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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실제 프레디 머큐리 (오른쪽) 라미 말렉의 프레디 머큐리
전설적인 록밴드 퀸과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일대기를 그리며 관객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고있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영화의 극적인 요소를 위해 어쩔수 없이 현실과 다르게 그릴 수 밖에 없는 요소들이 의외로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부터 우리가 영화를 통해 알았던 <보헤미안 랩소디>의 비하인드 스토리와 실제 현실 간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영화에서는 프레디 머큐리가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가 이끌던 스마일 밴드 공연을 관람하고 보컬인 팀 스타펠이 바로 탈퇴한 걸 확인하고 수줍게 다가와 즉석 보컬 오디션을 본것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프레디 머큐리와 스마일은 이전부터 알던 사이였다. 프레디는 당시 대학교 아마추어 밴드 활동을 하고 있었고, 공연장을 오가다가 스마일을 알게되었다. 이후 보컬인 팀 스타펠과 친해지게 되면서 프레디는 브라이언 메이와 만남을 갖게 되었고, 이후 스마일의 팬인냥 그들의 공연을 따라다녔다. 그러다 팀 스타펠이 'Humpy Bong' 이라는 밴드에 가입하기 위해 스마일을 탈퇴하게 되면서 프레디 머큐리가 자연스럽게 스마일에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팀의 베이스 오디션을 보았고 세 번의 오디션 끝에 베이시스트 존 디콘을 영입, 퀸이 탄생하게 되었다.
참고로 팀 스타펠은 이후 'Humpy Bong' 활동에도 실패해 결국 음악을 그만두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게 된다. 이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퀸이 잘될 것임을 알고 있었고, 그 밴드의 전신에 탈퇴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라고 밝혔다. 재미있는 사실은 팀 스타펠은 성공한 직장인 이라는 것. 전 세계 어린이들이 사랑하는 <토마스와 친구들>의 모형과 디오라마를 설계한 이가 바로 팀 스타펠이다.
2. 메리 오스틴과의 관계
영화는 두 사람이 스마일 공연장에서 만나고, 결혼 후 프레디의 커밍아웃으로 좋지 않은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두 사람은 1970년대 브라이언 메이의 소개로 알게 된 사이다. 1976년 프레디가 커밍아웃 사실을 밝히게 되면서 헤어졌지만, 두 사람은 헤어진 이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심지어 메리 오스틴이 프레디 머큐리의 개인비서를 자처하며 그를 수행하기도 했다. 프레디가 본인의 유일한 '친구'라며 깊이 신뢰한 덕에 프레디가 죽고 나서 런던의 대저택을 상속받았다.
3. 프레디 머큐리의 성적 성향
프레디 머큐리의 동성, 양성애적 성향이 중요하게 다뤄졌지만, 실제로는 더 심했다고 한다. 대부분 남성들과의 동성애가 유심히 그려졌지만, 1980년대 중반에 오스트리아 출신 여배우 바바라 발렌틴과도 사귀었을 정도로 남녀를 가리지 않고 문란한 생활을 즐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프레디 머큐리는 공식적으로 자신의 성적 성향을 밝히지 않았다. 그의 성적 성향에 관한 이야기는 주변인(전 애인)들의 증언으로 이뤄진 내용이며, 동성 연인 짐 허튼을 자신의 파트너라고 가족에게 소개한 적도 없었다. 그의 개인 평전에 의하면 죽을 때까지도 부모님에게까지 자신의 성적 지향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님이 프레디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같이 살고 있는 애인 짐에 대해서는 개인 정원사라고 둘러대기만 했다. (하지만 프레디의 부모님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들의 성적 성향을 눈치채고 있었다고 한다.)
4. 마이크 마이어스의 EMI 임원은 허구 인물
실화 소재의 영화들이 극적인 장치와 흥미를 위해 허구의 인물을 만들어 내는 건 익숙한 요소중 하나다. 극 중 마이크 마이어스가 연기한 보헤미안 랩소디에 반감을 지닌 레이 포스터가 대표적인 허구적 인물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지만 보헤미안 랩소디와 퀸을 싫어한 다수의 음반 기획자들을 합친 인물로 보고 있다. 굳이 가까운 인물이라면 당시 EMI의 책임자인 로이 피셔스톤일거라 추정하고 있지만, 실제 로이는 퀸의 열렬한 팬이자 호의적인 인물이었다고 한다. 단지 보헤미안 랩소디가 처음 공개되었을때 너무 길다고 약간의 불평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극 중 폴 프렌터라는 매니저가 프레디의 솔로 활동을 종용하고, 프레디를 조종하다 싶이 하는 악덕 기회주의자이자 매니저로 그려진다. 물론 영화에서 묘사된 폴에 대한 일부 묘사가 다소 과하게 그려졌지만, 실제로도 폴과 퀸 멤버들은 사이가 좋지 않은 부정적 인물이었다고 한다. 영화에서는 라이브 에이드 공연 이전에 해고한 것으로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라이브 에이드 이후인 1년 후에 해고 했다.
6. 영화와 다른 에이즈 판정 시기
극 중에서 프레디 머큐리의 에이즈 판정 시기는 1985년 밴드 에이드 공연 이전으로 그려졌지만 실제로 그가 판정을 받은 시기는 2년 후인 1987년이었다. 멤버들이 알게 된 시기는 1년 후인 1988년이었다. 그즈음부터 프레디 머큐리는 급속히 초췌해지며 에이즈 감염설이 퍼지고 있었는데, 이때 프레디는 멤버들에게 자신의 에이즈 감염을 시인하면서도 이 문제를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멤버들도 그의 뜻에 따라 더 이상 그 문제를 논하지 않고 음악 작업에만 몰두했다. 멤버들과 주변 사람들은 프레디를 보호해 주기 위해서 누군가가 물어보면 에이즈에 안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프레디 머큐리는 죽기 전 근 1년간 언론에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더 이상 치료가 의미 없음을 알게 되자 스스로 치료를 거부했고 1991년 11월 24일 사망했다.
7. 애인 짐 허튼도 에이즈 판정을 받다…알려지지 않은 비극
영화에서 짐 허튼은 웨이터로 만나 라이브 에이드 때 본격적인 만남의 시작을 알린 것으로 그려졌지만 두 사람이 관계를 맺은 시기는 꽤 깊었다. 프레디가 가장 오랫동안 애인 관계를 유지하며 동거했던 사람은 짐 허튼으로 1983년에 만나 1991년 프레디가 죽을 때 까지 함께 했다. 그들의 관계는 철저히 비밀로 부쳐졌으며, 프레디의 정원사 내지 이발사로 소개되었으나 투어마다 같이 따라 갔었다고 한다. 프레디의 40세 생일 때 법적으로는 인정 못받았지만 부부의 연을 맺었고, 오른손 약지에 커플링을 끼기 시작하였다. 짐은 1987년 프레디의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고 계속 그와 함께했지만, 결국 그도 1990년에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투병생활로 피폐해진 프레디에게 그 사실을 숨겼다. 그러다 두번째 검사 결과를 프레디에게 알렸고, 프레디는 극도의 슬픔과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레디는 짐 허튼에게 50만 달러의 상속을 남기고, 짐 허튼과 살고 있던 자신의 런던 대저택을 메리 오스틴에게 상속하며 짐 허튼이 집에 계속 머물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프레디 사후 메리 오스틴은 강제로 짐 허튼을 집에서 쫓아냈고, 짐 허튼은 2010년에 암으로 사망했다.
첫댓글 몇년전 퀸 라이브 공연 영화도 보고 홍대클럽에서 퀸 트리뷰트 밴드 공연도 보았는데
다 나름 좋았어요.
어제 영화를 보고 이런 드라마적인 영화는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궁금했는데 마침 이렇게 써주셨네요. ^^
퀸 매니아시네^^ 나도 노래는 무척 좋아했는데 프레디의 생을 들여다 보니 어쩐지 마음이 짠~~
일부러 목동까지 가서 돌비시스템 되어있는 극장에서 봤습니다 한동안 저도 모르게 퀸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네요~~~
어머나! 대단하네요. 부평역사에서도 아직 하고 있어서 저는 한 번 더 보려고 생각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