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책
남진우
그 옛날 난 타오르는 책을 읽었네 펼치는 순간 불이 붙어 읽어나가는 동안 재가 되어버리는 책을
행간을 따라 번져가는 불이 먹어치우는 글자들 내 눈길이 닿을 때마다 말들은 불길 속에서 곤두서고 갈기를 휘날리며 사라지곤 했네 검게 그을려 지워지는 문장 뒤로 다시 문장이 이어지고 다 읽고 나면 두 손엔 한 움큼의 재만 남을 뿐
놀라움으로 가득 찬 불놀이가 끝나고 나면 나는 불로 이글거리는 머리를 이고 세상 속으로 뛰어들곤 했네
그 옛날 내가 읽은 모든 것은 불이었고 그 불 속에서 난 꿈꾸었네 불과 함께 타오르다 불과 함께 몰락하는 장엄한 일생을
이제 그 불은 어디에도 없지 단단한 표정의 책들이 반질반질한 표지를 자랑하며 내게 차가운 말만 건넨다네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읽어도 내 곁엔 태울 수 없어 타오르지 않는 책만 차곡차곡 쌓여가네
식어버린 죽은 말들로 가득 찬 감옥에 갇혀 나 잃어버린 불을 꿈꾸네 |
첫댓글 그렇습니다
무엇이던 불 타오를 때가 좋을 때 입니다
이젠 그 무엇을 해도 싸늘해 지는...
☆잃어버린 불을 꿈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