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화가 미국 달러화에 대해 한때 1달러=1460원대까지 떨어졌다. 2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는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 기준으로 전날보다 4.4원 내린 1달러=1456.4원으로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13일(1달러=1483.5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주간 거래가 끝난 뒤에도 환율 상승은 계속됐다. 오후 7시 52분 기준으로 1달러=1460.35원이 되었다.
이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도 있다는 정치 소식이 전해지면서 환율 변동성이 확대된 것으로 해석된다.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서 국내 정치 불안이 원화 약세에 기름을 부은 상황이다.
자국 통화가 하락하고 있는 것은 한국 뿐만이 아니다. 미 달러 자산이 세계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브라질 등 일부 신흥국 화폐는 사상 최저치가 됐다. JP모건의 이머징마켓 통화지수는 20일(현지 시간) 43.478로 올해 9.7% 하락했다. 한편, 유로나 일본엔 등 주요 6 통화에 대한 달러의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 인덱스(1973년=100)는 같은 기간에 6.2%상승했다. 18일에는 2022년 11월 이후 처음으로 108을 넘어섰다.
일부 신흥국은 자국 통화 약세를 막기 위해 환율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지난 19일 1달러=6.3헤알까지 떨어지자 80억달러를 투입해 1달러=6헤알 선까지 가격을 되돌렸다. 연초와 비교하면 레알은 달러 대비 25% 하락했다. 미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은 멕시코는 최근 트럼프 당선인의 고관세 주장으로 자국 통화가 떨어지고 있는 멕시코 페소화는 20일 심리적 저항선인 '1달러=20페소'를 넘어 1달러=20.05페소에 거래되고 있다.
신흥국 외환시장이 휘청이는 것은 미국의 호황으로 미국 달러 자산에 돈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미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신흥국 통화 약세는 본격화됐다. 관세 정책 등 트럼프 행정부 2기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달러 강세로 이어지고 있어서다. 이달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통화정책회의도 영향을 미쳤다. 내년 미 정책금리 인하 속도를 시장 예상보다 늦출 것이라는 전망으로 미 국채 수익률이 반등하고 있어서다.
내수 경기 위축으로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속 경기 침체) 공포가 커지는 중국 경제도 신흥국 경제에 악재다. 세계 공장인 중국의 회복이 지연되면서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다. 브라질을 비롯한 원자재 수출국에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신흥국이 연쇄적으로 흔들렸던 1994년 '멕시코 외환위기'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당시 멕시코 국채를 팔고 미국으로 탈출하는 외국인 자금 때문에 멕시코 페소화는 폭락해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이후 아르헨티나, 태국, 필리핀을 거쳐 한국까지 연쇄적으로 위기를 맞았다. 박상현 iM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내년 미국의 금리인하 사이클이 잠시 중단되고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전쟁이 본격화할 경우 시장금리가 크게 움직일 수 있다"며 "94년 멕시코 외환위기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내년에도 모든 통화에 대해 달러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이머징 시장마저 흔들릴 경우 (국내 외환시장도) 충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