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구] 낙원악기상가 지하 시장에 가보셨나요?
지은지 50년 넘은 낙원빌딩 악기상가,
극장에 시장과 아파트까지 있는 복합 건물
아름다운 음악 소리와 베품의 향기까지 풍기는 곳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삼일대로에 낙원빌딩이 있다. 도로 주변이 아닌 도로 바로 위에 건물이 서 있다.
탑골공원 네거리 즈음에서 인사동 방향을 바라보면 낙원빌딩 아래로 차량이 통행하는 것을 볼 수있다.
낙원빌딩은 낙원악기상가가 있는 그 건물을 말한다.
(2021. 12. 01) 종로2가에서 바라본 낙원빌딩. 건물 아래로 삼일대로가 지난다.
가운데 멀리 보이는 건물은 낙원아파트다. 낙원빌딩과 한 건물이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낙원빌딩은 여러 기능의 공간이 한데 모인 복합건물이다. 외벽에 쓰인 간판만 보더라도 악기 상가와 극장은 물론 시장과
아파트가 한 건물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외형만 보면 상가 건물과 아파트 건물이 다른 건물로 보이지만 구조상 하나의
건물이다.
도로 위에 건축된 낙원빌딩은 여느 건물과는 다른 점들이 있다. 필로티 구조의 건물 1층에 주차장이 있는 곳은 많지만
낙원빌딩은 주차장뿐 아니라 신호등과 건널목까지 있다. 건물 1층이 도로인 셈이다.
(2021. 12. 01) 낙원빌딩. 건물 아래로 삼일대로가 지난다. 낙원빌딩은 도로 위에 건축된 건물이다.
(2021. 12. 01) 낙원빌딩 1층으로는 삼일대로가 지나고 중간에 신호등과 건널목도 있다.
따라서 이 건물의 지분을 소유한 법인이나 개인들은 토지세가 아닌 도로 점용료를 낸다.
참고로 하천을 복개해 들어선 서소문아파트는 토지세 대신 하천 점용료를 낸다. 낙원빌딩은 지은 지 50년이 넘었다.
건물 입구 외벽에는 1967년 10월이라 쓰인 머릿돌과 ‘낙원삘딍’이라 쓰인 명판이 걸렸다.
낙원빌딩은 서울시에서 지정한 ‘서울미래유산’이다.
(2021. 12. 01) 낙원빌딩은 서울시에서 지정한 미래유산이다.
(2021. 12. 01) 낙원빌딩은 지은지 50년 넘은 건물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악기상가
낙원빌딩 2층과 3층은 악기 상가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거의 모든 악기를 취급하고
수리나 대여 등 악기 관련한 다양한 업종이 모여 있다. 낙원빌딩에 원래부터 악기상이 모인 것은 아니었다.
1950년대부터 인근 익선동, 현재의 ‘국악로’에 국악기 관련 점포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는 탑골공원
인근에 악기 거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탑골공원을 둘러싼 파고다 아케이드에도 악기상들이 많았다.
하지만 1970년대 말부터 낙원빌딩 인근 무허가 건축물들이 철거되고 1980년대 초에는 파고다 아케이드까지 철거되었다.
그 여파로 악기상들이 낙원빌딩으로 모이기 시작했다고.
(2021. 12. 01) 낙원악기상가 2층의 경은 어쿠스틱.
낙원상가는 시대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1980년대에는 밤무대 뮤지션들의 집합소였다. 뮤지션들이 팀을 꾸리고 일터를
찾는 곳이었다. 1990년대에는 교회들의 멀티미디어화에 기여했다. 한국교회가 방송 시설과 밴드를 꾸리는 게 유행이었던
시절이었다. 2000년대부터는 대학교 실용음악과의 인기가 높아진 영향에 힘입었다. 물론 업종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겠지만.
낙원빌딩 2층에는 기타와 우쿨렐레처럼 악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악기부터 바이올린과 첼로 같은 현악기,
색소폰 같은 관악기 가게가 모여 있다. 3층에는 드럼처럼 부피가 큰 악기나 전자 악기, 그리고 음향기기를 파는 곳이 많다.
(2021. 12. 01) 낙원악기상가 2층의 아가페 뮤직. 바이올린과 첼로 등 각종 현악기를 취급한다.
(2021. 12. 01) 낙원악기상가 2층의 천일악기. 색소폰 등 각종 관악기를 취급한다.
“시니어들이 반려 악기로 색소폰을 많이 시작하세요. 인생을 관조하는 듯한 음색이 매력적인 악기입니다.
입문용부터 전문가용까지 갖추고 있고요, 색소폰뿐 아니라 다른 관악기도 취급하고 있습니다.”
천일악기 김용준 대표의 말이다. 그의 가게에 제주도에서 올라온 한 손님이 고가의 악기를 구경하고 있었다.
“악기는 가격이 천차만별이에요. 그만큼 소리도 다르고요. 아무튼, 모두 제 짝을 찾아가더라고요.”
김대표는 아버지를 이어 2대째 운영 중이라고 한다.
낙원악기상가에는 천일악기처럼 수십 년 넘은 악기상이 많다.
‘경은 어쿠스틱’은 1987년부터 영업을 해 약 35년이 되었고, 서울시에서 ‘오래가게’로 지정했다.
(2021. 12. 01) 경은 어쿠스틱은 1987년부터 영업했다. 서울시에서 지정한 오래가게이다.
극장과 아파트
종로는 한때 영화의 성지였다. 지금처럼 복합개봉관이 대중화되기 전에는 서울 시민이 영화를 보려면 종로로 나와야 했다.
종로3가에는 단성사와 피카디리, 그리고 서울극장이 있었고, 종로2가 낙원상가 4층에는 허리우드극장이 있었다.
인근 충무로나 광화문으로 범위를 넓히면 더 많은 영화관이 있었다.
복합상영관으로 관객들이 쏠린 후 종로의 다른 영화관들처럼 허리우드극장도 쇠퇴의 길을 걸었다. 이후 한동안은 옛날
영화를 상영하는 ‘허리우드 클래식’과 다양성 영화를 개봉하는 ‘서울아트시네마’로 활용되었다. 현재 서울아트시네마는
다른 곳으로 이전했고 시니어 세대를 위한 영화관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2021. 12. 01) 옛 허리우드극장. 지금은 실버 상영관으로 운영된다.
(2021. 12. 01) 낙원빌딩 6층부터 15층까지는 아파트다.
전시 공간과 합주실 등이 자리한 4층에서 야외로 나가면 극장이 있다. 매표소에 ‘실버영화관’과 ‘낭만극장’이라고 쓰였다.
상영관이 두 곳이라 그렇게 구분한 듯했다. 12월 1일 현재 최은희 김진규 주연의 〈성춘향〉과 최은희 신성일 주연의
〈백사부인〉이 상영 중이었다. 노인 몇몇이 영화 상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극장 입구를 등지고 위를 쳐다보면 ‘낙원아파트’가 보인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다른 건물이 아니라 낙원빌딩과 한 건물이다. 6층부터 15층까지 아파트 공간이고, 149세대가 산다고 한다. 다만 악기상가나 극장과는 다른 엘리베이터를 쓰고 있다.
아파트를 취재하고 싶었지만 외부 노출을 부담스러워하는 거주자들이 있다고 해서 다음 기회로 미뤘다. 건축가 황두진이 쓴 《무지개떡 건축》에 낙원아파트가 친절히 나와 있으니 혹시 궁금하다면 참고하기를.
그 지하에 오랜 시장이 있었다
아는 사람만 아는 사실이 하나 있다. 낙원빌딩 지하에 시장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역사가 오래된 시장이다.
낙원빌딩이 들어선 자리가 원래는 ‘낙원시장’이 있던 곳이었다. 삼일대로를 뚫고 낙원빌딩을 세우느라 도로가
예정된 곳에 있었던 주택들과 시장을 철거했다.
낙원동 일대에 '낙원떡집'이라 이름 붙인 떡집들이 많았었는데 옛 낙원시장에 그 뿌리를 둔 것이다.
시장을 철거하고 건물이 들어선 후 낙원시장 상인들은 낙원빌딩 지하의 시장으로 들어와 지금껏 장사하고 있다.
(2021. 12. 01) 낙원빌딩 지하에 시장이 있다.
(2021. 12. 01) 낙원시장의 한 그릇가게.
지하로 들어서면 어둡긴 하지만 분명 시장이다. 채소가게는 물론 생선가게와 정육점도 있다. 이불가게와 옷가게
그리고 그릇가게까지 있다. 구색은 거의 갖춘 것 같은데 도심 한복판, 그것도 지하에 있는 시장에 어떤 손님들이 올까.
인사동, 낙원동, 익선동 등 인근의 식당들과 주민들이 이용한다고 한다. 물론 더 멀리서 오는 손님들도 있다고.
그릇가게 주인도, 채소가게 주인도, 정육점 주인도 그렇게 말했다. 모두 이곳에서 장사한 지 오래돼 보였다.
대지상회 사장은 자기 어머니가 이 시장에서 가장 오래 장사한 분이라고 소개했다.
(2021. 12. 01) 80세 박경희 할머니. 57년간 낙원시장에서 장사했다.
“57년 되었지요. 이 건물 들어서기 전부터, 그러니까 저기 땅 위에 있었던 낙원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했으니까요.
처음에는 남편과 채소를 팔았었는데 지금은 건어물과 고기까지 취급하고 있지요.”
80세 박경희 할머니의 말이다. 그녀의 남편은 3년 전에 사망했고, 현재는 아들 부부와 함께 대지상회를 운영하고 있다.
지하의 시장에는 식당도 여럿 있다. 영화와 방송에 나와서 유명해진 국숫집과 착한 식당으로 소문난 곳도 있다.
한 국숫집에서 잔치국수를 먹었다. 주인 부부와 손님들은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기도 했다. 오랜 단골이 많다고 한다.
국수가 푸짐한 데다 맛도 좋은데 가격까지 저렴했다.
한편 건물 관계자에 따르면 낙원악기상가는 문화소외계층 아이들의 음악교육 지원을 위해 악기를 기부하고 있다.
‘사회복지법인 함께 걷는 아이들’과 ‘국립맹학교’에 지금까지 약 2억원 상당의 악기를 기부했다고.
낙원빌딩은 분명 오래된 건물이지만 낡은 느낌이 나지 않았다. 관리를 잘하고 있는 건물인 듯했다.
또한,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릴 뿐 아니라 베품의 향기까지 풍기는 곳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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