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명
홍 성 열
신나다 : 흥이 일어나 기분이 몹시 좋아지다.
신명나다 : 저절로 일어나는 흥겨운 기분과 멋이 생기다.
神明 : 하늘과 땅의 신령
神命 : (1)[천주] 영성(靈性)의 생명. (2) 신의 명령.
기분과 관계된 신명에 대한 국어사전의 뜻풀이다.
신명에 대한 어원은 불분명하다.
한자어가 아니고 고유의 우리말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고 실제로 국어사전은 신명에 대하여 한자의 표기를 별도로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순수한 우리말로 해석하는듯하다.
정리하자면 사람의 기분에 관한 신명은 순수한 우리말이고 神과 관계된 신명은 한자어로 생각하면 무난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관용적으로 '신명이 난다'라는 말을 쓸 때는 무아지경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의미한다.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할 정도에 이를 때에야 신명이 난다는 뜻이다.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할 때 우리 정신은 누가 지배하는가?
어느 학자는 '신난다'는 말은 신이 난다(生)라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즉, 우리 안에 신이 태어난다는 말이라는 것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우리의 옛 여인들이 뒤뜰 장독대에 정안수 한 사발 떠놓고 자식이며 남편의 무사 평안을 빌었던 간절함은 신과 교통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무당의 세계에선 신내림을 받거나 교통하기 위해 무의식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여러 가지 행위들이 이루어진다.
현대에선 무당과 같이 신과 교통하는 사람들을 특수한 직업군으로 인정하면서도 의학이나 사회심리학의 관점으로 다루기도 하고 종교적으로는 사악한 초자연적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 민속신앙은 신 내린 사람들을 신과 인간의 중개자 역할을 한다고 믿어 왔다.
신명이 저절로 흥과 멋이 살아나는 상태라기보다 어떤 계기가 있으면 무의식으로 잠재해 있던 신과 교통하기 위한 유전자가 깨어나기 때문이라고 봄이 타당하지 않을까?
구경꾼의 어깨춤을 불러내는 남사당 패거리의 굿거리가 물 건너온 크림이나 정체불명의 정력제를 팔아먹기 위한 호객행위였을 지라도 그 속엔 '신명'이란 문화의 DNA가 숨 쉬고 있었기 때문에 구경꾼들을 모여들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독 우리 가락이 '신명'난 기분에 쉽게 이르게 하는 것이 남사당패의 뛰어난 기예 때문만은 아닐 터이다.
"가슴이 따뜻한 남자가 좋다."
오래 전 한 기업의 광고 카피가 크게 유행한 적이 있다.
어떤 남자가 가슴이 따뜻한 남자일까?
이해심이 많고 자상하고 배려심이 많은 남자일까?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하고 싶은 욕구가 많은 여성의 입장에서는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한때 氣 수련을 한 적이 있다.
기 수련을 위해서는 3가지 원리를 이해해야 하는데 水升火降(수승화강)의 원리, 情充氣壯神明(정충기장신명)의 원리, 心氣血精(심기혈정)의 원리이다.
각각 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원리와, 기를 어떻게 수련할 것인가의 원리와, 기가 어떻게 운용되는 것인가의 원리이다.
이는 인체를 소우주로 보는 한의학에서도 이런 원리를 바탕으로 진료와 치료가 이루어진다.
신나는 상태의 기분을 이해하자면 이 중 情充氣壯神明의 원리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정이 충만하면 기가 장해지고 기가 장해지면 신이 밝아진다는 뜻으로 인체 내의 기의 진화과정의 원리이다.
여기에서 情充은 하단전(배)을 의미하고, 氣壯은 중단전(가슴)을, 神明은 상단전(머리)을 의미한다.
단전이 열리는 순서대로 수련해야 하는 것은 기를 수련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로 본다.
하단전은 에너지를 축적하는 곳이고, 에너지가 축적되면(하단전이 완성되면) 다음 중단전이 열리는 단계로 넘어간다.
나는 오래전이지만 한때 중단전이 열린 상태를 경험한 적이 있다.
백회혈부터 회음혈까지 기운줄이 서는 것도 경험했다.
중단전이 열리면 기운이 가슴에 모여 있으므로 실제로 가슴이 따뜻해진다.
단순히 가슴이 따뜻한 남자가 자상하고 배려심이 많은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뭐랄까? 몸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긍정적인 생각? 자신감? 당당함?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느낌?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기분을 중단전이 열린 상태에서 경험했다.
먹고사는 문제와 술을 좋아하는 관계로 중단전이 열린 상태가 오래가지 못하고 닫혀 버렸지만, 그때 느꼈던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계속 수련하여 상단전까지 열린 것을 경험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이다.
상단전이 열리게 되면 神明의 상태가 된다. 신명은 신과 소통이 되는 상태다.
우리는 주변에서 가끔 상단전이 열린 사람들을 본다.
무당이 그렇고,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갑자기 의통이 생겨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는 기이한 일을 본다.
이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하단전과 중단전의 열림이 없는 상단전만의 열림은 귀신에게 자신의 혼을 빼앗기는 일이다.
신이라고 어찌 좋은 신만 있을까?
잡귀를 물리칠 힘이 없이 자신의 정신을 내어 주는 것이 종교에서 말하는 귀신들린 자들이다.
우리의 언어 속엔 왜 신명으로 표현되는 말들이 많을까?
어떤 행위의 과정과 결과치가 신명이 난 상태로 이어져야 한다.
신나게 놀고, 신바람 나게 일하고, 신명 난 상태가 돼야 만족한다,
우리의 유전자엔 언제나 신과 교통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채워주는 신명이라는 기분이 있다.
왜 그럴까?
우리가 하늘의 자손이기 때문일까?.
지구 상에 자신이 하늘의 자손이라고 믿는 민족은 한민족과 유대인 뿐이다.
그런 특별한 신분을 나타내는 증표가 신명이라는 기분이 아닐까?
우리의 가락 속엔 무아경에 빠지게 하는 신명이 있다.
무아경 속의 몸동작들은 귀신들린 자들의 몸짓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국어사전의 '신명' 또는 '신나다'의 뜻풀이는 이렇게 수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민족의 고유한 정서로 신과 교통하기 위해 저절로 일어나는 흥과 멋"
2017. 1.
명상록 작가
주의
이 글은 작가의 경험을 토대로 개인적인 생각을 쓴 것으로 학문적으로는 검증된 것이 아니므로 다른 글에의 인용구로 사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