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어느날, 꽃길에서
뜨거운 태양과 눈부신 햇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던 땀방울,
빨간 줄장미와 청보라빛 수레꽃, 네모난 얼음이 동동 떠 있던 주황빛
오렌지 쥬스. 수녀님이 내 밀던 하얀 손수건. 먼 옛날 유월의 어느날.
퍼줄 놀이는 아니다.
6월 어느날 떠난 여행 길에서 만난 꽃들이 불러온 지난날의 그림같은 이야기.
6일이 현충일, 이젠 그 단어의 의미조차 희미해진 비석의 글자처럼 지워져 가고 있지만
우리가 어린 소녀였을 땐, 풀도 제대로 자라지 않은 황토빛 땅 위에 작은 비석 하나씩을
갖고있던 국립묘지를 찾는 일은 학생들의 연중행사였고. 청보라빛 수레꽃과 자줏빛 패랭이꽃으로
한 묶음 만든 꽃다발을 헌화하고 학교로 돌아오면, "수고했어요" 웃음으로 맞아주던 수녀님.
햇빛에 빨갛게 익은 우리들의 손에 쥐어주던 차가운 쥬스한잔.
어린 학생들을 향한 선생님들의 사랑.
세상은 계획대로는 안되나봐 - 평창군 진부면 라벤다팜에서
오늘 여행은 꽃의 개화시기에 맞출수 없어 어제 번개처럼 바꾼곳.
하이원리조트의 눈처럼 피어있다는 하얀꽃 데이지도 보고 싶긴했지만 내가 보고 싶었던 곳은
금몽암이란 작은 암자. 영월 오지의 작은 오래된 절집, 열여섯 어린 나이에 삼촌에 의해 왕위는 찬탈되고
유배와 있던 임금, 단종이 꿈 속에 보았던 곳에 지어졌다는 암자. 그 암자의 스님이 첫 만남에서 장난처럼
지어준 이름이 카페의 닉네임이됐고, 필명까지 됐으니.
한적하고, 아담하고, 가정집처럼 포근했던 그 암자가 많이 그리웠었다.
금몽암이 아닌 꽃이 피어있는 곳을 찾아 떠난 곳은 평창의 라벤다팜.
강원도 평장군 진부면 두일2리, 다양한 분야의 귀농인 4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친환경 농업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물론 마을이 공동으로 라벤다 연구회를 운영하기도하고, 곁들여 라벤다팜엔
계절의 꽃들과 각종 허브 등을 재배하여 방문객들에게 개방한다. 7월이 되면 라벤다 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오늘 라벤디핌의 주인공은 작약.
약재로도 쓰인다는 작약은 자줏빛 우아한 자태가 오늘의 여왕이다. 꽃 밭 속에 들어가 화사히 웃는
여행도반들의 모습이 마냥 행복해보인다.
감자꽃밭에서 - 평창
세상 곳곳이 참 많이 변해 가는 것 같다. 인적이 드물던 오지였을텐데, 황토흙과 바람과 햇빛이
마음껏 자연 속에서 행복했을텐데. 너무 적적했나? 어느새 세상이 자꾸 낯설어 지는 것 같다.
어쩌다 한적한 곳을 만나면 그래서 그리 반가운지도 모르겠다.
감자꽃이 반가왔다. 풀섶에 어쩌다 피어난 호박꽃 한송이가 예뻤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라던 나태주 시인의 싯귀절이 절로 입가에 맴도는 꽃. 감자꽃의 순박함이 호박꽃의 소박함이 그랬다.
강릉 정동진에서 심곡항까지 해안을 따라 부채길 걷기
정동진,
영화다 드라마다, 많은 이들의 가슴에 그리움을 채곡이 쌓아 놓은 동해의 바다.
정동진 해변을 내려다보며 럭셔리한 배 모양의 호텔이 지어졌고, 이름은 선크루스호텔, 호텔
언덕에서 해변으로 내려가 심곡항까지 3km의 걷기길이 만들어졌다. 지난겨울 심곡항 입구에서
패쇄됐던 해안길이 열린것은 며칠 되지 않았다고 했다. 깊고 넓고 푸른 동해를 끼고 걷는 길.
파도의 웅장한 소리와 해안 곳곳에 솟아난 기암괴석을 바라보며 걷는 길. 흐린 날씨로 짙푸른
동해의 물빛을. 바위에 부서져 내리는 옥빛 물보라의 형형한 색을 볼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동해는
거대한 품으로 당당히 밀려오고 밀려가고 자신의 모습에 흩어짐이 없다.
"나는 동해보다 서해가 좋아."라던 어느 친구. 해외에 살면서도 간간이 들르는 고국에 오면
차 한대 빌려 전국을 여행하던 그에게 물었다. "여행 세계 곳곳 많이 하잖아. 아름다운 곳 많을텐데.."
라는 내 말 속엔 한국에 별로 볼 것이 없지않나? 라던 의미. 그가 말했다. "그 속엔 추억이 없지.
그 풍경 속엔 정이 없거든. 서해를 가면 작은 포구, 노을빛, 허름한 민박집 속에 정이 가듯하거든.
난 갯벌이 좋아. 뭔가 얘기가 많을 것 같아서."
동해의 맑고 푸른 물빛이 좋아서, 거대한 교향악단도 감히 해 낼 수 없는 연주를 이 바다에
오면 들을 수 있어서 동해를 좋아 한다는 날 바라보며 그는 말했었지. " 그릇이 큰가?
보기보단 남성적인가?" 실없는 농담에 웃어 버리던 그 친구의 모습도 부서지는 파도 속에 보인다.
오늘은 참 많은 이들을 만났다.
청보라 수레꽃 속에서 옛날 은사였던 수녀님을. 빨간 베레모를 쓰고 꽃다발을 헌화하던
작은 계집아이들을, 금몽암이 인연됐으니 금련화라고 농담처럼 법명을 지어주던 암자의 스님을,
먼길을 떠나 이젠 만날 수 없는 옛 친구를, 파도에 실려오고 실려가던 많은 이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사랑한다고, 사랑했다고 돌이킬 수 없는 그 순간에게 외쳐본다. 바다의 웅장한 파도 소리가 있어 다행이다.
/어제를 뒤적이는 일이 많은 자는/ 오늘 울고 있는 사람이다./
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한다.
과연 그렇까. 뒤적이는 그림속에서 만났던 많은 나의 인연들, 그 인연에 행복하고 감사한다.
먼 훗날, 오늘의 이 인연들에 대해도 고맙고 또 고마울 것이다.
하얀 백사장이 펼쳐진 옥계해변은 고요했다.
모래 사장위, 갯메꽃 몇개의 푸른 잎이, 물결에 밀려 온 조개껍질 몇개가 조잘조잘
모래위에 살림을 차린다.
첫댓글 같은 마음이 되어 보려하며 잘 읽고 잘 보는 호강을 누리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연화
이제 이 카페에 사랑스런 독자, 연화씨. 보고싶다. 깔깔 거리는 네 목소리도 듣고 싶고.
가을엔 온다고 했던가? 반갑게 만날 날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