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연재
투이호아에서 온 편지(2)
허 병장이 처음 검문소에 왔을 때에, 미군 헌병은 일등국민이라는 자부심으로 허 병장을 일단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우선 몸집이 크니까 내려다보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눈빛이나 태도가 그러했다. 기분이 상그러웠지만 악수를 하고 통성명을 하고 손을 놓으면서, 사실은 그 미군의 큰 손이 꽤 아플 정도로 힘주어 쥐었다 놓았다.
몸집이 왜소한 월남 경찰은 자기를 깐이라고 소개했다. 잔망스러운 몸짓으로 허 병장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잡고는 허리를 굽실거리며 미소로 맞이하여 주었다. 그는 한국 헌병을 따이한 MP라고 불렀고, 미군 헌병은 그냥 MP라고 불렀다. 한국 헌병도 미군 헌병은 MP 또는 GI라고 불렀고, 깐은 깐상이라고 불렀다.
마침 초소에 들렀던 변순태 하사가 깐상을 껴안아 흔들며,
“허 병장. 내 처남 깐이야. 잘 봐 줘.”
이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출입자 기록 난에 시간과 자기 이름 그리고 사인을 하고 뒤로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깐상에게 여동생이라도 있는가 보다. 그런데 변 하사는 왼손으로 글씨를 썼다. 깐상이, 그가 왼손으로 사인하는 모습을 흉내 내며 웃었다. 그러고 보니 파견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에도 왼손으로 먹은 게 생각났다. 그는 파견대장 황 상사의 바로 밑에 있으면서 여섯 명의 헌병과 운전병 및 취사 요원 등 여덟 명의 사병을 통솔하는 하사관이다.
검문소에서 3개국의 첫 인사 장면은 이랬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허 동준입니다.”
허 병장은 두 사람에게 이렇게 한국말로 말하며 악수를 했다. 두 사람은 대답이 이러했다.
미군; 자기 가슴을 왼쪽 엄지로 가리키며 “me... Smith….”
월남 경찰; “또이, 깐.”
허 병장은 스미스에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첫 대면인데 적어도 ...glad to meet you 이렇게라도 예의를 앞세우고 인사를 나누는 것이 상식일 텐데…. 기분 나쁘다.
그래도 허 병장은 검문소 근무가 참 좋았다. 시원스러운 들판을 내다보며 널찍한 초소 안에 앉아서 미군 헌병 월남 경찰과 3개국어를 섞어서 대화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특히 허 병장의 상당한 영어 회화 능력은 꽤나 유용했다. 스미스를 비롯해서 교대로 근무하는 미군 헌병들은 처음과는 달리 허 병장을 은근히 좋아하는 눈초리로 대하게 되었다.
영어도 곧잘 하고 완력도 자기들보다 못지않아선지, 싸진 허(sergeant Hur)로 통하는 허 병장은 투이호아 합동 검문소에서 인기가 좋았다. 덕분에 다른 한국 헌병들도 미군들이 좋아하게 되었다. 허 병장이 팔씨름으로 대부분의 미군 헌병들을 거의 제압하는 바람에, 한국 헌병뿐 아니라 가끔 들르는 완전 군장의 맹호나 백마부대 군인들도 미군들의 눈에는 거의 헤라클레스 정도로 보이는가 보았다.
M16을 들고 작전지에서 막 철수하는 맹호 용사에게 사인을 받는 미군도 있었다. 미군은 맨날 베트콩에게 얻어터지기만 하는데, 한국군은 베트콩과 싸우기만 하면 개가를 올리고 개선하는 모습이 참으로 멋지다는 것이었다. 허 병장의 팔씨름 탓만이 아니다. 한국 해병대와 맹호 백마가 그간 치밀한 작전으로, 베트콩들이 한국군에게는 덤벼들지 말고 피하라는 지령문이 있었다는 소문 등으로, 한국군은 미군들의 우상 같이 된 것이었다<계속>
소설부문 당선자 황덕중님과 축하하는 강원수필문학회장 지소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