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날 연휴에 특별히 할 일도 없도 만날 사람도 마음대로 만날 수 없어 그냥 그렇게 시간을 죽이며 보냈다. 이제 명절이라는 의미가 점차 퇴색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그런 명절같지 않은 명절이었다. 코로나 사태가 그런 분위기를 가중시킨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가족이 함께 모여 법석대던 그런 분위기는 이 사회에서 거의 찾을 수가 없다. 단지 의무적인 고향길과 전국 관광지가 일시적으로 붐빌 뿐이다.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진 데에는 최근 더욱 두드러진 며느리들의 권리찾기가 큰 원인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는 아직 며느리는 없다. 사위는 한 사람 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며느리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해 주고 싶은 사람이다. 며느리의 권리는 없던 것을 다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는 있었지만 시대적인 영향으로 잊혀졌던 것을 다시 되살리는 작업일 것이다. 며느리들이 명절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시댁이라는 장소를 괴물들의 집합소로 여기는 것은 가부장적인 사회상이 만든 희생물이었을 것으로 판단한다. 나도 어머니와 형수들 그리고 나의 아내가 겪었던 그런 심한 고통에 대해 무한한 죄송함을 가지고 있다. 남자들의 편안함을 위해 여성들이 얼마나 희생했던가. 나의 어머니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많이 아프다.
하지만 이제 그런 희생을 젊은 우리의 며느리들에게 절대 강요할 수가 없다. 딸도 당연히 마찬가지다. 내 딸은 또 누구에게 며느리이니까. 최근 비혼이 급증하고 있는데는 결혼해 살 수 있는 공간이 너무 비싸 엄두가 나지 않고, 아이들은 낳아 기르기가 너무 힘든 사회상도 큰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경제력이 약해 아이를 키울 공간도 여의치않고 아이를 키울 환경이 너무나도 열악하다는 생각이 비혼을 급증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며느리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겪는 엄청난 공포와 피곤함이 비혼을 더욱 부추기고 있음에 틀림없다. 여성들이 비혼이라는 이름의 막차를 미친듯이 타려고 애쓰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나도 이시대 여성으로 다시 태어났다면 틀림없이 비혼을 택했을 것이다.
여성들이 비혼에 함몰되면서 남성들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여자가 결혼하지 않겠다는데 남자가 어떻게 결혼하겠는가. 로봇을 데리고 살 수도 없고 이른바 리얼돌이라는 인형을 배우자로 삼을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아직 마음 한구석에는 가부장적인 미련이 남아있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의 아버지의 시대를 바라보니 자신들은 뭔가 심각한 고민을 아니할 수 없다. 결혼을 못하는데 아이를 낳는 것은 더욱 상상할 수가 없다. 기껏해야 개나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면서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 고작 아니든가. 그나마 한 번 연애에 실패하면 인생 살 맛이 나지 않는다. 이 어려운 세상에서 정말 힘들어 내 여자라고 여길 사람을 찾았는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그것이 실패로 끝나면 다시 그런 과정을 거치고 싶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속에 문득 텔레비젼을 켰는데 방송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번 생은 처음이라>이었다. 첫회부터 마지막회까지 놓치지 않고 본 드라마는 아마도 이것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즘 연애와 결혼과 관련해 공감을 일으킬 만한 이야기여서 관심이 갔다. 힘들게 시작했던 연애가 실패로 끝나자 깊은 심연속으로 잠수한 남자. 내 생에 더 이상의 사랑이란 없다는 각오로 인생을 살아간다. 더러운 인생 내집이나 빨리 만들어 혼자만의 세계속에 깊숙히 함몰하고 싶은 사람이다. 컴퓨터 관련 일을 하니 사회성을 발휘하지 않아도 큰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다. 나홀로 세계에서 일하다 퇴근하면 내 공간에서 고양이를 안고 영국 축구 경기를 관람하다 잠드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생각한다. 누구에게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도 싫다. 사랑이고 결혼이고 자식이고 모두 접고 오직 한몸 누일 공간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살아가는 인물 그 인물이 바로 이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이다. 남은 방 하나라도 경제적으로 활용할 마음으로 월세를 놓았다가 우연히 어떤 여인을 만나 이른바 계약결혼까지 이르게 된다.
또 한 명의 여자가 있다. 힘들게 어려운 가정에서 한국 최고의 학교에 들어갔지만 취업이 너무도 힘들다. 특별히 공무원시험이나 의사 등 특별한 기술이 없으면 취업이 힘든 사회. 그 사회속에서 제대로 된 자신의 꿈을 펼치기가 너무 힘든 나날 아니든가. 드라마 작가의 길에 나섰지만 그곳도 갑질에다 남성우월주의 생각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즐비하다. 나름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고 싶지만 현실은 결코 그런 마음을 포용해 주지 못한다. 남해섬 깡촌 살고 있는 부모가 어떻게 서울에서 살 공간을 마련해 주겠는가. 다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내려오라는 말만 할 뿐이다. 1미터 63 정도의 자그마한 몸하나 누일 공간이 없는데 무슨 연애와 결혼을 생각하겠는가. 더더구나 아이를 갖는 것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이 아니면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한다.결국 방한칸 구할 마음으로 이른바 계약결혼까지 감행하고 만다.
조금은 무모한 생각과 행동이것 같지만 아주 엉뚱한 발상은 아닌 것으로 느껴진다. 제대로 된 연애와 결혼 그리고 신혼생활 그 이후 생기는 아이들......이 정도로 행하는 인물들은 적어도 금수저이거나 벼락부자의 자식들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궁여지책으로 내놓는 살아가는 방편이 이드라마의 핵심임을 느낄 때 나의 가슴은 무너져 내리고 만다. 이런 상황에 놓인 젊은이들이 이 드라마에 나오는 이런 사람들에 한정된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느낄 때 갑자기 이 사회가 미워진다. 그리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아들이 둘이나 있는 나 자신이 참으로 불쌍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시작은 계약결혼이라는 것을 했지만 그래도 결코 세속적이지도 않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려고 생각하지 않는 이시대의 젊은이 두명을 본 것 같아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그들의 판단에 관심을 깊게 가질 수밖에 없게 됐다. 돌이켜 기억해 보면 나 젊은 시절 비록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는 않았지만 희망도 있었고 일할 자리도 있었고 능력도 외모도 보잘것 없었지만 그래도 결혼이라는 것을 하는데 별다른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래 저래 세월이 가면서 아이도 셋이나 낳고 집도 하나 생겼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나라가 크게 성장했다고 하지만 일할 자리도 부족한 것 같고 사회적 분위기도 가라앉고 희망도 미래에 대한 기다림도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래도 이 드라마에서 남녀가 애뜻한 사랑도 다시 느끼고 서로를 찾게 되고 이번 생은 처음이어서 비록 서툴지만 그래도 부대끼면서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게 되는 점이 무척 고맙고 감사했다. 비록 내 자신이 이 사회를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희망차고 하루하루를 건강하게 살아가는 그런 토대를 만들어주지 못한 것처럼 여겨져 미안한 생각을 금할 길 없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가 이 생을 선택해서 온 것 아니니 어쩌하겠는가. 하지만 비록 선택적 판단이 아닌 운명적 삶이지만 이렇게 힘든 생은 이번 한 번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힘든 생애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사랑도 느끼고 비록 함께 사는 것이 피곤할 수도 있지만 서로에게 조금씩 양보하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비록 경제적으로 녹록치 않지만 친구들과 간혹 만나 회포도 풀고 이웃들과 친분도 나누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번 생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다. 처음이어서 힘들지만 처음이니 실수도 패배도 그다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인생에서 모든 것은 다 처음 아니든가. 모든 것을 시작함은 다 힘들고 시행착오를 겪는 것 아니든가.
힘든 생을 살아가는 이시대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이 지금 바라보이는 세상이 비록 안개속에 잠기고 짙은 미세먼지가 덮여있다해도 그냥 집안에만 쳐박혀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들 아니겠는가. 마스크를 두개씩 끼고라고 과감히 집밖으로 나서야한다. 그리고 세상을 다시 쳐다봐야한다. 비록 부정부패가 심하고 갈등이 심화되고 불평등의 관계속에 이 사회가 놓여 있더라도 너무 좌절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다시 어깨를 펴고 일어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일단 집을 나서기가 힘들지 한번 나서면 또 그렇게 하루를 보내게 된다. 힘을 내시라. 그대들은 결코 이시대의 낙오자도 패배자도 아니다.
2021년 2월 16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
첫댓글 사랑도 안헸는데 이혼은 무슨.이혼과 함께 다시 시작하자는 제의아니겠는가. 아름다운 이별...그리고 새로운 시작...나도 다시 태어나면 이런 시츄에이션 한번 꼭 해보고 싶은데...상대가 쉽지 않겠지.아니 불가능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