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68) - 김장철 소금값
악행 일삼는 천석꾼 부자 송 진사, 애꾸눈 일목처사를 찾아가는데…
스무이레 밤, 집사가 사랑방으로 들어가 송 진사 앞에 전대와 치부책을 밀었다.
장죽을 문 송 진사가 술잔을 비우고 치부책을 넘기며 말했다.
“국밥집은 이번달에도 집세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단 말인가? 내쫓아버려!”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만 몰아쉬던 집사가
“소인이 봐도 장사가 너무 안돼서…”라고 변명하자 송 진사는
“장사가 그렇게 안되는 이유가 뭔가?”라며 소리를 질렀다.
저잣거리엔 국밥을 파는 집이 둘이다. 하나는 쌍과붓집이고
다른 하나는 송 진사네에 세를 든 남원국밥집이다.
점심때가 되면 쌍과붓집은 발 디딜 틈이 없는데 남원국밥집은 파리만 날린다.
송 진사는 집사를 질책했다.
“남원국밥집을 쫓아내기 전에 주변머리 없는 자네를 먼저 내보내야겠네, 쯧쯧쯔.”
나리로부터 핀잔만 잔뜩 듣고 사랑방을 나온 집사는 저잣거리를 헤매다가
주막에서 왈패 두목, 독사를 찾았다.
이튿날 남원장이 열리자 독사 패거리들은 쌍과부 국밥집에 줄을 서서 기다리며 외쳤다.
“주모! 이게 주모의 머리카락이요, 사타구니 털이요?”
독사와 패거리들의 행패에 국밥집은 아수라장이 됐다. 쌍과붓집이 두달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자
독점이 된 남원국밥집은 밀렸던 집세에다 왕창 올린 세까지 제때 내게 됐다.
송 진사는 천석꾼 부자에다 장터 저잣거리 가게를 요지마다 차지하고 아들 셋, 딸 하나에게
각자 장사를 시키고 나머지 가게들은 세를 줬다. 그들의 장사는 땅 짚고 헤엄치기다.
모두가 남원장터에서는 독점이라 상품값이 천정부지라도 손님들은 우글거린다.
경쟁자가 나타났다 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눈물을 쏟으며 떠나가도록 만든다.
저잣거리에서 송 진사네 식구들이 손을 대지 않은 가게는 소금장수뿐이다.
소금가게는 손님이 항상 넘쳤다.
허구한 날 소금장수 망하게 할 궁리만 하던 송 진사가 어느 날
당숙 장례식에 갔다가 희한한 꼴을 보게 됐다. 다리 아래 거지떼들과 함께 휩쓸려온
볼품없는 애꾸노인이 이미 다 정해진 구일장을 칠일장으로 바꾸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그는 당숙네 하인들에게 몰매를 맞고 쫓겨났다.
발인을 하는 날, 쾌청하고 따뜻하던 날씨가 돌변을 했다.
진눈깨비가 앞을 가리고 지관이 묘터를 잡아놓은 곳엔 눈이 쌓였다.
달달 떨면서 산을 오르던 상여꾼들이 눈길에 미끄러져 상여가 뒤집어졌다.
관이 떼굴떼굴 구르더니 뚜껑이 열리며 시신이 튕겨 나와 굴러 내리다가 눈사람이 됐다.
모두가 혼비백산, 아수라장이 됐는데 송 진사는 상복에 두건을 쓴 채로 산을 내려 달리다가
뒹굴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구암교로 갔다.
“애꾸영감 어디 있어?” 거지를 붙잡고 묻자 거지대장이 나와
“일목처사님은 여기 사는 게 아니라 지리산 자락 토굴 속에 계실 거구먼요”라고 했다.
송 진사는 전대를 풀어 두둑하게 돈을 주고 거지를 앞세워 토굴로 향했다.
저녁나절이 돼서야 토굴에 다다른 송 진사는 깜깜한 토굴 속으로 들어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넙죽 엎드려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처사님 알아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으흐흑.”
한참 지나자 관솔불 아래 애꾸눈 일목처사가 팔베개를 한 채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송 진사는 매일 토굴을 찾아가 그 육중한 몸으로 일목처사에게 삼백배씩 열흘 만에 삼천배를 올렸다.
송 진사가 오든 말든, 절을 하든 말든 본체만체하던 일목처사가 마침내
“뭘 알고 싶은 게야?” 하고 묻자 송 진사가
“처사님, 올가을의 소금값을 알고 싶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일목 처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앞날을 미리 보는 건 좋은 일이 아니야. 이제 돌아가. 낮잠 좀 자야겠어.”
일목처사가 한숨 자고 났더니 송 진사는 아직도 꿇어앉아 있었다.
삼일째 되는 날, 일목처사가 입을 열었다.
“올여름 서해안에 장마가 석달이나 이어져 처서에도 물난리야.”
송 진사는 큰절을 세번 올리고 부리나케 토굴을 뛰쳐나와 집으로 돌아가 다락의 돈 궤짝을
수레에 싣고 곰소로 갔다. 이집 저집 창고에 있는 소금을 매점매석하고 돈표를 써주며
인근의 소금을 싹쓸이했다.
한달 만에 송 진사가 다시 토굴을 찾았다. 싱글벙글 웃으며 김장철 소금값을 물었다.
그러자 처사는 “자네가 자네 눈으로 직접 보게” 하며 송 진사에게 최면을 걸었다.
송 진사는 일곱달 앞으로 시간여행을 하게 됐다.
송 진사네 집 마당에 차양막이 쳐졌고 곡소리가 났다.
아들 셋이 굴건제복에 죽장을 짚고 곡을 하는 것이다.
마누라가 죽었는가? 마누라도 상복을 입고 빈소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다. 그렇다면!
[출처 ] 농민신문 사외칼럼 -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