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을 잃을 때 늙는다” 퇴출론 맞서 英詩로 응수했다 (107)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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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이 100회를 넘어 이제 최종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JP의 인생 대부분을 차지했던 혁명과 정치, 권력 쟁투를 기록한 뜨거운 장면들에선 직접적으로 다루지 못했던, 그의 인생의 또 다른 면모를 몇 장면 소개합니다. “혁명가와 예술가의 기질은 통한다”는 본인의 자부처럼 JP는 ‘근대화 혁명가’였지만, 시서화에 조예가 깊은 ‘전통적 지식인’이기도 했습니다.
이번에는 그의 소년 시절부터의 독서 편력, 정치적 격랑을 시적 감수성으로 넘었던 풍류, 그리고 그의 청춘기 아내를 향한 연시(戀詩)의 낭만을 술회합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90세가 넘어도 젊은 시절과 마찬가지로 독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청구동 자택 2층 서재는 일어·영어·한국어로 된 역사·위인전, 문학 책 등이 가득 차 있다.
그는 “독서할 시간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라며 “매일 책을 읽지 않으면 그날 아무것도 안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전 총리가 1971년 쓴 자신의 『JP칼럼』 초판본을 들고 읽고 있다. 중앙포토
나는 어렸을 적 마을과 학교에서 개구쟁이였지만 책벌레로도 소문났다. 감명 깊은 책의 문장이나 시구를 줄줄 외우고 다닐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부여공립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 4~5학년 때부터 플루타르크 영웅전, 나폴레옹과 같은 위인들의 전기에 심취했다. 동서양 고전을 탐독하면서 거미줄같이 얽힌 운명적 조건과 활화산 같은 의지의 행동이 교직(交織)된 인간의 성취를 발견하곤 했다.
나의 독서벽(癖)은 난독(亂讀)에 속하지만 역사를 좋아했고, 특히 인물의 전기(傳記)를 좋아했다. 역사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인물을 이해하는 게 역사를 잘 해명하는 첩경이라고 생각했다.
김종필(JP) 전 총리의 1940년 공주중학교 시절의 모습. 가장 책을 많이 읽은 시기였다.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
세인트헬레나 유배지에서 5년 반의 영어(囹圄) 생활 끝에 외로이 분사(憤死)한 불세출의 영웅 나폴레옹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10대 감상소년인 나를 사로잡았다. “나폴레옹은 이미 그 기능을 잃은 혀끝을 움직여 ‘프랑스, 군의 선두에서, 사랑하는 조세핀’이라고 절규했다”는 기록을 읽으면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위인·영웅들의 현란한 드라마를 더듬으며 감격과 선망(羨望)으로 잠 못 이룬 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