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의 진주성 전투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 한 토막...
진주는 옛 진양군과 하나로 통합되었고 산청군과는 인접하고 있는데, 고대엔 가야국의 주요 중심지였기도 했다. 백두대간의 최종 혈자리인 지리산으로부터 기를 받아서인지 진주, 산청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 출신들은 예로부터 늘 나라의 공직, 재계, 학계, 문화계, 종교계 각 분야의 중추에 널리 포진해왔다.
재계의 경우엔 삼성, LG, 현대를 비롯한 많은 기업의 창업주들이 이곳 출신인데, 삼성과 LG는 선조 대대로 이곳이 고향이고, 현대는 창업주가 이북 출신이지만 선대의 뿌리를 진주로 보고 족보를 작성하고 있기도 하다.
그중 삼성가는 고대의 전생으로부터 이어진 아주 흥미로운 내력이 있다.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회장은 전생에 대가야국 마지막 왕으로 학문과 수행이 깊었고, 당시 일본에 철기문화 등 문물을 전수해 주었으며, 그런 인연으로 인해 훗날에는 전국시대 일본을 통일하고 쇼군으로 등극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들로 환생하여 후계자로서 일본을 다스렸다고 한다.
이후에는 원래 자신이 왕이었고 가야국의 주요 근거지였던 지금의 진주 땅에 태어나 삼성을 창업하여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이병철회장은 전생에서처럼 현생에서도 문화분야에 조예가 깊었다.
삼성을 물려받아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이건희 회장은 전생이 바로 일본 도쿠가와 이에야스였고 그렇기에 현생에서는 전생의 부자관계가 그 역할이 바뀌어서 한국에서 나타난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원흉이었는데, 그의 라인으로 일본 막부의 쇼군이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카르마를 갚기 위해 지금의 한국땅 진주를 근거지로 하는 이병철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게 되었고, 일생을 삼성을 통한 한국의 경제 부흥을 위해 봉사했던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진주라는 곳인데 두 가지 재미 있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병철회장은 원래 자신이 가야국의 왕이었던 인연을 따라 가야국의 주요 중심지였던 진주에서 다시 환생을 했는데, 아들로 들어온 이건희는 삼성을 계승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임진왜란 최고의 격전지이자 조선인 최대의 피해지(65,000명 전사) 였던 진주성 전투의 카르마와 관련한 상징적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보여진다.
임진왜란 막바지에 왜군은 명나라와 종전협상을 하고 남쪽으로 철수하고 있었는데, 1차 진주성 전투 (역사에서는 한산대첩, 행주대첩, 진주대첩을 3대 승전으로 기록하고 있음) 에서 대패한바 있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철수중인 고니시 유키나가, 가토오 기요마사 등에게 2차 진주성 공격을 명령하여 10만명 가까운 왜군에 의해 결국 무너지게 되고 성 안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의 주군이 명령을 내리고 왜군들에 의해 전 국토를 유린당한 조선의 후신인 한국에서, 그것도 진주땅에서 삼성 이병철회장의 후계자로 들어왔던 것이다.
우리의 삶은 카르마의 법칙과 환생으로 균형을 잡는 보이지 않는 하늘의 섭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눈앞의 모습이 아닌 배후의 원리를 보면 아주 치밀하게 조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진주 산청 지리산 천왕봉 아래 첫 마을에서 태어난 인연으로 명상 중에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해보았다.
태얼랑
※전생 상담가 박진여 이야기 참고
※김정탁의 인문지리기행 참고
임진왜란 3대대첩이자 최대의 격전지였던 진주성 이야기
(군사와 백성 65,000만 명이 전사한 진주와 진주비빔밥)
https://naver.me/FxXPgkTQ
첫댓글 ......!!!!!!!!
카르마는 눈에 보일 정도로 3차원적인 방식도 있고
역사적으로 길게 보아야 보이는 것도 있고
4,5 차원 이상의 안목으로 통찰해야 보이는 것도 있다
카르마가 크고 깊은 경우에는
위 세가지 방식으로 겹쳐서 갚아야 하는데
국가 간의 카르마가 그런 경우가 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카르마의 그물망은
지은 만큼 반드시 갚고 해소되어야만 벗겨진다.
일본은 늘 그런 이치를 망각하면 안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쌓이고 쌓여서
어느 시점에 한꺼번에 갚게 되는 일이 생긴다.
동서양 예언에서 일본의 미래에 대해 하는 얘기들이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대목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