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난 후 잠깐 만난 언니와의 연애는 난잡했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지 세 시간 만에 키스를 하고 그날이 가기 전에 섹스를 했다.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다만 술에 너무 취해서 다음날 알바를 하다가 토를 할 뻔했고, 새로 산 핸드폰에 쌓이는 그 언니의 카톡을 읽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종종 그 언니가 사는 동네에서, 아니면 우리 집 앞에서, 그도 아니면 언니 직장 주변에서 밥을 먹고 언니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제대로 된 대화나 데이트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편이 오히려 나았다.
나는 그 언니가 예뻐서 좋았지만 동시에 인간으로서 경멸했다. 그러면서도 그 언니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자기학대에 가까운 자조였다. 최소한의 호감 없는 인간관계가 그렇게 독이 될 줄은 몰랐다. 내가 그 관계의 끝에서 얻어낸 건 나는 결국 혼자일 수는 없다는 것과, 나의 재수 없고 쓸데없이 예민한 인간성에 대한 놀라운 재발견이었다.
가끔 비극적이고 소모적인 관계에 나 스스로를 갉아먹을 때가 있다. 나의 자존감이 바닥을 치면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혼자인 시간을 견디지 못할 때 그러곤 한다. 온전한 나 자신 속에서 누군가가 들어오고 떠날 수 있는 빈자리를 마련해 두는 것과, 텅텅 비어버린 자아에 이 사람 저 사람 끌어오는 것은 다르다. 전자가 사랑이라면 후자는 소유욕과 집착에서 생기는 애증 비슷한 감정이다.
연애를 하면서 몰랐던 나 자신을 찾아가기도 하지만, 영영 돌아갈 수 없게 길을 잃기도 한다. 내가 나로서 더욱 단단해지는 것 같다가도, 그 사람이 없으면 내가 희미해지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결국 관계는 거울을 바라보는 것과 같아서, 아무리 노력해도 손에 닿지 않는 나의 현실과 저쪽의 현실이 공존한다. 넌 나고 난 너라고 생각했겠지만 맞닿은 두 손 사이에는 가시화되지 않은 차가운 벽이 분명히 있다. 나는 그 작은 틈 때문에 외로움에 골몰한다.
그래도 연애를 하고 있는 나와 혼자 있는 나 중에 고르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전자를 선택할 것이다. 연애를 왜 하냐고 물으면 매우 이기적인 대답 밖에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답이 사뭇 망설여진다. 하지만 무의식중에 어른 되기를 피하는 나는 사람의 따듯한 마음과 몸이 필요하다. 누군가 나를 품속에 따듯하게 안아주었으면 좋겠고, 아끼는 장식품처럼 나를 예뻐해 주었으면 좋겠다. 내 걱정에 밤잠 설쳤으면 좋겠다. 두통이 날 정도로 내 생각을 해주었으면 하고, 나를 원하는 마음을 까만 잉크에 꾹꾹 눌러 담아 건네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그것의 몇 배로 상대방이 간절했으면 한다.
나는 왜, 그리고 너는 왜. 연애를 하며 답을 찾으려고 할수록 내게 가혹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관계가 삐거덕거리는 시점은 그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시도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처음에는 마냥 좋아서, 두근거리고 설레니까 시작한 만남 속에서 자꾸만 무언가 원하는 게 생겼을 때, 나는 끝을 상상한다.
아직 발톱을 숨기는 법을 익히지 못한 나는 못된 말과 행동으로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부끄럽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은 순간들이 너무나 많고 후회하는 일들은 더 많다. 못된 짓을 할 거면 확실하게 하던지, 애매한 성품이라 손과 발 보다 머리가 더 고생한다. 어느 쪽이던 단단해지려면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