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 은인이 있어 / 백현
2001년쯤 순천 송광면에 있는 승남중학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순천교육청에 출장 갈 일이 있어서 한 시쯤 학교를 나섰다. 외서면을 지나 갈림길에서 낙안 쪽으로, 낙안민속촌을 지나 좌회전하고, 상사를 거쳐 청암대를 끼고 돌아 순천으로 접어들기까지 구불구불한 길을 40분 넘게 가야 했다. 출퇴근 시간에나 지나다니는 차가 있을까 다른 때에는 차를 보기도 어려웠다.
출발해서 15분이나 갔을까 외서를 지났을 때 이상한 기척을 느꼈다. 멍하니 앞만 보고 가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길가 쪽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사람이 내게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순간 내가 뭐를 잘못했나 싶었는데, 특별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뒤로 처지는가 싶던 오토바이가 이번엔 운전석 옆쪽으로 오더니 손가락으로 무슨 시늉을 했다. 창문을 내리라는 것 같았다. 왈칵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여기 달리는 차는 나밖에 없는데, 창문을 내리라고?
순간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갈등하고 있는데, 그 사람은 계속 손짓하며 뭐라고 외쳤다. 오토바이가 계속 따라오며 차 쪽으로 붙는 바람에 부딪힐 것 같아서 마침 나타난 오르막길 갓길에 차를 세웠다. 오토바이를 차 앞쪽에 세우고 헬멧을 벗어든 젊은 남자가 운전석 쪽으로 다가왔다.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그 사람이 창문을 내리라는 시늉을 했다. “타이어 펑크났어요. 바람이 이렇게 많이 빠졌는데 모르고 가요? 나중에는 휠도 못쓰게 돼요.” 했다. 내려서 봤더니 운전석 쪽 뒷바퀴가 주저앉아 있었다. “순천까지 그냥은 못 가요. 스페어타이어로 바꿔 끼고 가세요.” 했다. 나는 스페어타이어가 없다고 했다. “트렁크에 스페어타이어 없어요? 스페어타이어 쓰고 안 채워 뒀어요?” 어정쩡한 내 태도에 감을 잡았다는 듯이 트렁크를 열어 보라고 했다. 내 사소한 물품 몇 가지가 있을 뿐이었다. 그는 트렁크 바닥을 들어 올리더니 이것 보라는 듯이 “여기 있잖아요.” 했다. 나는 거기에 타이어가 들어 있는 것을 처음 봤다. 운전을 시작한 지 3년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그는 자기가 바꿔 끼워 주겠다고 했다. 스페어타이어와 그 옆에 있던 기구를 꺼내더니 주저앉은 타이어와 갈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 상황이 고마우면서 난감했다. 그때 내 차 뒤쪽에 승용차 하나가 멈춰 서더니 우리 학교 행정실장이 다가왔다. 볼일이 있어 조퇴하고 가는 중에 나를 알아보고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내린 것이다. 옆으로 가서 상황을 설명했더니, 보기 드문 젊은이라고 그냥 보내면 안 된다고 했다.
실장과 얘기하는 동안에 일을 마친 그 젊은이가 바꾼 타이어를 스페어타이어의 자리에 넣어 줬다. 실장에게 들은 대로 사례하겠다고 했지만,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럼 순천에서 뭐라도 대접하겠다고 했더니 손사래 치며 오토바이를 타고 가 버렸다. 무서워하며 창문도 제대로 못 내렸던 것을 생각하니 참 미안했다.
그다음 펑크 난 것을 알려준 은인은 작은아이 어린이집 통학차의 운전기사였다. 통학 차량의 첫 코스여서 미리 와서 대기하던 기사님이 주차장에서 나오는 내 차 앞을 가로막았다. 5분 밖에 시간이 없다시면서 황급히 타이어를 갈아주고 가셨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퇴근 후에 다시 찾아가 감사의 인사라도 제대로 드릴 수 있었다.
나는 그 뒤로 차에 타기 전에 차 바퀴의 상태를 살펴보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바람이 빠지지는 않았는지, 타이어에 박혀있는 것은 없는지 본다. 그래도 방심하는 순간이 많아 뒤에 따라오던 택시가 옆 차선으로 와서, 오른쪽 뒷바퀴 바람이 빠졌다는 조언 해 준 적도 있다. 여태껏 큰 사고 없이 차를 몰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세상에 이렇듯 좋은 사람이 많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