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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 전래동화 속의 철학 3
저-이종란
출-철학과 현실사
독정-2018.1.22.
ㆍ교육 본래의 목적이 입신양명과 생존 경쟁을 위한 수단적 교육에 의해 무너진 지 오래다. 아이때부터 정도에서 벗어남을 체험하는 비극의 시작이다. 우리 사회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만 가중되고 있다. 조선 말기 사회의 지도층의 무능학과 부패로 국권 상신의 유산을 물려받고, 일제 시대와 군정기를 거치면서 민족 문화와 가치가 왜곡되었고, 군사 정권의 혹독한 영향 아래서 우리 가치관이 자율적이면서 합리적으로 확립되거나 교육되기 어려웠다. 게다가 민주화 이후 세계화다 국제화다 하여 서양 문물을 거침없이 받아들여 우리 정체성마저도 상실될 위기에 놓였다. 영어를 공용어호 하자는 얼빠진 생각이 시대에 앞서가는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런 의미에서 총체적 위기다. 우리가 새롭지 않으면 우리 민족의 미래가 없다. 단지 머리 속만 새로워진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럴 능력과 실천이 없으면 밝은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
ㆍ나뭇과 선녀에서 선녀는 그다지 나무꾼을 사랑하지 ㅇ낳는다. 아이를 둘이나 낳았지만 나무꾼을 두고 하늘로 갔다. 마지못해 아이들 아버지로만 대해주는 듯하다. 또한 사랑의 시작이 정당한 방법이 아니고 선녀의 옷을 훔쳐 시작했기 때문에 참사랑이라 하기도 어렵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졌기 때문에 사랑의 이야기의 주제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슬픈 이별이 주제일 수 있다. 나무꾼은 어머니를 만나러 왔다가 하늘로 가지 못하고 어머니와 살게 된다. 이 전래동화를 만든 이의 의도가 남편은 아내와 자식을 버릴 수 있어도, 자식은 부모를 버릴 수 없다는 데 있다. 하늘의 아내와 자식과 땅의 어머니 가운데 누가 더 소중하냐 물으면, 이야기 결말을 통해 어머니라 답할 것이다. 선녀와 아이들은 나무꾼 없이도 하늘에서 잘 살수 있지만, 어머니는 나무군 없으면 살기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판단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따라서 이 이야기에서 가장 큰 갈등은 선녀와 어머니 중 한 사람을 선ㅌ택해야 하는 ㄱ더다. 해결은 어머니를 선택하는 것으로 결말났다.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어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 부모를 버릴 수 있는 일을 경계한 것이 이 이야기 핵심이다. 이 야이기를 부분으로 잘라보면 사랑, 은혜 갚기, 부모 공양 의무다.
선녀는 나무꾼에게 올라가지 못할 나무다. 사슴이 은혜 갚으려고 내려준 두레박이 나무꾼에게는 그 나무에 올라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를 보고 싶어 천마를 타고 왔다가 나무에서 떨어졌으니 결국 나무에 올라가지 못한 꼴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신분의 한계가 있다.
ㆍ우리가 즐겨 보는 사극이나 여화 세트가 대부분 민속촌이다. 극은 달라도 장소와 모양이 비슷하다. 이제 우리 젊은 세대들은 전래 동화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민속촌 정도로 생각한다. 은연중에 보고들은 것이 그것이라서. 이런 것이 세뇌 효과다 똑같은 것을 반복해 보여주거나 들려주면 생각도 이렇게 된다. 그래서 문화의 다양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요즘 각종 전시관이나 소형 박물관이 많이 생기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고 다행한 일이다.
ㆍ콩쥐 팥쥐 이야기에서 팥쥐 엄마가 콩쥐 아버지께 재혼한 건 손해볼 게 없다. 우선 먹고사는 문있다. 팥쥐 엄마가 시집오기 전에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심술 많고 성격이 포악한 것을 보면 좋은 환경에서 살았던 것 같지 ㅇ낳다. 콩쥐 아빠의 성이 최씨 이름은 만춘. 직업은 전직 아전(고을 관청에서 일을 보던 낮은 관리, 주로 중인)이었으며 전라도 전주 부근으로 되어 있다. 어머니의 성은 조씨로 새 엄마의 성은 배씨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부인 이름은 없고 성만 남아 있어 이름을 알 수 없다. 배를 짤 때 도와준 사람은 선녀가 아니라 직녀 선녀라고 전하고 있다. 연꽃으로 피어난 콩쥐가 팥쥐를 계속 괴롭히는 사건도 있다. 그러니까 이야기가 소설로 되고 나중에 이것들이 서로 섞여서 전래되고 있어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콩쥐 정식 이름은 최콩쥐다. 착한 아이는 콩, 나쁜 아이는 팥을 이름 뒤에 붙였는데 콩은 된장, 간장, 콩나물, 떡, 두부, 과자, 콩기름, 콩엿 등을 만드는데 쓰인다. 팥은 덕, 팥죽, 팥밥 등에 쓰인다. 오곡 중에 콩이 꼭 들어갔고 밭 가운데 이랑을 만들어 콩을 심고 팥은 밭 가장자리나 자투리땅에 주로 심었는데 이처럼 쓰임새의 중요성에 따라 차별을 두지 않았나 싶다. 팥쥐보다 콩쥐에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이름에서 착한 아이를 콩쥐로 해서 차별성을 두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징그럽다고 하는 쥐를 왜 이름에 붙였을까? 생쥐, 생쥐, 다람쥐. 그냥 지가 붙은 동물은 두더지, 돼지, 강아지, 망아지, 마꾸라지가 있다. 쥐나 지가 소리가 비슷하니까 강아지나 망아지처럼 들에 흔해빠진 콩이나 팥 뒤에 쥐를 붙였을까? 대표적인 것이 강아지다. 대개 귀엽다. ‘내 강아지’ ‘예쁜 내 새끼’ ‘똥강아지’ 등으로 부른 걸보면 쥐가 귀엽다고 붙여진 이름인 듯. 신데렐라는 혼인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끝나지만, <콩쥐팥쥐>는 콩쥐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며 계모와 그 딸이 벌을 받는 데 이어진다. 세상의 나쁜 놈은 누군가 혼내주면 좋으련만, 당시 그런 것이 불가능했으므로 이야기를 통해서 민중의 집단적 스트레스를 풀고 문학적 카타르시스를 얻으려고 팥쥐와 새엄마를 철저하게 응진한 이야기로 끝을 맺었다.
<누굴 의지하고 사나?>
물 길어오고 방아 찧고 베 짜는 데 두꺼비나 참새나 선녀가 도와준 것 또한 고되게 노동 해야 했던 부녀자들의 하소연의 상징이다. 세금 납부는 쌀이나 옷감으로 대신 했으니 방아 찧고 베를 짜는 것이 여자 몫으로 고통을 당하는 민중이 기댈 것은 세상에 없어 종교에 의지한 듯. 조선 후기 새로운 종교가 발 붙일 수 있는 좋은 토양이 되었다. 천주교가 전래될 당시 그 전래를 묵인하다가 나중에 극도로 탄압했지만 교인 수가 증가하였고 동학 또한 생긴 지 얼마 안 되어 그 교도가 엄청 불어났으며 기독교가 전래되자 신도수가 늘어난 것도 현실에서의지할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머리 아홉 달린 도둑>
아내를 훔쳐간 도둑을 찾으러 길 떠난 남편이 산속에서 할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하자 할머니는 산삼을 주며 힘을 길러 가보라 한다. 아홉 9는 많다는 뜻이다. 주역에서 2,4,6,8.10은 음수. 땅의 수라고 하고 홀수는 하늘의 수라 했다. 임금 사는 곳을 구중궁궐, 구중심라 했는데 많은 대문으로 둘러싸인 집이란 뜻이다. 머리가 아홉 달린도 머리가 많다는 뜻이다. 시화에 ‘히드라’괴물도 머리가 아홉이고 성서의 <요한게시록>에 머리가 일곱 달린 용과 짐승이 나오는데 불길한 재수 없는 것(악마)을 상징한다. 머리가 아홉 개난 달렸음므로 힘과 능력이 보통 사람의 것과 다름을 나타냈다. 이 동화에서처럼 보통 이야기나 신화의 영웅이나 민족의 메시아는 젊은이다. 미국 영화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검쟁이다. 조선시대 남자들이 듣기 싫은 소리 역시 ’졸장부‘였다.
ㆍ요즘처럼 노인이 천대받는 세상도 없다고 한다. 상품의 소비층이 젊은이들이기 때문이다. 노인들은 근검과 절약을 미덕으로 알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만 소비한다. 젊은이들은 물건의 모양이나 기능이 조금만 향상되어도 새것 사지 않고 못 배긴다. 노인들은 대개 순발력 있게 새로운 상품 만드는 아이디어를 제공하지 못한다. 인생의 기준이 살아온 과거에 있어서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는 관심이 적다. 젊은이들은 순간 순간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새로운 물건을 만들 수 있게 한다. 결국 돈을 잘 버는 일에 젊은이가 더 유용하다. 과거는 농사가 주요 산업이라 노인의 경험이 토대가 되고 토지 소유주 노인의 권위가 막갛앴다. 유학 근본정신도 효제(어버이 공경하고 형 섬김) 중심으로 발전했다. 땅을 무기로 노인들이 아랫사람을 잘 따르게 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 땅을 가진 노인들이 많지 않다. 자식이 있어도 공부시키고 껍데기만 남은 노인들이라
<노파>
노파는 할머니. 서양 동화에서는 마녀다. 노파는 어려운 처지를 만났을 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머리 아홉 달린 도둑>에 나오는 노파는 비싼 동삼을 아무 대가 없이 선뜻 먹으라고 젊은이에게 내주는데 그것을 팔아 좋은 집에서 살지도 않았다. 그저 길가 초가집에 살며 젊은이를 도왔다. 전통은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같이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동삼은 젊은이가 힘을 얻는 에너지로 칼로 배신자르 심판할 수 있는 무기가 되었다. 아내는 도적에게 끌려갔으나 마음이 변해 도적 편을 들다가 남편이 도적을 죽이고 아내까지 죽이고 남편을 도운 종을 아내로 맞는다. 노파가 준 동삼과 칼, 즉 민족 전통에서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에너지와 방법을 찾은 것은 자신의 전통에 있었다. 문제 해결 열쇠가 전통에 있었다는 것은 이 이야기를 만든 당시 상황에서 볼 때 외국 세력에 빌붙어 민족을 억압하는 세력이 있었다는 것을 상징한다. 외국 힘을 비려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찬성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 어리 아홉 달린 도둑은 외국 세력이요, 젊은이의 아내는 외국 세력 앞잡이.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구약성서의 모세 이야기 중<이집트의 왕자>나 <십계. 영화에도 나온다. 노예 상태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는 과정을 그려 모세는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치기로 자신을 단련시킨 뒤 자기 부족신인 야훼의 부름으로 이집트에서 자기 백성을 구출한다. 우리 젊은이도 모세 ㅇ댜훼에 해당하는 노파에게 동삼을 얻어먹고 능력을 키워 백성을 구했다. 이야기긔 규모는 차이가 있지만 이야기 구성 방식과 백성 구하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우연의 일치다.
지금도 시골 장터나 음식점 같은 데서 인정 많고 편안한 할머니를 본다. 음식점도 아예 00할매 보쌈, 순대 등 할머니 캐릭터로 체인점을 만들어 장사하고 있다.
국가나 민족에 위기가 닥치면 제일 먼저 배신한 사람은 대부분 귀족 지배층이다. 가진 것이 많아 빼앗길까 두려워서다. <머리 아홉 달린 도둑>은 민족 해방과 반역자의 심판이라느 srkreh에서 살펴볼 수 있다. 다른 민족의 침략이나 노예 상태에 벗어나려면 자기 전통을 무기고 삼아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집에서 도둑에게 물건을 빼앗기고도 “내가 도둑 막을 힘이 없어서 어절 수 없었다.‘고 하는 논리는 문제의 원인이 강도의 침범에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은 채이다.
<반쪽이>
흔히 얼굴과 몸과 다리와 팔이 다 있고 키가 작아도 반쪽이라 불렀고, 먹지 못해 살이 빠져 얼굴이 바싹 마른 사람도 반쪽이라 부른다. “네 얼굴이 반쪽이네.” 말을 하는데 우리 이야기에 나오는 반쪽이는 키도 적고 몸도 작은 청년, 다리도 하나 없는 지체장애인이다.
<호랑이>
호랑이의 변신인 노인도 포악하지 않다. 자기를 잡으러 온 사람에게 먹을 것 주고 째워주며 타일러 집에 돌려보내려 하고 말을 듣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잡아먹는다. 이것은 호랑이에 대한 사람의 생각을 드러낸 부분이다. 호랑이가 무섭지만, 무턱대고 인간을 해치는 동물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 민화에는 인간과 함께 다정하게 어울리는 것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민간 신앙에서는 일종의 수호신으로 숭배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이 컷기 때문에 그런 자연물을 귀신이나 신의 모습으로 나타내어 경계하거나 두려워했다.
구성원이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부터 넓혀야 한다. 집값을 올려 떼돈을 벌과, 사회 출세만 존중되고 그것을 위해 일류 학교에 진학가고 남이 내 발길에 귀찮게 걸리는 존재로만 생각되는 사회는 병든 사회이자 꿈과 미래가 없는 사회이다.
<일곱 아들>
아들이 일곱이니 남편이 일찍 죽은 것 같지 않다. 십 수년은 살아야 아들을 일곱이나 낳을 수있을 테니 이 북두칠성의 어머니는 젊은 어머니는 아니지만 남자 친구가 필요했다.
자연에서 하늘이나 땅만 떼어 생각할 수 없듯. 인간 문제도 원천적으로 남녀가 서로 대립하거나 차별하는 구도가 아니었다. 후대 전제 군주 제도가 백성을 편하게 지도하고 지배하기 위한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는 논리를 악용한 사례다.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따르면>
두 세대만 지나도 이박김최효리가 된다. 누구도 이혼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T ᅟᅥᆫ택이 잘못 되었더라도 중간에 다시 선택할 수 있다는 긍정이 있어야 한다. 누구나 장애인 될 수 있고 이혼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 포용하고 이해해야 한다. 새 아빠의 성을 따라 고치면 안 되는 이유가 우리 문화적 질서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문화란 우리의 참모습 정체성을 지켜주는 것인데 단지 편리하다는 이유만으로 바꾸어버리면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이 있다.
조선시대 역사 기록을 보면 왕과 신하의 말은 좌사가 기록하고 행동은 우사가 기록하여 사초를 만들었다가 왕이 죽으면 이를 바탕으로 춘추관에서 왕조실록을 만들었다. 사초는 실록이 완성한 뒤 물에 새탁하여 필적 감정을 못하게 하여 올바르게 쓰려는 사관의 신분을 보호하였다. 그러나 서인과 노론의 일당이 정권을 잡은 후 선조, 현종, 경종의 실록을 수정하여 두 종류를 만든 것은 그 역사적 진실과 역사를 보는 태도에 의문을 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