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5월 12일 주일예배 설교내용 –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自分の両親に従いなさい。
본문: 에베소서 6:1~4
엡 6:1 자녀 된 이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2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3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오래 살 것이다" 하신 약속입니다. 4 또 아버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님의 훈련과 훈계로 기르십시오.
1. 子供たち、主に結ばれている者として両親に従いなさい。それは正しいことです。2. 「父と母を敬いなさい。」これは約束を伴う最初の掟です。3. 「そうすれば、あなたは幸福になり、地上で長く生き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約束です。4. 父親たち、子供を怒らせてはなりません。主がしつけ諭されるように、育てなさい。
지난 주일에는 어린이주일을 지키며 어린 아이가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사는 사명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축복과 은혜를 구체적으로 실감하며 일상을 살고, 인생을 주님 앞에 쌓아갈 수 있기를 다시금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어버이주일로 지킵니다. 한국은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지키며 부모님들의 사랑과 노고에 감사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는 5월의 둘 째 주 일요일인 오늘을 어머니날로 지키는 나라들이 대부분이지요.
한국교회는 5월 둘 째 주일을 어버이주일로 지키며 부모님께 대한 사랑과 섬김을 기억하며 부모님들의 연배가 되시는 시니어 분들에게 선물로 격려와 위로의 인사를 전하는 절기로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은 교회력과 관련된 구절로서 에베소서의 말씀으로 은혜를 체감하실 수 있기를 원하는데요. 에베소서는 교회의 교회다움에 대해서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구절에서는 성도의 가정을 위해 권면하는 내용인데요. 자녀들의 역할에 대해서 간단히 세 구절의 말씀으로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 이 구절만이 아니라 성경에는 곳곳에 가정에서의 자녀양육과 관련된 가르침... 가족관계와 관련된 교훈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몇 곳의 구절만 살펴보더라도...
네가 호렙 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나에게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내 말을 들려주어 그들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나를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리라 하시매 (신 4:10)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 (사 54:13)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취할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출 12:3)
너와 네 가족은 매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을지니라 (신 15:20)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딤전 5:8)
이처럼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가정과 가족, 그리고 자녀를 양육하는 일에 관련된 교훈과 관심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성경은 한 개인의 영생과 구원을 위한 가르침과 약속은 물론이거니와 가족과 가정이 함께 영생의 삶을 공유하며 사는 것을 매우 선하고... 바람직하며... 지혜롭고, 축복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교회와 나라를 세우시기 전에 먼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한 가정을 이루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의 본보기를 보여 주셨다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혼문제에 대해 질문하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마 19:5-6)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한 몸과 같은 가정을 꾸리고, 그 가족공동체를 통해 자녀를 낳고 양육하며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축복의 삶을 사는 것이 이 땅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부유함이라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애초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축복의 모습과 많이 달라진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경은 우리에게 가정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과 가족관계를 통한 축복을 약속하고 계시는데요.
오늘 본문에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선언하시며 동시에 말씀하고 계시는 가르침이 약속이 있는 첫번째 계명, 즉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말씀하시는데요. 그 약속이 있는 계명이란 십계명입니다. 출애굽기 20장의 말씀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여기서 부모를 공경하면 네 생명이 길리라.. 하신 이 말씀이 축복의 약속이 붙어 있는 첫번째 계명이라는 말씀이지요. 이 계명에 앞서 기록된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 것, 우상을 만들거나 숭배하지 말 것,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 것,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것.. 이 네 가지 계명에는 약속이 따로 붙어 있지 않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의무인 것이지요.
그런데 다섯 번째 계명인 부모를 공경하는 계명에서는 이 율법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축복에 대해서 부연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계명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에 합당한 응답을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내 주시겠다는 말씀이지요.
하나님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이는 존재로서 허락하신 관계가 곧 부모님입니다. 물론 부모의 역할을 방기하고 부모로서의 의무를 저버리는 경우도 현실에서는 존재합니다. 그것은 이 땅이 얼마나 타락하고 사악하게 변질되었는지를 반증하는 증거라고 볼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적인 원칙은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도록 나타내 주신 존재가 실은 부모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에는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매우 멋진 말이면서 매우 영적인 통찰이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딸로 여기신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딸 내 백성의 파멸로 말미암아 내 눈에는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애 3:48)
또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해,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어리석고 미련한 자식으로 여기신다는 구절도 있습니다.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렘 4:22)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우리의 관계를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로 여기시고 대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현실에서도 부모를 통해 자녀를 낳고, 그 관계를 이어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아니 너무도 당연하지만...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자녀의 세대가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부모자녀의 관계를 유지하며 윤리도덕을 지키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이기에 가능한 모습인 것이지요.
따라서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관계는 단지 인간이 자신의 복을 구하기 위해서 고안해 낸 기복신앙이 아닌,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유지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 7:11)
현실의 부모가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하듯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백성인 우리들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눈에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고, 그분들의 말귀를 알아듣고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태도와 자세의 첫 단추라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단지 인간으로서의 윤리 도덕적인 규범을 지키는 정도로서 이해하는 것도 참으로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를 부모로서 여기지 않고 단지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을 해결할 하나의 도구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도 존재하는 시대이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마지막 때가 다가올 수록 그 정도는 심해질 것이라고 성경은 예언합니다.
...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딤후 3:1b-2)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곧 영생의 복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영생의 복을 누리는 자는 현실에서도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성도들을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삼 1:2)
우리의 영혼이 잘 되었다는 것은 곧 영생을 얻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함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놀랍게도 우리는 우리의 해야할 도리를 다했을 뿐임에도 그 순종으로 놀라운 축복을 풍성하고 풍족하게 받게 될 것을 믿습니다.
혹 지금 부모님께서 이 땅에 생존하지 않는 분들은 어떻게 부모를 공경할 것인가를 고민하실 수도 있습니다.
또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지만, 부모의 교훈과 지시가 때때로 하나님의 명령과 충돌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부모에게 버림을 받거나,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에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오히려 너무도 큰 아픔과 고통이 되거나, 넘지 못할 산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인생에서 실질적으로 만나게 되는 모든 케이스를 문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모님을 공경하고 그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을 영적인 말씀으로 들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맺어지는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엡 2:19)
오늘의 본문은 에베소서 6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족관계에 관한 가르침은 육신적인 가족에게 1차적으로 적용해야 하지만, 더욱 영적인 가족의 관계에게도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는 어머니와 누이들이 문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주는 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막 3:34-35)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즉 거듭나서 주님의 따르기로 결심하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시선을 의식하는 자들에게... 맺어진 영적인 관계가 곧 형제요, 자매요,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꼭 육신의 관계가 아니라, 말씀으로 맺어지는 관계인 것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나, 부모를 공경하며 순종하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부모이며, 누군가의 자식과 같은 존재를 대할 때... 용서하고 사랑하며 배려하고 관심과 축복으로 관용하는 순종이 곧 하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임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육신의 관계에 국한된 교훈과 도덕, 윤리로 사는 것은 물론, 영적인 영역으로 확장되는 섬김과 포용의 마음을 가짐으로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부으시고 채우시는 영원한 축복을 누리시고 받으실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모의 존재는 곧 자신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성경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과 우리의 인격적인 만남을 설명하고 계십니다.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고 그 가르침에 순종하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채우실 축복을 약속하고 계시는 것을 믿습니다. 또한 그 어떤 특수하고 예외적인 환경과 현실에 처하게 되더라도 교회가 그 육신의 관계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영적인 가족의 모형인 것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그 가르침을 배워 순종하기 원하는 지체들과 함께 서로 형제자매가 되고, 부모와 자녀가 되는 놀라운 천국을 누리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교회와 우리 서로가 바로 그러한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교회 공동체 서로가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기를... 주님의 시선의 의식하기를... 또한 주님의 임재하심과 동행하심으로 넉넉한 은혜를 누리실 수 있기를 다시금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