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인도 히말라야 산악 지대에 추락해 스물둘의 짧은 삶을 마친 큰형의 시신을 마침내 찾았다는 전화를 56년 8개월 만에 받은 인도 남성이 있다고 영국 BBC가 13일 전했다. 남부 케랄라주의 파타남티타 지구에 사는 토마스 토마스는 큰형 토마스 체리안의 주검을 확인했다는 뜻밖의 전화를 경찰로부터 받았다.
체리안은 인도 육군 공병대원으로 공군 항공기에 101명과 함께 탑승했다가 악천후를 만나 히말라야에 추락하는 비운을 맞았다. 항공기는 북부 히마찰 프라데슈주와 인도령 카슈미르를 연결하는 로탕 패스 상공을 날고 있었는데 갑자기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문제의 IAF AN-12 항공기는 오랫 동안 실종된 상태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는데 2003년 산악인들이 탑승자 한 명의 시신을 발견하면서 대대적인 수색 작업이 시작될 수 있었다. 인도 육군은 몇 년 동안 산을 뒤져 여덟 구의 시신을 더 찾아냈다. 2019년에는 항공기 잔해가 일부 회수됐다.
그런데 며칠 전에 육군은 체리안을 비롯해 네 구의 시신을 더 찾아냈다고 밝혀 현지 신문들의 1면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다.
동생 토마스는 BBC 힌디 인터뷰를 통해 가족들이 소식을 접했을 때 “56년의 갈급증이 순식간에 날아가버린” 느낌이었다며 "한참 뒤에야 다시 숨을 내쉴 수 있었다"고 감격을 전했다. 체리안은 다섯 자녀의 둘째였다. 처음으로 레(Leh, 지금은 부탄) 지역에 자대 배치를 받아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가 변을 당했다. 첫 번째 시신이 발견된 2003년에야 그는 실종자에서 사망자로 바뀌었다. 토마스는 "아버지는 1990년에, 어머니는 1998년에 세상을 뜨셨다. 두 분 모두 사라진 아들 소식을 기다리셨다"고 안타까워했다.
지금까지 추락 현장에서 되찾은 시신은 13구 밖에 안 된다. 날씨도 좋지 않은 데다 만년설 지대라 수색 작업을 원활하게 펼치기 어렵다. 체리안을 비롯해 나라얀 싱, 말칸 싱, 문쉬람 등 네 구의 주검이 발견된 곳은 다카 빙하 근처 해발 고도 4867m 지점이었다. 최근 작전은 인도 육군의 도그라 연대 산하 도그라 스카우츠와 티랑가 산악구조대가 합동으로 펼쳤다. 도그라 스카우츠의 지휘관인 라리트 팔라리아 소령은 위성 사진들과 레코 레이더, 드론 등을 투입해 시신 위치를 확인했다고 말한다. 레코 레이더는 눈 아래 20m에 묻힌 금속물질을 감지해낼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항공기 잔해가 있는 곳으로 여겨지면, 손수 파헤쳐 파편이나 시신을 찾아낸다. 그 빙하의 크레바스 안에서 세 구의 시신을 더 찾아냈다고 했다.
체리안의 유해에는 유니폼의 이름표 'Thomas C'가 붙여져 있고 주머니 속에 그의 신원을 알려주는 문서가 들어 있었다고 했다.
그의 가족은 집안의 기둥을 잃은 슬픔은 여전하지만 그나마 시신을 찾아내 막을 내릴 수 있음에 위안을 느낀다고 했다. 지난 3일 인도 국기로 덮은 체리안의 관을 넘겨 받아 다음날 엘란투르 마을의 교회에서 장례식도 치렀다. 토마스는 오랫 동안 기다리면서 군 장교들로부터 수색을 계속하고 있으니 체리안의 유해를 찾으면 알려주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그들이 그 오랜 세월 계속 연락해준 데 정말로 감사드린다"면서 친인척 가운데 몇몇이 군인들의 수색에 함께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아직도 89명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시신이라도 찾았다는 소식을 기다리다 세상을 뜬 부모나 배우자도 많다. 북부 우타라칸드주에 사는 자이비르 싱 역시 이달 초에야 삼촌 나라얀의 주검을 돌려 받았다. 가족은 오래 전에 희망을 버렸고, 그들의 양해를 얻어 나라얀의 아내 베산티 데비는 그의 사촌 중 한 명과 새 살림을 차렸다. 자이비르는 그렇게 태어난 자녀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오랜 세월 어머니가 나라얀이 돌아올 것이란 희망을 품고 살았다고 돌아봤다. 그녀는 2011년 눈을 감았다. 자이비르의 말이다. "기억할 만한 삼촌 사진 하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