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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5장 33-42절. 가마리엘의 중재
1. 베드로와 사도들이 핍박자들을 향하여 말합니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32절)".
이 말이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을 크게 격분시켰습니다.
"저희가 듣고 크게 노하여(33절)“
33절.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when they heard this, they were cut to the quick and intended to kill them.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οἱ δὲ ἀκούσαντες, διεπρίοντο καὶ ἐβούλοντο ἀνελεῖν αὐτούς.
the now having heard, they were cut [to the heart] and were desiring to put to death them
직역하면 ‘이제 그들이 듣고서 계속 분노하고, 계속 그들을 죽이려고 했다’는 뜻입니다.
‘듣고’(ἀκούσ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이고(having heard), ‘크게 노하여’(διεπρίοντο)는 원래 ‘마음에 상처를 받다’는 뜻인데,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cut) 계속 분노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없이 하고자 할새’(ἐβούλοντο ἀνελεῖν)에서 앞의 동사(ἐβούλοντο)는 미완료형으로서(were desiring) 계속 무엇을 하려고(죽이려고) 한다는 뜻이고, 뒤의 동사(ἀνελεῖν)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put to death) 결심하고 꼭 죽이려고 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자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크게 노했습니다.
지금 사도들은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을 극악한 죄수로 정죄하여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메시아이며 죽었다가 부활하셨다고 증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죽인 죄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라고 크게 반박합니다.
이처럼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당신들이 메시아를 죽였소, 당신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를 범한 것이오’ 하고 저들을 정면으로 정죄했습니다.
사도들의 이 말을 듣고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충격을 받아 "어찌할꼬"하고 회개하기는커녕 이를 갈고 부들부들 떨면서 분노했습니다.
이렇듯 살기등등하고 험악한 상황을 오늘의 본문은 "크게 노하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34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a Pharisee named Gamaliel, a teacher of the Law, respected by all the people, stood up in the Council and gave orders to put the men outside for a short time.
바리새인 가말리엘은—-공회 중에 일어나
Ἀναστὰς δέ τις ἐν τῷ συνεδρίῳ Φαρισαῖος ὀνόματι Γαμαλιήλ,
Having risen up but a certain [man] in the Council
Pharisee named Gamaliel,
직역하면 ‘그러나 어떤 사람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새인이 공회에서 일어나서’란 뜻입니다.
‘일어나’(Ἀναστὰ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risen up)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분연히 일어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리새인’이란 유대 종파의 가장 엄한 종파였고, 부활을 믿었고, 모세 율법의 문자적인 해석에 지나치게 집착해서 사두개파보다 더욱 엄격한 유대교 종파였습니다.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νομοδιδάσκαλος τίμιος παντὶ τῷ λαῷ,
teacher of the law respected by all the people,
직역하면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율법 교사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새인이 공회에서 일어나)’란 뜻입니다.
‘존경받는’(τίμιος)은 형용사입니다( respected).
‘율법교사’란 유대교의 두 종파 사마이 학파와 힐렐 학파 중에서 힐렐학파의 시조격인 힐렐(가말리엘의 할아버지)과 시므온(가말리엘의 아버지), 가말리엘을 이어져서, AD 80-118년에 살았던 가미리엘에 이르기까지 모세 율법에 충실하려고 했던 유대교 종파의 서기관들과 율법교사들을 가리킵니다.
가말리엘 같은 율법교사는 천여 명의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었으며, 500명은 모세 율법을 연구했고, 500명은 헬라의 지혜를 연구하여 탈무드를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가말리엘 문하생으로서 헬라의 시들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Baker.
‘가말리엘’은 당시 산헤드린 공회원이었고, 공회의장은 아니었으나, 당대에 가장 존경받는 유대인 교사였고(most famous Jewish teacher), 역시 유명한 율법 교사인 힐렐(Hillel)의 손자였으며, 사상이나 성품이 온건한(moderate)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에 대한 처벌에 대해서도 온건한 입장을 피력했습니다.
이 가말리엘의 제자로서 유명한 사람은 탈굼 학교 옹켈로스(Onkelos the Talgumist)와 사울인데, 이 사울은 나중에 예수 믿고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행 22:2-3)
이 가말리엘은 기독교 전승기록(Clementine Recognition)에 의하면, 나중에 그의 아들들인 아힙과 니고데모와 함께 사도 베드로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멸망한 AD 70년이 되기 전에 AD 62년에 죽었다고 합니다. Baker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ἐκέλευσεν ἔξω βραχὺ τοὺς ἀνθρώπους ποιῆσαι,
he commanded [them] outside for a short time the men to put.
직역하면 ‘그가 그 사람들을 잠깐 동안 밖에 나가도록 명령했다’는 뜻입니다.
‘명령했다’(ἐκέλευσεν)는 부정사형 동사로서(he commanded) 단호하게 명령한 것을 가리킵니다.
‘나가게’(ποιῆσαι)는 부정사형 동사이고(to put) 원형(ποιέω)은 ‘하다, 하게 만들다’( do, act, cause)는 뜻인데, ‘밖에’(ἔξω)라는 말과 합쳐서 ‘밖에 나가게’로 번역했습니다.
34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1. 바로 그때에 가말리엘이라고 하는 바리새인 교법사가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 앞에 나서서 지혜로운 말로 사도들을 죽이지 못하게 만류합니다.
이 가말리엘은 사도 바울의 예수 믿기 전 스승이었습니다(행 22:3).
히브리 문헌에 보면 힐렐이라고 하는 유명한 율법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한 말은 「탈무드」에도 실려 있습니다.
이처럼 온 유대인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힐렐의 손자가 바로 가말리엘입니다.
당시 이 가말리엘은 힐렐 만큼이나 유명하고, '율법의 영광'이라고 하는 별명을 가졌습니다.
이 당시 사람들은 가말리엘을 다른 랍비들보다 더 존경하려고 ‘라반’이라고 불렸습니다.
가말리엘은 "이스라엘 사람들아"라는 말로 말문을 엽니다.
"여러분"이라고 하지 않고 "이스라엘 사람들아"라고 말한 것은 선민의 특권과 영광을 내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먼저 선민의 긍지를 저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택함받은 백성입니다. 그러니 소홀히 처신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라는 의식을 깨우쳐 주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2. 가말리엘은 베드로와 요한을 밖으로 내보낸 연후에 저들에게 말을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람은 일대일로 단둘이 마주할 때에는 말을 바로 할 수도 없고, 내 잘못을 인정하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두 형제가 싸웠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동생 앞에서 형을 때리면서 잘못했다고 빌라고 하면 죽어도 안 합니다.
그러나 엄마와 큰아들이 일대일로 단둘이만 있을 때에는 엄마가 아들에게 잘못했다고 하라고 하면 얼마든지 합니다.
하지만 동생이 옆에 있어서 자신이 매 맞는 것을 동생이 지켜보는 상황에서는 좀처럼 잘못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즉 베드로와 및 사도들이 서 있는 그 앞에서 대제사장이 '가말리엘 당신 말이 옳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을 밖에 나가게 한 것입니다.
3. 이어서 그는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36절)"라고 역사적인 사례를 들어 말합니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의 방법입니다.
즉 히브리 사람들은 추상적 이론이나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언제나 역사적 사건으로 설명을 하곤 합니다.
가말리엘이 본문에서 예로 들고 있는 역사적 사건은 두 가지입니다.
그것은 드다와 갈릴이 유다의 사건입니다.
35절.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said to them, "Men of Israel, take care what you propose to do with these men.
말하되
εἶπέν τε πρὸς αὐτούς
he said then to them,
직역하면 ‘그 후에 그가 그들에게 말했다’는 뜻입니다.
‘말하되’(εἶπέν)은 부정과거로서(he said) 단호하게 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Ἄνδρες Ἰσραηλεῖται,
Men Israel,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προσέχετε ἑαυτοῖς ἐπὶ τοῖς ἀνθρώποις τούτοις, τί μέλλετε πράσσειν.
take care to yourselves with the men these, what you are about to do
직역하면 ‘이 사람들에 대해서 너희가 무엇을 하려는지 스스로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조심하라’(προσέχετε)는 현재 명령형입니다(take care).
‘하려는지’(μέλλετε πράσσειν)에서 앞의 단어(μέλλετε)는 현재형이고(you are about), 뒤의 단어(πράσσειν)는 부정사형입니다(to do).
36절.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For some time ago Theudas rose up, claiming to be somebody, and a group of about four hundred men joined up with him. But he was killed, and all who followed him were dispersed and came to nothing.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πρὸ γὰρ τούτων τῶν ἡμερῶν ἀνέστη Θευδᾶς,
before for these the days rose up Theudas
직역하면 ‘왜냐하면 이전에 드다가 일어났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일어나’(ἀνέστη)는 부정과거로서(rose up) 과거에 드다가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스스로 선전하매
λέγων εἶναί τινα ἑαυτόν,
saying to be somebody himself
직역하면 ‘스스로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하여’란 뜻입니다.
‘이라고’(εἶναί)은 부정사형 동사이고(to be) ‘말하여’(λέγων)는 현재분사입니다(saying).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ᾧ προσεκλίθη ἀνδρῶν, ἀριθμὸς ὡς τετρακοσίων·
to whom were joined of men, number about four hundred
직역하면 ‘그에게 약 사백의 사람들이 합세하였다’는 뜻입니다.
‘따르더니’(προσεκλίθη)는 원래 명사로서(partiality) ‘치우침으로’라는 뜻인데, 여기서는 동사형태로 쓰여서 ‘치우쳤더니, 따르더니, 합세했더니’란 뜻입니다(were joined).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ὃς ἀνῃρέθη, καὶ πάντες, ὅσοι ἐπείθοντο αὐτῷ διελύθησαν
who was put to death, and all, as many as were persuaded by him, were dispersed,
직역하면, ‘죽임을 당하매, 그에게 설득당한 모든 자들이 흩어졌다’는 뜻입니다.
‘죽임을 당하매’(ἀνῃρέθη)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as put to death) 과거에 죽임을 당한 분명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따르던’(ἐπείθοντο)은 미완료과거 수동태로서( were persuaded), 계속 설득당하여 계속 따라다니던 것을 가리킵니다.
‘흩어져’(διελύ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re dispersed) 다 완전히 흩어져버린 것을 가리킵니다.
없어졌고
καὶ ἐγένοντο εἰς οὐδέν.
and it came to nothing
직역하면 ‘그래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되었다’(ἐγένοντο)는 부정과거로서(it came) 완전히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끝장 난 것을 가리킵니다.
드다는 BC 4년에 죽은 사람입니다.
드다는 자칭 메시아라고 나서서, '나는 여호수아의 후예로서 여호수아처럼 이 민족을 구할 것이다. 맨발로 요단강을 건너게 해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유대인들이 자기를 따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로마의 지배에서 유대 나라를 기적적으로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따르던 사람의 수가 약 사백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드다가 로마 병사와 싸우다가 BC 4년에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러자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모두 흩어져 없어졌습니다.
1. 첫 번째 예가 바로 '드다'라고 하는 사람에 관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드다는 BC 4년에 죽은 사람입니다.
드다는 자칭 메시아라고 나서서, '나는 여호수아의 후예로서 여호수아처럼 이 민족을 구할 것이다. 맨발로 요단강을 건너게 해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유대인들이 자기를 따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로마의 지배에서 유대 나라를 기적적으로 해방시켜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따르던 사람의 수가 약 사백 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드다가 로마 병사와 싸우다가 BC 4년에 갑자기 죽었습니다.
그러자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모두 흩어져 없어졌습니다.
2. 가마리엘이 든 두 번째 예는 갈릴리인 유다입니다.
37절.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fter this man, Judas of Galilee rose up in the days of the census and drew away some people after him; he too perished, and all those who followed him were scattered.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μετὰ τοῦτον ἀνέστη Ἰούδας ὁ Γαλιλαῖος ἐν ταῖς ἡμέραις τῆς ἀπογραφῆς
After this rose up Judas the Galilean in the days of the registration
직역하면 ‘이 후에 호적할 때, 갈릴리인 유다가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일어나’(ἀνέστη)는 부정과거로서(rose up) ‘일어났다’는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호적할 때’란 누가복음 2장 2절에 기록된 예수님 탄생 당시의 총독 구레뇨(Qurinius)의 첫 번째 호적할 때를 가리키지 않고, AD 6년에 한 호적(cenus)을 가리킵니다.
이 호적은 로마제국이 식민지에서 세금을 잘 걷기 위해서 한 인구조사였습니다.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καὶ ἀπέστησεν λαὸν ὀπίσω αὐτοῦ·
and he drew away people after him
직역하면 ‘그리고 그는 백성이 자기를 따르게 했다’는 뜻입니다.
‘따르게 하다가’(ἀπέστη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 drew away) 과거에 갈릴리 유다가 백성들이 자기를 따르게 한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도 망한즉
κἀκεῖνος ἀπώλετο,
and he perished,
직역하면 ‘그도 망했다’는 뜻입니다.
‘망한즉’(ἀπώλετο)은 부정과거로서(he perished) 그가 망한 역사적인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καὶ πάντες ὅσοι ἐπείθοντο αὐτῷ, διεσκορπίσθησαν.
and all as many as were persuaded by him, were scattered
직역하면 ‘그에게 계속 설득당하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다’는 뜻입니다.
‘따르던’(ἐπείθοντο)은 미완료과거로서(were persuaded) 계속 따라다니던 것을 가리킵니다.
‘흩어졌느니라’(διεσκορπίσ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re scattered) 뿔뿔히 다 흩어져버린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갈릴리인 유다는 갈릴리 동부 골란 지역 가말라(Gamala in Gaulantis) 출신이고, 로마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유대고대사 18권 1장 1절)
이 갈릴리 유다는 로마 군대에게 파멸당했으나, 그 후로 이 사람의 독립운동을 이어받아서 소위 ‘열심당원’(the Zealots)이 생겼습니다. (행 1:13, 마 10:4) <유대전쟁기 2권 8장 1절>
이 열심당원들 중 도망간 사람 중에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열심당 시몬(Simon the Zealot)이라고도 하고, 가나안인 시몬이라고도 하는 사람입니다. (마 10:3, 눅 6:16)
1. 이 유다도 자칭 메시아로 나섰지만, 로마 군사와 싸우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유다는 구레뇨가 수리아 지방의 총독으로 있을 때 사람이었습니다.
수리아 지방 총독 구레뇨는 세금을 많이 거두기 위해서 AD 6년에 식민지 백성들에게 호적령을 내렸습니다.
그 때 갈릴리 사람 유다가 나서서 대항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께만 세금을 바칠 것이지, 그 누구에게도 세금을 내지 못 한다'라는 말로 선민의식을 고취해서 로마에 대항했습니다.
이것은 로마 정부에 대항하는 혁명 운동이었습니다.
그러자 많은 젊은이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로마에 대항하다가 결국 잡혀서 죽었습니다.
그러자 역시 유다를 따르던 무리들이 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3) 이 두 사건에서 본 대로 주동자가 없어지면 추종자들이 흩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말리엘은 스스로 메시아라고 주장한 예수라는 사람이 죽었으니, 가만두어도 따르는 무리들이 흩어질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38절.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in the present case, I say to you, stay away from these men and let them alone, for if this plan or action is of men, it will be overthrown;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καὶ τὰ νῦν λέγω ὑμῖν,
and the now I say to you,
‘말하노니’(λέγω)는 현재형입니다( I say).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ἀπόστητε ἀπὸ τῶν ἀνθρώπων τούτων, καὶ ἄφετε αὐτούς·
withdrew from the men these, and let alone them ,
직역하면 ‘이 사람들에게서 떠나라, 그리고 그들을 그대로 두라’는 뜻입니다.
‘상관 말고’(ἀπόστητε)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withdrew) 단호하게 떠나라(depart)고 명령한 것을 가리킵니다.
‘버려두라’(ἄφετε)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let alone) 단호하게 그대로 두라고 엄히 명령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ὅτι ἐὰν ᾖ ἐξ ἀνθρώπων, ἡ βουλὴ αὕτη ἢ τὸ ἔργον τοῦτο,
for if be from men, the plan this or the work this
직역하면 ‘만일 이 계획과 행동이 사람들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여기 동사(ᾖ)는 현재 가정법 동사입니다(be).
무너질 것이요
καταλυθήσεται·
it will be overthrown
‘무너질 것이요’(καταλυθήσεται)는 미래 수동태로서(it will be overthrown) 앞 문장과 결합하여 ‘장차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는 뜻입니다.
‘무너진다’는 것은 ‘무너지는 집처럼’(kike falling house) 무너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가말리엘’은 바리새인의 지도자로서 부활을 믿었고, 참 신중한 사람이었는데, 당시 같은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니고데모나 아래마대 요셉과 같이 나중에 기독교에 복종한 허다한 종교지도자들 중의 하나였습니다(행 6:7).
이전에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찾아와 중생의 말씀을 들었고(요 3:1-6), 공회원들에게 그리스도에 대해서 내버려두라고 충고했고( 요7:50-51), 아리마대 요셉은 대제사장 가야바와 공회의 행위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눅 23:51)
이 가말리엘이 예수교에 대해서 신중하고 관대했던 것은 소년 예수님이 12세쯤일 때 성전에서 율법교사들과 대담할 때, 아마도 가말리엘이 그 장소에 있는 사람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라고 추정합니다( 눅 2:46).
39절.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if it is of God, you will not be able to overthrow them; or else you may even be found fighting against God."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εἰ δὲ ἐκ Θεοῦ ἐστιν,
if but from God it is
직역하면 ‘그러나 만일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이면’이란 뜻입니다.
‘이면’(ἐστιν)은 현재형입니다(it is).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οὐ δυνήσεσθε καταλῦσαι αὐτούς,
not you will be able to overthrow them;
‘무너뜨릴 수’(δυνήσεσθε καταλῦσαι)에서 앞의 동사(δυνήσεσθε)는 미래형이고(you will be able) 뒤의 동사(καταλῦσαι)는 부정사형 동사입니다(to overthrow).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μή ποτε καὶ θεομάχοι, εὑρεθῆτε.
lest ever also fighting against God, you would be found
직역하면 ‘너희가 하나님에 대해 싸우는 자로 발견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θεομάχοι)은 형용사인데(fighting) 이 단어 자체가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는’(fighting against God)이란 의미를 갖고 있고, ‘발견되지’(εὑρεθῆτε)는 부정과거 가정법 수동태로서(you would be found) 결코 대적하는 자로 발견되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의지를 표명한 것입니다.
1. 신중한 유대교 교사인 가말리엘의 주장대로, 유대교 지도자들은 신흥 기독교를 무너뜨리지 못했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음부의 권세가 예수님의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마 16:18).
이처럼 예수님의 교회는 신적인 기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적인 기원을 갖고 설립된 자연종교들 즉 불교와 유교와 회교가 예수님의 교회를 결단코 이길 수 없습니다.
심지어 기독교는 이교도들의 압박과 공격에도 굳굳히 살아남았으며, 오히려 이교도를 정복해버렸습니다. Baker.
2. 가말리엘은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에게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38, 39절)"고 말했습니다.
즉 예수 메시아 운동이 하나님의 뜻이면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하나님을 대항하는 것이 되고, 이것이 인간적인 조작으로 이루어진 광적인 운동이라면 이제 없어질 때가 되었으니 조용히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가말리엘의 말을 받아들임으로써 베드로와 사도들을 협박하고 때려서 풀어주었습니다.
3. 그런데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은 가말리엘의 말을 듣고 사도들을 풀어주기로 결정하고서도 사도들에게 채찍을 가했습니다.
40절.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y took his advice; and after calling the apostles in, they flogged them and ordered them not to speak in the name of Jesus, and then released them.
그들이 옳게 여겨
ἐπείσθησαν δὲ αὐτῷ,
They were persuaded now by him,
직역하면 ‘그들이 그에게 설득당하였다’는 뜻입니다.
‘옳게 여겨’(ἐπείσ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They were persuaded)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가말리엘의 말에 확실하게 설득당해서 공감한 것을 가리킵니다.
사도들을 불러들여
καὶ προσκαλεσάμενοι τοὺς ἀποστόλους
and having called in the apostles
‘불러들여’(προσκαλεσάμενοι)는 부정과거 분사입니다(having called in).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δείραντες, παρήγγειλαν μὴ λαλεῖν ἐπὶ τῷ ὀνόματι τοῦ Ἰησοῦ
having beaten, they commanded [them] not to speak in the name of Jesus,
직역하면 ‘채찍질하며, 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명령했다’는 뜻입니다.
‘채찍질 하며’(δείρα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beaten) 엄히 채찍질한 것을 가리키고, ‘금하고’(παρήγγειλαν)는 부정과거로서(they commanded) 엄히 명령했다는 뜻입니다.
‘말하지 말라고’에서 동사(λαλεῖν)는 부정사형 동사(to speak)입니다.
율법교사 가말리엘이 관용론을 주장하여 만장일치로 산헤드린 재판이 가결되었지만, 반바리새파인 사두개파 사람들이 사도들을 채찍질하는 형벌을 가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도 이 채찍 형벌을 당하셨고( 요 19:1), 나중에 바울도 다섯 번이나 이 형벌을 당했습니다( 고후 11:24).
이 채찍은 두 가닥의 가죽끈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 가죽끈에는 동물의 뼈나 톱니 같은 쇠가 달려 있어서, 전갈 채찍이라고도 불리어졌습니다(왕상 12:12).
그렇지만 ‘채찍질’이란 형벌은 사형과 같은 중형이 아니고 비교적 가벼운 범죄에 해당한 형벌이었습니다.(The punishment was for minor offenses).
이 채찍질은 고린도후서 11장 24절에 말씀한 대로, 40에 하나 감한 채찍질이었습니다.
이 채찍질은 살갗이 찢어지고, 가끔 죽기도 하는 무서운 형벌이었습니다.
놓으니
καὶ ἀπέλυσαν.
and released (them).
‘놓으니’(ἀπέλυσαν)는 부정과거로서(released)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이 때 사도들이 맞은 채찍에 대해서 히브리 사람들의 문헌 가운데 「미쉬나」라고 하는 책에 자세히 기록해놓았습니다.
즉 죄수의 상반신을 벗겨서 두 손을 기둥에 묶어놓고 가슴과 어깨를 열세 번씩 채찍으로 때렸습니다.
신명기 25장 3절에도 이 태형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사십까지는 때리거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과다히 때리면 네가 네 형제로 천히 여김을 받게 할까 하노라.“
이 말씀에 따라서 저들은 39대를 때렸습니다.
이것이 저들의 관례였습니다.
이 채찍은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두 개의 가죽끈을 묶어놓고 끝은 네 가닥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태형을 가할 때에 재판장이 "때려라"하고 명령하면 한 사람은 때리고 한 사람은 옆에서 그 수를 셉니다.
이렇게 39대를 때립니다.
이처럼 매질을 하는 동안에 우스꽝스러운 것은 제사장이 다음과 같은 성경을 읽습니다.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너의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신 28:58,59)."
그리고 신명기 29장 9절의 말씀을 읽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4절에 말씀한 대로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습니다.
이처럼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매를 맞았던 것입니다.
41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they went on their way from the presence of the Council, rejoicing that they had been considered worthy to suffer shame for His name.
사도들은--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Οἱ μὲν οὖν ἐπορεύοντο, χαίροντες, ἀπὸ προσώπου τοῦ συνεδρίου,
they indeed therefore departed, rejoicing, from presence of the Council,
직역하면 ‘그러므로 그들은 참으로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다’는 뜻입니다.
‘기뻐하면서’(χαίρ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rejoicing) 계속 기뻐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떠나니라’(ἐπορεύοντο)는 미완료과거로서(departed) 산헤드린 공회를 떠나서 계속 걸어가는 모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ὅτι κατηξιώθησαν ὑπὲρ τοῦ Ὀνόματος ἀτιμασθῆναι·
that they had been considered worthy for the name to suffer shame
직역하면 ‘그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김 받는 것을 (기뻐하면서)’란 뜻입니다.
‘능욕 받기에’(ἀτιμασθῆναι)는 부정사형 동사이고(to suffer shame) 앞의 ‘합당한 자로 여김 받는’에 연결됩니다.
‘합당한 자로 여김 받는’(κατηξιώ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they had been considered worthy) 확실하게 합당하게 여김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1. 사도들의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의 모습입니다.
성경에는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고 했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마 5:10)"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42절.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every day, in the temple and from house to house, they kept right on teaching and preaching Jesus as the Christ.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πᾶσάν τε ἡμέραν, ἐν τῷ ἱερῷ καὶ κατ’ οἶκον,
every then day, in the temple and in house,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οὐκ ἐπαύοντο διδάσκοντες καὶ εὐαγγελιζόμενοι τὸν Χριστὸν Ἰησοῦν.
not they ceased teaching and preaching the Christ (is) Jesus
‘가르치기’(διδάσκ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teaching) 계속 가르치는 것을 가리키고, ‘전도하기’(εὐαγγελιζόμενοι)도 현재분사로서(preaching) 계속 전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치지 아니 하니라’에서 동사(ἐπαύοντο)는 미완료 과거로서(they ceased) 계속 그치지 않고, 가르치고 전도했다는 뜻입니다.
1. 방금 매를 맞고 나왔고 유대인들의 위협을 잘 알면서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증언하기를 쉬지 아니했습니다.
참 아름답고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이러한 성령 충만하고 아름다운 신앙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