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 / 김석수
30여 년 전 신혼 초 시절이다. 교육부에서 영어 교사 해외 어학연수 선발시험 공문이 왔다. 20명을 선발해서 두 달 동안 캐나다 현지에 보낸다는 내용이다. 가슴이 설렜다. 그때만 해도 해외 여행하기 어려워서 비행기 타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묻지도 않고 신청했다. 나중에 말했더니 시큰둥했다. 상의하지 않아서 서운했던 것 같다.
시험장에 가서야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응시한 줄 알았다. 한 실에 30명씩 다섯 군데로 나누어 시험을 치렀다. 칸막이가 되어 있는 어학실에서 읽기 시험을 먼저 보고 다음에 듣기를 봤다. 자리에 앉자마자 손목시계를 풀어서 책상 앞에 놨다. 시간조절을 잘해야 실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족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잘 봤다.
집에 와서 시계를 깜박 잊고 교실에 두고 왔다는 것을 알았다. 저녁 시간이라 연락도 할 수 없어서 다음 날 출근해서 대학교로 전화했다. 담당자는 확인해 볼 테니 한 시간 후에 다시 연락하라고 했다. 확인 결과 없다고 했다. 난감했다. 결혼 예물로 값비싼 외제 시계다. 미국에서 큰처형이 특별히 장만해서 가져왔다. 아내에게 잃어버렸다고 말할까 하다 합격하면 해야지 하고 지나갔다.
얼마 후 합격했다는 통보가 왔다. 사전 연수에 참가해서야 뉴욕을 거쳐 캐나다 수도 오타와로 간다는 것을 알았다. 연수 장소는 오타와 칼튼대학교다. 해외에 처음 나가는지라 준비할 것도 많았다. 아내도 축하한다며 출국 준비를 도와주었다. 시계 이야기를 꺼낼가 하다 마음이 바뀌었다. 미국에서 비슷한 것을 사가지고 오면 되겠지 싶었다. 아마 합격 분위기에 들떠서 말할 기회를 놓쳤을 것이다.
김포에서 뉴욕까지 열네 시간이 걸렸다. 오타와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려고 존에프 케네디(JFK) 공항에 내렸다. 기다리는 동안 대합실 화장실에 갔더니 큼지막한 소변기가 매달려 있다. 나는 “미국 사람 몸집이 커서 소변기도 큰가?” 했다. 입구에서 키가 크고 덩치가 우람한 흑인이 일을 보고 있다. 주눅이 들어 옆에 가지 못하고 그와 떨어진 구석으로 가서 일을 봤다. 일은 마친 그는 내게 뭐라고 하는 데 알아들을 수 없다. 신경이 쓰여서 제대로 일을 보지 못하고 바지춤을 추슬렀다. 아마 오줌을 약간 흘렸을 것이다.
시계를 사 볼까 하고 면세점으로 갔다. 기대보다 규모가 작고 물건이 다양하게 없었다. 여성용 액세서리가 주로 진열되어 있다. 아내에게 줄 목걸이를 샀다. 나중에 알았지만 잘못 알고 짝퉁을 산 것 같다. 아내는 좋아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니 색깔이 변했기 때문이다. 비싸게 주고 사왔지만 환영받지 못했다. 그 후로 해외에 나가면 아내에게 줄 선물은 한동안 사지 않았다. 지금도 여행가서 여자 맘에 든 선물을 찾기 어렵다. 요즘에는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 확인해 보고 물건을 산다. 이곳저곳 다녔지만 내가 찾는 시계는 없었다.
연수는 즐거웠다. 주중에 학교 수업에 참여하고 주말에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캐나다와 미국 여행하기에 바빴다. 귀국 날짜가 다가오자 선물이 걱정됐다. 그 당시에는 해외 여행가면 잘 다녀오라고 봉투를 건네는 풍조가 있었다. 봉투를 준 사람뿐만 아니라 친지나 동료 직원들에게 줄려고 여행지마다 기념품 가게를 들렀다.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비싸서 가격 대비 적정한 물건을 찾기 어려웠다. 이 사람을 생각하면 저 사람이 서운했다. 여러 사람에게 줄 물건을 이것저것 사다 보니 돈이 부족해서 시계를 사지 못했다.
여름 방학이 끝날 무렵에 귀국했다. 일주일 후에 처가에 인사하러 갔다. 장인어른에게 귀국 선물을 드렸더니 고맙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거실에서 안방으로 들어가시더니 상자를 들고 나왔다. 미국 처형이 고급 시계를 사왔는데 당신은 집에만 있으니 소용이 없다며 내게 주었다. 열어보니 내가 잃어버렸던 것과 똑같았다. 아마 큰처형이 동생 결혼 예물과 아버지 선물 시계를 같은 것으로 산 것 같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어느 날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예물 시계를 두 개나 받았으니 두 배로 잘하란다.
몇 년 지나서 장인어른은 중풍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한참 후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시간이 갈수록 쇠약해지더니 허리가 굽고 말을 잘 하지 못했다. 아내와 내가 문병하러 가면 손을 붙잡고 시계를 보며 눈물만 흘리셨다. 벌써 돌아가신 지 육년이 지났다. 하늘나라에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과 내가 함께 오래오래 잘 살기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그 시계를 차고 다니며 장인어른의 온기를 느끼고 있다.
첫댓글 올린 글이 갑자기 삭제되어서 다시 올렸습니다.
이상하네요.
제 댓글도 사라져 버렸어요.
사위 사랑 장인 사랑이었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정말 좋은 선물을 받으셨네요.
예물 시계를 두 개나 받았으니 두 배로 잘 하라는 사모님 말씀이 명언이네요. 그동안의 글을 보면 선생님께서는 명언을 지키며 사시는 지혜로운 분이신 것 같아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항상 일찍 글 쓰셔서 길잡이가 되어 주시니 고맙습니다.
장인어른께서 사위 마음을 꿰뚫어 보셨네요. 막내사위를 많이 사랑하셨나 봅니다.
장인어른께서 사위 마음을 꿰뚫어 보셨네요. 막내사위를 많이 사랑하셨나 봅니다.
선물에 얽힌 이야기를 궁금해하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영어 잘하는 점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장인어른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귀한 선물 이야기에 선생님의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모두 고맙습니다. 제가 주말에 행사가 있어서 방금 전에 댓글을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