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 10/19토(土) 롬 12:1-2/ 빌 2:12-13
성도에게 있어 신앙생활의 최고봉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알기도 어렵고 안다고 해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다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는 것도 행하는 것도 은혜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의(大義)는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살전 4:3)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 이라”(딤전 4:5)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그런데 내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루는가?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여기서 ‘내가’ 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내가 이루겠다는 율법이 들어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하갈을 통해 아들을 얻은 것이 율법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 실패한 것이고 율법의 결과는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100세가 되자 하나님의 은혜로 이삭을 낳게 됩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율법도 은혜도 내 속에서 이루어지지만 내가 그 일을 이루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는 것에 대한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해답 -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 보다 하나님의 뜻을 누가 이루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나를 향하신 뜻도 그 분이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1차적 동인(動因)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온전히 이루십니다. 그리고 2차적 동인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은 은혜이고 믿음으로 살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내가 이루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하신다고 또 내가 방관한다 해도 하나님의 뜻은 변하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을 때는 다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게로 부터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왕 앞에 나가라는 부탁을 받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모르드게가 말합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에 4:13-14). 민족이 구원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에스더가 가만히 있으면 그는 멸망하겠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뜻에 사용되는 도구가 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일(계획)에 있지 않고 주님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속고 있는 부분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일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일 일이 있다 해도 내 힘으로는 그 일을 이루지 못합니다. 성도가 주님 안에 거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1차 동인이 내가 될 때 주님과 분리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 6:29)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주님과 연합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주님과 연합하여 나타난 삶의 결과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그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힘쓰지 말고 주님과 연합에 힘쓸 때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면 삶이 쉬워집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하나님께서 내 안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소원을 주고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할 일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예를 들어봅니다. 애굽인이 자기 동족인 히브리인을 괴롭힙니다. 그 상황에서 주님 안에 들어가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동족을 구하려다 애굽인을 죽이게 됩니다. 이것은 모세가 율법으로 행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무겁다고 느끼거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내가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주님이 나를 이끌어 가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럴 때는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서 연합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일을 주님이 직접 행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연합되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주님과 연합 되었다면 내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내 자아가 죽었기 때문에 내게 속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사업, 직장, 가정, 교회일, 가사, 아이 돌봄 등 이 모든 일을 내가 한다면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주님 안에 있다면 사업, 직장, 가정, 교회일, 가사, 아이 돌봄 이 모든 일은 주님의 일이 되기 때문에 주님이 직접 그 일들을 나를 통해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일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궁리할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 들어가는 것이 내가 할 일입니다.
연합된 상태에서는 모든 것이 주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하십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에서는 내가 나가므로 율법이 됩니다. 내가 한 일과 주님 안에 들어가 주님이 하시는 일에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큰 차이가 납니다.
-연합의 원리-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산 제물이란 살아 있지만 제물로 드려지니 죽은 것입니다 . 우리의 영은 살아있지만 자아를 죽게할때 주님이 주인 되어 나를 지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삶입니다 . 자신이 죽어야만 하나님의 온전한 지배를 받게 됩니다.
이 세대를 본 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대는 나 중심의 삶을 사는 세대입니다. 그러므로 그 주인은 하나님이 아닌 사단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려면 마음의 주인을 바꾸어야 합니다. 나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게 될 때 마음의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주님은 내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 온전한 연합으로 이끌어 하나님의 뜻을 나를 통해 이루어 가십니다. 그런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