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문을 조이고 우주를 마시자"
명상음악가 김도향
(사진/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제대로 정신 차리고 사는 것이 수련이라고 정의했다.)
도인처럼 살아가는 왕년의 광고음악 제작자…<수험생 명상음악> 세계수출 야심
그는 하루에 500번씩 항문을 조인다. 항문은 괄약근(오므리고 벌리는 것으로 여닫음을 조절하는 고리 모양의 근육)이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조여지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가볍게 항문을 조일 때마다 쓸데없는 잡생각들이 똥 잘려나가듯 툭툭 떨려난다. 항문을 조이는 건 영혼의 숙변을 없애는 것이다.
“항문을 조이는 게 생각보다 참 중요한 일입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현대인들은 각종 화병으로 시달리는데 그렇게 화가 나는 순간 항문을 조이는 걸 습관으로 만들면 스트레스가 다 물러섭니다. 사람이 죽으면 항문이 열리는데 이게 항문을 통해 혼이 날아가기 때문이죠. 항문 조이기를 하면 혼백, 혼줄이 튼튼해져서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해집니다. 인도 요가에 항문 조이기에 대해서만 쓴 백과사전만한 책이 있을 정도니까요.”
“난 참 뻔뻔하게 살았군요”
명상음악가 김도향(53)씨는 누구나 손쉽게 할 수 있는 항문 조이기를 범국민운동이라도 벌여 권하고 싶다고 했다. 그가 쓴 <항문을 조입시다>(혜윰 펴냄)는 생활 속에서 이렇게 ‘마음을 다스리며 기분좋게 사는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이 글들은 또한 가수로 출발해 70년대 잘 나가는 광고음악(시엠송) 제작자로 이름을 날리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허연 수염을 날리는 수련자로 변신해 살아온 뒷얘기들을 담고 있다.
“김도향하면 사람들은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넉살좋게 불러젖히던 맷집좋은 사내를 떠올리죠. 또 어떤 이들은 ‘맛동산 먹고 즐거운 파티’ ‘12시에 만나요 브라보콘’ 같은 광고음악 제작자 김도향만 알죠. 그땐 참 뻔뻔하게 잘 살았어요. 지금 그무렵 사진을 보면 욕심이 가득 찬 얼굴 때문에 부끄러워요. 모든 건 마음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제가 81년에 수련에 들어 마음공부를 하게 된 것, 그건 필연이었죠. 저는 한번도 변하지 않고 제 모습 그대로 흘러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연예인으로 특히 많이 노출된 사람이었기 때문에 들쭉날쭉 변신의 폭이 큰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그건 다 마음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했다. 오랜 세월, 광고음악을 만드느라 날밤을 밥먹듯 새우며 너덜너덜해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게 된 것, 살아 있음의 기쁨을 느끼게 된 것 등 마음공부를 시작한 뒤 누린 복을 그는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제가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저보다 더 나이드신 분들이 일어나 자리를 양보합니다. 허연 수염 때문이지요. 도대체 수염을 길렀을 때 저와 안 길렀을 때 저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거 다 껍데기만 보기 때문입니다. 옛 어른들이 흔히 ‘정신차려!’ 한마디를 잘하셨는데 그게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착각이나 환상에서 벗어나 제대로 보고 생각하는 것, 이게 누구나 할 수 있는 마음공부의 첫 걸음이죠. 정신들 차리십시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제대로 정신 차리고 사는 것이 수련이라고 정의했다. 따로 도장이니 수련원이니 만들어놓고 시간내서 공부하는 건 헛 거라는 얘기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바로 도장이고, 현실이 스승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처럼 어지러운 세상에선 일어나는 일들이 다 선생이라고 했다. 부딪치는 일마다 다 배울 거리가 있다. 세상이란 도장이 가장 힘들고 거친 수련장이니 세파에서 떨어져나가 지내는 스님들은 쉽게 과외공부 하는 셈이 아니냐며 그는 ‘허허’ 웃었다. “요즘 사람들은 기(氣)를 무슨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 것 같아요. 단전호흡이니 기공이니 해서 상당히 관심이 높고 갈래도 많습니다. 기의 세계는 워낙 크고 넓어서 이렇게 유행처럼 공부하고 스승의 제대로 된 가르침 없이 수련자들만 늘어나는 건 참 위험한 일입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으로 너무 방만해져버릴 가능성이 많아요. 어떻게든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찾고 있는 건 인간의 뇌파를 고요하게 가라앉혀 줄 음악이다. 8년 전 만들었던 <태교 명상음악>이 그중 하나다. 새 생명을 만드는 부모가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고 기쁨에 젖어 있으면 잉태 당시 끌려오는 영혼도 그런 상태로 흘러온다는 것이 김씨의 생각이다.
그는 지난 8월 <태교 명상음악>을 디딤돌로 삼아 공부 잘하게 만들어주는 음악을 완성했다. 어차피 헤드폰 끼고 댄스음악 들으며 공부하는 신세대들을 위해 아예 과목별로 점수 올리는 <수험생 명상음악>을 작곡한 것이다.
“과목별로 공부 잘하게 만들어주는 음악이라고 제목을 단 건 청소년들로 하여금 제 음악을 듣도록 만들기 위한 발림이지만 사실 일리가 있는 겁니다. 말하자면 경락별로 그 기능과 과목을 맞춘 거지요. 우선 간은 짜증과 스트레스의 주범인데 이걸 다스리면 마음이 담담해져 국어를 잘합니다. 신장이 좋으면 끈기와 의지가 든든해져 수학을 잘하고, 위는 머리를 맑게 해 과학공부에 도움을 줍니다. 흔히 쓸개라 부르는 담은 담력과 기운을 조절해 영어 등 외국어를 공부할 때 나타나는 두려운 마음을 없애줍니다. 또 비장은 사고를 조절하고 생각을 깊이 하도록 만들어 논술이나 창의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줍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어떻게 공부를 하느냐고 걱정들 하시지만 사실 음악이 다른 잡생각들을 막아주는 병풍 구실을 한다는 걸 모르고 하는 얘기죠. 아이들에게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좋은 공기 불어넣어 주는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명상음악이 과목별 점수를 올려준다?
그는 5장 한묶음으로 된 이 명상음악을 음악치료가 크게 발달하고 세분화돼 있는 일본, 미국, 유럽에 수출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임상실험을 정밀하게 해서 그 결과와 함께 명상음악의 이론을 쓴 해설서를 붙이고 디자인을 잘하면 좋은 문화상품이 될 것이라고 그는 자신했다.
“일종의 벤처산업인데 성공할 것 같은 느낌이 와요. 이걸로 돈 벌면 제가 꼭 할 일이 있습니다. 나랏님은 절대 못하고 민간인이 나서야 할 일입니다. 연변으로 목숨걸고 건너오는 북한 사람들을 정착시키는 사업입니다. 중국 정부로부터 농지 천만평을 50년 임대해서 땅 부쳐먹고 살 수 있도록 자립마을을 세워주는 겁니다. 그리고 남는 돈으로는 학생들이 제 뒤를 이어 인류를 위해 좋은 명상음악을 만들 수 있는 음악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선친이 “팔도강산을 너의 집처럼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거라”는 뜻에서 지어주셨다는 이름 도향(道鄕)처럼, 그는 도(道)의 고향을 찾아 떠도는 타고난 수련자로 오늘도 세상을 도장 삼아 명상에 든다.
사진 박승화 기자
한겨레21 1998년 10월 22일 제229호
01. 은퇴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