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잠'까지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은 새벽이었다. (22일 금)
그만큼 요즘 날이 길어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일 서울에 돌아가려면 오늘은 여기 정리를 해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일단 오늘 하루 식사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아침이야 건빵 남은 걸로 때우고, 점심은 찬밥이 있으니(반찬으로 김치, 고추 절임) 한 끼 때우고,
저녁은 라면 하나에 밥이 조금 더 있으니 때우면 되는데, 내일 아침은 어떻게 한다지? 하다간,
그렇지만 오늘은 ‘삼척 장’이니, 나가서 떡이든 뭐든 간단하게 사와, 내일 아침과 점심까지 때울 걸 사다 먹고, 오후에 버스를 타면(14:45) 되겠지. 했는데,
그 조금 뒤,
뭐, 오늘 당장 떠나도, 그러니까 오늘 14: 45분 버스타고 떠나도 되지 않을까?(이미 내일 표는 인터넷으로 예매해놓은 상태였다.) 하면서 고속버스 조회를 해 보니, 아직도 오늘 표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다시 오늘 걸로 또 하나를 예매하면서,(내일 건 조금 나중에 취소해도 되니)
하루가 어딘데? 서울에 가면 하다가 멈춘 글 작업도 바로 이어서 할 수 있고...... 하면서는, 정말 하루를 앞당겨 떠나기로 했던 것이다.
그 때부터 청소 정리를 시작했다.
그렇게 원래 계획이었던 상경을 정확히 하루 앞당겨 실행해서,(이미 예매돼 있던 버스표를 물리는데는 800원이 깎였다.) 금요일 저녁에 서울에 도착했다.
금요일 저녁무렵이라선지 차가 밀려 조금 연착했고, 아파트에 돌아오는 것도 지하철도 버스도 붐벼 힘들었는데,
일단 도착하니 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다 귀찮아서,
내일 하기로 하지! 하면서, 겨우 저녁을 챙겨 먹고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토요일(23) 아침.
'삼척'에 세탁기가 없어서 급했던 남방과 속옷 등은 손세탁을 해서 갈아 입었지만, 나머지 빨래는 그냥 모아놨다 가져왔기 때문에 세탁기를 돌리려는데, 그 양이 많아 한 번에 다 못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반절 쯤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노트북이며 가전제품 등도 다시 원위치해야 했기 때문에 이것저것 펼져놓고(전선, 충전기 등등) 껴 맞추고,
점심엔 밥을 해먹어야 했기 때문에 주방 등도 점검해야만 했고,
가방에 들어있던 잡동사니들도 꺼내 재배치하거나 어제 아파트 올라오면서 꺼내왔던 공과금 고지서 등도 정리를 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인터넷이 안 되다 보니(월요일 아침에 설치하기로 예약된 상태), 한 번 훑어보는 걸로 끝내다가 보니,
이 모든 게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제 이렇게 정비하는 것도 힘겹다 못해 짜증까지 나는 것이었다. 그러니,
아, 나이가 들어가니 이런 것 하나하나가 다 힘에 부치는구나! 하는 투정이 절로 나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누가 그런 걸 대신해 줄 사람도 없으니...... 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삼척으로 내려갈 때 빼놓고 갔던 모자와 돈(현금)은 발견되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아침으론, 어제 돌아오자마자 냉동실에 얼려두었던 고구마 찐 것을 해동시켜놓은 걸 먹으면서는,
오늘, 치과에 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경통' 문제는 다음 화요일에 병원 예약이 돼 있으니, 그리고 최근에 어금니가 셔서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하고 있어서,
이럴 때 가서 점검받자! 하게 됐던 것이다.
사실 치과의사도 스페인에서 돌아와서도 한 번도 못 봤으니, 반 년 정도가 돼가고 있을 테니...... 하고 결정했던 것인데,
그 사이에 됐던 빨래를 널어놓고,
9 시가 다 돼가기에 치과에 가기 위해 아파트를 나섰다.
그리곤 버스 타고 가는데, 멍하니 가다가 버스를 추월하던 한 차의 번호판을 보니,
(나는 이따금 도로를 달리면서는 다른 차들의 넘버를 보면서, 남자들 도리짓고땡 숫자 놀이를 하곤 한다. 그건 젊었을 때부터 해오던 버릇이기도 하다.) 세 숫자가 '짓고', '00'만 남은 ‘장 땡’이었다. 그래서,
지금, 치과 가는데 무슨 좋은 일이 있을라구? 했었다.
(그게 무슨 확률이 있을까만, 그렇게 숫자 게임을 하면서 좋은 게 나오면 운이 좋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되어서......)
그렇게 치과에 도착했는데,
어?
내가 첫 손님이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C263435ECBDA0E2F)
그건 놀라운 일이기도 했다. 늘 손님으로 밀리는 게 그 치과이기 때문이었는데,
아무래도 '코로나'여파가 여기도 있나 보다...... 하고 있는데,
잠깐 그 옆 무슨 의원에 갔다온 간호사가,
알고 오셨어요? 하고 묻는 것이었다.
?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뭘요? 하고 물었는데,
모르세요? 하고 다시 묻는 거 아닌가.
뭐가요? 하면서, 내가 작년 가을에 오고 그 뒤에 여기에 없어서, 반 년도 넘어서 온 거라...... 하자,
원장님, 이제 일 그만 두신대요...... 하는 거 아닌가.
예에? 하고 깜짝 놀랐는데,
너무 힘드시다면서, 이제 인생을 좀 즐기고 싶다시네요...... 하는 것이었다.
예에? 나는 또 다시 놀라면서, 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었다.
원장님이 선생님께 말씀 하지 않으셨어요? 하고 묻기에,
나, 스페인에 갔다와서 아직 원장님 못 만났거든요? 하자,
지난 4월부터 그러셨는데, 이번 주말까지만 일하시고 이젠 안 하실 거에요...... 하는데,
아! 그렇군요...... 말로는 그렇게 하면서도, 그렇다면 앞으로 나는 어느 치과에 가라고? 하는 생각이 스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 원장님께서 아무 말씀 안 하셨다면, 일단은 모른 척해 주세요! 하고 부탁까지 하기에,
아! 그러지요...... 하기는 했는데, 정말 뭔가 한 쪽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그 얼마 뒤, 치과의사가 헐레벌떡 들어왔는데, 나를 보자마자 우물쭈물(그가 늘 그렇다.),
어? 오셨어요? 하기에,
예! 오랜만입니다! 하고 인사를 했는데,
어차피 내가 첫 손님이었기에, 그가 가운으로 갈아입은 뒤 바로 내가 진료실로 들어가면서,
원장님, 코로나 때문에 힘 많이 드셨지요?(이건, 치과의사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써 그동안 전염병의 위험을 무릅쓰고 진료를 해온 것에 따른 진솔한 인사였다.) 하며 보니, 그가 수염을 깎지 않은 상태여서,
아니! 웬, 수염도 안 깎으시고? 하자 여전히 우물쭈물하기에,
원장님, 멋부릴려고 그런 거 아니겠지요? 하고 슬쩍 뼈있는 농담을 걸었더니,
마스크를 쓰고 있다 보니, 잘 안 깎게 돼서요..... 하기에,
허긴, 저도 스페인에서 돌아오자마자는 자가격리하느라 면도를 않고 있다가 군산에 갔더니, 다들 '꼴 보기 싫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깎았거든요? 하고 웃으며 넘기기는 했는데......
바로 내 이빨 진료에 들어갔고, 내가 끝났을 땐 이미 다른 환자들이 대여섯 명이나 기다리고 있어서,
월요일에 또 나오세요! 하기에,
그러지요. 오후에 오겠습니다. 하고는 별다른 얘기도 하지 못한 채 나오려는데,
이거 가져가세요! 하면서 내놓는 건, 무슨 케익이었다. (잘은 몰라도, 누군가 치과 원장에게 선물한 것일 터였다.) 그러니,
아니, 원장님! 이런 건 제가 원장님 드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하고 물었는데, 그는 웃기만 할 뿐 별 말이 없었고, 간호사 역시 옆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는데,
밖에서 내 얘기(목소리)를 들은 환자들이 다 나를 집중적으로 바라보기에, 더이상 말도 못하고 나오고 말았다.
물론 내 손에는 그 케익이 들린 상태로.
그렇게 돌아오는 버스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이제 치과 진료도 받지 못하겠구나...... 하는 걱정만 되었다.
근데, 아까 오다가 버스 안에서 '장 땡' 본 게, 무슨 의미였을까? 그 치과 원장이 그만 둔다는 소린가? 아니면, 이 케잌인가....... 하면서도,
어째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BC0C435ECBDA0F34)
첫댓글 세상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살면서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것들이 언젠가 무너지고 깨지고 없어지고 하지 않던가요?
그래야 새로운 시작도 있는 법이니까요.
아직 고창입니다.
일주일 정도 더 머물다가 잠깐 서울에 다녀올 작정인데, 서울에 가도 금방 내려와야 합니다.
오디 수확철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매실도 수확해야 하고요.
원장님이 연세가 많의 신가요?
벌서 은퇴를 하시게, 그나저나 이제는 어느분이 치아 관리를........?
저와 비슷한데요(두 살 아랩니다.)...
다른 곳을 찾아봐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