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1월 28일 한시 송독
마천령상음(磨天嶺上吟)
덕봉(德峰) 송종개(宋棕介, 1521~1578)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 1513~1577) 처(妻)
行行遂至磨天嶺 행행수지마천령
東海無涯鏡面平 동해무애경면평
萬里婦人何事到 말리부인하사도
三從義重一身輕 삼종의중일신경
걷고 또 걸어 마천령에 이르니
동해 바다는 끝이 없어 거울처럼 평평하네
부인의 몸으로 만리 길을 어이왔는가
삼종의 도는 무겁고 이 한 몸은 가벼운 것을
위 시는 조선 중기 여성성리학자 덕봉 송종개가 지은 시이다. 시인은 걷고 걷고 또 걸어서 드디어 마천령 고개에 도달하였다고 하였다. 높은 재에서 바라본 동해 바다는 끝이 없고 거울처럼 평평하다는 평을 남겼다. 3, 4 구에서 부인의 몸으로 만리길을 어떻게 왔는가 자문하고, 삼종지도를 지키기 위해서 걸어왔다고 자답하고 있다.
이 시를 지은 송종개는 전라도 담양에서 태어나 어릴때, 여성으로는 드물게 부모로부터 한학을 배워 사서와 경서를 두루 섭렵하였으며, 문재가 뛰어났다고 한다. 19세에 같은 전라도 해남 출신인 미암 유희춘과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남편이 양재역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를 갔는데, 그곳이 한반도 최북단 함경북도 종성 땅이었다.
남편 미암은 21년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뒷날 해배되어 사헌부 대사헌, 전라도 관찰사를 지냈으며, 호남오현에 한 사람으로 큰 학자이고 관료이었다. 부인 송덕봉은 홀로 가사를 돌보다가 시어머니가 사망하자 삼년상을 마친 후 개나리봇짐을 지고 마흔 살의 나이로 남편을 찾아 나서게 된다. 땅끝마을 해남에서 최고 북쪽의 종성까지 그야말로 삼천리 머나먼 길을 부인의 몸으로 걷고 또 걸어서 마천령재까지 이르렀다. 재에서 지은 이 시를 통해서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척박하고 황량한 오지에서 귀양살이하는 남편을 보살피고자 하여 삼종지도를 지키기 위해 이러한 여정을 자청해서 나선 심정을 읊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과 큰 울림을 주게 하는 시 한편이다.
덕봉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문집을 남긴 여성 성리학자로 많은 시문을 남기고 57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덕봉 송종개는 남편 미암 유희춘과 화목과 사랑으로 부부애를 보여준 조선의 대표적 잉꼬부부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