿지 않고, 고집 센 황소처럼 목에 힘을 주고 그 말씀을 믿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 적은 없습니까? 남편이 아무리 교회를 나가자고 해도, 아내가 아무리 교회를 나가자고 해도 무슨 자존심인지 고집 센 황소처럼 나가지 안겠다고 고집을 부린 사람은 없습니까? 예전에 한국에서 제가 섬기던 교회에 박도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이 분은 “박도순 산부인과”로 유명하신 분입니다. 이 분이 얼마나 인자하고, 얼마나 헌신적인지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이 자자합니다. 그 교회에 부목사로 부임해서 한번은 그 가정을 심방하게 되었는데, 장로님이 매우 긴장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 분이 왜 저렇게 긴장하나?” 하고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았더니 그 부인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 장로님이 나중에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다른 것을 다 했는데, 제 아내를 인도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과거에 이렇게 고집이 셌던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사순절 새벽 기도를 드리는 자리에 까지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고집이 센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 자식이 이렇게 고집이 세다면 그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회초리로 때리는 것도 정도가 있습니다. 매를 맞아서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그런데도 고집을 부립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 이스라엘이 꼭 그런 모양입니다. 그렇게 고집을 부리다가 결국은 나라가 멸망하고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 와서 70년을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어쩌면 하나님과 자기 백성과의 관계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와 그렇게 공통점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옛말에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부모 이기는 자식 없다”가 아니라,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입니다. 결국은 고집 센 자식에게 부모가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도 똑 같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마음을 바꾸는 길 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 이름을 위해 내가 참았고, 내 영광을 위해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았다. 내가 너희를 단련시켰으나, 은을 정련하듯 하지 않고 오히려 너희를 고난의 용광로에서 단련시켰다. 그것은 나를 위해, 내 이름을 위해 한 것이다.” (9-11절)
하나님께서 참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참으셨다고 하지 않고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참았다(Yet for my own sake and for the honor of my name, I will hold back my anger and not wipe you out)”고 합니다. 아무리 자기 백성이라도 마음 같아서는 “wipe out” 모두 닦아 버리고 싶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없애 버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 이름 때문에,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니까 하나님께서 참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시편 23편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1-3절) 이 말씀에도 “자기 이름을 위하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 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참으시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새로운 일을 하십니다. 그것은 연단입니다. 연단은 일종의 훈련입니다. 하나님은 고집 센 자기 백성을 “wipe out” 하지 않으시고, 그대신 연단하시기로 마음 먹습니다. 쇠를 반복해서 연단하면 강철이 되듯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연단해서 훌륭한 백성으로 만드시기로 작정하십니다. 그렇지 않고 고집이 세다고 해서 “wipe out” 해 버리시면,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땅에 떨어지겠습니까? 이방 민족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조롱하겠습니까? 결국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wipe out” 했다고 하나님을 조롱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또 한가지 새로운 일을 하십니다. 그 말씀이 14-15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사람이 내가 바라는 일을 바빌론에게 행할 것이다. 그가 바빌로니아 사람들을 공격하여 내 뜻을 이룰 것이다. 내가 말했고, 그를 불렀으며, 데려왔으니, 그가 하는 일마다 잘 되게 해 주겠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지금 계획하고 계시는 일은 자기 백성을 고국으로 돌려 보내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꿈만 같은 일입니다. 어느 누가 포로로 잡아 온 사람들을 돌려 보내겠습니까?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서 그들이 하기 싫은 험한 일들을 시켰을 것입니다.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아도 되니까 얼마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 포로들을 돌려 보낸다고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선택해서 이 엄청난 일을 이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이 사람은 누구인지 이중의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바빌로니아를 멸망 시키고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고레스 왕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이 사실은 이미 이사야서 말씀에 여러 번 나왔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해석은 이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이 장차 오실 메시야, 즉 예수 그리스도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 아들을 통해서 영적 이스라엘을 건설하기 위한 엄청난 구원의 큰 그림을 그 때부터 그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고 계시는 일이니까, 이 일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계획하신 일이니까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 드렸습니다.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리라(이사야 9:7, 37:32)”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정을 가지고 추진하시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그대로 됩니다. 하나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입니다(12절). 하나님은 창조의 주이시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주입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부르시고, 그를 통해서 하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형통하게 이루어집니다. 그 말씀이 15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나 곧 내가 말하였고 또 내가 그를 부르며 그를 인도하였나니 그 길이 형통하리라.”
끝으로, 17-18절 말씀입니다. “너희 구원자이시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인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다. 나는 너희에게 유익한 일을 가르치며 마땅히 가야 할 길로 너희를 이끈다. 너희가 내 명령에 복종했으면, 평화가 강같이 흘렀을 것이며, 좋은 일이 파도처럼 몰려왔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일찌감치 복종했더라면, 평화가 강같이 흘렀을 것입니다. 좋은 일이 파도처럼 몰려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황소처럼 목에 힘을 주고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은 그런 자기 백성을 참고, 용서 하시고, 자기 백성을 연단하시고, 자기 백성을 위하여 새로운 구원의 계획을 세우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우리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도 좋겠습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고난 가운데 연단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연단하시고,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자기 백성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계속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은혜로 용서 받고 사는 그런 백성일까요? 아니면 전혀 다른 모습의 하나님의 백성일까요?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자기 백성들의 모습은 “너희가 내 명령에 복종했으면, 평화가 강같이 흘렀을 것이며, 좋은 일이 파도처럼 몰려왔을 것이다” 이 말씀 속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 순순히 기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의 강이 그들 가운데로 흘러 넘치는 사람들,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심으로 그들 가운데 좋은 일들이 파도처럼 몰려 오는 사람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마음에 그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여러분에게서 이런 하나님의 자녀들의 모습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