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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전(改悛)의 정
함석헌
씨알 여러분, 물과 불이 하나가 되어 사람을 들볶는 삼복입니다. 잘 견디어내시기 바랍니다. 추위, 더위가 괴롭지만, 그것 없이는 우리는 ‘사람’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은 견디는 것입니다. 참는 것이 사람입니다. 환경은 피할 것이 아니라 잘 견딜 것이요, 정복할 것이 아니라 잘 어울려 하나 되어 살 것입니다. 나와 환경이 하납니다.
이 문명은 근본에서 잘못됐습니다. 고(苦)는 피하고 낙(樂)은 취하잔 것이 문명이지만, 그 결과 인간은 하늘이 준 제 바탈을 망가쳐 버렸습니다. 인간이 구원되려면
너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밥을 얻어먹으리라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럴 것이니 너는 흙에서 나왔으므로니라
너는 티끌이니 다시 티끌로 돌아가거라
하는 에덴동산의 교훈을 다시 씹어야 할 것입니다. 에덴이 다른 곳 아니고 이 지구입니다.
더위는 반드시 냉장고나 에어컨으로 이겨지는 것 아닙니다. 시원한 바람을 쐬보시렵니까? 한산(寒山)이 여기 있습니다.
인문한산도 (人問寒山道) 사람들 한산 길 묻는다.
한산로불통 (寒山路不通) 한산엔 난 길 없다.
하천빙미석 (夏天氷未釋) 여름날도 얼음 안 녹고
일출무몽롱 (日出霧朦朧) 해 떠도 안개 자욱하다.
사아하유계 (似我何由届) 나 같으려고 어디로 와
여군심부동 (與君心不同) 너와는 망 안 같아
군심약사아 (君心若似我) 네 마음 나 같던들
환득도기중 (還得到其中) 벌써 그 속 와있을 걸
얼마나 시원합니까?
그러나 더 시원한 것 보시렵니까? 팔도(八道)의 감옥 문이 잠깐 열리고 80 더 되는 젊은 양심이 풀무간에서 불꽃 튀어나오듯 나왔습니다. 아주 활짝 열리고 강물처럼 터져 나오지 못한 것은 다소 유감이지만 그래도 이 10년 이래에 처음으로 시원한 바람입니다. 팔십육(八十六)의 팔(八)자는 열린 모양을 그린 것입니다.
씨알 여러분 마음은 넓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넓어지는 것이 남을 넓게 만드는 길입니다. 내 맘 따로 네 맘 따로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 ‘한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뒷 언덕에 잘 뵈지도 않게 얼음 밑에 발발 떨며 피어나오는 꽃다지를 보고 “이게 봄이냐”고 나무라지 마십시오. 그것은 꽃다지보다도 더 작은 마음입니다. 실금이 가면 빙산은 터지게 마련입니다. 넓은 마음은 가는 것을 볼 줄 아는 마음입니다. 봄은 가늘게 오는 것입니다. 지금 빙산같이 차고 어마어마하던 정부 심정에 실금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활짝의 시작 아니겠습니까?
의심이 죄입니다. 정말 끝까지 좋을까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의심하면 저가 나쁘기 전 내가 먼저 나빠집니다. 씨알은 어린 조카가 아니고 나 많은 아재비입니다. 정부가 국민을 선하게 만드는 것 아니라, 국민이야말로 정부를 선하게 만드는 할아버지입니다. 씨알 여러분, 단군 할아버지의 마음을 먹으십시오. 우주 창조의 주인이신 하나님 할아버지를 믿으십시오. 여름 볕에서 얼음을 마시고 겨울바람에서 봄숨을 마신다면 나라일 저절로 될 것입니다. 다만 하늘 땅을 우러러 생각의 스케일을 크게 할 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 비슷이 되기 위해선 수백 만, 혹은 수친 만 년의 긴 세월이 들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의 차고 굳은 마음도 일조일석에 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빙하시대 이래의 유물입니다. 그것을 녹이려면 씨알의 마음도 두고두고 서서히 달아 올라와야 할 것입니다. 생물 진화의 교훈은 한마디로 ‘천천히’입니다. 사꾸라를 상징으로 삼는 일본의 무사의 발굽이 중국대륙을 단숨에 짓밟았을 때 북경 천안문 돌벽에 기대고 앉은 거자들이 “만만디 캉캉!” 했습니다. 있다 보자 하는 소리입니다. 그 만만디가 종래 말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전후 다시 살아난 경제대국의 일본이 중공과의 외교에서 그저 순종 일변도로 나간 것은 그 만만디의 콧바람에서 배운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3.1사건 이래 사람들의 입 사이에 ‘개전의 정’이라는 말이 유행되고 있습니다. 나는, 나만 아니라 누구도 다 그랬겠지만,처음에 그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고백해서, 아주 불쾌했습니다. “누가 누구를 보고서 할 말인데?” 했습니다. 사실 나는 스스로 돌아보고, 고금 성현의 교훈에 비추어서, 스스로 조금도 어떤 야심이 있어서 한 일이 아닌 것을 자신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 말을 할 때는 언제나 비꼬는 뜻이 들어 있었습니다. 밝히 말한다면 그것은 법치제도와 감옥제도 내지는 정치제도에 대해 항의하는 뜻이 들어 있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옳습니다. 인류의 목적은 도덕적인데 있는데, 인간이 선해지는 것은 스스로 하는 생명의 우주적 원리에 의해서 되는 것이지, 누가 시키고 강제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절대로 정치나 법이나 감옥으로 선해지는 것 아닙니다. 예로부터 어떤 위대한 정치가, 법률가도 무명의 씨알 일반이 성현으로 대접하는 그 인물들을 존경하지 않고는 될 수 없었습니다. 사람에게 부족이 있기 때문에, 그리고 공동생활은 어쩔 수 없는 생활의 원리이기 때문에, 정치도 법도 상벌도 없을 수는 없지만, 그것이 그 스스로 자임하는 책임을 다하려면, 사람은 그것으로는 선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승인해서만 될 수 있습니다. 정치와 법은 겸손해서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곧 나라다” 하는 순간 모든 정치와 법은 루이14세의 간 곳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가 법률가는 사무관이지, 자기 마음으로 벌주고 상주고 살리고 죽일 자격이 없습니다. 그것이 문명했다는 모든 국가가 다 입헌제를 취하는 이유입니다. 헌법은 누구나 만든 것이 아닙니다. 헌법이 처음으로 시작된 영국의 헌법이 글로 씌어진 것이 아닌 것은 그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다스림과 법은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보통의 인간의식을 초월해서 하나님 의식에 든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온 것, 혹은 그것을 근본으로 하고 자기네 사는 환경에 맞추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법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참으로 그 하나님 의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저 인간적인 의식으로 그것을 빙자하여서 명령 판단을 내려도 그것은 참이 아닙니다. 국가정치에 언제나 문제가 있는 것은 이 거짓 때문입니다. 종교를 아주 부인해버린 지 이미 수백 년이 되는 오늘의 국가들이, 지식이 발달할수록 점점 더 씨을 괴롭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보고 개전(改俊)이니 뭐니 했을 때 내 양심이 항의한 것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자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일을 보면서 내 마음은 조금 더 열린 것이 있습니다. 그 ‘개전의 정’을 말하는 것은 누구의 입에서 나왔건간,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떨어집니다. 국민이 정부를 선하게 만들지, 결코 정부가 국민을 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넓어지고 오래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정부를 두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구나 권력이 무서워 복종하면서 구차하게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건지기 위해서입니다. 나라는 아주 위태한 데 놓여 있습니다. 이때에 경제공황이 온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를 다듬는 단련이 더욱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해지는 단련의 의미는 민족적인 사명을 파악해서만 될 수 있습니다. 민생이 첫째라는 말은 옳은 듯하면서 잘못된 말입니다. 사람은 옳은 것을 위해서 모험을 하는데서 사람이 됐지 결코 먹는 것을 첫째로 해서 된 것은 아닙니다. 민생이 첫째라는 말은 씨알의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씨알을 위하는 척하면서 거짓을 하는 생각에서 나왔습니다. (생략).
정부에 속해 있는 사람들로부터 언제나 꼭 같이 듣는 말이 “왜 잘못 했다는 말만 하고, 잘했다는 것은 하나도 없느냐?” 하는 말이지만, 그 소리를 천만 번 들어도 내 속에는 변함없이 확신이 있지만, 전 같으면 나는 반드시 “정말 그렇게 믿을 수 있습니까” 하고 반문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엔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내게 뒤를 미리 들춰보는 것은 믿음 아니다 합니다. 속는 것이 아버지입니다. 씨알도 속습니다. 그렇습니다. 무한히 속는 것이 씨알입니다. 세상에 속는 이가 있다면 하나님보다 더한 이가 누구입니까? 창조 이래 이날까지 속아온 것입니다. 몰라서 속는 것 아닙니다. 알고도 속습니다. 믿고 속는다는 것은 무한한 가능성의 허락입니다. 무한한 자비입니다. 씨알이 하나님의 모습밖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는 존재일진대, 씨알도 빚을 진 정부에 대해 무한히 믿고, 믿음으로 무한히 속을만한 사랑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정치란 우리 영혼의 상태를 비쳐주는 검은 철판입니다. 우리가 주먹을 쥐면 그 속에서도 주먹이 나올 것이요, 우리가 믿지 못해하면 거기서도 악마의 얼굴이 나올 것입니다.
말씀이 들려옵니다. 뭐라 합니까? 말씀하시기를 “네가 개전의 정을 보여라!” “네 의가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않고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씨알의 소리 1979. 8월 86호
저작집; 9- 287
전집; 8- 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