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종주: 백두대간 39차, 40차, 41차
산 좋아하는 사람치고 지리산 종주를 동경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넓이와 높이 때문에 누구나 쉽게 도전할 수가 없다.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하면서 첫 구간인 지리산을 뒤로 미루고 성삼재에서 출발 한 것도 그런 두려움 때문이었다.
우리가 지리산을 남겨놓고 백두대간에 달라붙은 지가 벌써 2년 가까이 된다. 산맥을 따라 북진하면서 높은 봉우리들을 오를 때 마다 조망의 아름다움과 성취감에 환호했지만 걸어온 산길의 맨 뒤에 두고 온 지리산이 생각나 지리산이 가늠되는 방향으로 눈길을 멈추곤 했다. 지리산으로 돌아가려고 기회를 벼르고 있던 참에 낮이 길어지고 기온이 적당한 이번 초여름에 실행하기로 했다.
-제 39차 :2008/5/17(토) : 중산리 1박
2008/5/18(일) : 중산리-법계사-천왕봉-제석봉-장터목-연하봉-삼신봉-촛대봉-세석-거림.
역시 천왕봉은 인기가 좋다. 쉽지 않는 산행인데도 16명이나 모였다. 작년에 중산리 계곡으로 올라 장터목까지 갔다가 천왕봉을 오르지 못하고 퇴각했다는 성명이 부부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시간을 내었다, 오랜만에 베스타와 만학이 오고 중간에 탈출하더라도 도전해보려는 잉칠이 부부도 용기를 내어 장도에 올랐다. 저녁 8시가 넘어 부산을 출발하여 중산리 매표소가 있는 민박마을에 도착하니 밤 11시다. 여성 용, 남성 용, 이기사 부부용 모두 세 개의 방에 분산 하여 지리산의 첫 잠자리에 든다. 자기 전 막걸리 몇 잔에 취한 선수의 코골이, 시간마다 울리게 해놓은 휴대폰 알람소리, 자주 화장실 가는 소음들로 한방에 비좁게 자는 10명 모두 잠이 모자라고 편하지 않았지만 그런 일들이 오히려 즐거운 기억으로 남는 것은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백두 친구들의 따스한 마음씨 때문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민박집에서 차려놓은 이른 아침식사를 든다. 뜨내기손님용이라서 그런지 반찬은 부실하고 밥은 입안에서 까실거려 영 맛이 없다. 그래도 오늘의 긴 산행을 위해 억지로 밀어 넣는다.
지리산 새벽공기가 상쾌하다. 써리봉에서 국수봉까지 순두류 계곡을 감싸며 내리뻗은 황금능선이 우리 앞에 병풍처럼 서있다. 흰 안개가 능선으로 피어오르고 있다. 매표소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6시에 출발 한다. 해발이 낮은 산자락에는 벌써 여름이 시작되었고 칼바위를 지날 때 까지 짙은 녹음이 계속된다.
드디어 가파른 경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제 막걸리에 취한 선수들은 뒤로 처지고 여성들과 컨디션이 좋은 몇몇은 앞서 간다. 힘들기로 소문난 중산리 코스 급경사를 몇 시간 째 올라간다. 산 아래에 무성하던 초여름의 녹음이 점점 옅어지고 법계사 위쪽부터는 작은 잎사귀에 아직 봄기운이 연두색으로 머물러 있다. 천왕샘 부근의 바위 벼랑에 피어 있는 진달래무리가 유난히도 붉게 빛나고 보라색 얼레지 꽃잎이 상쾌한 바람에 살랑이고 있다. 천왕봉을 눈앞에 두고 잠시 쉬면서 발아래의 조망을 즐긴다. 봄과 여름 두 계절이 산 하나에 펼쳐져있다. 고도가 만들어 주는 계절의 스펙트럼이다.
천왕샘에서 급경사 돌길을 헐떡이며 20분정도 오르니 드디어 천왕봉이다.
좁은 천왕봉 바위정상에는 많은 산꾼들이 우리 땅의 최고봉을 정복한 감격으로 시끌벅적 하다.
에베르스트를 오른 어느 등산가가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다. 무두가 발아래 있다” 라고 부르짖는 것처럼 모두 흥분해 있는 듯하다.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언제나 장관이다. 굽이치는 산맥이 겹겹이 일렁이고, 산자락 아래에서 시작된 녹음의 푸른 쓰나미가 계곡을 메우고 능선으로 밀려간다. 산청의 웅석봉에서 하봉, 중봉을 거쳐 반야봉, 노고단, 고리봉, 만복대, 바래봉, 덕두산까지 100km나 이어지는 지리산 태극능선의 장쾌한 파노라마를 둘러본다. 재작년 백두대간을 출발하면서 엄숙히 고사를 올렸던 만복대가 특히 반갑다. 여기 천왕봉에 올 때마다 시야에 걸리는 장면이지만 중봉에서 칠선계곡으로 흘러내린 누른 산사태 흔적이 내 몸의 깊은 흉터처럼 안타깝다. 천왕봉에 먼저 올라 조망을 끝낸 웅이, 외촌, 만학이 세찬 바람을 피해 바로 밑 공터에 내려가 정상주를 준비하고 있다. 잉칠이 부부를 마지막으로 모두 천왕봉에서 합류하여 기념촬영을 하고 정상주 한 잔에 감격을 정리한다. 천왕봉에서 장터목 가는 길목인 제석봉에는 화석이 된 구상나무가 고사목이라는 슬픈 이름을 하고 있다. 무슨 업보를 받고 있기에, 스스로를 키워준 지리산의 수많은 고봉과 출렁이는 능선과 깊은 계곡을 응시하며 눕지 못하는 죽음으로 저렇게 꽂혀있을까?
고사목 위로 번지는 구름을 바라보다가 장터목대피소로 대장을 따라 바삐 내려간다. 대피소 200m 밑에 있는 샘에서 물을 떠와야 하고 선수들이 도착하기 전에 라면을 끓이기 위해서다.
에너지는 고갈되고 배는 고프다. 각자의 공기밥이 있어도 10개의 라면은 턱없이 부족하다. 힘들여 올라온 이런 고소에서 라면도 꿀맛인데 대장이 끓인 커피까지 마시니 호사가 따로 없다.
오늘 몸 컨디션이 별로인 잉칠이 부부와 노준, 베스타는 중산리 계곡으로 탈출하고 나머지는 세석을 향해 출발이다. 능선은 아직 봄이다. 잉크색 현호색이 피고 얼레지는 지천이다. 귀룽나무 꽃은 잔설처럼 하얗게 가지에 쌓여있다. 연하봉을 지날 때는 짙은 안개가 내려와 연하선경을 연출하고 신선들이 숨바꼭질 하는 것처럼 삼신봉이 안개 속에 들락거린다. 안개 때문에 촛대봉에서 청학동으로 내달리는 남부능선을 볼 수가 없다. 비교적 평탄한 능선을 타고 힘들이지 않고 세석평전에 도착한다. 세석평전은 아직 초봄이다. 지리10경 중의 하나인 세석평전 철쭉이 피지 않아 아쉬웠지만 동의나물 노란 꽃밭이 아름답다. 세석대피소를 지나 거림골로 향한다. 대피소 아래 샘에서 물을 채우고 이제 본격적인 하산이다. 천천히 내려가면 3시간 정도 걸린다. 그러나 웅이, 대장, 만학과 함께 달리듯이 내려간다. 원래 하산은 지루해서 빨리 끝내고 싶고 특히 시원한 병맥주를 어서 들이키고 싶기 때문이다. 싸늘한 병맥주 생각에 군침을 삼키며 굶주린 산짐승처럼 빠른 속도로 바위와 바위를 건너뛰며 다른 팀들을 추월하고 내려간다. 3시간 하산길을 1시간 반 만에 끝내고 거림 매표소가 있는 식당에 도착 한다. 날씨는 흐리고 후덥지근하다. 목으로 사정없이 넘어가는 시원한 병맥주의 그 첫잔! 11시간 산행의 보답으로 충분하다. 미리 닭백숙 3마리를 주문해둔다. 알탕을 하고 가게로 돌아오니 하산길에 지친 선수들이 한명씩 도착한다. 엉게나무를 넣고 잘 익힌 닭백숙 맛이 일품이다. 여러 번의 ‘오징어’ 건배로 지리산 종주 1차 산행을 마무리한다.
-제 40차 : 2008/6/8(토) : 백무동 1박
2008/6/9(일) : 백무동-한신계곡-세석 대피소-영신봉-칠선봉-덕평봉-벽소령 대피소-음정마을.
지난번 중산리의 민박집 품질에 많이 실망했다. 이번에는 2주전에 미리 인터넷으로 백무동의 민박집을 검색하며 한 집씩 전화를 했다. 비싼 펜션 외에는 모두 예약이 끝나 있다. 그러나 운 좋게 적당한 방 네 개가 남아 있었다.
백무동에 도착한 시간이 밤 열시 반경, 방 네 개에 분산하여 모두 짐을 풀었다. 중산리의 민박집보다 한결 아늑하다. 게다가 잠버릇이 좀 고약하다고 자타가 인정 하는 총장, 대장, 잉칠이, 능선을 한방에 수용하니 다른 방에 잠든 나머지 선수들은 중산리 때보다 훨씬 편한 잠을 청할 것이고, 여성들 방에는 초록님의 코골이 소리가 아기의 숨소리처럼 평화스럽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역시 편히 잘 것이라 짐작한다. 그동안 죽순처럼 빨리도 키가 자란 영평이는 길게 눕자말자 바로 잠이 든다.
다음날 새벽 5시가 되기 전에 기상하여 창을 가렸던 커튼을 걷어본다. 지리산의 푸른 녹음이 창유리를 가득 메운다. 창문을 연다. 숲의 향기와 싱그러운 기운이 방안으로 달려든다. 새벽 공기가 청정하니 산새의 노래 소리가 더욱 경쾌하다. 심옹이 ‘성불하소 새’ 라고 한 그 새다. 마당에 나와 사방을 둘러본다. 백무동 조그마한 마을이 녹색의 바다 중앙에 풍덩 빠져있는 듯하다. 여기는 100명의 무당이 전국 8도로 퍼져나갔을 만큼 우리나라 무당의 1번지라서 백무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일설이 있다. 오래전에는 이 계곡 곳곳에서 무당들이 치성을 드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으나 요즘은 공단에서 강력히 단속하는 바람에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고 한다.
지리산의 수많은 계곡 중에 4대 계곡은 칠선계곡, 뱀사골, 한신계곡, 피아골이다. 세석을 향하여 그 중의 하나인 한신계곡을 거슬러 올라간다. 넓은 계곡을 메우는 거대한 바위들, 그 바위들을 연마하며 힘찬 계류가 하얗게 부서져 내린다. 계곡 군데군데에 나무다리와 출렁다리를 걸어놓아 안전하면서도 운치가 난다. 처음 만나는 '첫나들이 폭포', 나들이 나온 설렘마저 드는 정겨운 이름이다. 계곡위로 가지를 드리운 함박꽃나무의 그 소박하고 담담한 꽃이 시들기 시작한다. 계곡물 속으로 사라지는 시든 꽃잎은 자기의 자리에 씨앗을 남겨 놓고 떨어졌다.
꽃은 씨를 남기고 씨앗은 나무가 되고 나무는 또 꽃을 피운다. 저 계곡물은 바다로 흘러가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구름은 비가 되어 지리산에 내린다. 빗물은 다시 계곡에 모여 꽃잎을 싣고 바다로 갈 것이다. 사라지는 낙화를 보며 안타까워 하지말자. ‘성불하소 새’ 가 근처에서 더 크게 울어댄다.
아기자기 하면서도 선이 굵직한 계곡을 따라 30분쯤 올라가니 갈림길이 나오고 오른쪽 숲속에서 '가네소폭포' 소리가 우렁차다. 왼쪽 길은 한신 지계곡으로 해서 장터목으로 올라가는 길인데 지금은 출입을 통제하는 구간이다. 우리는 우측길로 직진해서 한신 주계곡을 타야 세석으로 갈 수가 있다. 잠시 배낭을 풀어놓고 '가네소폭포'로 내려가 본다. 10m정도 높이에서 쏟아지는 폭포수의 수량이 풍부하고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20평 남짓한 검푸른 소는 무척 깊어 보인다. 여기서 득음하는 어느 명창의 얘기가 동편제에 있다고 들었으나 읽어보지는 못했다. 세석이 가까워지니 경사는 더욱 가파르다. 우리의 몸과 배낭의 질량을 더 높은 위치에너지로 이동 시키느라 다리가 고생이다. 다리근육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허파와 심장도 최고출력으로 가동 중이다.
백무동을 출발하여 한신계곡을 오른지가 벌써 5시간 정도 지났다. 드디어 주능선에 도착하니 바로 앞에 세석평전이 펼쳐지고 아담한 세석대피소도 보인다. 땀에 흠뻑 젖은 등짝으로부터 배낭을 떼어내어 세석대피소 밴치에 털썩 내려놓는다. 쉴 틈도 없이 30m정도 아래에 있는 샘에서 물을 떠와 점심용 라면을 끓인다. 지난번에는 여기서 거림골로 하산 하였지만 이번에는 여기서 벽소령까지 능선길을 3시간 정도 타야 한다. 세석에서 벽소령까지는 다소 굴곡진 바위 길이 많아 지리산 능선 중에 가장 까다로운 구간이다. 영신봉에서 분기하는 낙남 정맥이 지리산 남부능선을 이루며 청학동으로 달려가서 동쪽로 휘어진다. 영신봉 안부를 넘어서니 바위길 험로다. 바위봉우리 칠선봉을 트레바스 하기도 쉽지 않다. 안개비에 젖은 바위길이 미끄럽다.
3시간의 주능선길 주행 끝에 구 벽소령이 나오고 얼마 안가서 안개 속에 벽소령 대피소가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다. 대피소 벤치에 앉아 심옹이 여태 배낭 속에 무겁게 운송해 왔던 한라봉을 꺼낸다. 사이좋게 나눠 먹는 우리들을 안개에 젖은 희미한 덕평봉이 인자한 모습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벽소명월이라 했던가! 여태 지리산을 타면서 벽소령대피소에서 여러 번 밤을 지낸 것 같은데 그때마다 흐린 날씨에 달님을 본 적이 없다. 몇 년 전에 혼자 종주 하면서 치밭목대피소에서 1박을 한 적이 있다. 중봉 위에 뜬 보름달, 부서져 골짜기로 흘러내리는 달빛, 능선위로 쏟아지는 은하수와 반짝이는 별, 절망적으로 고요한 적요---, 그때 혼자 앉아 있기가 너무나 안타깝고 외롭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 우리 모두 함께 벽소령 벤치에 앉아 소주잔을 돌리며 벽소령 명월이와 하룻밤을 보낼 날을 기대해 본다.
습기를 가득 담은 바람이 뺨을 적신다. 더 추워지기 전에 벽소령을 뒤로 하고 광대골을 우측에 끼고 엄정마을로 하산을 재촉한다. 잠시 너덜 길 경사가 이어지더니 곧 평탄한 임도가 나온다. 지루한 임도 하산 길 2시간을 포함하여 모두 11시간을 걷고 난후 우리를 기다리는 노란버스에 지친 몸을 실으며 오늘의 2차 지리산 종주를 마친다.
-제 41차 : 2008/7/17 : 의신마을 아래에서 1박.
2008/7/18 : 삼정마을-벽소령-형제봉-연하천-명선봉-토끼봉-화개재-삼도봉-노고단-성삼재.
우리가 선택한 민박집은 칠불사에서 내려오는 계곡과 대성골에서 내려오는 계곡이 서로 마주치는 화개천 안에 삼각주처럼 자리 잡고 있어 양쪽에서 계곡물 소리가 들려오는 아늑한 곳이다. 지난번처럼 선수들은 잠버릇 종류별로 분류되어 방 배치가 이루어진다. 막걸리 몇 잔을 돌리고 난 후 양쪽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소등하고 잠자리에 든다. 단조로운 계곡물 소리가 창틀의 모기장 거물망을 넘어 들어와 방안의 캄캄한 어두움을 하얗게 부수고 있다. 모두 잠들지 못하고 오래도록 뒤척인다. 그러나 어느덧 계곡 물 소리는 태고의 음악으로 바뀐다. 꾸준히 들려오는 태고의 음률에 모두 완벽한 최면에 걸리고 결국 깊은 잠 속으로 곯아떨어지고 만다.
다음날 새벽 5시, 하늘이 밝아 올 즈음 우리들을 잠재웠던 계곡물 소리가 오히려 우리들을 최면에서 깨워준다. 영혼은 우리의 육신을 잠재워 놓고 계곡물을 따라가서 밤새 태고의 원시를 배회하다가 돌아온 것 같이 멍멍하다.
섬진강 제첩국으로 아침을 해결한다. 아직 잠이 들깬 이기사가 삼정까지 좁은 길을 덜컹거리며 버스를 몰고 올라간다. 삼정에 도착하니 여섯시 반이다. 군장을 꾸려 마지막 지리산 구간으로 입산한다. 서너 집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언덕을 지나 짙은 숲길로 들어선다. 땔감을 구하거나 텃밭을 가꾸기 위해 사람들이 다져놓은 일상의 길은 끝이 났다. 이제 수행하듯 마음을 가다듬고 걸어야 하는 구도의 길이 시작된다. 갑자기 암흑처럼 캄캄하다. 빽빽한 활엽수 잎이 두터운 지붕이 되어 하늘을 완전히 가렸기 때문이다. 속세의 번뇌를 벗어두고 구도의 세계로 넘어가는 거대한 일주문 안에 들어선 것이다. 모두들 발걸음이 가볍다.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한다.
판쵸우의를 끄집어내어 입고나니 이내 온 숲을 덮고 있는 활엽수 지붕으로 장대비가 내린다. 소낙비는 빽빽한 활엽수 지붕을 두들기고 푸른 지붕에서 떨어져 내리는 낙수 물은 판쵸우의를 뒤집어 쓴 우리의 어깨와 머리에 따발총소리를 내며 쏟아진다.
바로 왼쪽 빗점골과 오른쪽의 대성골은 빨치산 수만 명이 계곡물을 붉게 물들이며 몰살되고 토벌 된 곳이다. 빗점골에는 빨치산 사령관 이현상이 국군의 총탄에 최후를 맞은 곳이고 그의 아지트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펄럭이는 판쵸우의로 장대비 따발총과 맞서며 전진하는 우리 대원들의 행렬이 빨치산 토벌하러가는 그때의 우리 국군용사 같이 늠름하다. 등산화 속에 빗물이 가득 고인다. 이런 소나기에 고아텍스기능은 무용지물이 된다. 등산화 속에 수압이 차서 미지근한 물이 발 까락 사이로 왕복운동을 하며 질척인다. 오늘 하루 가장 중요한 발이 혹사당하는 것 같아 영 미안하다. 마지막 경사를 치고 올라 2시간 반 정도 만에 벽소령에 도착한다. 잠시 비는 그쳤다. 벽소령 벤치에 앉아 양말을 벗고 빨래 짜듯이 힘껏 짜서 등산화 속에 고인 물도 비우고 다시 신는다. 발이 한결 상쾌해진다. 노고단을 향해 길고 긴 능선길 7시간을 걷기 위해 배낭을 다시 둘러맨다. 여러 종류의 산새들이 운다. 잠시 비가 그치면 울다가도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울음을 멈춘다. 이제 여름 꽃도 많이 피었다. 녹음속에 핀 빨간 지리털이풀 군락이 아름답다. 비비추의 보라색 봉오리가 트질 듯 통실하다. 쥐손이풀도 분홍이 되어 수줍어한다. 빗물을 머금은 노란 원추리도 싱싱하다. 형제봉 높은 바위벽을 돌아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한다. 연하천 주변에는 주목군락을 보호하기 위해 펜스를 쳐놓았다. 여기 올 때 마다 주목 뿐만 아니라 많은 식물들이 싱싱하게 잘 보호 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요즘은 국립공원 어딜 가도 비교적 잘 관리 되고 있는 것 같다. 산꾼들이 점심식사를 지으려고 샘 주변에 붐빈다. 오후에는 개인다고 하는 일기예보가 맞는지 비가 그친다. 우리도 한자리 끼어 앉아 라면을 끓인다. 오늘은 선수가 10명이라 10개의 라면이 공기밥과 충분하다. 모두 배불리 먹는다. 작은 경사들을 수없이 오르고 내리며 명선봉, 토끼봉을 거쳐 화개재에 도착한다. 화개재 오른쪽 길은 뱀사골로 내려가는 길이다. 지금부터 악명 높은 삼도봉을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다. 외촌과 곰돌이가 하나 둘 세면서 올라간다. 이렇게 힘들고 피로한데 셈까지 하면서 오르니 힘도 좋다. 20여분을 천천히 올라도 무척 힘이 든다. 외촌이 카운트한 계단 수는 551개이고 곰돌이는 545개이다. 나중에 알았지만 공식적으로 551개가 맞단다.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축축한 판쵸우위를 다시 입는다. 반야봉으로 갈라지는 노루목 삼거리에 왔다. 돌 위에 주저앉아 다시 양말을 짜고 등산화속 빗물을 비운다. 벌써 세 번째 이 귀찮은 일을 하고 있다.
임걸령에 도착한다. 맛있고 시원한 임걸령 샘물을 한 모금씩 하고 수통의 물도 바꾼다. 김이 오르는 머리에도 물을 끼얹는다. 지금부터 노고단까지는 평탄한 길이고 얼마 남지 않았다. 대장, 외촌과 함께 그의 달리기 하듯이 빠르게 앞서 걷는다. 드디어 오늘의 종점이자 지리산 종주의 종점인 노고단! 이제 버스를 타기위해 임도로 성삼재까지 30분만 내려가면 된다. 짙은 안개 속에 노고단이 잠겨있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12시간의 긴 걸음을 감내한 우리 선수들이 한 명씩 노고단 능선으로 입성한다.
이번 우리의 지리산 종주가 보통의 산행인가! 세 밤을 지리산자락에서 자고 3일 낮을 주파한 거리가 58km 에다 걸은 걸음이 30시간이 넘는다. 일반적으로 중산리로 올라 두 밤을 대피소에서 자면서 능선 25km를 걷고 성삼재로 하산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것은 주능선만을 걸어가는 단조로운 산행이다. 그러나 우리는 중산리 법계사 능선을 넘었고 한신계곡 물줄기를 거슬러 올랐으며 삼정에서 작전도로를 타고 올랐다. 그때마다 거림골과 광대골을 하산 루트로 삼으니 주능선 25km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지리산을 모두 가보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주능선 종주에 더하여 지리산의 여기저기에서 최대한 오랜시간을 머물고 많이 둘러본 샘이다. 에너지와 경비와 시간이 많이 소요됐지만 이제 백두대간의 어머니산인 지리산의 앉음새와 모양새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잡히고 나름대로의 그림이 그려지게 된 것이다. 아직도 잠들기 전 어둠속으로 우리가 걸었던 지리산 여기저기가 파노라마처럼 어른거린다. 그 진한 잔상은 천연색의 4차원 지도가 되어 가슴속에 오래 오래 머물러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초록님이 무릎부상으로 마지막 회차에 참가 못해 아쉽지만 고난의 행군을 무사히 마친 우리 여성 선수들과 등산에 늦게 입문한 잉칠이 부부의 완주를 축하한다. 끝.
첫댓글 능선따라가 지리산 능선처럼 장대한주기를 썼다. 욕 봤슴다.
휴우~~~~~~~~
오늘 까페에 차한잔하러 들렸드니 능선따라의 지리산 종주기가 나를 반긴다.쓸줄은 몰라도 읽을줄은 알기에 노고에 대한 소감을 적어본다.우선,종주기 곳곳에 지리산에 대한 능선따라의 일편단심 애정이 짙게 베어있어 능선옆에님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을것으로 예상되어 걱정이다.뭇서방님들과 뭇남정네들로 부터 연서(戀書)와 연시(戀詩)를 끊임없이 받고 있는 지리산은 분명 그 GENDER(性)가 여성일게다.허나 우락부락한 바위와 방구가 많은것으로 보아,무시다리에 털이 더부룩한 시골아낙의 모습일 것으로, 질투의 강력한 대상은 되지 않을것 같다.
철마다 고운 옷 갈아입는 엄전함과 s라인의 황홀한 자태, 가끔 희뿌연 안개로 단장하여 유혹하는 지혜 그리고 언제라도 한결같이 반기며 앙탈부리지 않는 너그러운 품성이 있으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능선옆에님도 그런 여인을 사모하는 능선따라의 높은 안목에 반하여 능선따라를 더 사랑하지 않을까?
하룻밤을 유하다 떠난 나그네가 주막집 주모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알꼬?? 심옹의 심미안에 경탄하며---!!.
한오백년의 십분의 일 이상을 살아온 능선따라는 이제 세속의 도인이 되어,그는 그의 글을 통해 그의 철학을 설파하고 있는것으로 느껴진다.자연과 마음의 섬세한 묘사가 경이롭다."좌초록 우능선"을 가진 부동산 멤버들은 그들로 인해, 진한 삶의 희열을 느낄수 있어 행복하다.능선따라의 좋은 글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가을과 겨울의 지리산은 능선따라의 붓끝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하다. 이제 백두대간 종주대원들의 지리산 종주가 또 언제 있을지 알수없어 능선따라와 초록님의 지리산종주기를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게 된 것이 아쉽다.
가을이고 겨울이고 한 번씩 하면 되제... 음정에서 올라 오른쪽으로 한번, 왼쪽으로 한 번 하면 충분하겠네...
능선따라님은 산꾼이며 글꾼이다. '꾼'답게 그는 요란하지 않다. 산은 묵묵하지만 산의 심성과 자태와 위엄 앞에 우리가 늘 감동하듯, 능선따라님의 배려와 겸손과 숨겨진 글끼를 만날 때면 우린 또 감동하게 된다. 지리산 종주를 하면서 공유한 생생한 기쁨과 환희와 기억을 되살려 주는 능선따라님의 글발에 우리 모두는 행복하다. 마지막 종주부분을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이제는 지리산의 큰 라인을 짐작해 볼 수 있다.그리고 재치있는 영철님, 은유의 달인 심옹님... 그분들 댓글을 읽노라면 글의 멋과 맛이 무엇인지 배우게 된다. 각자가 다 아름다운 산이다.
Hey 능선따라 How do you feel the beautiful compliments above Are you satisfied
Yes, I am, but I feel much shyness, so I should escape to a mouse ho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