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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부터 시작돤 조국순례대행진 그 집결지로서 이천 유네스코 청년연수원 잔디밭 사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2024년4월26일 오전 11시, 유네스코평화센터 (이천시 호법면 덕평로470번길)에서 십여명이 모인 가운데 센터의 마지막을 고하는 조촐한 의식이 있었다.
한국유네스코 학생회 총문회(회장 김성식)의 행사이다.
1974년 국민소득500불에서 이제35,000불의 시대를 맞아 50년 세월에 많은 것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쓸쓸한 세러모니였다.
여기서 이 장면이 주는 의미는 매우 크고도 깊다. 50년전 깊은 산속에 대학생 교육기관 설립을 사실상 정부 기관인 유네스코의 이름으로 조성한 것으로 부터 1977년 8월 유네스코청년원으로 본격적으로 청소년 교육의 산실이 되었다.
여기서 1967년에 창립된 유네스코학생회(KUSA)는 지난 60년간 10만명 정도의 동문을 배출하고 이제 국내외 걸쳐 상당한 인맥을 가진 단체이기도 하다.
새물결운동의 그 취지는 당시에는 지성적인 측면이 약했지만 글로벌한 사고 체계로 한류의 새로운 유형이 될 수도 있다. 사진 권오철
이제 이 유네스코 평화센터(청년원)도 건물의 노후화, 대학 동아리의 쇠퇴등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결국 그 운영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폐문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날 그 1977년 개소식에 참여했던 기자의 소회는 더욱 처연했고 그리고 이 폐쇄의 아쉬움을 달래는 불과 십여명의 동문들의 마음은 더욱 그럴 것이다.
연수원 운동장에 수천명의 대학생이 모여 조국순례대행진의 15일간의 그 어려음을 견디며 지난온 여정을 털어버리고 감격의 보고를 하던 곳이다.
이제 그 몇가지 기록들이 남아 있는 이곳이 폐쇄되고 곧 매각되어 자본의 논리에 의해 매몰된다면 그것은 곧 한 역사를 묻어버리는 오류를 의미한다.
자본의 논리가 결국 후대가 없어지는 모순을 가져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 실례(實例)이며 또 다른 터닝포인트(轉換點)에 대한 기대가 교차하는 것이다.
이제 10만 새물결운동인들은 이 문제를 미래의 한류(未來韓流)를 위한 새로운 각오로 ‘조국순례대행진’과 ‘유네스코청년원 부활’을 위한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쿠사(KUSA)의 창립과 성장에 지적할 점이 많으나 그 성장은 한류의 특징인 정(情)문화의 표상이며, ‘양이 질을 바꾼다.’는 원칙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면 이 연수원 문제는 사실 ‘물류센터’등의 용도도 상정해 볼 수있지만, 이곳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한류(韓流)문화의 본령이 아니고 앞으로 더욱 축소되고 노화되는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만을 부각할 뿐이다.
유치원이 양노원으로 변하는 사회가 아무리 경제적으로 부유한 다해도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일단 유네스코 깃발을 들고 입구에서 부터 지신밟기 같은 짦은 순례의 길을 걸었다. 조국순례대행진 합류탑! 새물결동산에서의 기념촬영, 유진(劉璡) 선생의 기념비등등 그 많은 반세기의 스토리 텔링을 결코 묻어서는 안된다.
조촐한 기념식에 이어 유네스코 동문회 깃발 그리고 조국순례대행진. 유네스코 깃발 60년의 기억은 그리 만만치 않은 의마를 줄 것이다, 사진 권오철
몇가지 방안이 제기되기도 하였으나 아직은 허망하지만, 시설의 노후는 약간의 보수를 통하여 재활용하고, 인건비는 유네스코 동문회가 위탁 받아 자원봉사로 이어나가는 방법등이 있다.
그리고 유네스코 양로원이 될 수는 없으나, 유네스코 한류문화센터로 해서 동남아 인력의 한국식 언어 및 문화 기술 교육장으로 한다면 좋을 것이다.
이제 10만 KUSA동문들이 노력 한다면은 또다른 한류문화의 전통을 창조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200억원 정도의 비용은 10만이 20만원씩 클라우드 펀딩을 한다면 별 일도 아닐 것이다.
현대의 모든 기업의 핵심은 인력을 모으는 것이다, 네이버 메일 이용에 돈을 내는 가? 카카오 이용에 돈이 드는 가? 그러나 그것은 거대한 신흥기업이다. 여기에 솔유션의 실마리가 있다.
이제 10만 새물결인들의 작은 정성이 새로운 한류문화의 원형을 보여 줄 것이다.
즉 나가는 문화에서 들어오는 문화, 한류의 핵심을 배우려는 세계인의 터전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글 권오철 기자)
이제 이 화원도 잡초로 덮히고 지난날 젊은이의 함성도 사라지고 거미줄만 우거진다면 그것은 1974년 500달러의 소득에서도 용솟음 치던 희망이 3만5천 달러 세계10위의 경제대국이라는 것은
무의미하다. 따라서 10만 쿠사 새믈결인들은 이 장소를 세계화에 걸맞게 '유네스코 韓流 연수원'으로 하여서 동남이 중앙아 젊은이들의 한국 정착과 취업의 장으로 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