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복은 대성인님의 가르침을 굳게 믿고 어본존의 공덕력을 절대라고 확신하는 것과 용기입니다. 착실하고 진지하게 상대편의 행복을 기원하고 창제를 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가 있습니다. 이 달에는 두 가지의 경우,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해봅시다.
1. 아직 불법에 대하여 잘 모르는데….
어서에는 수력연설(隨力演說), 수력홍통(隨力弘通)이라고 설해져 있습니다. 수력(隨力)이란 ‘힘에 따라’라는 뜻입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말을 하고 포교에 도전해 가면 됩니다.
신심을 시작해 근행창제를 하고 불도수행을 하면서 느낀 공덕과 기쁨,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솔직하게 친구에게 말해 가는 것도 전부 포교입니다.
예를 들어 질문과 반론에 답변할 수 없다고 해도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나중에 선배에게 물어보거나 직접 그 답변 내용을 찾아보고 말하면 됩니다.
행복은 누군가가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위해’ 신심을 하고 포교·홍교에 힘써 가는 것이 그대로 대성인의 유명(遺命)인 광선유포를 위함이며 말대까지도 감싸 갈 복덕의 원천이 됩니다. 자기답고 진지하게 포교하는 것이 자신의 행복한 경애를 열어 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2. 절복할 용기가 좀처럼 생기지 않는데….
무슨 일이라도 기원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든 저도 홍교를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홍교할 용기를 갖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창제하는 것입니다.
당신을 홍교해 준 친구도 분명 용기를 내서 대화를 청했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런 친구의 용기와 진심에 감동하여 고민 해결과 인간적인 향상, 꿈의 실현 더 나아가 절대 행복을 목표로 신심의 첫발을 내딛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한 발 앞으로 내딛는, 용기 있는 마음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아무리 목표가 훌륭하더라도 그 실현을 위해 전진하는 용기가 없으면 현실적으로 아무런 결실을 얻지 못합니다.
홍교는 가장 자비로운 행동인 동시에 용기 있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자타 모두의 행복을 바라는 최선의 행동입니다.
자비(慈悲)라는 것은 좀처럼 가지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해도 감정에 치우치거나 귀찮은 마음이 생겨, 필요하지만 도저히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기는 가질 수 있습니다. 자비라 해도 구체적으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또 『교행증어서(敎行證御書)』에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들은 겁쟁이로서는 할 수 없느니라.」(신편어서 p.1109)고 말씀하셨습니다.
자, 홍교에 도전하는 용기가 솟아날 수 있도록 본존님께 철저히 기원합시다. 이렇게 기원하면 점점 용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마침내 절대적인 공덕을 손으로 잡을 수 있으니까요.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