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여정(앨범)
2일차(6. 10/금)
산책/조식
습관대로 일찍 일어나 주변을 산책합니다.
초여름 안동의 아침공기가 참 좋습니다.
’웅비하는 안동, 세계를 품다!‘란 글귀가 눈에 들어오네요.
2일차 일정을 위해 ’충효회관‘을 나섭니다.
아침식사는 근처 옥동에 있는 ’만당해장국‘입니다.
혈기왕성하던 시절도 있었건만, 이젠 모두 퇴직하여 제2의 삶들을 살고 있습니다.
많이들 늙었는데요, 그러고 보니 퇴직한지도 어언 두 번이나 강산이 변하려합니다.
가장 장수하는 조류로 알려진 솔개는 늙으면 스스로 고통스러운 갱생과정을 거쳐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여 남은 수명을 살아간답니다.
영어로 은퇴를 'Retire'라 하는데, 이를 풀어서 해석하면 길을 가기 위해 '타이어(tire)'를 '다시(re)' 바꿔 끼운다는 의미라네요.
남은 후반부 인생을 멋지게 살아야합니다.
젊음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지만, 아름다운 늙음은 스스로 만들어 가야합니다.
늘 그렇듯 절실하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구수한 해장국을 먹으면서 하는 다짐들입니다.
고맙게도 뒤집힌 속이 평정되네요. ㅎ
도산서원
이튿날 첫 여행지는 조선최고의 사립학교, ’도산서원(陶山書院, 사적 170호)‘입니다.
도산서원을 빼놓고 안동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과거 1,000원짜리 지폐에 등장했던 곳인데요, 잘 정비된 흙길 따라 걷습니다.
울창한 소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안동호가 가뭄으로 가엾어 보입니다.
퇴계(退溪)와 도산서원(陶山書院) -.
간결하고 검소하게 지어져 조선선비의 품격을 반영했다는 평입니다.
퇴계가 살아있을 때 서당으로 쓰던 곳에 설립된 서원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죠.
선조(宣祖)로부터 ’한석봉‘이 쓴 ‘도산(陶山)’이란 편액(扁額)을 받았는데, 선현배향(先賢配享)과 많은 학자배출로 고종 5년(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도 훼철(毁撤)되지 않았다죠.
정문인 진도문(進道門)을 통해 들어서니, 다른 서원과는 비교할 수 정도의 엄청난 크기와 위용에 주눅 듭니다.
상덕사(尙德祠, 보물 211호), 전교당(典敎堂, 보물 210호), 전사청(典祠廳), 한존재(閑存齋), 동재(東齋), 서재(西齋), 광명실(光明室), 장판각(藏板閣), 도산서당(陶山書堂), 역락서재(亦樂書齋), 농운정사(隴雲精舍) 등이 있습니다.
어제 본 병산서원이 친근한 여성적인 느낌이라면, 도산서원은 근엄하고 보수적인 남성적 느낌이라네요.
강변에 위치한 ‘시사단(試士壇)’은 1792년 정조가 흠모하던 퇴계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도산별과(陶山別科)’란 특별과거를 치렀던 곳입니다.
7,000여명이 응시했으나 급제자(及第者)는 고작 11명이었다는군요.
그걸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라는데, 댐건설로 지금은 저렇듯 섬이 되어버렸습니다.
매년 봄가을에 향사(享祀)를 지낸다죠.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물이 가뭄에 시달립니다.
어서 빨리 더욱 푸르고 도도하게 흘렀으면 좋겠습니다.
안동댐
낙동강 홍수조절과 농공업생활용수로 1971년에 착공하여 1976년에 준공된 ‘안동댐’입니다.
길이 612m에 높이 83m의 댐건설로 수려한 경관의 안동호(安東湖)가 340km 상류지점에 생겼습니다.
호수상류에 도산서원이 있습니다.
태백에서 발원하여 도도하게 쉼 없이 흐르던 강물이 안동에서 거대한 호수가 되어 머무른 것입니다.
가뭄 탓일까요, 호수가 죽은 듯이 고요하게 침묵하고 있습니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어 부드럽지만 두려웠다는데, 지금은 메말랐습니다.
영화세트장도 졸고 있습니다.
열리면 흐르는 게 물의 속성입니다.
어서 빨리 꽉 채워져 거울처럼 맑게 빛났으면 좋겠습니다.
구미, 대구, 창원, 울산, 부산 등지에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영남의 생명줄입니다.
그나저나 가뭄이 빨리 해소되어야 하는데...
월영교
사무치는 사랑을 담은 아름다운 ‘월영교(月映橋)’입니다.
달 ‘월(月)’자에 그림자 ‘영(影)'자가 아닌, 비칠 ’영(映)'자를 쓰는 것도 특이합니다.
안동댐 내 월영공원과 안동민속촌을 연결하는 다리로 2001년 착공하여 2003년 개통했답니다.
길이 387m, 너비 3.6m로 당시 국내최장 목조다리였다고 하네요.
낭만적인 '문 보트(Moon boat)'를 타고 싶지만, 전임 대통령이 생각나 포기했습니다. ㅎ
'달그림자 다리'를 건너다가 다리 한가운데에 있는 월영정(月映亭)에서 한 박자 쉽니다.
임진왜란 6년 전 31살의 남편(‘이응태’)을 잃은 ‘원이’엄마는 자신의 머리털로 삼은 미투리를 구구절절한 사연이 담긴 편지와 함께 남편의 무덤에 넣었는데, 400여년이 훨씬 지난 뒤 발견되었습니다.
한때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원이’엄마의 친필편지 사부곡(思夫曲)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남들도 우리처럼 사랑을 할까요?’란 편지 속 문맥이 생각나네요.
그래서인지 쪼글쪼글한 할망구가 되었건만, 옆에 없으니 보고 싶네요. ㅎ
한 켤레의 미투리 모양으로 환생한 다리를 사부작사부작 건넙니다.
팔각정, 곡사분수, 조명시설과 인근 호반나들이 길의 가로등이 어우러진 야경이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이 찾는답니다.
오찬
‘헛제사밥’과 ‘찜닭’집들이 줄줄이 붙어있는 월영교 주변입니다.
하지만 고소함과 부드러움이 일품인 ‘간 고등어정식’을 먹기 위해 안동역 앞 ‘일직식당’을 찾아갑니다.
경북 내륙지역은 해산물을 신선한 상태로 운반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발달한 음식이 생선을 소금에 절여 먹는 자반입니다.
고등어 집산지인 동해안 강구에서 새벽에 우마차에 실린 고등어는 날이 어두워져서야 황장재를 넘어 하룻밤을 묵고는 다시 이튿날 종일 걸어 지금의 안동댐 근처 임동장터에 도착하여 각처로 퍼져나갔습니다.
상하기 직전 나오는 생선 효소가 맛을 좋게 해주는데, 꼬박 이틀간을 소달구지에 싣고 오다보면 얼추 상하기 직전이었다죠.
최고 숙성된 상태로 안동에 도착한 고등어는 배를 따서 다듬는 아지매들과 뱃속에 염장(?)지르는 간잽이들이 달라붙어 솜씨를 발휘합니다.
어쩜 소금보다도 더 많은 땀에 절여졌을지도 모릅니다.
조림과 구이 2가지를 시켰습니다.
어려웠던 옛날이 생각나서인지, 고등어가 더욱 더 꿀맛입니다.
안동역 광장엔 가수 ‘진성’이 부른 ‘안동역에서’란 노래비가 있습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ㅎ
작별
이젠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하룻밤 묵은 충효회관과도 작별입니다.
건강한 모습으로의 재회를 약속합니다.
인생도 강물처럼 지나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에서 보낸 1박 2일을 접습니다.
빼어난 산천에 스며든 아름다운 풍속, 그리고 지붕 없는 박물관 안동이 좋아졌습니다.
얼마쯤 함 살아봤으면 좋겠네요. ㅎ
육신은 고단하지만, 가슴은 충만한 여정이었습니다.
건강하게 다시 만나용~♡
에필로그
견문(見聞)에 목말랐던 어릴 적에는 ’보는 것만큼 알 수 있다’를 되뇌며 여행을 꿈꿨습니다.
늙으니 이젠 여행 모토(Motto)가 ’아는 만큼 보인다‘로 바뀌었습니다.
늙었어도 여행에 대한 갈증은 변함없는데요, 이젠 여행기회를 엿보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여행을 고독이라 했는데, 아니러니(Irony) 하게도 여행이 고독을 해결해줍니다.
여행에 이유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고 일이라죠.
애타게 기다리며 스트레스까지 받을 필요는 없지만, 가급적 느닷없이 & 주저없이 떠납니다.
다음으로 미루다간 나중에 정말 후회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남깁니다.
‘가볼 사람에겐 꿈을, 가본 사람에겐 추억을~’
보는 사람 없어도 여행후기를 쓰는 이유입니다. ㅎ
일욜(6. 12) 오후에 갯바위가
첫댓글 여행하신 봉정사, 하회마을, 병산서원 도산서원, 월영루, 영호루, 안동댐 등은
필수 코스이며 안동간고등어, 안동소주, 최근에 부안 출신 진성의 히트쏭인
"안동역에서: 등이 유명하지요. 엘리자베스 영국여왕이 하회마을을 방문하셔
더욱 유명세를 타고, 미스터트롯 영탁이 영탁막걸리로도 언론을 탓섰지요.
거듭 감사드립니다. 충효회관은 현재 50사단 123연대에서 운영할 겁니다.
제가 참모시 123연대장은 한민구 대령(육사31기)로 육참총장과 국방장관 엮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