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들기: 인류학, 고고학, 예술, 건축 | 팀 잉골드 지음 | 차은정·오성희·권혜윤 옮김 | 포도밭출판사 | 392쪽
만들기가 하는 일은 무엇일까? 만들기는 앎을 창조하고, 환경을 짓고, 생을 변환시킨다. 이 책에서 인류학자 팀 잉골드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의 본질이 디자인(설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기를 행하는 과정에 있음을 강조한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정해놓은 결과를 물질에 투영하는 것이 아니며, 제작자와 물질이 나란히 조응하면서 함께 성장해나가는 과정임을 역설한다. 나아가 사물을 고정된 물체로 환원하지 않고 생성의 흐름을 가진 살아 있는 물질로 감각하는 앎의 방식을 제시한다.
저자는 사물을 창조하는 활동의 의미, 질료와 형상의 관계, 디자인이 가진 문제, 살아 있는 풍경을 인식하는 일, 행위의 의미, 우리 몸에서 손의 능력과 역할 등에 관한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 더불어 선사 시대 석기 제작, 중세 시대의 성당 건축, 둥근 둔덕의 생성, 기념물의 건립, 연 날리기, 그림 그리기, 글쓰기 등 만들기에 관한 다양하고 참신한 사례를 선보인다. 만들기는 생성하고 변형하는 세계 속에서 계속 나아가는 생명의 행진, 즉 조응이다.
잉골드는 이 책에서 이론가와 실천가를 대립적으로 구분하는 사고방식에 반대하며 이론과 실천을 통합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통합된 관점에 따르면 ‘앎’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앎’은 내부로부터 사물과 함께 조응하는 방식으로 성장하여 비로소 우리의 일부가 된다. 잉골드는 이러한 앎의 방식은 예술과 건축에서 그러하며, 인류학과 고고학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아래는 각 장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한 것이다.
ㅇ 앎은 외부에서 주어지는가? 내부에서 자라나는가? 잉골드는 외부의 초월적 위치에서 대상화를 통해 아는 것이 아닌 세계의 내부에 참여하고 경험함으로써 아는 방식에 주목한다. 진정한 앎의 방식을 배우기 위해서는 ‘~에 대해’ 배우는 방식을 버리고 ‘~와 함께’ 배우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ㅇ 우리는 흔히 만들기를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달성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를 머릿속에 넣고 그걸 재료에 투영하여 마침내 재료가 의도한 형태를 갖추는 순간 제작이 ‘완성’됐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는 질료형상론의 영향을 받은 사고방식이다. 잉골드는 이러한 인식에 반대하며 만들기의 본질은 투영을 통해 인공물의 재료에 정신을 부과하는 일이 아니며, 실천자와 물질이 생동하는 흐름을 따르면서 형태를 이끌어내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ㅇ 잉골드는 주먹도끼 제작을 둘러싼 여러 학설들을 검토하면서 사물을 창조하는 활동의 본질을 재검토한다. 이로써 석기와 같은 도구 역시 질료와 형상의 관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힘과 물질의 관계를 통해, 즉 조응의 활동으로 만들어졌음을 주장한다.
ㅇ 중세 대성당은 사전에 설계된 디자인의 산물이었을까? 중세 석공들 역시 도면을 그렸다는 증거가 있지만, 그들이 그린 도면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건축 설계도와 같은 도면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드로잉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드로잉에는 현장에서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간 과정이 반영돼 있다. 따라서 중세 시대의 대성당 같은 거대한 규모의 건물 역시 “어떤 이름 모를 건축가의 사변적 비전을 장엄하게 완성한 것”이 아니라, 현장의 여러 석공과 일꾼들이 수시로 가졌던 “의사소통 왕래”와 “엉성한 실천”의 반복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이 확인된다.
ㅇ 잉골드는 디자인이 완결성이나 종결을 추구하기보다는 희망이나 꿈을 다루면서 열린 결말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획이나 예측이 아닌 미래에 대한 기대를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희망과 꿈을 뒤쫓고 있어야만 창조적 상상력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ㅇ 잉골드는 환경이란 “대상의 환경이 결코 아니다”라고 말한다. 환경은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부풀어오르고 성장하고 감싸고 펼쳐지고 흐르는 환경이다. 즉 환경은 생생한 에너지와 힘으로 자신을 만들어나간다. 때문에 잉골드는 우리가 설령 ‘대상의 세계’를 점유(occupy)한다 할지라도 그 점유자에게 세계는 등 돌린 모습으로만 보일 것이라 말한다. 세계의 움직임과 지속적인 형성에 동참하는 방식. 잉골드는 그것을 주거(inhabit)라고 표현한다.
ㅇ 신체란 무엇일까? 잉골드는 신체란 활동이 격정적으로 펼쳐지는 소란 자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신체가 무엇이냐고 묻는 상황에 다시 주목한다. 신체에 관해 사고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신체로부터 사고한다. 신체는 신체화의 대상이 아니라 활성화하는 무엇이다.
ㅇ 잉골드는 고정된 신체화를 거부하는 활성화의 논의를 통해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은 물론 인격과 유기체의 이분법도 해체하고자 한다. 나아가 ‘객체의 행위성’을 논하는 현대 이론들을 비판한다. ‘행위성’은 사물을 ‘객체’로 격하시키는 잘못된 전제에 기반한 사고로서, 객체가 없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행위성이 아닌 단지 행위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ㅇ “한마디로 손은 말할 수 있다. 손은 과제를 수행하는 데에서 그 진행조건에 대한 세심한 주의력으로도 말할 수 있으며, 또 손이 만들어내는 동작과 [재료에 흔적을 남기는] 기술적 행위로도 말할 수 있다.” 잉골드는 손이 말한다는 점을 드러낸다. 눈이 시각적이고 합리적인 기관인 반면 손은 촉각적이며 감응적으로 조응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잉골드는 손의 퇴행에 맞서 손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ㅇ 손이 하는 일 중 하나로 ‘말하는 방식으로서의 그리기’가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손으로 그린 모든 선은 신체 동작의 흔적이 되기 때문이다. 신체동작적인 선은 곧 말하는 그리기의 선이다. 말하는 그리기란 마치 음악 연주와도 같다.
ㅇ ‘통합되고 일관된 사고’를 지향하는 직선형 사람들의 방식에 견주며 잉골드가 더욱 주목하는 것은 구불구불한 선을 따라 걷는 당나귀의 경로이다. 잉골드는 우리도 직선의 폭주에서 벗어나 자신의 속도대로 자기 생을 발견하며 길을 따라 나아가는 당나귀의 행로를 따르자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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