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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호(1943년 경북 고령 출신)는 16살 중학생 시절 <피리를 불어라> 라는 첫 만화작품을 그리고, 고등학생 시절까지 <등불> <길> <태양을 향하여> 등 세 작품을 그려 등록금을 벌었다고 한다.
화가가 되고 싶어 홍익대 미대에 입학했으나 집안 사정 때문에 1년 반 만에 군대에 입대했고, 제대 후 1년간 등록금을 마련해 복학하려 했으나 이미 제적된 상태였다고 한다. 그래서 1969년 <소년중앙> 창간호에 <투명인간>을 연재하며 만화계에 정식 데뷔하게 되었다. 이후 뛰어난 그림 실력 때문에 이두호 한 사람만 있으면 잡지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만화, 삽화, 일러스트까지 종횡무진 활약하는 작가가 되었다.
데뷔 초 월간 소년지에 연재했던 소년만화들은 치바 테츠야의 그림스타일을 모방한 작품들을 발표했으나, 과도기를 거치며 1981년 장독대가 탄생한 <바람소리>와 <암행어사 허풍대>의 연재를 통해 자신만의 대표 캐릭터와 ‘바지저고리 만화’를 만들어 낸다. 이후 <객주>나 <임꺽정>과 같은 대하 역사소설을 만화화한 작품이나 조선 서민들의 삶을 그린 다수의 작품을 통해 독자적인 화풍과 세계관을 확립하며 한국 만화계에 독보적인 존재감을 갖게 되었다.
세종대학교 만화 애니메이션학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SICAF 자문위원, 동아 LG 국제만화 페스티벌 운영위원, 우리만화가협회 자문위원, 우리 만화 연합회 고문위원, 부천 만화정보센터 이사 등을 역임했다.
1989년 제2회 YWCA 우수만화작가상
1993년 제6회 YWCA 우수만화작가상
1995년 한국만화 문화상을 수상했다.
<1976년, 1977년 소년중앙별책부록 ‘무지개 행진곡’>
이 작품은 1976년 2월부터 1977년 10월까지 월간 <소년중앙> 별책부록으로 연재되었던 이두호의 초기작품이다. 이두호 작가 역시 초기엔 일본 유명 작가의 그림스타일을 복제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이 작품은 <내일의 죠>로 유명한 치바 테츠야의 <123과 45로쿠 (1・2・3と4・5・ロク>의 아류작으로 알려져 있다.
이원복 작가 역시 초기엔 치바 테츠야의 여러 작품과 캐릭터를 도용했는데, <123과 45로쿠>를 그대로 모사한 <오똑이 행진곡>을 발표하거나, <시관이와 병호의 모험>에서 지바 데쓰야의 캐릭터를 그대로 도용했다가 후일 캐릭터를 수정해 <먼나라 이웃나라>로 재출간한 예가 있다.
내용은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일곱 남매가 여행티켓을 구해드리지만, 사고로 부모님이 죽고 졸지에 고아가 된 일곱 남매가 역경을 헤치며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돌아가신 줄 알았던 부모님이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오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긴 하지만, 이전까지 일곱 남매가 어려움을 헤치며 살아가는 이야기는 코끝 찡한 감동을 안겨준다.
애니메이션화 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이 만화를 좋아하던 독자가 직접 작곡해 선물한 주제가가 있었을 만큼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보남파초노주빨 아롱다롱 무지개
비 온 뒤에 피어나는 별님의 꽃댕긴가
색깔마다 떠오르는 엄마 얼굴 아빠 얼굴
비바람아 멈춰라 엄마 오실 꽃다리다.
고개 들고 하늘 보며 서러움은 박차자
일곱 남매 무지개 무지개 행진곡
빨주노초파남보 아롱다롱 무지개
바람 결에 실려 온 달님의 꽃편진가
색깔마다 스며오는 아빠 마음 엄마 마음
먹구름아 비켜라 아빠 오실 꽃다리다.
가슴 펴고 꿈을 안자 괴로움은 헤치자.
일곱 남매 무지개 무지개 행진곡
<2003년 G&S ‘두손이’>
고아로 태어나 어촌마을의 왈패로 살던 두손이가 양이의 침입으로부터 마을을 지키고 조국애를 통해 각성해가는 이야기. 초등학생을 위한 저연령층 대상의 만화이다.
<1996년 대교출판 ‘뛰어야 벼룩이지’>
생긴 건 메주 같지만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로 미제 사건들을 해결해가는 명탐정 독대의 사건 해결 일지이다. 총 5편의 이야기가 옴니버스로 구성되었으며, 마지막 ‘오참판 살인사건’에서 쓰인 얼음송곳 소재는 여러 추리소설에서 사용된 익숙한 트릭이기도 하다.
<2007년 산하 ‘뿌리’>
이 작품은 서아프리카 만딩고족의 주프레 마을에서 태어난 흑인 소년 쿤타 킨테가 백인 노예상인에게 붙들려 미국 남부로 끌려온 뒤 해방될 때까지 4대에 걸친 노예 수난사를 그린 작품이다. 원작자인 알렉스 헤일리는 자신의 뿌리를 찾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7대조인 쿤타 킨테가 자신의 조상임을 밝혀낸 뒤 자유를 찾기 위한 흑인들의 투쟁의 역사를 소설로 그려냈다.
이두호 작가는 4대에 걸친 이들의 피맺힌 일대기를 소설 못지않은 긴장감과 리얼리티를 살려 만화화했다. 비참했던 흑인 노예들의 일대기를 통해 자유의 값진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작품이다.
<1998년 도서출판 탑 ‘열두대문’>
사후(死後) 저승에 솟아 있는 12대문 뒤에 준비된 형벌을 통해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담은 단편집으로, 작수성례 사흘 만에 칼잡이에게 살해당한 절름발이 남편의 원수를 갚는 들병이 이야기, ‘구멍파기’ 선수였던 맹사또의 바위굴 파기 형벌 이야기 등 세 편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다.
<1995년 팀아트 ‘그믐산이’>
조선을 침탈하는 대마도 왜구의 난을 배경으로 양반가의 마님과 정을 통한 대물림 종의 사랑과 한을 그린 역사만화이다.
스포츠신문에 연재된 성인만화의 특성상 에로티시즘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외병에 대항한 민초들의 의병 활동상이 이두호만의 색으로 표현되고 있다. 초반 촘촘하게 짜여진 연출이 중반 이후 외병의 침입을 계기로 엉성하게 늘어져 주제의식을 잃고 표류한다. 게다가 양반가에 맺힌 한을 풀려다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믐산이나 그 애비인 쫌쇠의 지지부진한 자기한계는 작가의 한계를 노출시키는 듯 진저리나게 만든다.
가문을 잇기 위해 시아버지가 씨없는 아들을 대신해 며느리를 통해 출생한 장독대의 각성과 의병장 활동상 역시 개연성 떨어지긴 매한가지이다. 그토록 증오하던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출생의 비밀을 알고 의병활동을 통해 공을 세워 몰락한 가문을 일으킨다는 발상 자체가 작품 전체의 주제와 겉돌고, 그믐산이 이야기와 두 개의 이야기가 서로 겉돌며 합치되지 않는 느낌을 준다.
전체 이야기에서 모든 비극의 중심엔 대잇기를 위한 양반가의 비극이 깔려 있으며, 조진사의 아내가 내침당한 뒤 그믐산이와 야반도주하는 이유 또한 아들을 낳지 못하는 데 기인한다. 그러나 이 모든 상황들은 개인의 비극으로만 그칠 뿐, 근본적인 이유들에 대한 성찰은 없다. 결과에 따른 행동과 자기한계에 빠진 인물들이 그 속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채 허우적이다 되는대로 살게 되는 게 이야기의 골자이다.
그나마 <째마리>나 <판돌이>에 비해 그림은 조금 더 성의있게 그려졌다.
<1996년 팀매니아 ‘바람소리’>
조선말 장흥으로 식량을 약탈하기 위해 조선인으로 위장한 채 숨어 들어온 왜놈들과 맞서 싸우는 재인 광대 독대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이다.
말뚝이 탈을 쓴 채 왜놈들 손에 죽은 아버지와 누나의 원수를 갚고, 대마도로 빼돌려질 구휼미를 지켜낸 뒤 홀연히 사라지는 독대의 활약상은 토종 영웅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각시탈을 쓰고 일본군에 대항했던 허영만의 <각시탈>과 비견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재인 광대를 주인공으로 한 탓에 독대를 통해 광대놀이 땅재주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땅재주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모둘빼기 재주를 통해 독대의 무술적 배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1998년 도서출판 탑 ‘째마리’>
기억을 잃고 불목하니로 일하던 장독대가 자신을 돌봐주던 훈장과 딸이 살해되자 원수를 갚기 위해 길을 떠난다. 서서히 기억을 되찾은 독대는 훈장 부녀는 물론 포도대장이었던 자신의 부모를 죽인 곽도치를 만나 원수를 갚고 몰락한 양반가의 딸 방실과 인연을 맺는다.
자주 반복되는 회상신의 남발과 날림체의 그림들이 맥을 끊긴 하지만, 민초들의 삶을 그리는 이두호 역사만화의 본궤도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이 작품은 기억을 잃은 양반가의 아들이 세상 밑바닥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인간 찌꺼기들(째마리)을 통해 진정한 인간의 삶과 정의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1998년 도서출판 탑 ‘판돌이’>
이 작품은 왕이 후사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권력찬탈을 노리는 좌의정 김안동과 우의정 조풍양 두 정승의 권력암투 속에 신분을 숨긴 채 죽음의 위기를 넘기며 보위에 오르는 왕손 판돌이의 일대기를 그린 시대극화이다.
치밀한 권력다툼 속에 얽힌 복잡한 인연의 실타래들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마지막 결론이 날 때까지 누구도 결말을 확신할 수 없게 만든다. 궁중을 무대로 한 출생의 비밀과 권력암투 등 흥미로운 소재들이 씨날줄로 얽혀 재미를 배가시킨다. 하지만 일간 스포츠조선 연재물이란 한계 때문에 날림으로 그려진 그림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1987년 ‘주간중앙’에서 <땅거미>로 처음 연재되다, 1995년 ‘스포츠조선’에서 <판돌이>로 제명을 바꾸어 재연재 되었다. 이후 1998년 ‘도서출판탑’에서 단행본 발행되었다.
<2009년 행복한 만화가게 ‘덩더꿍’>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조선 세조(수양대군)의 정난공신(靖難功臣) 중 한명인 홍윤성은 여인겁간을 일삼고 타인의 재물을 강탈하며, 작은 아버지를 절구로 쳐죽이는 천륜과 패악을 일삼은 인물이다. 작가는 이들 실존 인물들의 이름을 살짝 뒤집어 픽션의 역사처럼 가공한 뒤, 그의 손에 일가족이 무참히 살육당한 ‘독대’와 ‘잔금’이라는 천민남매를 등장시켜 분노와 복수심으로 한 맺힌 이들 남매의 신산한 삶을 그리고 있다.
권력자의 수탈에 휘둘리고 저항하는 민초들의 수난과 항쟁의 역사는 그간 많은 역사물에서 단골 소재로 다뤄져 왔다. 이두호 역시 이 작품을 통해 권력자가 휘두르는 칼날에 이지러지고 밟히던 민초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분노를 힘으로 결집해 외부로 표출하는지를 응축된 메시지로 전하고 있다.
그것은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정의실현의 의지’일수도 있고 인간본연의 욕구인 ‘생존본능’일 수도 있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수많은 밀이 되어가는 과정처럼 독대의 죽음을 통해 무지렁이 민초들이 각성해가는 과정은 일찍이 우리가 체험한 ‘80년대 민중항쟁의 과정을 그대로 빼어 닮았다.
아쉬움이 있다면 독대의 각성 과정에 비해 마무리가 다소 성급한 느낌을 주는 탓에 감동의 여운이 적다는 것이다. 독대를 잃은 방실의 분노가 좀 더 부각되었거나, 민초들의 집단행동장면이 조금 더 이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두호가 자신의 화풍을 확립하고 그린 작품들 가운데 가장 완성도 높은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을 통해 보여지는 기와집은 어떤 한국 작가의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품있고 운치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힘있고 늘씬한 용마루에 엽렵한 처마선을 통해 표현되는 팔작지붕의 모습은 우아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두호는 한국 작가 중 기와지붕을 가장 아름답게 그리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2004년 청년사 ‘머털도사’>
1984년 <새벗>에 <도사님 도사님 우리도사님>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시작한 작품으로 여러 연재잡지를 거치며 <머털도사>로 제목이 바뀌었다. 누덕산 제일봉에 사는 착한 누덕도사와 제자 머털이가 질악산에 사는 나쁜 왕질악 도사와 그 제자인 꺽꿀이를 물리치고 마을에 평화를 가져오는 권선징악의 교훈을 담은 작품이다.
이후 머털이는 이두호 작가의 대표 캐릭터가 되어 시리즈로 발간되었으며,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2004년 청년사 ‘머털도사와 108요괴’>
누덕산 제일봉에 살던 머털이가 세상을 어지럽히는 108요괴 퇴치 여행을 떠나 벌이는 활약상을 그린 작품이다. 여행 도중 방실이를 만나 함께 제일봉 거처에 함께 살게 되는 과정도 그려진다.
<2005년 청년사 ‘머털도사와 벌레대왕’>
머털도사가 누더기도사의 소개로 인간의 운명과 천기를 기록하는 누룩거사의 집에 취직해 임진왜란을 막기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이 과정에서 옥황상제가 되려다 실패한 뒤 증오와 적개심을 품고 사는 마귀신선의 훼방이 벌어지기도 하고, 일본에서 건너온 구로다가 앞으로 태어날 한국 위인의 조상을 제거하려는 공작을 펼치기도 한다. 머털도사는 이들의 음모와 계략을 무찌르며 누룩거사를 설득해 앞으로 닥칠 조선의 운명을 바꾸려던 계획을 포기한 채, 시련을 통해 더욱 강인한 민족이 될 것을 기대하며 누룩거사를 떠난다.
이야기 속엔 그리스 신화와 구약성서 이야기들이 믹스되어 이야기를 더욱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2005년 청년사 ‘머털도사와 또매형’>
도사가 되겠다며 가출한 말썽꾸러기 또매를 따라다니며 도와주고, 착한 어린이로 자라도록 인도하는 머털도사 이야기.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말썽꾸러기가 철이 들도록 끝까지 함께 하는 머털도사의 착한 성품이 돋보이는 머털도사 시리즈이다.
<1991년 사계절 홍명희 ‘임거정’ 초판>
조선 중기 양주땅 백정의 아들로 태어난 임꺽정은 어린 누이동생이 박좌수의 아들과 아비로부터 겁간을 당하자 그 아들을 징치한 뒤, 스승 전다비와 구공스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황해도 인근의 산적들을 규합해 산적이 된다.
하지만 우애 깊던 팔삭동이 형 가도치가 박좌수의 처로부터 고문을 받고 죽자 박좌수 부부를 살해한 뒤 실의에 빠져 한동안 한양에 올라가 주색잡기에 빠진 채 청석골을 등한시한다. 그러나 가도치의 아내였던 길녀마저 실성한 뒤 죽어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을 차린 뒤 구공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의적이 되기로 한다.
이때부터 꺽정은 그의 의형제 수하들과 함께 탐관오리를 징치하고 재물을 빼앗아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눠주며 의적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하지만 중종17년(1562) 정월, 황해도 일대에 창궐한 도적 소탕작전을 펼치던 토포사 남치근과 꺽정을 배신한 모사 서림에 의해 구월산에서 사살된다.
<2002년 자음과 모음 ‘임꺽정’>
이두호에 의해 그려진 임꺽정은 다른 어느 작가에 의해 그려진 모습보다 한국적 정취가 듬뿍 배어있다. 풍속화를 연상케 하는 뛰어난 인물묘사와 화력(畵力)으로 조선시대의 어느 산채나 장거리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특히 투박한 붓질로 슥슥 그어진 산 능선이나 소나무 등걸은 그만이 표현하는 동양화다운 풍취를 느끼게 한다.
무엇보다 이두호가 그리는 초가와 기와는 그 소박함이나 단아함이 다른 어느 작가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정겹다. 그곳을 무대로 움직이는 인물들의 움직임 또한 풍경과 녹아 들어 농투사니들의 사는 모습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내뱉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다른 어느 곳보다 생명력을 얻는다.
무대의 배경은 어린 나이에 즉위한 명종을 대신해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는 시기로 소윤의 우두머리인 윤원형과 서녀출신의 정경부인 정난정이 득세하여 설치는 시절이기도 하다. 꺽정의 오랜 동패로 등장하는 김마빡이 정난정의 정인으로 등장해 이들 사이에서 파란 많은 세월을 그려내기도 한다.
천민 백정으로 태어나 온갖 멸시와 천대를 겪다 부모의 원수를 갚고 청석골로 들어가 의적으로 각성하는 꺽정의 삶은 고단한 삶을 살다 죽는 민초들에겐 희망의 메시지와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비록 그 꿈은 사그라들었으나 나무등걸처럼 억센 꺽정의 등줄기를 따라 민초들의 굳센 삶의 뿌리가 힘차게 용틀임하는 듯 하다.
<1981년 창작과비평사 김주영 ‘객주’ 초판>
19세기말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폐문한 천가객주의 후계자 천봉삼이 시장의 여리꾼으로 시작해 상단 행수와 대객주를 거쳐 거상으로 성공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시작은 송파 쇠살주 조성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작반한 보부상들의 모습으로 시작해 근대 상업자본의 축적과정과 외세의 개입으로 혼란한 사회상을 민초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만화는 원작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걸쭉한 입담과 해학들이 이두호의 절세의 그림과 어우러져 한층 빛을 발한다.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펼쳐지는 야행길 풍경에서부터 ‘대단하다’는 말이 쏟아져 나오게 되는 이 작품은 원작의 제1부만이 만화화되었다. 전 작품이 만화화 되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1부 만으로도 전체를 아우를 만한 압축미를 갖고 있다.
만화는 원작과 달리 소설에서 끝까지 악인으로 살아남는 ‘길소개’를 죽이고, 대신 소설에서 죽는 ‘선돌이’를 봉삼의 친구로 끝까지 살려두고 있다. 또한 조소사의 비녀 ‘월이’ 역시 무녀 매월이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잔금이’로 개명했다. 길소개와 선돌이의 운명을 바꾼 것은 작가 역시 만화를 통해서라도 악인은 죽이고 선인은 살려두고 싶은 많은 독자의 권선징악의 바램을 대신한 것일 것이다.
<1992년 풀빛 ‘객주’>
<2015년 바다출판사 ‘객주’>
시대적 배경은 1882년 고종19년에 발발한 임오군란과 흥선대원군의 3일 천하가 실패로 끝나는 시기이며, 그로 인해 외세의 개입과 개화세력과 보수세력의 갈등이 표면화되는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어수선하고 급변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부평초처럼 떠돌이 삶을 살아야 했던 보부상들은 일신과 가족의 안전을 도모할 겨를도 없이 그저 ‘살아내기에’ 급급했다. 작가는 이런 보부상들의 삶을 통해 민초들의 눈으로 바라본 근대의 역사를 흥미롭게 전개시키고 있다.
수많은 인물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쓰이는 인물은 무녀 매월이였다. 미천한 주막 여인네가 우연히 만난 보부상 천봉삼에게 마음을 빼앗겨 무작정 길을 나서는 것으로부터 마음을 끌었다. 방물장수에서 무녀로,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끝끝내 정인을 향한 마음을 놓지 못하는 이 여인의 삶에 깊은 연민을 가질 수밖에 없다. 기구하고 천한 삶이었으나 그 모든 게 한 남자에 대한 지고지순한 연정으로부터 비롯한 것이라는 데에 더 이상 그녀를 미욱하다 탓할 수만은 없었다.
원작 소설은 1973년부터 1983년까지 서울신문에 연재되다, 1984년 9권으로 집필 중단되었던 것을 2013년 교보문고 웹진에 10권이 연재된 후 10권으로 단행본 완간 되었다. 10권은 임오군란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주인공 천봉삼이 복역 중 매월의 도움으로 도망친 뒤 울진에 자리잡으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고 있다.
이두호는 풍속화 같은 그림을 통해 토속색 짙은 김주영의 원작을 두엄냄새라도 풍겨날 듯 화면으로 복원해내고 있다. 길이 있으면 걸어야 하고, 해지면 이슬 피할 곳을 찾아야 하는 보부상들의 부평초 같은 삶과 애환은 그의 붓끝을 따라 입체적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KBS에서 드라마로 방영되고 있는 <장사의 신 - 객주 2015>는 소설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이들의 유년시절과 천가객주의 프리퀄을 다루며 원작과는 다른 느낌을 전해주었다. 개개인마다 소설을 통한 형상화가 다를 수 있겠지만, 장혁을 비롯 출연진들이 표현하는 주인공들의 느낌은 원작을 통해 받은 느낌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기에 몰입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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