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말씀
깊이 신심(信心)을 일으켜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 어떻게 닦는가 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작성자:세계광선유포
작성시간:2023.09.05 조회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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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지금(只今)도 일념무명(一念無明)의 미심(迷心)은 닦지 않은 거울이며, 이를 닦으면 반드시 법성진여(法性眞如)의 명경(明鏡)이 되느니라.
깊이 신심(信心)을 일으켜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
어떻게 닦는가 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을 이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 본문어서 》
중생(衆生)의 마음이 더러워지면 토(土)도 더러워지고 마음이 깨끗하면 토(土)도 청정(淸淨)하다고 해서 정토(淨土)라 하고 예토(穢土)라 함도 토(土)에 둘의 차이(差異)가 없으며, 오직 우리들의 마음의 선악(善惡)에 의(依)한다고 쓰여 있다. 중생(衆生)이라 함도 부처라 함도 또한 이와 같으니 미혹(迷惑)할 때는 중생(衆生)이라 이름하고 깨달을 때는 부처라 이름했느니라. 비유컨대 암경(闇鏡)도 닦으면 옥(玉)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지금(只今)도 일념무명(一念無明)의 미심(迷心)은 닦지 않은 거울이며, 이를 닦으면 반드시 법성진여(法性眞如)의 명경(明鏡)이 되느니라. 깊이 신심(信心)을 일으켜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 어떻게 닦는가 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을 이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대저 묘(妙)란 무슨 뜻이뇨. 오직 나의 일념(一念)의 마음이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묘(妙)라고 하며 불가사의(不可思議)란 마음도 미치지 못하고 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즉 일어나는 바의 일념(一念)의 마음을 찾아보면 있다고 말하려 하면 색(色)도 질(質)도 없고, 또한 없다고 말하려 하면 갖가지로 마음이 일어나니, 유(有)라고 생각할 수도 없고 무(無)라고 생각할 수도 없느니라. 유무(有無)의 두말도 미치지 못하고 유무(有無)의 두 마음도 미치지 못하며, 유무(有無)가 아니면서도 또한 유무(有無)에 두루 미치어 중도일실(中道一實)의 묘체(妙體)로서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묘(妙)라고 이름하고, 이 묘(妙)한 마음을 이름하여 법(法)이라고도 하느니라. 이 법문(法門)의 불가사의(不可思議)를 나타냄에 비유(譬喩)를 사법(事法)으로 표현(表現)하여 연화(蓮華)라 이름함이라. 일심(一心)을 묘(妙)라고 안다면 또한 전환(轉換)해서 여심(餘心)도 묘법(妙法)이라고 하는 바를 묘경(妙經)이라고 하느니라. 그러므로 즉 선악(善惡)에 따라서 일어나고 일어나는 바의 염심(念心)의 당체(當體)를 가리켜서 이는 묘법(妙法)의 체(體)라고 설(說)해 말씀하신 경왕(經王)이므로 성불(成佛)의 직도(直道)라고 하느니라. 이 뜻을 깊이 믿고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부르면 일생성불(一生成佛)은 결코 의심할 바 없느니라. 그러므로 경문(經文)에는 「나의 멸도(滅度)의 후(後)에 있어서 응당히 이 경(經)을 수지(受持)할지어다·이 사람은 불도(佛道)에 있어서·결정(決定)코 의심(疑心)할 바 없느니라」고 설(說)했느니라. 결코 의심을 하지 말지어다. 황공(惶恐)하오. 일생성불(一生成佛)의 신심(信心)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일생성불초(一生成佛抄) 가마쿠라에서 44세에 술작 384쪽(383-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