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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술이 깬다. 나는 술이 좀 늦게 깨는 편인가 보다. 일 주일 만에 깼으니까. 오늘은 19일이니, 12월 12일로부터는 꼭 일주일이 지난 것이잖아. 그 날도 옛 날 이야기를 많이도 하고, 많이도 들었다. 나는 성철이를 옆에 앉혀 놓고 한참이나 성철이 이야기를 떠들어 대었다. 누군가가 홍태 이야기를 꺼내 나는 홍태 이야기에 끼어들기도 하였다. 홍태는 미국에서 산다고 그러지? 홍태 이야기를 한 곳은 3차인가, 4차를 한 생맥주집이었다. 성철이 이야기를 한 곳은 동창회장이었다. 성철이 정말 대단하지? 자기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시켰다니 말이야.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성철이의 개인 재산을 얼추 가늠해 보았는데,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숫자가 나오더라. 게다가 그 모든 것을 (아마도) 혼자 힘으로, 그것도 3, 4년 사이에 이룩하였으니...... 내가 우리 까페에 가입할 즈음에 성철이도 가입하였는데, 바로 그 때쯤 성철이가 회사를 설립한다고 까페에 보고하였으니, 세월이 3, 4년 정도 흘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철이가 까페에 가입하여 가입 인사를 하였을 때 나는 꼬릿말을 붙여 성철이를 환영하였는데, 그 꼬릿말에서도 말하였던 바와 같이, 성철이는 한 마디로 샤프한 고등학생이었다. 만약에 ‘샤프하다’는 말 속에 ‘위트있다’는 말이나 ‘유모어가 있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그 말들을 추가해 넣어야 성철이가 된다. (위트와 유모어를 내장한) 샤프함은 참으로 욕심낼 만한 것이다. 그것은 공부 잘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 그 시절 나는, 학교에서 국어 과목을 가르치는 이유를 알지 못하였다. 국어 과목의 시험 문제라는 것은 “밑줄 친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인가?”와 같은 것인데, 주어진 지문 안에 답이 다 들어있어서, 찬찬히 읽어보기만 하면 누구나 답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은가? 이렇게 건방지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몇 개씩 틀리곤 하였는데, 성철이는 항상 나보다 많이 맞추었다. 성철이가 칠판에 발바닥 네 개를 그린 적이 있다. 발바닥만 그린 것이다. 그러나 누가 보아도, 두 개는 엎어져 있는 남자의 것이고, 두 개는 자빠져 있는 여자의 것으로, 그 그림은 발바닥의 주인들이 지금 어떠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를 명쾌하고 야릇하게 암시하고 있었다. 성철이는 외모도 샤프하였다. 한 일(一)자로 그려야 할 눈(眼)을 비롯하여 얼굴 생김도 그러하였지만, 윤기나는 엘리트 학생복으로 빼입은 옷차림도 그러하였다.
2학년 때인지, 3학년 때인지, 점심 시간이 되면 성철이는 자기만의 행동 팻턴을 구사하곤 하였다. 성철이가 도시락을 후딱 해치우고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면, 나는 속으로 “음, 또 시작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성철이를 관찰하였다. 성철이는 뚜벅뚜벅 걸어 교실 앞으로 나아가 교단을 밟고 교실의 앞 문 쪽으로 간다. 그러나 그 문으로 나가기 전에 문 바로 옆에 걸려있는 거울에 자기의 모습을 비추어 보게 되어 있다. 특기할 것은, 성철이는 잎술을 삐죽거리며 앞니를 드러내어 고춧가루라도 끼어있지 않나 하고 점검을 하였다는 점이다. 나도 성철이를 본받아 그대로 따라하였다. 그리고는 교실을 빠져나와 화장실에 들렀다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평행봉이 있는 곳에 다다르면, 이미 평행봉에 올라 날렵한 동작을 자랑하는 성철이가 보였다. 며칠 전 동창회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요즈음도 평행봉을 하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 왔다. 얼마 전부터 평행봉을 새로 시작하였다는 것이며, 요즈음은 한번에 30회씩이나 해 낸다는 것이다. 아마도 ‘프리’를 30회한다는 말이겠지? '배치기' ㅡ 드러누웠다가 튕기면서 일어나는 것 ㅡ 도 된다고 하더라.
샤프한 것은 평정심을 지키는 것, 즉 냉정을 잃지 않는 것과도 관련이 있겠지? 샤프한 것과 원숭이처럼 날뛰는 것은 어울리지 안잖아? 나는 어렸을 때 성철이가 흥분하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본 적이 없으며 침착함을 잃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딱 한번 빼고 말이야. 이하 참고.) 요즈음은 일 년에 두 번 동창회장에서 보는 것이 전부지만, 그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성철이는 요즈음도 그런 스타일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더라. 노조 때문에 어려움이 없느냐고 묻자, 성철이는 자기 회사에는 노조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하면서 그 문제에 관한 자기의 소신과 방침을 분명하게 밝혔다. 동창회장에서 보는 것이 전부인 형편에 이런 판단을 내리는 것이 섣부른 감이 있지만, 나는 참지 못하고, 요즘의 성철이는 예전의 성철이보다 유모어 면에서는 좀 떨어지는 것 같다고 말해 버렸다. 주변에서는 사장님 노릇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 않겠냐면서 대신 변명을 해주었지만, 성철이 자신은 그런 변명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ㅡ 뭐라고 했더라?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ㅡ 그 자리에서 이미 나는 많이 취했었나 봐 ㅡ 이것 비슷하게 응수하였다. “유모 젖을 이제는 더 이상 먹지 못하거든. 그래서 유모어가 좀 떨어졌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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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의 여름 방학, 그러니까 3학년 여름 방학 동안 나는 학교에 나와서 공부하였다. 물론 도서실을 염두에 두고 나온 것이었지만, 무엇 때문이었는지 ㅡ 자리가 없었나? 도서실이 시끄러웠나? ㅡ 나는 도서실 바로 옆 교실을 더 많이 이용하였다. 그 때 홍태가 그곳으로 나를 찾아오곤 하였다. 그 때 홍태는 음악실에서 플룻을 연습하고 있었는데, 연습에 싫증이 나면 4층까지 올라오곤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반드시 플룻을 들고 올라와서는, 나하고 잡담을 나누다가는 내 옆에서 플룻 연습을 계속하였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방학 동안이라서 그랬겠지만, 그 교실의 책상들은 교실 뒷 쪽으로, 그리고 창문 쪽으로 밀려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것이 홍태 눈에는 연주회장의 무대로 보였던 것일까? 홍태는 책상 위에 올라가 책상 위를 이리저리 걸어다니면서 플룻을 불어대었다. 제목은 ‘아를르의 여인’. 내가 신청한 곡일 것이다. 거구의 청년이 책상 무더기를 무대 삼아 유유히 거닐면서 플룻을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게나. 나는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목신이 따로 없고, 목신의 오후가 따로 없다.
나는 홍태가 같은 제목의 곡을 공식적으로 연주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곽규호(후라이보이 곽규석의 동생)가 진행하는 고등학교 탐방 프로가 우리 학교를 찾은 적이 있는데, 그 때 홍태가 전교생이 모인 강당에서 그 곡을 연주하였다. 며칠 전 홍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누군가가 확인해 주었듯이, 홍태는 어렸을 때부터 플룻을 연주하였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이 되어서는 고등학생으로서는 최고의 수준에 올라 있었다. 대학 진학 문제로 홍태가 고민하고 억울해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때 홍태는 경희대의 콩쿨과 연세대(?)의 콩쿨에서 공히 입상하여 명문대 입학 자격을 넉넉히 갖추고 있었다. 홍태는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깔끔한 성격이었다. 언젠가, 김치니, 찌개니 하는, 우리나라 음식은, 먹고 난 뒤가 지저분하다고 말하면서, 서양 음식은 그렇지 않지 않느냐고 덧붙인 적이 있다. 미국에서도 플룻 연주는 계속하고 있는지......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어두워진 후에 도서실을 나선 적도 여러 번 있었는데, 이 일도 그런 때에 일어났다. 층계가 상당히 어두워 조심스럽게 내려가고 있었는데, 내 발밑의 층계 한 가운데에서 도깨비 불 같은 것이 깜빡깜빡하는 것이 아닌가?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하는 것이 영락없는 도깨비 불이 아니라, 물론 담뱃불이었다. 그리고 그 불을 만들고 있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이성철 사장, 아니 이성철군이었다. 물론 더 놀란 것은 내 쪽이 아니라 그 쪽이었다. 성철이는 상대가 나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금새 침착함을 되찾았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성철이는 기억할까? 성철이가 피운 담배 연기가 몽실몽실 올라가는 곳에는 대단한 그림이 한 점 걸려 있었다. 그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우리반 담임이셨던 김철성 선생님이 그린 그림으로, 그 그림에는 질주하는 말이 서너 필 등장하는데, 정말로 진짜 말처럼 보였다. 동양화다. 채색이었던 것 같고. 그 때 우리 둘이는 계단을 걸어내려 오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은데...... 다음과 같이 내기도 걸고 말이야. 성철아, 너무 오래 전 일이라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잡아 때지는 않겠지?
조영태: “학생이 담배를 피우다니. 쯧쯧. 장차 큰 일을 할 사람이 이러면 안 되지.”
이성철: “큰 일이라니?”
조영태: “코스닥에 상장하는 큰 기업을 일군다는 말이지.”
이성철: “누가?”
조영태: “누구긴 누구야 바로 너지.”
이성철: “웃기네. 그런데 코스닥은 또 뭐냐?”
조영태: “주식 시장 같은 거야. 나중에 생기게 돼.”
이성철: “허튼 소리 말고 빨리 가자. 덥다, 더워.”
조영태: “허튼 소리? 내기할까?”
이성철: “좋다.”
조영태: “나는 니가 2007년에 코스닥에 상장할 거라는 데에 건다.”
이성철: “얼마든지. 그런데 그 때 우리가 만날 수나 있을까?”
조영태: “만날 수 있어. 까페가 있거든”
이성철: “까페? 웬 까페?”
조영태: “인터넷 까페 말이야.”
이성철: “인터넷?”
조영태: “하여간 그런 게 있어. 장차 생길 꺼야.”
이성철: “참 내, 이 친구, 마치 미래에서 온 자처럼 말하네. 하루 종일 공부하더니, 어떻게 된 거 아니냐?”
조영태: “좌우지간, 내기는 건 거지? 그런데 무엇을 걸지? 얼마나 걸까?”
이성철: “담배 한 갑. 술 한 잔하고.”
조영태: “거 좋다. 니가 질 꺼니까, 2007년 12월 크리스마스 지나고 새 해가 시작되기 전에 나한테 연락해. 나는 거기로 돌아가 니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첫댓글 옛날 국어 교과서에 있던 피천득님의 수필 "낙엽을 태우며"를 읽는듯합니다. 잠시 옛 생각에 잠겨 봤습니다. 항상 담담한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언제나 재밌어서 좋다! 새해에도 건필을 빈다.
아뿔싸. 내가 또 졌다. 내가 사마. ㅎㅎ (뭐야, 이거, 계무가 책임져야 하나 학준이가 책임져야 하나? '예비심사'니 뭐니 하는 말은 안했잖아? 그나 저나 총무 자리도 내 놓고, 회장 자리도 내 놓은 사람들에게 책임지라고 할 수도 없고 참 내......)
이건 영태 잘못이 아니다 부정확한 정보를 공지한 계무 책임이다 하지만 날로 먹으려 했던 영태도 너무 했던거 아냐 ? ㅎㅎㅎ
간부들 한해동안 수고 많았는데....특검 운운 하지말고 함 만나자. 승패가 대수냐 교수님 기억력에 경의를 표하며..잼있는 글 마이 써주라
홍태의 플릇 이야기들으니 바이올린잘하던 최현태생각이 나는데 이친구는 뭐하는지....
이젠 영태 글에 익숙해서 후다닥 글 읽고 내용 파악도 빨리된다..그러니까 올해 가기전에 성철이캉 함 보잔 얘기지?..연락들 함 해보지뭐...아 근데 영태교수님은 핸펀 안살껴? 성철이 회사 부품 들어가 있는 애니콜 카는거..
영태 일찍와서 몸으로 봉사하고 흥겹게 분위기잡으며 집에 안들어가고 계속 마시자고 외쳐대더니 좋은 애기는 다나누었구ㅡ만... 성철이랑 만나는 날 잡히면 반장이 증인설테니 연락해라...
14회 김 태완입니다. 나름 성철형 개업식때 난화분도 보낸 놈이라 염치불구 글 올립니다. 진정 축하드리고...12회 선배님들의 멋진 모습에 경의를 표합니다. 학준형께도 인사 올립니다.
영태 핸드폰은 내가 중고폰으로 사서 보낼께........... 영태 교수님 중고 핸드폰도 괜찮겠지요? 번호만 새 번호면 ^_^
영태 글 좋~~다.....ㅎㅎㅎㅎ Merry Christmas
다 좋구만. 그런데 연락을 어떻게 한다?
영태 핸드펀도 없다며 이 게시판을 이용해야 하는거 아냐 ?
일단 날짜만 잡아서 올려바바..연락은 내가 해도 되고 병진이가 해도 되고 말여..
영태교수의 글을 읽노라면 마음이 포근해 진다...마치 겨울 가뭄 속에 푸석 푸석 메말라 먼지가 일던 마음에 봄에 내리는 비처럼 촉촉히 심기를 회복하게 한다...정말 그것은 영태교수가 문학성을 갖고 태생으로 타고난 것이 아닌가 하여 부럽기까지 하다...내년에는 수필집을 반드시 한권 내시길...메리 크리스마스 엔 해피 뉴이어~
야~ 앞으로 베푸는 삶을 살겠다는 광식이 글솜씨도 만만치 않은데 !! 메리크리스마스다 !
잘 읽었다~ ㅎㅎㅎ
영태 핸펀을 어떻게던 해결해야지...이거이 도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