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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坡州 龍尾里 磨崖二佛立像)은 고려시대의 마애불이다. 문화재청은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했다.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을 살펴보면
▲장지산 용암사 일주문 (長芝山 龍岩寺 一柱門)
마애이불입상은 용암사 경내에 위치하며 제작년대가 분명하지 않지만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의 조성 배경과 절의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해지고 있어 11세기 고려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장지산 용암사 대웅보전
용암사의 거대한 천연 암벽에 2구의 불상을 우람하게 새겼는데, 머리 위에는 돌갓을 얹어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커다란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까닭에 신체 비율이 맞지 않아 굉장히 거대하고 웅장한 느낌이 든다. 이런 점에서 불성(佛性)보다는 세속적인 특징이 잘 나타나는 지방화된 불상이다. 왼쪽의 둥근 갓을 쓴 원립불(圓笠佛)은 목이 원통형이고 두손은 가슴 앞에서 연꽃을 쥐고 있다. 오른쪽의 사각형 갓을 쓴 방립불(方笠佛)은 합장한 손 모양이 다를 뿐 신체 조각은 왼쪽 불상과 같다.
이 고장 사람이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둥근 갓의 불상은 남상(男像), 사각형의 모가 난 갓의 불상은 여상(女像)이라 한다. 고려 제13대 왕 선종(宣宗)이 자식이 없어 원신궁주(元信宮主)까지 맞이했지만, 여전히 왕자가 없었다. 이것을 못내 걱정하던 궁주가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두 도승(道僧)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 남쪽 기슭에 있는 바위 틈에 사는 사람들이다. 매우 시장하니 먹을 것을 달라’고 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꿈을 깬 궁주가 하도 이상하여 왕께 아뢰었더니 왕은 곧 사람을 장지산에 보내어 알아 오게 하였는데,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둘이 나란히 서 있다고 보고하였다. 왕은 즉시 이 바위에다 두 도승을 새기게 하여 절을 짓고 불공을 드렸는데, 그 해에 왕자인 한산후(漢山候)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 불상들은 고려시대의 조각으로 그다지 우수한 편은 아니지만, 탄생 설화가 있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고려시대 지방화된 불상 양식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 높이 평가된다.ㅡ 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