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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특별히 창세기 1장 24절부터 26절까지의 말씀을 주제로 하여 아주 중요한 메시지에 대한
교제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누가복음에 대해서 깊은 교제의 말씀을 나누었는데요.
누가복음에 대한 말씀은 바로 성육신하신 사람으로 오신 구주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진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누누이 말씀드렸습니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곧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성육신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이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성육신을 기록한 누가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람을 통하여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것을 가져오기 위해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성육신 하셨다 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1장 24절부터 26절까지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교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24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이 누가복음에는 큰 맥락에서 보면 네가지 주제에 대해서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가장 먼저 여기에 주제의 근거가 되는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바로 사람으로 오신 구주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말한다면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이신 바로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우리가 이렇게 계시로
암시하고 있다는 말씀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사람으로 오신 구주로서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시다.
곧 그분 안에 사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에 대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는 바로 하나님을 담고 있다는 겁니다.
그분의 인성 안에 사시는 하나님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그분 안에 사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바로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 사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에 대한 말씀을 이렇게 계시로 나타내 줌으로 말미암아 그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신 사람으로 오신 구주를 우리가 영접하여 소유하게 되면 그분과 함께 하나 되어 누리는 삶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희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희년의 누리는 삶을 가지고 오기 위해서는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승천에 대한 영적 의미를 알 때 우리는 희년의 삶을 누릴 수가 있고 이 희년의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바로 사람으로오신 구주 안에서 사시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이신 구주를 알 때 우리가 이러한 희년에 대한 삶을 살 수
있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누누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렇게 중요한 말씀을 통해서 이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성육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것이 무엇이며 그리고 하나님으로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삶을 우리가 자세하게 교제를 통해서
알아 보려고 합니다.
이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오심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아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께 먼저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창세기 1장 24, 25, 26 특별히 26절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라는 이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대로 우리가 만들어짐을 통하여 바로
그것을 하나로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이 사람이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도록 곧 사람으로 오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하나 된 것처럼 바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계획하신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과 직접적으로 밀접하고 아주 중요하게 연관되어 있다 라는
사실을 먼저 우리가 인식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창세기 1장 26절에 기록된 대로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어진 사람의 창조에 있어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이루신 일처럼 사람이 하나님을 생명으로 받아 그 하나님의 모든
본질들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로 그분을 표현하기 위해서 인간은 하나님을 소유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성육신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 되도록
계획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누가복음의 전체적인 말씀과 더불어 창세기 1장 26절에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의 모양대로
지어진 그 인간이 참 모델이 무엇이냐 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을 사람 안에 온전히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하나님과 온전히 하나 되어서 나타내진 삶을 가지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사람으로 오신 구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누가복음을 통한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성육신을 통하여 바로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끌어 옴으로 말미암아
먼저는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성육신 되셔서 그 성육신 되신 사람의 형태의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바로 소유할
수 없는 그 하나님을 바로 성육신하신 바로 사람으로오신 구주 안으로 이끌어 와서 온전하신 하나님과 완전하신 하나님을
소유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하여 바로 인간이 이 생명나무 대신에 먹어서는 아니 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열매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손상되고 훼손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잃었던 그 인성을 완전히 다시 한 번 되찾고 온전히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그 사랑과 빛남과 의로움과 거룩함에 대한 하나님의 속성들을 인간의 심령 안에 담아 행동으로 나타나짐으로 말미암아 그 인간적인 아름다운 품성들인 하나님의 속성들인 그 인간적인 미덕들을 통하여 바로 사람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표현하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누가복음과 이 창세기 1장 26절 말씀을 연계하여서 이러한 신성한 성육신을 통하여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아는 일은 얼마나 깊고 얼마나 비밀한 말씀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차근차근 이 말씀을 통하여 이 성육신 하신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바로 이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을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 또 하나님 안에 계신 사람의 삶을 나타내신 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일이라는 것 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이유가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하셨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사람 안에 하나님이 계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 사람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가 되도록 계획되어진
것이 바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그것이 바로 창세기 1장 26절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하신 사람이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그리고
거룩함으로 나타나진 그런 하나님의 속성을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계획하신 것이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 안에 있는 전체적인 성경 말씀의 계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님과 하나 되도록 계획된 이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이 일은 영원 과거 안에서
세우셨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그분과 하나 되도록 계획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일의 성취를 위하여 사람으로
오신 구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음을 당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이루시고 모든 것을 성취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 영원 과거 안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도록 계획하신
것을 우리는 어렴풋이 창세기 1장 24, 25, 26절에 말씀을 통해서 어려풋이 암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26절 말씀이 무엇이죠?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의 의도였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에 만세 전에 영원 과거 안에서 그 영원 과거 안에 있는 계획에 기초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 자신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이 창세기 1장 26절과 27절 말씀인 것입니다.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이고 하나님의 모양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 창세기 1장 24절, 25절에 보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이 그 종류대로 만들어졌는데 사람만큼은 그 종류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6절의 말씀을 보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진 것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1:24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사람 외에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창조 안에 있는 항목들은 그 종류대로 창조되어졌지만 사람만큼은 사람의 종류대로
만들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들어졌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 형상과 모양을 먼저 아는 일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바로 속 부분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모양은 보여지는 외형적인 하나님의 형상인 바로 하나님의 속성이 만들어진 다음에 그 속 부분에 따라
나타나는 삶의 모습이 하나님의 모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되게 하신 것인 바로 속부분과 하나님의 모양대로인 겉부분에 따라
인간이 만들어짐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창조되어져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항목들과 달리 모든 항목들은 그 종류대로
창조되어졌지만 사람은 사람의 종류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그분의 모양대로 창조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가 되도록 계획되어진 것이 하나님의 영원 과거 안에서 바로 이 계획을
세우신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 사람으로 오신 구주를 성육신 하게 하셔서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형상인 내적인 존재와 하나님의 모양대로인 외적인 형태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이루시기
위한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성육신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한다 라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은 얼핏 우리가 그 이야기를 들으면 형상과 모양이 아주 비슷하게 보이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내용의 말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하나님의 형상은 속 부분인 속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형상이란 우리가 들여다볼 수 없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좀 더 특별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그 속에 대한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었다 라는 것은 좀 더 특별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속 부분을 따라 사람이 만들어졌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은 속 부분인 보이지 아니하는 부분이라면 모양은 겉 사람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바로 우리들의 눈에 볼 수 있는 몸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들어졌다 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인 보이지 아니하는 속 부분은
우리 눈으로는 알 수 없는 헤아려 들여다볼 수 없는 하나님과 같이 창조되어진 것이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속사람은 어느 정도 얼마만큼은 하나님과 같이 보이지 아니하는 부분으로 창조되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짐으로 말미암아 내적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외형적으로 보이는 부분인 겉 사람 또한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들을
통한 항목들은 그 종류대로 만들어졌지만 사람만큼은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들어짐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종류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의 종류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인
속 부분인 하나님의 내적 존재를 어느 정도 본 딴 상태에서 만들어졌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들여다볼 수가 없고 인식할 수가 없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부분인 하나님의 속 부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의 존재를 언급하고 있는데요.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보면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심을 말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그리고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도 그와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또한 히브리서 1장 3절에서도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심을 계시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체현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실제적인 하나님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바로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모든 내적인 형상을 구체적인 사실로 나타나게 하시고 표현하게 하신 것이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체현이시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이 사실적으로 실제적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내짐으로 말미암아 표현되어진 분이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는 실제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어느 정도 암시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체현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인 보이지 아니하는 속 부분인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암시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26절과 27절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들어졌다 라는 것을 통해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듭시다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이유는 바로 그분과 똑같은 표현된 자들을
세상에 나타내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사람들이 가졌다고 해서 하나님과 똑같아질 수는 없죠. 절대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모양대로 만들어진 자들은 하나님을 똑같이 표현할 수 있는 자들이 됨으로 말미암아 곧
하나님의 어떤 똑같은 복제물이라고 그럴까요?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자들은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본질을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바로 사람 안에 하나님이 계시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 되어 사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 자신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과 똑같은 자들로 만들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의 어떤 똑같은 복제품과 같은 것으로
만듦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표현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러한 계획을 가지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형상이라는 이 단어는 보이지 아니하는 부분이고 속 부분이며 하나님의 존재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이 형상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을 담는 자격을 내포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사람이 하나님을 담는 자격을 갖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과 똑같은 복제물이 될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을 그대로 복제물이 되어서 표현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그 어떠하심을 담을 수 있는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본질과 하나님의 존재 안에 있는 그러한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하신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들을 담을
수 있는 자격이나 그 능력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자격이나 능력을 갖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바로 에덴동산에 창세기 2장 9절 말씀이죠.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그리고 16절 17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가 아닌
생명나무의 실과를 바로 아담이 먹었더라면 하나님의 그 속성인 사랑과 빛과 의로우심과 거룩하신 하나님의 속성인
그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모두 소유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갖게 될 수가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인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속 부분인 하나님의 존재를 언급하는 하나님의 내적인 존재인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듦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제품이 되게 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신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속 부분인 하나님의 내적 존재를 닮은 자들로
조성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하나님을 안으로 취하여 담을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가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우리가 소유하여서 하나님을 온전히 나타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처럼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체현으로서 실제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사실로 나타내고 표현되게 하시는 분이 그리스도라면 인간을 만드신 이유가
이러한 하나님을 온전히 표현하게 하기 위한 복제품이 되게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그 위대하심을 하나님의 그 온전하심을
세상에 온 우주에 공개적으로 바로 선포하기 위한 그런 의도를 가지시고 인간을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을 안으로 취하여 담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하는 자가 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창세기 2장 9절과 17절에 나타난 바로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하는 일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도 있더라 2: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인간이 바로 이 첫 사람인 아담이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그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했을 때 바로 하나님을 자신의 안으로 취하여
담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되고 그 하나님을 안으로 취하여 담을 수 있는 능력을 더욱더 많이 가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에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열매를 먹지 않고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했더라면 그 아담이란 사람 안에 하나님을
담을 수가 있었다 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하나님의 복제품이 될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그분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어진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어진 사람이 아담인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이 첫 사람인 아담은
원래 하나님을 담는 그릇으로 창조되어졌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을 담는 그릇으로 지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그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하신 그 하나님의 속성인
하나님의 그 아름다운 최고의 그 품성들을 내 영으로 받아들이고 이 내 영으로 담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질 필요가 있었는데
그것은 스스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생명나무의 실과는 취하고 선과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 열매는 취하지 말라 라는 것은
하나님의 엄위하신 법이었고 계명이었고 이 아담에게 바로 하나님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는 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하여서 하나님을 담아야 되고 하나님을
담음으로 말미암아 그분을 표현하고 그분의 복제품이 됨으로 말미암아 이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구체적인 사실로 표현되어 지고 나타내지게 해야 되는데 이것에 대해서 실패하고 말았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24절, 25절, 26절, 27절을 통해서 세상에 있는 모든 창조 안에 있는 피조물들에 대한 항목들은 그 종류별로
종류대로 만들어졌지만 사람은 사람의 종류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내적 존재인 이 본질을 나타내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바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따라 똑같이 만들어 졌으나 하나님과 똑같은 자가 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표현하는 복제품이 되게 하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부분인 속 부분을
따라 어느 정도 하나님과 같이 닮은 자로 창조되어졌고 그리고 하나님의 표현을 위해서 하나님의 보이는 부분 인간으로
말하면 몸의 부분 외형적인 보이는 부분인 하나님의 외관을 또한 가지기 위해서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것은 하나님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한 복제품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고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들어진 것은 바로 하나님의 외관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어졌다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사람으로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신의 표현을 위한
하나님의 외관으로서 모양대로 인간을 지었고 그리고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제품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인간이 하나님의 어떤 보이는 부분인 외형적인 외관만 갖고 있고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부분인 속 부분인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사람은 외관만 있고 내적인 실제가 없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용물은 없고 겉으로만 마치 있는척 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하나님의 모양만 가진 자들의 삶에 나타나면 공허하고 가식적이고 거짓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외적 표현을 나타내고자 하는 실제적인 내적 존재의 실제가 형상이고 모양은 외형적인
부분으로서 보이는 부분으로서 형상의 표현을 위한 외관이 바로 모양이라는 것입니다.
모양은 형상을 표현하기 위한 형상의 외관이고 그리고 형상은 외적 표현의 내적인 실제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형상은 보이지 아니하는 부분입니다. 모양은 보이는 부분입니다.
형상의 외관 부분은 형상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지 형상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형상은 바로 하나님의 내적인 실제이고 존재로서 하나님의 복제가 되기 위해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라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러한 말씀을 통하여 빌립보서 2장 7절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그리스도께서 종의 형체를 가졌다 라는 것은
사람들의 모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사람의 외관의 모습을 지니셨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을 통하여 성육신 안에서 사람들의 외관을 지니셔서 사람들의 모양이 되시고 사람들의 형체를
지니심으로 말미암아 바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모양을 지니신 것이 아니라 이 빌립보서 2장 7절의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의
모양을 지니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양을 지니시기 위해서 성육신 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계시로 암시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위하여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형체 사람의 모양을 가지고 옴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양을 지닌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성육신 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되셨을 때 사람의 외관과 사람의 겉부분을 나타내는
사람의 표현을 지니신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주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냥 공허한 하나의 표현일 뿐입니다.
실제가 없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내용이 없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의 표현인 외관뿐만 아니라 인성의 실제인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내적 존재까지도 다 지니고
계심으로 말미암아 인성의 실제가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사람의 모양의 내용이었다 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의 실제와 인성의 표현인 외관 모두를 속 부분과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을 다 지니고 계신
분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모양을 먼저 지니시고 그리고 공생애를 통하여서 인생의 실제
아름다운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그분의 삶과 그분의 생활과 그분이 선포하시는 그런 말씀들을 통해서 모든
이 공생애 3년 반 동안에 어떤 그러한 시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내적 존재를 성육신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다 온전히 표현했던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표현할 수 있도록 그대로 나타내줌으로서 하나님을 구체적인 하나님으로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과 똑같이 되어야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과 똑같이 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똑같이 될 수 있는 것과 같은 버금가는 어떤 그러한 하나님과
똑같이 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하나님의 복제품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되어진 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그 복제품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그 모든 사실적인 것들이 표현되어짐으로 말미암아 사실로 표현으로 이렇게
내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표현은 하나님의 모양대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표현은 하나님의 모양대로 되어지는 것인 반면에 형상은 하나님의 외적 표현의 내적인 실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내적 실제인 것입니다.바로 내용물이라고 우리가 말할 수가 있죠.
하나님을 그의 내용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져야 됩니다.
그것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할 때 인간은 사람 안에 하나님을 담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되고 또한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취하여 담을 수 있는 큰 능력을 지속적으로 계속적으로 가지게 될 수가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은 이 일에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사실적으로 표현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되어졌습니다.
복제품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있는 것입니다. 표현은 하나님의 모양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할 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살 수 있는 그러한 자격과 능력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사람 안에 하나님이 계시게 할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안으로 자신의 심령 안에 취하여 담을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 생명나무의 실과를 에덴동산
중앙에 두셨던 하나님의 의도를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 자신과 하나 되도록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편만되어진 하나님 자신과 하나 되어져서 나타내지는 삶 하나님과 하나 되어 움직이는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표현하는 자들이 세상에 수없이 많이 존재하기를 갈망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에게는 먼저 보이지 아니하는 특별한 속 부분인 하나님의 형상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속 부분은 보이지 아니하는 부분으로 내적인 것입니다.
내적 존재인 이 하나님의 형상이 먼저는 있어야 되고 그리고 두 번째로는 외적으로 그분의 외형적인 보이는 부분인
겉부분인 모양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적으로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어야 되고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모양이 있어야 되는 것이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진 자들을 세상에 산출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래의 계획이며 이 계획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원대하신
목적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여러분들에게 한번 묻겠습니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의 표현을 위해서 세상에 나타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의 표현을 위한 그분과 똑같은 자들이 세상에 산출됨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하나님의
복제품이 되게 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실제적으로 완전히 하나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사람 안에 하나님을 담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 되게 하는 자들을 세상에 산출하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복제품이 먼저 되어야 됩니다.복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바로 창세기 2장 16절에
기록된 말씀처럼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해야만 사람 안에 하나님을 담을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고 그 사람이 하나님을 상징하는 생명나무를 지속적으로 안으로 취하므로 하나님의 생명 능력을 담을수 있는 자격을 가지게 될 수가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 자신을 온전히 표현한 자들을 세상에 편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복제품이 되는 자들이 세상에 나와야 됩니다.
그렇기 위해서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생명나무의 실과는 바로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실제적으로 완전히
하나 되는 삶, 하나 되어 움직이는 삶을 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26절과 27절에서는 바로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담는 그릇인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
내용물이라면 속 부분은 보이지 아니하는 부분이라면 창세기 1장 26절과 27절에 기록되어진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듭시다라는 이 사람은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이 담는 그릇 안에는 어떤 내용물이 들어가 있어야만 되는데 그 내용물이 바로 창세기 2장에 기록되어져 있는 에덴동산에
생명나무와 선악과 나무를 두심으로 말미암아 이 두 나무를 통해서 그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사람 안에 그 어떤 내용물이
있는지를 하나님이 들여다보고자 한 것입니다.
그 첫 사람인 아담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했다라면 그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바로 인간의 심령 안에 생명이 내용물로 들어가
있을 것이고 선악과의 열매를 취하게 되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를 통해서 죽음을 내용물로 담을 수밖에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창세기 1장 26절과 27절에서는 사람을 통하여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지읍시다라는 것을
통해서 담는 그릇에 대한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고 그리고 하나님은 내용물인데 생명나무는 바로 하나님을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나무를 사람 안에 담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하나님을 안으로 취하여 담음으로 말미암아 그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는
자격과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할 수 있는 그 자격과 능력을 가질 수가 있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에 의하여 피조된 사람이 생명나무를 먹고 사는 것이었지 선과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를
먹고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라는 것을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약에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열매를 취한다면 죽을 것이지만 만약에 생명나무의 열매를 취하여 사람이
그 생명나무의 열매를 내용물로 담았더라면 바로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취하여 담을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가질 수가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만 생명나무가 아닌 죽음을 상징하는 그 선악과 나무의 열매를 먹었고 죽을 수밖에 없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창세기 1장에 대한 말씀을 통해서 사람이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고 그 내용물은 창세기 2장을 통해서
생명나무를 담았어야만 됐다라는 것을 통하여 우리가 어느 정도 생명나무에 대한 중요성을 암시받을 수 있지만
이것에 대한 온전하고도 완전한 부분은 계시록에 나타나진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영원 안에서 새 예루살렘 성 전체에 영양 공급이 되고 영원하고도 신성한 생명나무에 관하여
분명히 말하고 있는 것이 계시록 22장 1절과 2절, 그리고 14절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22:1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그래서 시편 36편 9절에서는 뭐라고 써 있습니까?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라고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또 36편 8절에서도 저희가 주의 집의 살찐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시리이다 라고 살찐 것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이 복락의 생수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요. 하나님의 집에 살찐 것은 희생제물인 제물에서 나오는데 바로 이 제물들은 그리스도의 예표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8절에서 기록된 주의 집에 살찐 것은 아들 되시는 아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고 바로 이 8절 하반절에
주의 복락의 강수인 이 생수는 성령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9절에서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라는 이 생명의 원천은 샘이 아니고
생명의 원천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원천은 생명의 실제의 근원인 반면에 샘은 그 원천에서 솟아나오는 것에 불과하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원천은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를 말하고 있음으로 말미암아 8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주의 집에 살찐 것으로
풍족하게 한다는 것은 아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계시하고 있고 그리고 생명의 복락의 강수는 성령님을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신성한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영 하나님이신 세 분 하나님에 대한 직접적인 근원에 대한
이야기가 36편 8절과 9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로 암시하게 해주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에서는 생명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생명나무가 다름 아닌 바로 아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 안에 생명이 있었고
이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는 것을 이 사도요한은 우리에게 이렇게 계시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또 요한복음 11장 25절에서는 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생명이시고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한복음 10장 10절 말씀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하여 세상에 성육신 하셔서
오셨다 라고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고 있는 장면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골로새서 3장 4절에서는 바로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라고 말함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주시는 분이 바로
이 아들 하나님 안에 있는 바로 이 생명나무의 실과를 상징하고 있는 아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아들이 있는 자에겐 그래서 생명이 있고라고 요한일서 5장 11절과 12절은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그래서 이 창세기 1장에서는 사람을 말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담는 그릇인 사람에 대한 얘기가 있고
그 내용물은 창세기 2장을 통하여서 생명나무의 실과를 통해서 내용물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26절 27절에서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함으로 말미암아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생명이신 하나님을 담는
그릇에 대한 얘기지 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내용은 바로 생명나무에 대한 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담는 그릇 안에 하나님을
안으로 취하여 담을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생명나무를 지칭하는 것을 우리가 암시받을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나무는 사람의 생명이신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생명나무가 사람의 생명이신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다면 시편 36편 8절 9절에서 기록된 것처럼 이러한 신성한
세 분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주의 집에 살찐 것, 또 주의 복락의 강수 성령님으로 계시되고 있는 성령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생명의 원천과 빛과 광명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세 분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 생명나무는 다름 아닌 사람의 생명이신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지만 이것이 성육신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나무를 취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성령님께서 이끄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생명이신 하나님을 취할 수 있도록 이렇게 세 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들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을 담는 그릇으로 피조된 사람들이 하나님을 생명과 그 내용으로 취하여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통해서 바로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내용인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함인 하나님의 속성을 취하여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셨지만 신약 성경을 통해서는
하나님을 그 생명과 내용으로 취하여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성육신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사람으로 오신 구주를 받아들일 때
바로 하나님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안으로 담을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26절, 27절에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바로 그리스도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4장 8절에는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라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씀 하고 계시고 또 요한일서 1장 5절을 통해서는 하나님은 빛입니다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요 요한일서 4장 8절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라는 이 사랑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본질의 본성을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본성이 사랑이고 그럼 빛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사랑은 볼 수가 없고 만질 수가 없지만 빛은 따뜻한 감촉을 통해서 우리 눈에 우리 시야에 볼 수 있고 느껴질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는 것이 빛입니다.빛은 하나님의 표현의 본성이 빛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의 본성이 사랑이라면
하나님의 본질이 아닌 하나님의 표현의 본성은 빛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바로 성경은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라는 많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로 알려주고
있습니다.하나님에 관하여 나타나진 이 의로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말씀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을 얘기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공의로움은 나타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어떠함이 행위를 통해서 공의로운지가 드러나는 것이 의로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방법은 항상 무엇이다. 항상 공의롭다. 결코 그분은 불의하게 일하시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그것도 거룩하다 라는 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이 거룩함에 대한 이 얘기 특별히 구약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죠.
이 거룩함에 대한 성경의 말씀의 계시는 하나님의 내적 본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본질의 본성이 사랑이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표현이 빛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과 빛이시고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묘사할 때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외형적인 그 사람의 외모 잘생긴 어떤 머리 색깔이나 또는 그 어떤 몸무게의 정도나 키의 크고
작고 하는 외형적인 겉부분에 대한 사람의 모양은 볼 수 있지만 사람의 형상을 묘사할 때는 우리가 그것을 묘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형상을 묘사할 때도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부분인 속 부분은 우리가 정확하게 묘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 보이지 아니하는 부분인 속 부분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우리가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그 모든 보이지 아니하는 속 부분에 대한 것들이 구체적인 사실로 외형적으로 나타나게
하신 분이 바로 성육신 되신 사람으로 오신 구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에 관한 묘사가 그래서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하심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속성인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외형적인 부분인 하나님의 모양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 성육신 되신 사람으로 오신 구주가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그 인격과 하나님의 그 기질과
하나님의 그 특징을 절대로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질의 본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표현의 본성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빛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공의로우십니다.하나님의 형상은 바로 거룩함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이 네 단어인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속 부분인 속성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내적 존재를 언급하는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이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함이라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들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바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어떤 하나님의 본질의 본성을 이렇게 얘기하고자 할 때
하나님은 사랑과 빛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또한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들인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모양에 관한 묘사가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양은 보여지는 부분 외형적인 부분 겉부분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함은 하나님의 참 존재에 관한 하나님의 본질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이지
하나님의 모양에 관한 묘사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들께 말씀을 드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그러한 사랑을 우리가 얘기할 때 사랑은 하나님 자신이신 것입니다.하나님은 빛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표현의 본성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바로 빛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 빛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라고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 사랑과 빛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그 어떠함이 보이지 아니하는 본질의 본성은 우리가
사랑과 빛으로 드러낼 수 있지만 하나님의 그 어떠하심을 나타내는 면에 있어서는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롭습니다라고 이야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어떠함에 대한 행위에 있어서는 의로우심이라고 얘기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대한 본성에 있어서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고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부분 속 부분이고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들의 묘사이며 하나님의 존재를 언급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함에 대한 이 4가지 주요 특징이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들입니다.
하나님의 이 신성한 속성들이 인간 안에 담겨져서 이런 아름다운 품성들을 나타낼 때 이것이 아름다운 미덕들이라고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아름다운 미덕들 최고의 도덕적인 수준의 삶을 사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성육신 되신 사람으로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 사람 안에 계신 하나님으로서 곧 사람으로 오신 구주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자신의 안에 바로 하나님의 본질의 본성이며 하나님 표현의 본성인 사랑과 빛을 담으시고 그리고
바로 의로우시고 거룩하신 그 하나님의 어떠하심에 대한 행위와 어떠하심에 대한 본성을 가지신 거룩하신 분임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소유한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들을 지니신
하나님의 내적 존재를 가지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속성들을 담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들로 만들기 위해서 창조가 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1장 26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지읍시다라고 하나님에 의하여
사람이 피조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 안에 어느 정도는 사랑과 빛이 있고 의롭고 거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만 사랑과 빛이 있고 의로움과 거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이 능력을 크게 발휘하기 위해서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하여 사람이 하나님을 담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가 됨으로 말미암아 지속적으로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한 생명을 지닐 수 있는 거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지속적으로 취하는 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인간은 바로 하나님의 복제품으로써 하나님을 그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모양대로 지어짐으로
말미암아 실질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에 대한 모든 실제적인 것들을 구체적인 사실로 나타나게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체현을 가진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들이 될 수가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러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짐으로 말미암아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가 되어져서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취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비록 첫 사람 아담이 타락하여서 이 하나님의 생명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훼손되어지고 좀 훼파되어지고 심하게
얘기한다면 상실되어질 정도로 그렇게 손상되었지만 비록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손상되어졌지만 타락한 상태 안에서도
어느 정도의 사랑과 어느 정도의 빛과 어느 정도의 의로움과 의롭게 될 수 있는 능력과 하나님과 같이 거룩해질 수 있는
능력이 부분적으로 조금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 안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본질적인 본성인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함에 대한 조그만 부분적인
그러한 속성들이 나타내져서 양심을 통하여 그것들이 표현되어지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의 사랑과 빛과 의와 거룩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 그러한 능력이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그것을 우리가 온전하게
나타냈을 때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나님의 체현으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이 구체적인 사실로 나타낼 수
있는 그런 인간적인 최고의 아름다운 품성을 지닌 자들로 될 수 있었지만, 인간이 생명나무의 실과가 아닌 선과악을 알게
하는 죽음의 열매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이 일에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두 번째 사람으로 오신 그렇다고 해서 세 번째 네 번째 아담이 다시 올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첫 아담이 실패한 것을 마지막 아담인 두 번째 아담이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인간의 몸을 가지고 세상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빛과 의롭게 해줄 수 있는 능력과 하나님과 같이 거룩해질 수 있는 능력의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실제적으로
완전히 하나 되는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체현 바로 이 하나님에 대한 모든 것을 구체적인 사실로 나타내고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체현이 됨으로 말미암아 이 생명나무로 상징된 그리스도를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바로 사람은 하나님을 안으로
취하여 담을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고 하나님을 담을 수 있는 그 자격을 통하여 큰 능력 거룩할 수 있는 능력, 의롭게 될 수 있는 능력, 빛을 비출 수 있는 능력, 사랑을 가질 수 있는 능력, 이런 능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미덕들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한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들인 것입니다.
이 미덕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전달되어질 때 우리의 최고의 아름다운 인간의 품성들인 이 미덕들은
하나님의 속성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우리 안에 담아짐으로 말미암아 사랑과 빛과 의롭게 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하나님과 같이 거룩해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과 빛과 의와 거룩은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이신 보이지 아니하는 부분 속 부분인 사랑과 빛과 의와 거룩을
담을 수 있도록 바로 이 창조된 인간 안에 어느 정도 남겨진 비록 사망의 실과인 선악과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훼손되어졌고
손상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상실되어진 것처럼 보여지는 이러한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소유받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계속적으로 너희는 내 피를 받아 마셔라, 내 살을 받아 먹어라 나는 생명이다 라고 계속 얘기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암시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 하나님에 의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 사랑과 빛과
의롭게 될 수 있는 능력과 거룩해질 수 있는 능력이 훼손되어지고 손상되어져서 이렇게 거의 나타나진 바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사람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된 모든 인간들은 어느 정도의 사랑과 어느 정도의 빛과 어느 정도의
의로움과 어느 정도의 거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양심을 통해서 암시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어떤 물건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물건을 사고 돈을 주고 거스름돈을 받았을 때 그것이 내가 받을
거스름돈보다도필요 이상으로 많이 들어왔을 때 양심에 왜 돈이 더 많이 들어왔지! 내가 거스름돈을 4만 3천 원을
받아야 되는데 어!왜 10만 3천 원이 들어왔지 라고 했을 때 우리는 마음에 불의함 어두운 부분이 이렇게 사로잡아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불의하다는 것입니다.
빛과 의로움과 거룩할 수 있는 능력이 훼손되어진 사람에게는 이 불의함을 느끼게 하는 마음을 가졌지만서도
이것을 이기지 못하는 자는 그 주어진 거스름돈을 가지고 비밀리에 도망가는 모습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정말 이 주님의 그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할 수 있는 능력으로 가득 차 있는 자들은 불의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그것을 다시 주인에게 돌려 주어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사랑과 빛이 먼저 나오고 의로움과 거룩함이 나중에 나옵니까? 의롭게 행함으로 사랑을 가질 수가 있고
의롭게 행함으로 말미암아 빛을 가질 수가 있고, 거룩해지는 행실을 함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가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랑과 빛을 가질 수 있도록 의롭게 행하고 거룩할 수 있도록 하나님에 의하여 지어진 것이 바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지어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빛과 의와 거룩의 형상 안에서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인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하나님을 담을 수 있는 신성한 속성들을 담을 수 있는 것을 생명나무의 실과를 상징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러한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들인 최고의 아름다운 품성들인 하나님의 미덕들을
우리가 소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적인 이러한 우리에게 주어진 첫 사람 아담에게 주어진 아름다운 품성들은 원래 하나님의
속성들을 담을 수 있는 능력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기 때문에 우리들은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데 그것은 생명나무의 실과를 계속적으로 취할 때 자격을 갖게 되고 능력을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방법으로써 사람이 아들 하나님, 영 하나님, 생명나무이신 하나님을 생명과 그 내용으로 취하게 하려는
뜻을 가지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의 실과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두셨던 것입니다.
선과악을 알게하는 열매를 취하게 되면 그 하나님을 담는 그릇 안에 내용물이 사망이요 생명나무의 실과를 취하게 되면
하나님을 담는 그릇 안에 생명이신 하나님을 소유하게 되어져서 사람이 하나님을 안으로 취하여 담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짐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가질 수가 있고, 빛을 가질 수가 있고, 의로움을 가질 수 있고 거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성한 속성들을 담을 수 있는 이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담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에 있는 동산 가운데 두시고 그 동산 가운데 생명나무의 실과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하나님을 담는 일에 있어서 아담이 실패하고야 맙니다.
아담이 만약에 생명나무를 먹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을 생명으로 담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생명으로 취하였다면,
그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충만되고 그 하나님의 신성한 속성들인 사랑과 빛과 의로움과 거룩함인
이 인간적인 미덕들은 하나님의 속성들로 가득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제대로 표현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의 미덕들은 하나님의 속성들을 표현하는 외형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생명나무가 아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죽음의 나무에 참여함으로 말미암아 정말 하나님의 이 영원하신
창조의 계획을 다시 이루기 위하여 두 번째로 오신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로 하나님 자신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 자신의 모양대로 하나님에 의하여 지어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실제적으로 완전히 하나가 되는
삶을 사신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다 라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데 실패하였고 반면에 두 번째 아담으로 오신 마지막 아담이신 사람으로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데 성공함으로 말미암아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계획을 완전히 망쳐놓았고
두 번째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획을 완전히 성공함으로 말미암아 다 이루시고 다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온전하신 하나님과 사람으로 하여금 실제적으로 완전히 하나 되어 사는 삶을 살게
하는 그 계획을 이루실 수가 있게 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은 생명나무 대신에 지식의 나무인 죽음의 열매를 먹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계획을 완전히
망쳐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계획을 완전히 망쳐놓는 지식의 열매를 취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모양대로 지어진 인간의 이 본성이 완전히 손상되었고 크게 훼손되어지고 어떤 의미에서는
완전히 복구 불능할 정도로 상실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으로오신 구주께서 성육신 되셔서 두 번째 마지막 아담으로 오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창조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완전히 성취하심으로 말미암아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실 때 다 이루었다 라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하시고 생명을 다하신 것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아주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들어진 바로 사람으로 오신 구주의 성육신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의 성취다 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을 끝으로 해서 여러분들과의 교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에 대한 말씀을 정리하여 올리면서 너무나 어렵고 난해한 말씀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씀속을 들어가서 완전히 깨닫지는 못했으나 저는 자식을 낳아 본 엄마로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 하실때 얼마나 많은 기대와 사랑을 가지고 지으셨는지는 어렴풋 알것 같습니다. 자식을 낳으면서 또 키우면서 이 아이가 나의 바람대로 잘 자라주길 정말 고대하는 마음으로 키웠던 저의 마음보다 수만배 더한 하나님의 꿈과 기대로 정성과 사랑을 다하여 지으셨음을 알게 되는 하나님의 귀한 생명을 소유받는 시간 이었습니다. 또한 이 말씀을 통하여 오직예수라는 모든 말씀의 답은 오직 예수그리스도 임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참으로 지치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말씀정리를 하나 끝낼때 마다 조금은 빚을 탕감 받은듯한
후련함이 제가말씀을 정리 할때 마다 받는 선물인듯합니다.
그리고 히스기야왕의 수명을 연장 시켜 주신것과 사울왕에 대한 집행유예기간에 대한 말씀도 이 말씀을 정히하는 일로 인해
지치고 그만두고 싶을때 저에게 이런 말씀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시고 경각심을 일깨워 주시는 늘 곁에서 저의 마음을 다잡아 주시는
부활의 영이신 삼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많은 일거리를 저에게 주셔서 마음의 부담이 되지만 그래도 항상 금은 보화와 같은
귀한 말씀 녹음해서 저에게 보내주시는 선교사님의 노고에도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