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 도쿄에 있는 통일코리아연구소(unikorea.cool.ne.jp)는 통일학연구소 한호석 소장에게 한(조선)반도의 정세에 관련된 다섯 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전자우편을 통하여 진행하는 대담을 요청하였다. 25개의 물음에 답하는 형식으로 작성된 이 글은 한호석 소장이 전자우편을 통하여 진행한 대담을 정리한 기록이다.
< 차례 >
1. 노무현 정권의 성격과 남(한국) 정치지형의 변동
2. 북(조선)의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 제안과 고강도 대미압박
3.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한·미 상호방위조약 폐기문제
4. 일본의 군국주의 야욕과 대북 적대정책, 그리고 재일조선인에 대한 민족배타주의
5. 민족공조는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중심축이다
1. 노무현 정권의 성격과 남(한국) 정치지형의 변동
물음 1 - 얼마 전에 출범한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한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 내용을 보고 그 정권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노무현 정권은 김대중 정권의 계승자입니다. 따라서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의 본질적 차이는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사를 보아도, 선임 정권의 그것과 질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간판만 바꾸어 달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입니다.
김대중 정권으로부터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진 연속성 속에는 그 이전의 역대정권들의 성격을 계승한 것도 있고, 새로 발생한 정세변화에 조응하여 역대정권들의 성격과 다른 성격을 획득한 것도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이 이전의 역대정권들로부터 계승한 성격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말하자면, 대미예속성입니다. 대미관계에서 자주성을 갖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먼저 자주성이라는 개념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미 관계를 논할 때, 왜 자꾸 자주성이라는 개념을 잣대로 삼으려고 하는가 하는 물음을 제기하기도 합니다만, 대미관계를 자주성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 까닭은, 자주성이 자기와 타자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가장 본질적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와 타자의 관계에서 자기가 자주성을 갖느냐 갖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자기의 존재성격과 운명을 결정하는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자주성이 아닌 다른 개념을 가지고서는 자기와 타자의 관계의 본질을 해명할 수 없으며, 따라서 자기의 존재성격과 운명을 인식할 수도 없습니다.
이처럼 자주성이 타자와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개념이므로, 노무현 정권과 미국의 관계에서 본질을 인식하려 할 때는 언제나 노무현 정권이 자주성을 갖고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을 따져보아야 합니다.
위에서 나는 노무현 정권이 대미관계에서 자주성을 갖지 못했다고 언급하였습니다. 대미관계에서 자주성을 갖지 못했다는 사실은, 노무현 정권의 존재성격을 규정하고 그 정권의 운명을 결정하는 최고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인식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에 대해서 자주성이 없다는 말의 뜻을 대미의존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만, 나는 대미예속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합니다. 타자에게 의존하는 것도 역시 자주성이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한·미 관계는 남(한국)이 미국에게 의존하는 상태가 아니라 예속되어 있는 상태라고 보아야 정확합니다.
의존이라는 개념의 사전적 정의는, 남에게 의지하여 그 도움을 받음으로써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한·미 관계는, 남(한국)이 미국에게 의지하여 그 도움을 받음으로써 존재하는 의존관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미국은 남(한국)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지배하고 남(한국)이 그 지배를 받는 관계를 의존관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미국과 남(한국)의 관계는 예속관계입니다. 대미예속이라는 개념은 미국에게 종처럼 얽매여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물음 2 - 한·미 관계를 논할 때, 일·미 관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한·미 관계의 본질을 이해하려 할 때, 일·미 관계와 비교하면 더 선명한 이해를 얻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남(한국)의 대미관계를 다른 나라의 대미관계와 비교하면, 남(한국)의 대미예속성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일본과 미국의 관계는 미국이 일본을 지배하고 일본이 미국에게 예속되어 있는 관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일본은 미국에 대해서 의존관계에 있다고 말해야 옳습니다. 미국에게 의존하고 있는 일본도 대미관계에서 자주성이 없다는 것은 명백합니다. 일본이 독립국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나, 자주성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을 자주국가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은 대미관계에서는 완전한 자주성을 갖지 못하고 언제나 미국에게 의지하여 그 도움을 받음으로써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미국에게 의지하여 받고 있는 도움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하면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뜻합니다. 미국은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일본에게 전범국이라는 멍에를 씌워놓고 독자적인 군사권을 갖지 못하도록 정치적 규제를 가했으면서도, 실제로는 막대한 군사적 지원을 주었습니다. 전후의 일본은 법적으로 독자적인 군사권을 확보하지는 못하였지만, 사실상 미국의 방조와 지원을 받아 군사력을 끊임없이 증강하여 왔고, 그 결과 군사대국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군사대국으로 등장한 일본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통제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미국이 일본을 정치적으로 통제한다는 말은, 일본으로 하여금 군사부문에서 대미의존관계를 계속 유지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지금 미국은 일본 영토 안에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는 한편, 핵무기, 미사일, 첩보위성을 개발하는 최첨단 군사력의 증강과 관련하여 일본의 군사기술적 발전을 정치적으로 통제하면서 기존의 의존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힘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군사부문만이 아니라 외교부문에서도 대미관계에서 완전한 자주성을 갖지 못하고 의존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언제나 미국이 하자는 대로 따라서 하고 있으며, 미국의 의사에 대해서 반대하지 못합니다. 물론 미국과 일본의 대외적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그러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으나, 일본이 미국의 의사를 거스를 수 없는 것은 명백합니다.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의사에 반대하면서 미국을 견제하고 있으며,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국인 독일과 프랑스도 자국의 이해관계와 맞지 않는 경우 미국의 의사를 따르지 않고 있는데, 미국의 동맹국들 가운데서 일본은 독일, 프랑스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일본은 외교부문에서도 대미의존관계에 있습니다.
대미관계에서 남(한국)과 일본은 모두 자주성을 갖지 못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따져보면 대미의존관계와 대미예속관계라는 질적인 차이가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남(한국)이 대미예속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미의존관계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남(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무시하고 양측의 대미관계를 동일시하는 오류입니다.
물음 3 - 국가의 자주성을 논할 때, 국가주권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가주권의 핵심은 군사권과 외교권입니다. 국가주권은 군사권과 외교권을 행사하는 데서 집중적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므로 군사부문과 외교부문에서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면,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 자주성이 없는 것입니다. 남측 정부가 대미관계에서 군사권과 외교권을 어떻게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군사권은 영토와 주권을 보위하고,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권한과 능력으로서, 구체적으로는 군대에 대한 작전통제권으로 행사됩니다. 외교권은 대외관계에서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권한과 능력으로서, 구체적으로는 다른 나라와의 협상권과 조약체결권으로 행사됩니다. 군사권과 외교권이 모두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군사권입니다. 군사권이 보장되어야 외교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래서 어떤 국가가 자주국가인가 예속국가인가를 논할 때는 언제나 군사권부터 논하여야 하며, 국가의 자주성에 관한 논의에서 군사권을 가장 중시하는 것입니다. 제국주의 국가가 다른 약소국을 예속화할 때, 가장 먼저 강탈·장악하는 것은 그 나라의 군사권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예속하던 시기에 일제 침략자들이 가장 먼저 강탈·장악한 것도 역시 조선의 군사권이었습니다.
50년 이상의 세월동안 남(한국)의 군사권은 주한미군사령관이 장악·행사하고 있습니다. 남(한국)군을 지휘하는 최고사령관은 주한미군사령관입니다. 이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예컨대, 유럽주둔미군총사령관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최고사령관을 겸임하고 있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한 나라들의 군대를 통합지휘체계로 묶어놓고 제 마음대로 지휘하지 못합니다. 주일미군과 일본 자위대를 통합적으로 지휘하는 미·일 연합군사령부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주일미군사령관은 일본 자위대를 제 마음대로 지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한미군사령관은 주한미군과 남(한국)군을 통합지휘체계 안에 묶어놓고서 한·미 연합군사령관의 자격으로 남(한국)군을 제 마음대로 지휘합니다.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책임자는 남(한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미·일 관계와 한·미 관계가 각각 의존관계와 예속관계로 갈라서는 분기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한미군사령관의 지휘를 받고 있는 남(한국)군을 미국의 용병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정확한 인식이 아닙니다. 용병은 다른 나라 정부로부터 월급을 받고 그 나라 지휘관의 지휘를 받는 군대를 뜻합니다. 그러나 남(한국)군은 미국 정부가 아니라 남(한국) 정부로부터 월급을 받으면서, 주한미군사령관의 지휘체계에 편입·예속되어있으므로 미국의 용병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주한미군사령관의 지휘를 받고 있는 남(한국)군은 인류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세계 유일의 '희귀한' 군대입니다.
이처럼 자기의 영토와 주권을 보위하는 권한과 능력이 없는 남(한국), 자기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권한과 능력이 없는 남(한국)에게 어떻게 자주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남(한국)의 대미예속성은 군사부문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표현됩니다.
군사권이 없는 남(한국)이 외교권을 정상적으로 행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남(한국)은 다른 나라와 협상을 진행하는 문제, 다른 나라와 조약을 체결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의 눈치를 살피지 않으면 안 되며 최종적으로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더욱이 남(한국)이 북(조선)과 협상을 진행한다거나 북(조선)과 어떤 정치적 합의를 채택하는 민족내부의 정치적 문제를 처리하는 경우에도 예외 없이 미국의 눈치를 살피고 미국의 사전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일제가 조선의 군사권을 장악한 과정은 명백하게 강탈이었지만, 주한미군사령관이 남(한국)의 군사권을 장악한 과정은 강탈이 아니었습니다. 남(한국)의 대미예속정권이 자기의 군사권을 자진하여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상납하였습니다. 군사권을 강탈당한 것이 아니라 자진하여 상납했다는 것, 바로 이것이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만일 주한미군사령관이 남(한국)의 군사권을 강제로 빼앗았다면, 그 군사권을 되찾으려는 요구가 발생할 수 있는데, 자진하여 상납하였으므로 군사권을 되찾으려는 요구가 발생할 가능성마저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물음 4 - 남측 정부가 군사권을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자진하여 상납하였던 참담한 과거는 되돌아보기도 싫지만, 우리의 대담을 진행하기 위해서 중요한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찾아본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여덟 개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첫째, 1950년 7월 14일 이승만은 "현재의 적대상태가 계속되는 기간동안" 남(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극동군사령관이며 유엔군사령관인 맥아더에게 이양한다는 편지 한 장으로 남(한국)의 군사권을 미군사령관에게 자진하여 상납하였습니다. 편지 한 장으로 자기의 군사권을 다른 나라의 군사령관에게 자진하여 상납한 사례는 인류역사상 없었습니다.
둘째, 1952년에 실시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한국(조선)전쟁을 끝내겠다고 공약한 아이젠하워가 당선되면서 워싱턴에서 종전여론이 확산되자, 이승만은 미국이 남(한국)군 20개 사단을 현대화해주고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기 전에는 한국(조선)전쟁을 끝내서는 안 된다고 생떼를 쓰면서 조약체결을 애걸하였습니다. 이승만이 미국에게 애걸하여 체결된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의 육해공군을 남(한국)에 배치하는 것을 규정함으로써 주한미군 주둔의 법적 근거를 만들어놓았고, 더욱이 그 조약이 무기한으로 유효하다고 규정함으로써 사실상 주한미군의 영구주둔을 인정하였습니다. 예속국이 아닌 이상 외국군대의 영구주둔을 인정하는 조약을 체결하는 나라는 인류역사에 없었습니다.
셋째, 1954년 11월 17일 채택된 한·미 합의의사록은 주한미군사령관이 남(한국)군에게 행사하는 작전지휘권을 작전통제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말을 바꾸었다고 해서 내용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넷째, 미국 극동군사령부가 해체되고 미국 태평양군사령부가 창설되었던 1957년부터 한·미 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되었던 1978년까지 23년 동안, 주한미군 지상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하와이의 태평양군사령관이 아니라 워싱턴의 합동참모본부가 직접 행사하였고, 남(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주한미군사령관이 행사하였습니다. 남(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주한미군사령관이 행사하였다고는 하나, 주한미군사령관은 미국 합동참모본부의 휘하에 있으므로 남(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행사한 것은 합동참모본부였습니다. 이러한 지휘체계는 오늘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남(한국)군은 미국 합동참모본부의 휘하에 배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국 건국 이후 다른 나라의 군대를 합동참모본부가 직접 지휘한 전례는 없습니다.
경기도 오산에 있는 미국 제7공군은 평시에는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군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고 있는데, 방위준비태세(DEFCON) 2 이상의 전시상태로 전환되면 주한미군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서태평양에 배치된 미국의 제7함대가 방위준비태세 2 이상의 전시상태로 전환되는 경우, 작전통제권이 태평양군사령관으로부터 주한미군사령관으로 이양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전시상태에서 제7공군과 제7함대의 작전통제권이 이양되는 특별조치는 조·미 전쟁을 워싱턴의 합동참모본부가 직접 지휘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다섯째, 미국은 1971년에 주한미군 제7사단을 철수하고, 주한미군 제2사단을 전방에서 후방으로 재배치하여 미8군 예비부대로 전환하였으며, 1군단도 철수하려고 하였습니다. 이에 놀란 박정희는 미 1군단을 계속 주둔시켜줄 것을 미국에게 애걸하면서 한·미 1군단을 창설해주기를 간청하였습니다. 미국은 박정희의 간청을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한·미 1군단을 창설하였는데, 한·미 1군단은 간판만 한·미 1군단이었지 예하에 미군병력은 없었고 남(한국)군 1군단, 5군단, 6군단으로만 편성된 것이었습니다. 오늘 존재하고 있는 한·미 연합군사령부는 바로 한·미 1군단을 모태로 하여 창설된 것입니다.
여섯째, 1978년 11월 7일 한·미 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된 이후 1992년 7월 한·미 연합야전군사령부가 해체되기까지 14년 동안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 연합군의 통합지휘체계라는 미명 아래 남(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였습니다.
일곱째, 1992년 7월 한·미 연합야전군사령부가 해체되자 주한미군 제2사단은 한·미 연합군사령부 예하 지상군 구성군에서 벗어나 주한미군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게 되었고, 남(한국)군만을 한·미 연합군사령부 예하 지상군 구성군으로 남겨두어 주한미군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게 하였습니다.
여덟째, 1994년에 남(한국)군에 대한 평시 작전통제권이 남(한국)군에게 반환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작전통제권을 평시와 전시로 구분하는 사기극을 연출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한미군사령관은 여전히 평시작전의 핵심영역인 이른바 '연합위임권(CODA: Combined Delegated Authority)'을 장악함으로써 남(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남(한국)의 군사권이 미군사령관의 손에 완전히 장악되어 있으므로, 남(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지배와 예속의 관계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음 5 - 소장님의 해설을 들으니, 남측 정부가 미국에게 어떻게 예속되어 있는지 이해가 분명해집니다. 그런데 일반동포들은 남측 정부의 대미예속성을 확실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대미예속성이 교묘하게 위장·은폐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인식의 불확실성이 생겨난다고 봅니다만, 소장님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군사권은 군대를 지휘·통제하는 권한과 능력이므로, 군대가 아닌 일반대중들의 일상생활에서는 군사권의 유무가 절실한 현실문제로 체감되지 않습니다. 일반대중들은 군사권이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장악·행사되고 있어도 그 모순을 직접적으로 인지하지 못합니다. 군사권이 주한미군사령관에게 장악·행사되고 있어도 남(한국)의 대중은 군사권이 없다는 것 때문에 자기의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불편이나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습니다.
군사권은 매우 복잡한 지휘·통제체계를 통해서 행사되고 있으므로, 심지어 남(한국)의 하급병사들도 자기들이 주한미군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받고 있는지를 직접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한미군사령관은 남(한국)의 일반대중이나 하급병사들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 남(한국)군 전체에 대한 지휘체계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외교권도 군사권과 마찬가지로 고도의 정치행위를 통하여 행사되는 통치의 권한과 능력이므로 대중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으로 결부되어 있지 않습니다. 외교권을 상실하였는데도 대중들은 그것 때문에 자기의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겪거나 고통을 당하지 않습니다.
지금 남(한국)의 노동자와 농민을 비롯한 절대 다수의 민중들이 생존권을 빼앗기고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민중들은 생존권의 위기를 발생시킨 근원이 군사권과 외교권의 상실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한국)의 민중이 자기의 생존권을 쟁취하는 것은, 미국이 장악·행사하고 있는 군사권과 외교권을 되찾아야 가능하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주성과 생존권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자주성을 상실한 사회에서 민중의 생존권이 보장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민족이 자기의 자주성을 보위하느냐 상실하느냐 하는 문제는,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최고의 문제이며 동시에 민족이라는 사회적 집단의 구성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민중의 생활이 짓밟히느냐 마느냐 하는 생사존망의 절박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민족자주운동과 민중생존권투쟁은 하나의 연관관계로 엮어져야 합니다. 남(한국)의 민중은 자기의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민족의 자주성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로 밀접히 결부시켜 전개해야 합니다.
물음 6 - 노무현 정권의 대미예속성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셨는데, 그렇다면 노무현 정권이 개혁프로그램을 실시하고, 대북 화해정책을 추진하는 문제는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
아주 적절한 문제제기입니다. 노무현 정권의 성격을 규명할 때, 그 정권이 대미예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만을 언급한다면 그것은 전체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노무현 정권은 대미예속성과 더불어 개혁지향성과 화해·협력지향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개혁지향성은 노무현 정권과 남(한국) 사회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성격이고, 화해·협력지향성은 대북관계에서 드러나는 성격입니다. 개혁지향성과 화해·협력지향성은 원래 김대중 정권에 의해서 조성된 것인데, 노무현 정권에 의해서 계승되고 있습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노무현 정권의 대미예속성이 개혁지향성과 화해·협력지향성을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개혁지향성과 화해·협력지향성이 대미예속성에 의해서 압도당하고 있기 때문에, 노무현 정권의 사회·정치적 개혁과 대북 화해·협력사업은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습니다. 치명적인 결함이라는 것은, 사회·정치적 개혁과 대북 화해·협력사업이 미국의 요구와 의사에 따라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만일 노무현 정권의 사회·정치적 개혁과 대북 화해·협력사업이 미국의 한(조선)반도 정책과 어긋나는 경우, 노무현 정권은 자기의 개혁정책과 화해·협력정책을 접어두고 미국의 정책적 요구를 무조건 따라야 합니다. 자주성이 없는 대미예속정권이 추진하는 모든 정책은 불가피하게 실패의 운명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다시 확인됩니다.
김대중 정권이 집권 5년 동안 개혁의 구호를 요란하게 외쳤으나 결국 개혁의 실종이라는 참담한 실패로 집권기간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원인은 대미관계에서 자주성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김대중 정권이 대북관계에서 화해와 협력의 구호를 요란하게 외치면서 남북 최고위급회담의 한 쪽 당사자로 나섰고, 역사적인 6.15 공동선언에 서명하는 공적을 남겼으면서도, 결국 6.15 공동선언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퇴장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원인도 역시 대미관계에서 자주성이 없이 예속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명백하게 서게 됩니다. 노무현 정권은 예속성을 버리고 자주성을 가져야 개혁도 추진할 수 있고, 대북 화해·협력도 추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태생적으로 대미예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주성을 가질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물음 7 - 얼마 전에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동맹체제를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전환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아주 좋은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노무현 정권이 현재의 예속적인 대미관계를 자주적이고 대등한 관계로 전환·발전시킬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명하기도 합니다. 과연 그러한 기대감을 가져도 좋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한 기대는 허망한 물거품입니다. 왜 그럴까요? 한·미 동맹체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한·미 동맹체제는 동맹으로 위장된 지배·예속관계인데, 그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전환한다는 것은 한·미 동맹체제를 해체한다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한·미 동맹체제는 오직 수직적 관계, 즉 지배·예속관계로만 성립될 수 있는 매우 특수한 체제입니다. 한·미 동맹체제가 수평적 관계, 즉 대등한 관계로 성격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 체제를 해체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한·미 동맹체제를 수평적 관계로 전환하려면 주한미군을 전면철수하고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폐기하여야 합니다. 주한미군이 완전히 철수되고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폐기된 조건에서 한·미 동맹체제가 유지될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권은 주한미군 철수를 무조건 반대하고 있으며,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폐기는 말도 꺼내지 못하면서 고작 그 조약의 개정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을 뿐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전인 지난 2월 20일 미국의 대표적인 우익연구단체인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이 서울에서 개최한 토론회에 참석하여 연설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국민이 주한미군 주둔을 원치 않는 것으로 오해하는 일도 있었으나 사실이 아니다. 우리 국민은 한국전쟁 당시 피로써 나라를 지켜준 미국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최근의 주한미군지위협정 개정요구도 주한미군의 주둔을 전제로 한 것이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주한미군 주둔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자의 신분으로 다른 나라의 우익연구단체가 주최한 토론회에 얼굴을 내민 것도 한심한 일인데, 그것도 모자라서 미국의 비위가 상할까봐 대미예속관계를 '혈맹관계'라고 극구 찬양하면서 주한미군의 영구주둔을 소리높이 외친 것은 또 무엇이라고 하겠습니까.
노무현 정권의 견해대로, 주한미군을 유지하는 것은 한미연합군사령부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고, 한미연합군사령부를 유지한다는 말은 남(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주한미군사령관이 장악·행사하는 군사적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미국의 대남 지배체제의 핵심인 군사적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한·미 동맹체제를 수평적 관계로 전환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모순의 극치입니다.
물음 8 - 남측에는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도 다양한 정치세력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다만 정권을 잡은 집권세력이라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정치적 성격은 정치지형의 전반구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측의 정치지형은 고정·불변하는 게 아니고 변화·발전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의 등장이 그러한 변화·발전을 잘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매우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는 남측의 정치지형에 대해서 소장님의 견해를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와 더불어 남측의 정치지형에서 노무현 정권의 위치는 어떻게 규정되겠는지 알고 싶습니다.
남(한국)의 왜곡된 정치풍토에서 좌익, 우익이라는 개념을 논하는 것은, 원인 모를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거나 그릇된 선입관을 지니게 만듭니다. 좌익이라는 말을 들으면 비전향 장기수들의 고통을 연상하게 된다든지, 우익이라는 말을 들으면 극악한 파쇼체제를 연상하게 된다든지 하는 비정상적인 심리현상이 그것입니다. 좌익과 우익은 정치지형과 이념구도를 설명하는 개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중도세력이라는 정치적 중립의 개념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모든 정치세력은 우익세력과 좌익세력으로 갈라지며, 정치적 중립세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치세력들 사이에서 '좌우'의 경계선은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관점과 태도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자본주의체제를 부정하는 정치세력은 좌익세력이고, 그 체제를 인정하는 정체세력은 우익세력입니다. 자본주의체제를 부정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정치세력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중립세력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남(한국)은 우익세력이 득세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남(한국)에는 반미우익세력은 없고 친미우익세력만 활개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남(한국)의 모든 우익세력은 한결같이 대미예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남(한국)에서 반미적 정치활동은 마치 좌익세력의 전유물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기이한 현상입니다.
우익세력이 집권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서는 반미우익세력이 무시할 수 없는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거의 모든 나라들에서는 친미우익세력이 집권하고 있지만, 반미우익세력이 집권한 나라들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테면 이라크가 그러한 나라입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은 반미우익정권입니다.
그런데 남(한국)은 반미우익세력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조건에서 친미우익세력만이 정치권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는 매우 특이한 예외가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미국이 남(한국)의 반미우익세력을 제거하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뒤, 남(한국)과 일본을 군사적으로 점령하면서 자본주의체제를 반대하는 좌익세력을 무차별적으로 탄압·제거하는 한편, 우익세력의 손에 권력을 쥐어주었습니다. 미국은 미국을 반대하여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반미우익세력들 가운데 죄질이 나쁜 극우세력 일부는 제거하는 척하면서 반미우익세력에게 집권을 허락하였습니다. 일본의 반미우익세력은 집권을 허락 받는 대가로 반미성향을 스스로 포기하거나 깊숙이 은폐하고 친미우익세력으로 둔갑하였으며, 그 결과 권력을 거머쥘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한국)에 대한 미국의 점령정책은 판이하였습니다. 미국은 남(한국)에서 반미좌익세력을 철저하게 탄압·제거하는 한편, 나중에는 반미우익세력까지도 모조리 제거하였습니다. 김구의 피살과 김구로 대표되는 반미우익세력의 몰락이 바로 그것입니다. 김구로 대표되는 반미우익세력은 자본주의체제를 인정하면서도 미국의 지배를 반대하는 민족주의적 성향의 정치세력이었습니다. 김구의 피살은 미국과 친미우익세력의 무자비한 탄압에 의해서 남(한국)의 반미우익세력이 완전히 제거된 사건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일본에서는 반미우익세력에게 집권을 허락하였던 반면에 왜 남(한국)에서는 반미우익세력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정반대의 길로 나아갔을까요? 그것은 한(조선)반도에는 분단체제라는 특수한 정치상황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한국)의 반미우익세력은 북(조선)의 혁명세력과 손을 잡았습니다. '반미'라는 공동의 전략목표를 지향하여 투쟁하고 있었던 남측의 반미우익세력과 북측의 혁명세력은 사상과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어 마침내 반미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한 것입니다.
전후 일본에서는 반미우익세력과 반미좌익세력이 반미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지 못했습니다만, 우리 나라에서는 그 두 세력이 반미민족통일전선을 형성하였습니다. 반미민족통일전선의 형성은 미국이 남(한국)에서 완전히 밀려난다는 것을 뜻하였으며, 또한 친미우익세력의 몰락을 뜻하였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친미우익세력은 남(한국)에서 반미우익세력을 완전히 제거하였던 것입니다.
남(한국)에서 반미우익세력의 몰락은 친미우익세력의 압도적인 우세를 뜻하는 것과 동시에 반미민족통일전선의 파괴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김구로 대표되는 반미우익세력의 몰락 이후 남(한국)의 정치지형은 미국의 지배구도에 편입·예속된 우익세력의 전면적 지배로 고착되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근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 와서 등장한 노무현 정권은 이전의 역대정권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지배구도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친미우익정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김구로 대표되었던 반미우익세력으로부터 반미성향을 내던지고 우익성향만을 선택한 정치세력이 구성한 친미우익정권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친미'라는 개념은 미국과 화친한다는 일반적인 뜻이 아니라 미국에게 예속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일제 식민지시기에 '친일'이라는 말은 일본과 화친한다는 뜻이 아니라 일제에게 예속되어 있음을 뜻하였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친미우익정권은 대미화친적인 우익정권이라는 뜻이 아니라 대미예속적인 우익정권이라는 뜻입니다.
이승만 정권에서 시작하여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대정권은 친미우익정치세력이 집권한 결과였습니다. 물론 이승만 정권 이후 노태우 정권에 이르는 기간은 친미극우파쇼세력이 집권하였던 암흑기였다는 사실은 분명히 지적하여야 합니다. 김대중 정권 이후부터 상대적으로 온건한 친미우익세력의 집권연장이 안정적으로 보장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물음 9 - 소장님께서 남측에서 정치적 반미성향을 이야기하시니까, 우리의 대담은 자연스럽게 지난해에 남측에서 일어난 대중적 반미운동으로 논의의 초점을 옮겨가게 됩니다.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대중적 반미운동에 대한 소장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남(한국)에서 미국과 친미우익세력에 압살책동에 의해서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반미우익세력은 영원히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남(한국)에서 일반대중이 가장 추앙하는 정치지도자 반열의 첫자리에 언제나 김구가 등장하는 것은, 김구로 대표되었던 반미우익세력의 반미성향이 대중의 의식 속에 깊숙이 잠재되어 있음을 웅변적으로 말해주는 것입니다. 심지어 친미우익세력의 정치인들 가운데서도 개인적으로는 김구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남(한국)에서 반미성향은 정치세력으로 존재할 수는 없었으나 대중의 잠재의식 속에 존재하면서 그 명맥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일반대중의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반미성향이 어떤 돌출적 계기에 의해 겉으로 표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대중의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던 반미성향은 지난해 미군 장갑차의 여중생 살해사건을 계기로 하여 한 차례 거대한 폭발력을 분출하였습니다. 갑작스러운 힘의 분출현상을 보면서 미국도 놀라고 전세계도 놀라고 남(한국) 대중 자신도 놀랐습니다.
과연 어디에 그러한 힘이 내장되어 있었던 것일까요? 정답은 대중의식의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남(한국) 일반대중의 반미성향은 자신들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지난 50년 이상의 세월동안 이글거리는 암장처럼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잠재되어 있는 반미성향이 어떤 계기에 의해 폭발력을 분출하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지난 연말 남(한국) 대중의 손에 들려졌던 수 십 만 개의 촛불 속에서 우리가 읽어내야 하는 '비결'은 바로 그것입니다.
대중의 의식 속에 잠재된 반미성향이 분출되면, 남(한국)의 정치지형에서 반미우익세력이 복원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정치적 여건이 조성되는 것이고, 그에 따라 미국과 친미우익세력에 의해서 파괴되었던 반미민족통일전선이 재생될 가능성이 열리는 것입니다. 미국과 친미우익세력은 바로 그러한 복원과 재생의 가능성을 내다보면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2. 북(조선)의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 제안과 고강도 대미압박
물음 10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는 미국 정부에 대해서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그 제안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미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져있습니다. 공화국 정부가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자고 제안한 배경에 대해서, 그리고 그 조약의 체결 가능성에 대해서 어떻게 보시는지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던 때가 1953년 10월 1일이었으니까, 올해 10월이면 그 조약이 체결된 때로부터 꼭 50년이 됩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정전협정을 체결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때는,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의 불길이 치솟고 있었던 1951년 5월 17일이었습니다. 그 전쟁이 1950년 6월 25일에 일어났으므로, 미국은 전쟁이 일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패배를 자인한 것입니다. 만일 미국에게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굳은 의지가 있었고, 전쟁승리의 자신과 능력이 있었다면, 그들은 정전협정을 체결하지 않고 전쟁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에게는 그러한 의지도 자신도 능력도 없었습니다.
핵무기를 휘두르면서 초강대국을 자처하는 미국은 보통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강한 존재가 아닙니다. 사생결단의 각오를 가지고 투쟁하는 상대 앞에서는 겁을 집어먹고 뒤로 물러서는 것, 바로 이것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미국의 진짜 모습입니다.
한국(조선)전쟁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였기 때문에 전쟁을 중지하자고 제안한 쪽은 미국이었습니다. 반면에 북(조선)은 미국을 남(한국)에서 몰아낼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한국(조선)전쟁에서 정치적 승패를 가르는 중대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1951년에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정전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결정을 내렸으나 정전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회담은 쉽게 결말을 내지 못했습니다. 정전협상이 시작된 때가 1951년 7월 10일이었고 정전협정이 체결된 때가 1953년 7월 27일이었으므로, 정전협상은 무려 2년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조·미 정치협상이 간단하게 결말을 내지 못하고 우여곡절을 겪으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정전협상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던 1953년 6월 6일 미국은 남(한국)에게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겠다는 사실을 통보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몇 일 뒤인 7월 12일에 미국은 정전협정을 체결하는 것과 더불어 한·미 상호방위조약도 체결하겠다는 사실을 발표하였습니다. 7월 27에 정전협정을 체결하였던 미국은 10월 1일에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이것은 정전협정과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뗄 수 없는 관계로 결부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만일 정전협정이 없었다면 한·미 상호방위조약도 없었을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되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북(조선)이 대미관계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전략목표는 한(조선)민족과 미국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 다시 말해서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폐기입니다. 북(조선)이 그 조약을 폐기하려는 까닭은, 한·미 동맹이라는 말로 위장되어 있는 남(한국)과 미국의 지배·예속관계가 바로 그 조약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3년 2월 11일 연방상원 군사위원회의 청문회에 나온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국장 조지 테닛(George J. Tenet)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정치수단으로 확대하려는 김정일의 시도는 그가 협상을 통해 미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관계를 맺고자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발언하였습니다. 그는 발언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관계라는 것은 미국이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지만, 내가 보기에 그러한 분석은 의도적인 왜곡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추구하고 있는 조·미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는, 핵무기 보유의 용인이 아니라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폐기함으로써 한(조선)민족과 미국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다시 말해서 미국의 대남 지배구도와 대북 대결구도를 한꺼번에 제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폐기하려면 주한미군을 철수하여야 합니다. 주한미군을 그대로 두고 그 조약을 폐기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북(조선)의 당면목표는 우선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것으로 집중됩니다.
북(조선)이 주한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 법적 근거인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조치는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입니다. 조·미 두 나라가 상호불가침을 법적으로 확정하게 되면, 조·미 사이의 전쟁중지상태에 의하여 체결된 정전협정도 자동적으로 존재이유를 상실하게 되며, 미국이 북(조선)의 무력침공을 상정하여 남(한국)과 체결한 한·미 상호방위조약도 자동적으로 존재이유를 상실하게 됩니다.
북(조선)은 조·미 불가침조약 체결 제안을 회피하고 있는 미국을 끌어내기 위하여 정전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차츰 높아지고 있습니다. 만일 북(조선)이 정전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 미국은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여야 하는 압박을 더 강하게 받게 됩니다.
2003년 2월 17일 북(조선)은 정전협정을 준수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의 특파원이 평양을 방문하여 이름을 밝히지 않은 북(조선) 외무성 관리와 진행한 2월 27일의 대담에서 그 익명의 관리는 미국이 계속 북(조선)의 요구를 외면한다면 북(조선)은 정전협정의 구속에서 완전히 탈퇴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조·미 불가침조약의 체결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고,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시키며, 궁극적으로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폐기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북(조선)은 올해 들어오면서 미국에게 정치협상에 나오라는 강한 요구를 계속하여 들이대고 있습니다. 미국은 대화는 하겠지만 협상은 하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북(조선)의 요구를 회피하다가, 지금은 다자간 회담을 개최하자는 억지주장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만일 미국의 억지주장대로 다자간 회담을 개최하려면 그 회담에 참가할 당사자들을 누구로 정할 것인지를 결정하여야 하며, 그 회담에서 다룰 의제의 범위를 정하여야 하며, 그 회담의 정치적 지위를 규정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를 불러일으킵니다. 미국의 속셈은 조·미 정치협상의 과제를 다자간 회담을 추진하는 복잡한 과정 속에 몰아넣고 시간을 질질 끌다가 적당히 넘어가려는 것입니다. 미국의 다자간 회담 제안은 조·미 정치협상을 회피해보겠다는 궁여지책입니다. 클린턴 정권 시기에 북(조선)이 조·미 정치협상을 하자고 강하게 요구하였을 때, 그에 대한 대응으로 4자 회담이라는 것을 역제안하였던 상황과 흡사합니다.
그러나 4자 회담이 몇 차례 열리다가 슬그머니 중단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자간 회담이라는 것은 성사될 수도 없지만, 설사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소득이 없을 것이며 결국 중단되고 말 것입니다.
전세계가 반대하는 이라크 침략전쟁을 미국 단독으로라도 기어이 감행하겠다고 하는 '강한 미국'이 조·미 정치협상을 재개하자는 북(조선)의 요구를 회피하면서 쩔쩔매는 '나약한 미국'으로 변해버린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미국이 조·미 정치협상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조·미 정치협상을 두려워하고 있을까요? 그 까닭은, 미국이 조·미 정치협상에 다시 끌려나가면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이 조·미 정치협상에 나가서도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지 않겠다고 버티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지만, 조·미 관계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북(조선)은 미국을 조·미 정치협상에 다시 끌어내면 이번에는 반드시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말겠다고 단단히 벼르면서 철저한 준비를 갖추어 놓았습니다. 북(조선)이 사전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고서 불가침조약을 체결하자는 제안을 내놓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북(조선)은 요리조리 피하고 있는 미국을 꽉 붙들어서 조·미 정치협상에 다시 끌어내면, 미국이 불가침조약 체결에 순응하지 않을 수 없는 결정적인 조치들을 준비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미국은 초강대국의 체면이 남김없이 구겨지는 외교적 손실을 감수하면서 북(조선)의 정치협상 재개 제안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고 있습니다.
물음 11 - 그렇다면 조·미 불가침조약이 체결될 가능성은 어떻게 보아야 하겠습니까?
올해 6월은 조·미 두 나라가 역사상 처음으로 합의한 외교문서인 뉴욕 공동성명이 채택된 지 10년이 되는 때이며, 7월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50년이 되는 때이며, 10월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된 지 50년이 되는 때입니다.
나의 판단으로는, 이처럼 중대한 정치적 계기가 연속적으로 다가오는 올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대미관계에서 어떠한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려고 결심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조·미 뉴욕 공동성명의 이행이 미국에 의해 지연되고 있는 사태를 10년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한(조선)반도의 정전상태를 50년 이상 유지할 수 없으며, 남(한국)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지배를 50년 이상 지속되게 할 수 없다는 것, 바로 이것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단호한 결심을 세우게 된 동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심은 단호하고, 목적은 분명하며, 그 목적을 달성할 수단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정세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라크 침략전쟁의 불을 지르고 있는 부시 정부는 미국 내부에서, 동맹국들과의 관계에서, 국제사회에서 터져 나오는 강한 저항과 반발에 부딪히면서 휘청거리고 있고, 이라크 침략전쟁을 계기로 하여 치솟고 있는 반미·반전투쟁은 전세계적 범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또한 한(조선)반도에서는 노무현 정권이 등장하여 남북관계의 악화를 방지하면서, 북(조선)의 핵무장도 반대하고 한(조선)반도의 전쟁도 반대한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사표명은 노무현 정권이 조·미 대결관계에서 마치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노무현 정권은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책동을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라 한(조선)반도의 전쟁을 반대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시 정부는 한(조선)반도 전쟁책동을 자행하고 있으면서도, 한(조선)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조선)반도의 전쟁을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은 미국의 대북 전쟁책동을 은폐하려는 부시 정부의 선동에 휩쓸리는 꼴이 됩니다.
민중의 반전평화운동이 내거는 투쟁구호는 전쟁을 반대한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책동을 반대한다는 것으로 되어야 합니다. 미국의 한(조선)반도 전쟁책동을 반대하는 것은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조·미 정치협상에 미국이 나서야 한다는 주장과 일맥상통되는 것입니다.
이제 대담의 주제로 되돌아가겠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단은 무엇일까요? 내가 보기에, 그 수단은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입니다. 북(조선)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미국의 전략거점들을 초토화하는 가공할 무력수단이기 전에, 미국을 꼼짝하지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정치수단입니다.
북(조선)이 핵탄두를 장착한 온갖 종류의 미사일로 위협하고 있는 미국에 맞서 싸우려면, 허리띠를 졸라매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보유하여야 하였고, 또 실제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발표한 논문에서 북(조선)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미사일강국이라는 사실을 논증한 바 있습니다. 그 논증을 여기서 되풀이할 생각은 없고, 다만 최근에 파악한 보완적인 정보를 세 가지만 더 첨부하겠습니다.
첫째, 2003년 2월 12일 연방상원 군사위원회의 청문회에 나온 미국 중앙정보국 국장 조지 테닛은 북(조선)이 미국 서부해안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자기의 보좌관들과 상의한 뒤 "비밀해제된 대답은 그렇다는 것이다. 북(조선)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답변하였습니다. 북(조선)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보유문제는 미국의 정치권에서 매우 예민한 문제이므로, 중앙정보국 국장도 쉽게 답변하지 못하고 보좌관과 상의를 하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답변하였습니다. 이로써 북(조선)이 미국 서부해안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는 비밀은, 공개석상에서 중앙정보국 국장에 의해서 해제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북(조선)이 지구 위의 어느 곳이라도 타격할 수 있는 중량급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지 테닛은 이 사실은 아직 비밀해제할 수 없으므로 공개하지 못하였습니다.
둘째, 2003년 3월 4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대표단회의에 제출된 방일 대표단의 보고서는, 나카야마 타로(전 일본외상)의 말을 인용하면서, 미국의 보고서에 의하면 1998년 8월에 시험발사된 우주발사체의 제3단계 잔해가 알래스카에서 발견되었으며 그에 따라 미국은 한·미·일 모두 북(조선)의 미사일 사정권에 들어있다고 인식하고 삼자 공조를 강화하게 되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북(조선)은 우주발사체 겸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자체적으로 개발·완성하였음을 이미 5년 전에 입증하였습니다. 나의 판단으로는, 북(조선)이 지구 위의 어느 곳이라도 타격할 수 있는 중량급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 주한미군사령부가 해마다 펴내는 2003년판 『사실편람(Fact Book)』은 "제2의 한국(조선)전쟁이 일어날 경우, 10만 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특수전 병력, 로켓포, 미사일, 대량살상무기가 결합하면 안전한 곳은 아무 데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주한미군사령부도 북(조선)의 전략적 타격력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만일 북(조선)이 미국의 핵공격위협에 핵공격위협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북(조선)은 미국에게 정치협상이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였을 것이며, 자신을 보위하지 못하는 이라크의 비참한 운명을 면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북(조선)은 핵탄두를 장착한 온갖 종류의 미사일로 위협하고 있는 미국에 맞서서 핵무기와 전략미사일로 대항하면서 정치협상을 기어이 재개하고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북(조선)이 미국을 어떻게 정치협상으로 다시 끌어내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정치협상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상대를 협상자리에 끌어내려면 압박을 가하는 수밖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상대가 워낙 강대한 미국이므로 웬만한 압박은 통하지 않고 매우 강한 압박을 가하여야 합니다.
북(조선)이 미국에 대해서 가하고 있는 압박은 입체적 압박입니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정교하게 짜여진 예술적 입체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물음 12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미국에 대해서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이해됩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압박을 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좀더 설명이 요구됩니다. 소장님께서 파악하신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조선의 입체적인 대미압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최근에 북(조선)이 취하고 있는 일련의 압박조치는, 내가 보기에는 세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첫째, 영변의 흑연감속로를 재가동하고 사용 후 연료를 재처리함으로써 핵무기를 꽝꽝 만들어내는 능력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미국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는 2003년 2월 3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유럽안보정책회의에서 연설하면서 북(조선)이 영변의 플루토늄 재처리시설을 재가동할 경우 5월이나 6월께 추가로 6-8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무기급 플루토늄을 얻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나의 판단으로는, 지금까지 북(조선)은 매우 은밀하게 핵탄두를 만들어냈고, 미국은 그 사실을 대충 알면서도 전혀 모르는 척하면서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 북(조선)은 무게 1천 킬로그램의 핵폭탄을 개발한 뒤에 그것을 2백 킬로그램 이하의 핵탄두로 소형화하기 위한 기폭실험을 수없이 진행하였으며, 마침내 대륙간 탄도미사일에 소형화된 핵탄두를 장착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북(조선)이 1천 킬로그램 이하로 소형화된 핵탄두를 개발하였다는 것은, 나만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저명한 전문가들도 대체로 공인하고 있는 바입니다. 이를테면 비확산정책 교육센터(Nonproliferation Policy Education Center)의 실무책임자 헨리 소콜스키(Henry D. Sokolski), 미국과학자협회(Federation of American Scientists)의 전략안보담당 책임자 마이클 레비(Michael Levi), 안보전문 웹 싸이트로 이름난 세계안보(Global Security)의 책임자 존 파이크(John Pike), 과학 및 국제안보 연구원(Institute for Science and International Security)의 원장 데이빗 올브라이트(David Albright)같은 비중 있는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북(조선)이 공개하지 않는 핵탄두는 핵확산금지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은 지금까지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을 모르는 척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사정을 달라졌습니다. 북(조선)은 미국으로 하여금 핵확산금지체제 유지와 주한미군 철수 가운데 어느 한 쪽을 선택하도록 몰아가고 있기 때문에, 북(조선)은 이전처럼 핵무기 보유사실을 감추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되었고, 미국도 이전처럼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사실을 모른 척하고 있을 수만은 없게 되었습니다. 북(조선)은 핵무기 보유사실을 입증함으로써 핵확산금지체제를 위협하고, 그로써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는 결정을 이끌어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북(조선)이 핵무기 보유사실을 입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핵무장을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방법도 있고, 핵탄두 제조능력을 입증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미국은 북(조선)이 핵무장을 공식으로 선언하는 것도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003년 3월 4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대표단회의에서 발표된 방미 국회대표단의 보고서는, 워싱턴 정치권 일각에서 북(조선)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나의 판단으로는, 현단계에서 북(조선)은 핵무장을 선언하는 방법이 아니라 핵탄두 제조능력을 입증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북(조선)이 핵탄두 제조능력을 입증하려면 중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지하핵실험을 실시하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북(조선)은 핵탄두를 만들었으면서도 대외적인 정치관계를 고려하여 핵실험을 자제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정치적 관계를 고려할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만일 미국이 끝내 북(조선)과의 정치협상을 회피하면서 정세를 악화시킨다면, 북(조선)의 압박조치는 최후단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하핵실험은 북(조선)이 미국에게 가할 수 있는 최후의 압박조치입니다.
북(조선)이 미국에 대해서 강하게 압박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핵실험까지야 강행하겠는가 하고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의문은 북(조선)의 대미압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도 북(조선)이 핵실험이라는 최후의 압박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심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2003년 2월 12일 연방상원 군사위원회의 청문회에 나온 미국 국방정보국(DIA) 국장 로웰 재커비(Lowell Jacobi)는 북(조선)이 핵실험을 단행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압박강도를 높여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북(조선)이 공개적으로 핵무기 추가확보에 나선 것은 최근 30년래 미국의 지역이익에 반하는 가장 심각한 도전이라고 발언하였습니다. 클린턴 정부시절에서 대통령의 핵안보 및 군축특사로 러·미 정치협상에 참여했던 제임스 굿바이(James Goodby)는 영국의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 2003년 3월 6일자에 발표한 공동기고문에서 북(조선)의 핵실험 가능성을 예견하면서 부시 정부는 대미협상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북(조선)이 이처럼 핵탄두 제조능력을 입증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는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핵무장을 선언하는 것은 한 차례의 공식발표로 미국을 압박하는 것이지만, 핵탄두 제조능력을 입증하는 것은 미국의 대응을 보아가면서 점차적으로 미국을 압박할 수 있는 더 유리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북(조선)은 영변의 흑연감속로를 재가동하고, 사용 후 연료를 재처리하여 무기급 플루토늄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공정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미국에 대한 압박강도를 자꾸 높여가고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 북(조선)은 사용 후 연료를 재처리하는 단계에까지 나아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북(조선)으로서는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문제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실한 과제이므로 최후의 단계로 한 걸음씩 접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국에게 핵확산금지체제 유지냐 주한미군 철수냐를 선택하라는 최후의 통첩을 던져준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북(조선)이 플루토늄 재처리 공정에 한 걸음씩 접근할 때마다 미국은 마치 자신의 숨통이 조여드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끼면서 쩔쩔매고 있습니다.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은 공포의 벼랑끝으로 밀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물음 13 - 최근 미국 언론들은 미국이 영변 핵시설을 정밀타격으로 파괴할 수 있다는 비밀공격계획을 보도한 바 있습니다. 만일 미국이 그러한 무모한 공격계획을 정말 추진한다면, 오늘 조·미 관계의 교착상태는 협상이 아니라 전쟁으로 될 것입니다. 소장님께서는 미국의 영변 핵시설 공격계획설을 어떻게 보십니까?
지난 2월 28일 미국 NBC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한 미국 합참의장이며 공군대장인 리처드 마이어스(Richard B. Myers)는 대북 선제공격설에 관한 방송진행자의 물음에 답하면서 대북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였고, 같은 날 『뉴욕타임스』의 저명한 기고가 니컬러스 크리스토프(Nicholas D. Kristof)는 기고문에서 미국 군부 일각에서 북(조선)의 핵시설에 순항미사일을 발사하여 외과수술식으로 파괴하거나 맹렬한 폭격으로 파괴하는 문제, 그리고 북(조선)의 견고한 포진지를 전술핵무기로 파괴하는 문제가 검토되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3월 2일 남(한국) 정부당국자가 언론에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 합참의장 마이어스의 발언에 관하여 미국 정부당국자에게 물어보았더니, 미국 정부당국자가 마이어스의 발언은 북(조선)의 핵시설을 공격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에서 미군의 선제공격력을 언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는 것입니다.
미국 합참의장이 북(조선)에 대한 선제공격설을 언급했는가 하는 문제와 상관없이, 그리고 『뉴욕타임스』의 기고가가 주장한대로 미국 군부 일각에서 대북 선제공격계획을 검토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상관없이,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계획이 공공연한 비밀로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입니다. 비밀공격계획이 언론에 공개된다는 것은 비밀기능을 이미 상실하였음을 뜻합니다.
주목해야 할 문제는, 미국 국방부가 왜 이 시점에 이미 비밀기능을 상실한 대북 선제공격계획설을 유포하고 있는가 하는 데 있습니다. 나의 판단으로는, 북(조선)의 강한 압박을 받고 있는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이 전쟁이냐 협상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숨막히는 상황에서 취하고 있는 반발심리가 대북 선제공격계획설을 유포하는 행동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영변 핵시설을 이른바 외과수술식 정밀타격으로 파괴하겠다는 미국의 공격계획은 1993년과 1994년에 '핵위기'가 발생했을 때 이미 나왔던 것입니다. 그 때 미국은 그 계획을 언론에 흘려보내기만 하였고 실행에는 옮기지 못하였습니다. 그때나 지금에나 군사전술적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이 영변 핵시설을 정밀타격으로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의 심각성은 영변 핵시설 공격이 전술적으로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격이 미국이라는 국가 전체의 존망문제가 달려있는 전면전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최대의 문제라는 데 있습니다. 영변 핵시설을 파괴하여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미국에게 더 할 나위 없이 중대한 문제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미국 자체의 존망문제가 달려있는 전면전을 일으키는 문제보다 더 심각하지는 않습니다.
2003년 3월 3일자 『뉴욕타임스』는 영국의 BBC 방송이 청취한 북(조선)의 라디오방송을 인용하면서, 만일 미국이 북(조선)의 핵시설을 공격하면 핵전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천명하였다고 보도하였습니다. 그 보도는 사실입니다. 영변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공격은 분명히 조·미 전면전을 일으킬 것입니다.
조·미 전쟁은 이라크 전쟁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은 그 전쟁에 동원되는 전쟁수행력의 규모를 따져보면 전면전이라고 할 수 있으나, 미국 자체의 존망문제가 달려있는 전면전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라크 침략전쟁은 미국이 이라크와 견줄 바 없이 우세한 전쟁수행력을 동원하여 이미 지칠 대로 지쳐있는 이라크를 일방적으로 침공·제압하는 전쟁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영변 핵시설 공격에 의해서 일어나는 조·미 전쟁은 판이하게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미국이 영변 핵시설을 이른바 외과수술식 정밀타격으로 파괴하려면 전면전을 각오해야 하는데, 현재 남(한국)과 동북아시아에 배치한 전투력으로는 전면전을 수행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영변 핵시설을 공격하기 직전에 동해에 많은 항공모함 전단을 배치하면서 전면전 태세에 돌입하여야 합니다.
전면적 태세에 들어간 미국이 정밀유도무기를 발사하여 영변 핵시설을 파괴하는 순간, 북(조선)은 동해에 배치된 항공모함들을 순항미사일로 공격하면서 남(한국), 일본, 서태평양에 널려있는 미군기지들을 대량파괴무기를 장착한 전략미사일로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대량보복을 가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주한미군 3만7천명은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날아오는 시간당 약 50만 발의 대구경 포탄의 불바다 속에서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하게 될 것이며, 남(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약 5만 명의 미국 민간인들은 대피하려고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서울을 순식간에 포위한 조선인민군에게 전원 생포될 것입니다. 『뉴욕타임스』 2003년 2월 23일자 보도에 따르면, 남(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미국 민간인들을 남(한국) 밖으로 소개하는 데는 적어도 21일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 정도의 기간이면 조·미 전쟁은 이미 종결국면에 들어간 이후가 될 것입니다.
지정학적인 측면에서나 군사전략적인 측면에서 따져보면, 북(조선)이 전략적 대량보복으로 파괴할 일차적 목표는 장거리 전략폭격기들이 출격하는 괌, 알래스카의 미군기지들과 태평양군사령부가 있는 하와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이후의 전쟁시나리오는 조·미 두 나라가 서로 상대의 전략거점들을 대량파괴무기로 공격하는 미증유의 전면전이 일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북(조선)의 전략적 대량보복을 막아낼 수 있는 방어능력이 미국에게 없다는 데 있으며, 그러한 방어능력 부재는 곧 미국이라는 국가의 멸망으로 이어진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변 핵시설에 대한 공격은 미국에게 있어서 조·미 전면전 시나리오의 서막이 아니라 미국 멸망 시나리오의 서막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은 말문이 막히고 맙니다.
둘째, 북(조선)이 미국과의 전면전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 능력은 미사일능력을 뜻합니다. 미사일능력에 관하여 말한다면, 북(조선)은 모든 종류의 미사일을 자체의 힘으로 꽝꽝 만들어내는 미사일강국입니다. 북(조선)이 얼마나 많은 종류의 미사일을 만들어냈으며, 얼마나 많이 실전배치하였는지는 미국의 국가정보기관들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조선)은 지난 2월 24일 순항미사일을 동해로 발사하였습니다. 미국 국무차관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L. Armitage)는 2003년 2월 4일 연방상원 외교위원회의 청문회를 마친 뒤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조선)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는데, 그로부터 열흘 뒤에 북(조선)은 정말로 미사일 시험발사를 단행하였던 것입니다.
『워싱턴 타임스』 2003년 2월 27일자 보도에 따르면, 북(조선)이 시험발사한 미사일은 1950년대 식 단거리미사일이 아니라 최신형 장거리 지대함 순항미사일이었습니다. 북(조선)이 자체로 개발한 지대함 순항미사일을 처음으로 시험발사했던 때는 1997년 5월 23일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은 그 순항미사일을 에이쥐(AG)-1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미국의 국가정보기관들은 북(조선)이 이번에 발사한 최신형 순항미사일의 사거리가 약 160킬로미터 정도라고 보고 있습니다. 중국은 사거리가 약 60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 지대함 미사일 실크웜을 보유하고 있는 데 비하여, 북(조선)은 성능을 월등히 개량한 지대함 순항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북(조선)의 신형 순항미사일은 동해의 수평선 너머 먼바다에서 움직이는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을 공격하기 위한 위력적인 지대함 미사일입니다.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은 북(조선)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계속 단행할 것으로 예상하면서 매우 우려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더욱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것은, 우주발사체 겸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또다시 시험발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북(조선)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계속 단행하면 할수록 곤경에 더 깊이 빠지는 것은 미국입니다. 전쟁이냐 협상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미국은 북(조선)이 미사일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미국의 공격의지를 무력화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협상의 길로 끌려나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 북(조선)은 미국의 저항을 누르면서 조·미 정치협상을 진행할 것입니다. 미국이 조·미 정치협상의 자리에 끌려 나왔다고 해서 북(조선)의 대미압박이 그것으로 끝나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북(조선)의 대미압박은 조·미 정치협상 진행과정에서도 가해질 것입니다.
제1단계는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정치협상이 될 것입니다. 미국이 북(조선)의 강한 압박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정치협상에 끌려나오면, 북(조선)은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는 한편, 미국의 요구인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는 조치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조·미 사이의 당면문제는, 영변 핵시설을 동결하느냐 마느냐, 동결의 대가로 신포 경수로를 건설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느냐 못하느냐, 체결의 대가로 핵확산금지체제를 유지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로 변화되었습니다.
물음 14 - 그런데 사람들이 가장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그렇다면 미국은 언제 조·미 정치협상에 응하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 민족으로서는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조·미 정치협상이 재개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도 그렇게 희망하고 있습니다. 다만 부시 정부만이 우리 민족의 요구와 국제사회의 희망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지금 워싱턴의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언론들, 미국 사회의 여론주도층에서 조·미 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매우 높습니다. 부시 정부만 비겁하게도 조·미 정치협상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습니다. 최근 부시 정부가 조·미 정치협상을 회피하기 위해서 꾸며낸 궤변은 '선 핵포기, 후 대화'→'대화 가능, 협상 불가능'→ '다자대화 가능, 양자대화 불가능'으로 뒤바뀌면서 혼란을 일으키고 자가당착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부시 정부의 그 따위 궤변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사람은 미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부시 정부가 제아무리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조·미 정치협상을 피해보려고 해도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저들의 회피책동은 자가당착에 빠져 제풀에 꺾일 것이며, 결국 조·미 정치협상은 재개될 것입니다.
2003년 3월 6일 워싱턴 발 『아사히신붕』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 20일과 21일 독일 베를린에 있는 북(조선) 대사관에서 북(조선) 정부 관리들과 미국의 전직 정부관리 및 민간전문가들이 회담을 하였는데, 북(조선)이 우라늄 농축 계획을 포기할 경우 이를 검증하는 방법을 협의했다는 것입니다. 2월 21일 서울, 베이징, 도쿄를 차례로 방문하고 있었던 미국 국무장관 콜린 파월(Colin L. Powell)은 베를린의 조·미 비공식 접촉을 보고 받자마자, 대북 식량지원을 재개할 것임을 발표하겠다고 말했으며, 25일 서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미국이 올해 10만 톤의 식량을 북(조선)에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이러한 태도변화의 조짐은 벼랑끝으로 밀려간 미국이 대북협상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조·미 정치협상이 재개되는 것은 명백한데, 그 시기를 몇 월 몇 일이라고 꼭 집어서 예언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조·미 정치협상이 재개될 시점을 예상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계기들을 짚어볼 수 있습니다.
첫째, 노무현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하여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시점은 오는 5월이 될 것입니다.
둘째, 부시 정부는 북(조선)이 영변의 재처리시설을 가동하여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시점을 오는 6월쯤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실제로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겠지만, 한·미 사이의 협의형식을 빌어서 주한미군 감축안을 공개하는 시점이 올해 9월이나 10월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위의 세 가지 계기를 생각한다면, 부시 정부가 조·미 정치협상에 마지못해 끌려나오는 때는 한·미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5월 이후부터 주한미군 감축안이 공개되는 시점인 10월 이전의 어느 시점이 될 것입니다. 특별히 북(조선)이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하기 시작하는 시점인 6월부터 10월 사이의 기간이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순전히 나의 추정입니다. 조·미 관계의 변화과정에는 예상하지 못하는 돌발변수가 많고, 매우 풀기 힘든 민감한 사안들이 얽혀있으므로 그 시점을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3. 주한미군 철수문제와 한·미 상호방위조약 폐기문제
물음 15 - 요즈음 내외언론들은 미국이 주한미군을 후방으로 재배치하고 감축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주한미군에 관한 문제는 한(조선)반도의 전략균형에 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매우 예민하고 중요한 것인데, 최근의 감축보도와 관련하여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조·미 사이의 정치·군사적 대결의 본질이 민족자주를 실현하는 문제고, 민족자주를 실현하는 길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것이라는 점을 되풀이하여 주장하여 오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주한미군 철수의 불가피성도 논증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시기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과연 주한미군을 철수할 것인가 하는 의문을 앞세우면서 주한미군 철수는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미국이 북(조선)의 압박에 밀려 결국 주한미군을 철수할 것이라는 나의 견해에 귀를 기울인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압박이 가해져도 끄덕도 하지 않을 만큼 견고하게만 보였던 미국의 주한미군 전략에는 지금 커다란 변화의 파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한미군 철수의 불가피성을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사건이 우리의 눈앞에서 전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미국의 주한미군 전략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파동은 현재로서는 일단 주한미군의 전면철수가 아니라 감축입니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감축하기는 하겠지만, 절대로 완전히 철수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그러한 주장은 정세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어보지 못하는 착오입니다.
혹시 미국이 주한미군을 완전히 철수한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고 해도, 그 계획을 섣불리 외부에 공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미국은 앞으로 대북 정치협상에 끌려나가는 경우, 그 협상에서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하나의 책략으로 이용하려고 하고 있으므로 매우 예민하게 처리할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주한미군을 완전히 철수하는 문제는 조·미 정치협상에서 은밀히 결정될 사안입니다. 조·미 정치협상에서 주한미군의 전면철수가 결정되더라도 그것은 매우 예민하고 중대한 사안이므로 결정사실 자체가 '밀약' 형식으로 처리되면서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에 중·미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정치협상에서 결정되었던 대만주둔 미군을 철수하는 문제도 역시 중·미 두 나라가 밀약 형식으로 처리한 바 있습니다.
주한미군을 전면철수하느냐 일부감축하느냐 하는 문제를 따져보려 할 때, 우선 정확히 인식해야 하는 것은 미국이 왜 하필 이 시점에 주한미군을 감축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조·미 관계의 긴장국면이 날카로워지고 있는 시점에서 미국은 마땅히 주한미군을 증강하여야 하는데, 증강하기는커녕 감축하겠다니, 일반상식으로는 미국의 속셈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남(한국)의 대미예속적인 정치권과 친미우익세력들은 미국이 조·미 관계의 첨예한 긴장국면에서 주한미군을 감축하려는 것을 보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허둥대고 있습니다.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그들은 주한미군의 전쟁억지력과 인계철선 역할이 감퇴되어서는 안 된다고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일반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주한미군의 감축문제는 정세의 본질에 대한 인식으로만 해명된다는 것, 문제의 핵심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정세의 긴장이 감축의 원인이라는 것,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북(조선)의 대미압박이 미국으로 하여금 주한미군을 감축하도록 강제하는 원인이라는 것, 우리는 바로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북(조선)의 대미압박이 엄청난 중력으로 작용하면서 미국의 숨통을 조여갈수록 미국은 주한미군을 더 신속하게 감축하게 될 것이며, 종국적으로는 완전히 철수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주한미군의 단계적 전면철수에 관한 나의 전망입니다.
물음 16 - 그러나 지금 부시 정부는 영 딴전을 피우고 있습니다. 주한미군의 감축은 해외주둔미군 감축의 일환이라고 하면서,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것이 북(조선)의 압박을 원인으로 하여 생겨난 불가피한 결과라는 사실을 애써 감추려 하고 있습니다. 부시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주한미군 감축계획에 관하여 좀더 자세히 설명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미국과 남(한국)의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최근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은 주한미군 지상군을 감축하는 문제를 논의하고 있습니다. 2003년 2월 4일자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주한미군의 역할, 임무, 구조, 규모, 지휘관계를 포함하는 총체적인 변화를 본격적으로 검토하여 앞으로 2년 안에 청사진을 마련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US News & World Report)』 2월 9일자 보도에 따르면, 미국 국방장관의 고위 보좌관들은 미국 해군과 공군이 보유한 장거리 타격력의 비중을 높이고 주한미군 지상군을 철수함으로써 '5027 작전계획(CINCUNC/CFC OPLAN 5027)'을 재정비하고, 남(한국)군에 대한 주한미군사령관의 지휘구조를 변경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2003년 2월 14일에 나온 『워싱턴 포스트』 보도와 워싱턴발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월 13일 미국 연방상원 군사위원회의 청문회에 나온 국방장관 럼스펠드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발언했다고 합니다. 그의 발언은 중요하므로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럼스펠드는 미국 국방부가 주한미군을 후방에 재배치(repositioning)하는 문제와 주한미군에 대한 전반적인 감축(overall reduction)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럼스펠드는 2003년 3월 6일 미국 국방부 기자단과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서울 용산에 있는 미군기지를 후방으로 재배치하여도 주한미군사령부는 용산에 계속 배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주한미군을 재배치하는 사업과 감축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데서 불가피하게 상당한 시차가 생긴다는 사실입니다. 우선 주한미군 지상군인 제2사단을 한강이남으로 재배치하는 것은 한강이남에 새로운 미군기지를 설치하고 이전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함으로 오랜 시간을 요구하는 장기사업입니다. 반면에 제2사단을 미국 본토로 철수하는 것은, 매우 신속하게 추진할 수 있는 속결사업입니다.
둘째, 럼스펠드는 주한미군을 전반적으로 감축하는 문제는, 주한미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주독미군의 감축과 더불어 해외주둔 미군에 대한 광범위한 재조정작업의 일환으로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문제가 해외주둔 미군을 감축하는 포괄적 과제의 일환이라는 사실은, 2003년 2월 19일 백악관 대변인 애리 플라이셔(Ari Fleisher)의 정례적인 언론설명회에서도 확인되었습니다.
참고로 살펴보면, 미국은 남(한국)에 3만7천명, 일본에 4만명, 독일에 7만1천명, 이탈리아에 1만1천명, 영국에 1만1천명, 그 밖의 유럽지역에 2만5천명 등 7백52개의 해외기지에 총 24만7천명을 주둔시키고 있습니다. 그만하면 전세계를 군사적으로 지배하고 있다고 큰 소리를 칠만도 합니다. 부시 정부가 24만7천명 가운데서 얼마나 많은 병력을 감축할지는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들지만, 이번의 감축규모는 상당한 규모가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셋째, 럼스펠드는 주한미군사령관 리언 라포트(Leon J. LaPorte)가 벌써 몇 달째 주한미군의 재배치와 감축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2003년 2월 24일에 발행된 미국의 군사전문 주간지 『디펜스 뉴스』의 기사에 따르면, 미국 국방부가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계획을 입안한 지는 벌써 몇 달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미국 국방부가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문제를 노무현 정부의 제안과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검토해오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미국 국방부가 주한미군 감축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입니다. 2003년 2월 20일에 나온 남(한국)의 주간지 『시사저널』 제695호의 기사에 따르면, 2000년 6월 남북 최고위급회담 이후 서울을 방문했던 미국 군사관계자들은 『시사저널』 기자에게 미국 국방부가 주한미군 지상군 감축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귀띔한 바 있다고 합니다.
그것보다 더 신빙성 있는 정보는, 2003년 3월 4일 국회대표단회의에 참석한 남(한국) 국방부 정책실장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김대중 정부가 2000년과 2001년에 주한미군 문제에 관하여 굉장히 열심히 논의했으며 금년부터 본격적으로 미국과 협의하기로 하였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는 남(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주한미군 문제를 논의한 것처럼 밝혔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한미군 문제는 남(한국) 정부가 단독으로 논의할 수 없는 문제고, 설사 단독으로 논의했다고 해도 그것은 무의미합니다. 주한미군의 재배치와 감축은 전적으로 미국의 손에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또한 남(한국) 국방부 정책실장은 주한미군 문제에 관해서 올해부터 미국과 본격적으로 협의할 것처럼 밝혔지만,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에 관한 세부적인 추진계획까지도 이미 수립해놓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의 발언에는 이처럼 사실과 맞지 않는 내용이 들어있지만, 미국이 주한미군의 감축문제를 검토한 시점이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발언내용만큼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판단으로는, 미국은 남(한국)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주한미군의 감축에 관련한 내부논의를 이미 마무리했고, 정치적인 고려에 따라서 실무적으로 처리하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봅니다.
1990년에 선행 부시 정부가 작성했던 주한미군 3단계 감축안은 10년 동안이라는 기간을 거치면서 단계적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주한미군 7천명을 감축하는 제1단계가 시행되던 중인 1991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제23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당시 국방장관 딕 체니(Dick Cheney)는 북(조선)의 '핵문제'가 제기되었으므로 감축을 중단한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감축안이 완전히 폐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선행 부시 정권이 추진하다가 중단하였던 주한미군 3단계 감축안을 오늘의 부시 정권이 계승하여 다시 추진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당시 주한미군 3단계 감축안을 작성하고 추진을 지휘하였던 총책임자는 당시 국방장관이었고 오늘은 부통령이 된 딕 체니인데, 바로 그가 오는 4월 중순 남(한국)을 방문할 것입니다. 딕 체니는 지난날 자기의 지휘에 의하여 작성되고 추진되다가 자기의 명령에 의하여 중단되었던 주한미군 감축안을 다시 꺼내들고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러 서울에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요?
주한미군의 감축에 관한 문제는 미국이 남(한국)과 협의하여 결정하는 사안이 아니고, 미국이 자기의 요구와 이익에 따라서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추진하는 사안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넷째, 럼스펠드는 남(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주한미군을 재배치하고 일부 병력을 철수하는 방안에 관하여 공식적으로 논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논의는 오는 4월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공식적으로 논의하겠다고 표현하였지만 사실상 공식적으로 통보하겠다는 표현이 더 정확합니다.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해서 미국은 남(한국)을 대등한 협의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인 통보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다음과 같은 경험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990년 4월 19일 딕 체니가 이끌고 있었던 미국 국방부는 「아시아·태평양 연안에 대한 전략구조ː21세기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연방의회에 제출하였는데, 그 보고서에는 앞으로 10년 동안 주한미군을 3단계로 감축한다는 감축안이 들어있었습니다. 미국은 이처럼 주한미군 감축안을 일방적으로 작성해놓고 연방의회에 보고까지 마치고 나서 6개월 뒤인 1990년 11월 17일에 가서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국방장관 회담에서 주한미군 감축안을 공식적으로 통보하였습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도 마치 남(한국)과 협의하여 결정하는 것처럼 촌극을 연출하였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오는 5월께로 예상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과 한·미 정상회담입니다. 미국은 5월의 한·미 정상회담 이전에 주한미군의 감축 문제를 자체적으로 이미 정해놓았겠지만, 그 정상회담에서 마치 주한미군의 감축 문제를 협의하여 결정하는 것처럼 한 편의 어설픈 정치촌극을 연출할 것입니다.
물음 17 - 그러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언제쯤 감축할 것으로 보십니까? 올해 안에 감축할 수 있겠는지, 또는 앞으로 몇 해 동안의 기간을 두고 조·미 관계의 변화에 따라서 감축계획을 조절하면서 단계적으로 감축하겠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문제를 매우 신속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들 가운데 하나는, 2003년 3월 4일 국회대표단회의에 참석한 남(한국) 국방부 정책실장의 발언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는 "미국이 변화속도를 한국보다 빠르게 하자는 입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미국이 남(한국)보다 더 빠르게 추진하려는 변화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두 말할 것 없이 주한미군을 신속하게 감축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처럼 아주 속도감 있게 추진된다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주독미군보다 더 신속하게 감축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2003년 2월 24일에 발행된 미국의 군사전문 주간지 『디펜스 뉴스』의 기사에 따르면, 유럽주둔미군을 감축하는 문제는 아직 구상단계에 있지만,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문제는 훨씬 더 진척되어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독일의 언론 『디 벨트』의 2003년 3월 3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라크 침략전쟁에 동원된 주독미군은 전쟁이 끝난 뒤에 독일의 미군기지로 돌아가지 않게 되므로 주독미군의 철수는 사실상 시작되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1991년 제1차 이라크 침략전쟁 때에도 미국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 주독미군을 철수하였는데, 당시 10만명이었던 주독미군이 7만명으로 감축되었습니다.
주한미군의 감축을 서두르고 있는 미국이 주한미군을 주독미군보다 신속하게 감축한다면 올해 안에 주한미군의 전반적인 감축이 시행된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어쩐지 올해 초부터 부시 정부의 고위관리들이 워싱턴과 서울을 분주하게 들락날락한다 했더니, 그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자기들이 작성한 주한미군의 감축안에 대한 남(한국)의 반응을 떠보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언론에 드러난 그들의 분주한 동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한미군사령관 리언 라포트는 2003년 1월 6일부터 17일까지 워싱턴, 괌과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를 방문하였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1월 18일부터 22일까지 정보조사담당 차관보 칼 포드(Carl Ford)를 남(한국)에 비공개로 파견하여 노무현 당선자 측의 핵심인사들과 만났습니다. 미국 국방부는 2월 26일부터 28일까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 리처드 롤리스를 남(한국)에 파견하여 주한미군사령부, 남(한국) 국방부 고위관계자들과 만나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문제, 남(한국)에 작전통제권을 반환하는 문제 등을 논의하였습니다.
부시 정부가 이처럼 주한미군의 감축을 매우 서두르고 있는 데는 어떤 곡절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미국이 서두르는 까닭은 북(조선)의 강한 압박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마지막 단계에 밀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음 18 - 민족자주성의 관점에서 보면, 부시 정부가 주한미군을 많이 감축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고, 우리 민족은 힘을 합하여 이번 기회에 완전히 철수하도록 부시 정부의 감축을 전면철수로 강제하여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장님께서는 주한미군의 감축규모가 어느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하십니까?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감축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유럽주둔미군총사령부가 설치되어 있고, 미군 7만명이 배치되어 있는 독일에서도 미군을 크게 감축할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은 독일에 4만명 규모의 제5군단, 제1보병사단, 제1기갑사단 등 모두 7만명의 미군을 주둔시키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1개 기갑여단만 잔류시켜 주둔병력 규모를 1만명 이하로 감축하면서 나머지 병력은 철수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주독미군 병력의 85%를 감축하는 규모에 견주어 주한미군의 감축규모를 예상한다면, 주한미군도 6천명만 남기고 3만1천명이 철수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1990년에 선행 부시 정부가 작성했던 주한미군 3단계 감축안에 따르면, 감축 제3단계인 1996년부터 2000년까지의 기간에는 주한미군이 극소수만 남고 모두 철수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극소수라는 표현은 6천명 이하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문제는 과연 미국이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다가 전면철수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미국의 주한미군 감축은 주한미군을 완전히 철수하라는 북(조선)의 강한 압박의 예봉을 피해보려는 일종의 대응조치이므로 북(조선)의 요구대로 전면철수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시각에서 보면, 주한미군의 감축은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감축하다가 전면철수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 이해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북(조선)의 대미압박이 단계적으로 강화되고 있고, 더욱이 주한미군의 전면철수를 목표로 하여 강화되고 있으며, 그와 더불어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세력을 중심으로 힘있게 전개되고 있는 주한미군 철수운동이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으며, 워싱턴 일각에서도 주한미군 철수여론이 조성되고 있으므로, 주한미군의 감축은 앞으로 약 5년 안에 전면철수로 결말을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주한미군의 전면철수에 대한 나의 낙관적 전망입니다.
만일 북(조선)이 미국에 대해서 고강도 압박을 가하지 않고 있고, 남(한국)의 민족민주운동세력과 그 세력을 지지하는 대중들이 주한미군 철수운동을 전개하지 않고 있는 조건이라면, 미국은 주한미군을 자기의 전략적 이익에 따라 일부만 감축하고 그것으로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사정은 완전히 다릅니다.
주독미군의 감축은 미국의 내적 요구에 의하여 추진되고 있지만, 주한미군의 감축은 북(조선)의 고강도 압박과 남(한국) 민중의 미군철수운동이라는 미국의 외적 요인에 의하여 강제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주독미군의 감축과 주한미군의 감축은 외형상 동일하게 보이지만, 그 발생원인과 결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물음 19 - 소장님의 낙관적 전망을 들으니 희망이 보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민족이 미국의 지배 아래서 억울하게 고통을 받으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 지배에서 벗어나 민족자주를 성취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신심이 생깁니다. 그런데 주한미군 철수문제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폐기문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봅니다. 양자의 연관성을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개정 가능성을 예고하였는데, 내가 보기에 그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입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개정 가능성은 그가 발언하기 오래 전에 이미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 사이에서 검토되고 있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2002년 12월 5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에서 미국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장래문제를 협의하자고 제안하였고 남(한국)은 이를 받아들인 바 있습니다.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은, 노무현 정권이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개정하려는 의사와는 무관하게 그 조약을 미국의 이익과 요구에 맞게 개정할 것입니다.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한·미 사이의 정치적 합의가 아니라 미국의 일방적인 이익과 요구에 의해서 체결된 매우 특수한 조약이므로, 그 조약을 개정하는 것도 역시 미국의 일방적인 이익과 요구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하지 한·미 사이의 정치적 합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미국이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자기들의 이익과 요구에 따라 개정할 때, 노무현 정부와 합의하는 형식을 취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미국이 한(조선)민족과 국제사회를 기만하려는 목적에서 연출하는 일종의 가식행위에 지나지 않으며, 내적으로는 미국의 이익과 요구가 일방적으로 관철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이 명확합니다. 그러므로 대미예속성에 얽매어 있는 노무현 정권은 미국의 강력한 지배력에 순응·복종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의 이익과 요구에 따라서 개정될 것입니다.
4. 일본의 군국주의 야욕과 대북 적대정책, 그리고 재일조선인에 대한 민족배타주의
물음 20 - 지금 인류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부시는 후세인 정권을 무력으로 전복하고 바그다드에 새로운 친미예속정권을 세우려는 악의 전쟁을 계획하였고 실동단계에 이미 돌입하였습니다. 인류의 양심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반대·규탄하고 있으며, 전세계 반전평화운동세력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저지하기 위한 대규모 대중투쟁을 세계 곳곳에서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미국의 침략전쟁을 지지하고 나섰으며, 그 전쟁에 직접 가담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지배세력이 이라크 침략전쟁에 가담하는 것은 일본의 군국주의화 프로그램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수 있겠는데, 소장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이 임박하였습니다. 미국은 22만5천명의 병력과 700대의 항공기, 그리고 미국이 거느리고 있는 총 12개의 항공모함 전단 가운데 거의 절반에 이르는 5개의 항공모함 전단을 이라크 침략전선에 들이밀었습니다. 페르시아만에 3개의 항공모함 전단을, 지중해 동쪽 바다에 2개의 항공모함 전단을 내몬 것입니다. 1개의 항공모함 전단이 보유하고 있는 전투력은 웬만한 나라의 전투력과 맞먹을 수 있는데, 5개의 항공모함 전단을 이라크 침략전선에 배비하였다는 것은,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이라크 침략전쟁을 재빨리 끝내려는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제1차 이라크 침략전쟁 이후 지난 12년 동안 미국의 악랄한 봉쇄책동에 의하여 무고한 이라크 인민들이 172만 명이나 억울하게 희생되었습니다. 이라크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으니,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1972년 당시 이라크 혁명평의회 부의장이었던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은 미국의 석유자본이 장악하였던 이라크의 석유자원을 몰수하고 국유화하였으니, 미국이 그를 그토록 증오하고 끝내 제거하려고 날뛰고 있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전세계가 반대하고 진보적 인류가 저주하는 침략전쟁을 기어이 도발하려는 부시 정부와 그 정부의 뒤에서 자원약탈을 위한 침략전쟁을 충동질하는 미국 석유자본이야말로 평화의 교살자이며 악의 화신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공범들이 있습니다. 영국과 일본 두 나라입니다. 물론 영국과 일본의 양심적인 인민들은 이라크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지만, 그 두 나라를 대표하는 정부는 미국의 침략전쟁책동에 적극 가담하고 있습니다.
석유자원을 중동지역에서 수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섬나라 자원빈국들인 영국과 일본은 자기 나라 석유자본의 이익과 요구에 따라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고 이라크 석유자원을 약탈하려는 침략전쟁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있습니다. 대미예속적인 노무현 정권도 이라크 침략전쟁에 파병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특히 일본이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에 적극 가담하고 있는 데는 그러한 경제적 요인만이 아니라 군사적 요인도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지배세력은 어떻게 해서든지 군사력을 증강하여 '아시아의 맹주'로 등장하려는 군국주의 야욕을 품고 있습니다. 그 야욕은 일본의 친미우익세력이나 반미우익세력에게 모두 공통적으로 퍼져있습니다. 일본의 친미우익세력은 미국에게 의존하여 군사력을 증강함으로써 야욕을 채우려고 날뛰고 있으며, 반미우익세력은 독자적으로 군사력으로 증강함으로써 야욕을 채우려고 날뛰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맹주'로 등장하기 위한 군국주의화의 완성단계를 향해 미친 듯이 치닫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일본의 친미우익세력과 반미우익세력 사이에 차이는 없습니다. 다만 군국주의 야욕을 충족시키는 경로와 방도가 다른 것뿐입니다.
일본의 친미우익세력이 군국주의화의 완성을 위하여 미국에게 의존하는 방법론이라는 것은, 내외정세가 변화되면 언제든지 아낌없이 내던질 수 일시적인 방편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본의 친미우익세력과 반미우익세력은, 비록 대미의존적 방법론이냐 대미독자적 방법론이냐 하는 차이를 드러내고 있지만, 군국주의화를 완성하고 '아시아의 맹주'로 등장하는 최종목적에 대해서는 일치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지배세력이 군국주의화를 완성단계로 끌어올리려면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과 더불어 해외침략전쟁의 풍부한 실전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자위대의 해외팽창이라는 말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저들의 군사적 동향은, 군국주의화의 완성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는 저들의 대외침략전쟁 실전경험입니다. 일본의 군국주의화의 완성단계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해서 일본의 핵무장 단계인데, 자위대가 핵탄두로 무장한 전략미사일 부대를 창설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지금까지 일본의 핵무장은 순전히 미국의 통제에 의해서 억제되어 왔습니다. 미국 국무장관 리처드 아미티지는 2003년 2월 4일 연방상원 외교위원회의 청문회에서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는 한 일본은 핵무장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미국은 일본의 핵무장을 예방하기 위해 일본과 긴밀한 군사동맹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발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지배세력은 미국인들 앞에서는 일본이 핵무장을 하지는 않는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자기들의 핵무장 욕구를 감춰보려는 교활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본의 『교토통신』 2003년 1월 3일자 보도에 따르면, 영국에서 최근 기밀해제된 문서에는 1971년 12월 당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Richard M. Nixon)과 당시 영국 총리 에드워드 히스의 정상회담에서 닉슨은 일본의 지배세력이 1970년대 초에 미국이 오키나와에 핵무기를 배치하는 것을 반대하는 척하였지만, 속으로는 환영하였다고 말한 내용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일본의 지배세력이 핵무장에 관해서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태도를 지니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아사히신붕』 2003년 2월 20일자 보도에 따르면, 일본 방위청은 1995년에 작성한 내부보고서 『대량파괴무기의 확산문제에 대하여』에서 미국이 북(조선)의 핵무장을 용인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일본은 핵무장을 검토할 수 없으며, 미국의 핵억지력에 의존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본 방위청이 작성한 보고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북(조선)의 핵무장은 미국이 용인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북(조선)이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그 보고서는 북(조선)이 핵무장을 한 경우에 일본의 지배세력이 일본의 핵무장 문제를 과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의 판단으로는, 북(조선)의 핵무장이 공인될 경우 일본의 지배세력은 미국에 의해서 억제를 받아왔던 기존의 군사전략을 포기하고 핵무장의 길로 나서려고 할 것입니다.
지금 일본은 미국의 억제조치만 풀리면 곧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군사기술적 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관심의 초점은 미국의 억제조치가 유지되느냐 마느냐 하는 정치문제로 집중됩니다. 일본의 핵무장은 군사문제가 아니라 정치문제입니다.
물음 21 - 일본의 군국주의 야욕을 반대하는 문제는 일본의 핵무장을 저지하는 문제와 연동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에 대해서도 설명이 요구됩니다.
일본의 지배세력이 미국이 강제하고 있는 핵무장 억제조치에서 벗어나서 핵무장으로 나아가는 길은, 두 가지 경우로 예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미국이 주일미군을 전면적으로 철수하는 경우, 일본은 즉각 핵무장을 할 것입니다. 미국이 주일미군을 완전히 철수한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주일미군의 완전철수가 곧 일본의 핵무장으로 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러한 양자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뒤집어 말하자면, 미국이 주일미군을 주둔시키고 있음으로 해서 일본의 핵무장을 억제하고 있다는 논리도 성립됩니다.
둘째, 조·미 관계에서 북(조선)의 핵무장이 공인되는 경우, 일본은 핵무장을 추진할 것입니다. 우선 중동에서 이스라엘이 핵무장으로 나아갔던 경험을 살펴봅시다. 지난 시기 미국이 이스라엘의 핵무장을 용인하였어도, 중동지역에서 핵무장의 도미노현상은 일어나지 않았고, 미·이스라엘 동맹관계는 더욱 견고하게 되었습니다. 이라크가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하여 핵무장을 시도하였다가 지금 미국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있습니다만, 중동의 다른 나라들이 이스라엘이 핵무장을 하였으니 우리도 핵무장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핵무장을 추진하지는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미국에 대해서 전쟁을 도발했던 전범국이 아니었으므로, 핵무기를 거머쥔 이스라엘의 지배세력이 미국에 대해서 독자노선을 주장하면서 미·이스라엘 동맹체제를 위협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안심하고 이스라엘의 핵무장을 용인하였던 것입니다.
거꾸로 생각하여, 만일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억제하듯이 이스라엘의 핵무장을 억제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중동의 지역분쟁은 미국의 에너지수급정책에 가장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게 되므로, 미국은 그 지역에서 지역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따라서 미국은 이스라엘의 핵무장을 용인함으로써, 미·이스라엘 동맹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중동의 지역분쟁을 예방하였습니다. 중동에서 핵무장의 도미노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니 미국은 안심하여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동아시아에서는 핵무장의 도미노현상이 일어나게 될 뿐 아니라, 조·일 관계, 한·일 관계, 중·일 관계, 중·대만 관계, 러·일 관계에서 정치·군사적 긴장이 격화될 것이며, 특히 미·일 관계에서 커다란 문제가 발생합니다.
일본은 미국에 대해서 태평양전쟁을 도발했던 전범국이었으므로, 핵무기를 거머쥔 일본의 친미우익세력은 반미우익세력과 손을 잡고 대미의존성을 내던질 것이며 '아시아의 맹주'가 되기 위한 독자행보에 나설 것입니다. 이것은 미·일 동맹체제의 해체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의 핵무장을 용인했던 미국이 일본의 핵무장을 억제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물음 22 - 일본은 조·일 평양선언을 외면하고 대북 적대시정책으로 마구 내달리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북 적대시정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만, 최근에 들어서 더욱 험악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소장님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지금 일본의 지배세력은 대북 적대정책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부시 정부가 대북 적대정책을 이전보다 한층 격화시키고 있으니까 일본의 지배세력도 덩달아서 날뛰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더 중요한 요인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일본의 지배세력이 대북 적대정책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조·일 평양선언을 무효화하려는 책동입니다. 나는 2002년 9월 23일에 발표한 논문 「조·일 정상회담의 추진배경과 조·일 평양선언의 역사적 의의」에서 조·일 평양선언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적 승리라고 규명한 바 있습니다. 조·일 평양선언을 이행하면, 북(조선)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정세가 조성될 것이며, 민족자주와 조국통일이 실현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조건이 마련될 것입니다.
조·일 평양선언이 이행되면, 조·미 정치협상이 실현될 수 있는 정세의 탄력성이 발생하게 됩니다. 조·미 사이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불가침조약과 평화조약이 체결되는 국면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바로 이러한 가능성을 내다보면서 평양에 찾아간 고이즈미를 만나 정상회담을 진행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두 나라 사이의 정상회담은 어느 쪽의 일방적인 압승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고 쌍방이 협상을 통하여 각자 추구하는 이익을 얻게 됩니다. 여기서 문제는 과연 어느 쪽이 더 많은 이익을 얻느냐 하는 것입니다. 조·일 평양회담에서 결정적인 이익을 얻은 쪽은 북(조선)이었습니다.
만일 조·일 평양선언이 제대로 이행된다고 할 때, 일본이 얻게될 이익은 무엇일까요? 일본인 납북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조·러 두 나라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시베리아와 한(조선)반도를 연결하는 거대한 에너지 개발사업과 물류수송망 개발사업에 일본도 참여하여 자기의 몫을 챙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익이 생긴다는 이유만으로는 일본의 지배세력이 조·일 정상회담에 선뜻 나서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일본의 지배세력이 조·일 정상회담에 나서게 된 원인들 가운데는 역시 일본의 대미의존성이 가장 주된 원인으로 되었습니다. 미국은 2002년 10월초에 평양에 대표단을 파견하여 조·미 정치회담에 나서기 직전에 고이즈미 정부에게 먼저 조·일 정상회담에 나가라고 요구하였고, 미국의 요구를 거역하지 못하는 고이즈미 정부는 그들의 요구에 따라서 조·일 정상회담에 나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평양에서 열린 조·미 정치회담이 결렬되자, 조·미 관계가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서 고이즈미 정부도 조·일 평양선언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대북 적대감을 마구 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2002년 10월초의 조·미 정치회담이 결렬되지 않고 순항궤도를 탔다고 가정한다면, 고이즈미 정부는 조·일 평양선언을 무효화하려고 날뛰면서 대북 적대감을 마구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서 주시해야 할 문제는, 조·미 관계의 향방에 따라서 조·일 관계의 향방이 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조·일 관계가 조·미 관계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제한적입니다. 조·일 관계에 대한 조·미 관계의 영향은 결정적입니다. 미국이 대북관계를 개선하면, 일본도 그에 따라 조·일 국교정상화를 거론하면서 화해의 손짓을 해야 하고, 거꾸로 미국이 대북관계를 악화시키면 일본도 그에 따라 대북 적대감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조·일 평양선언의 운명은 조·미 불가침조약의 체결여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미 불가침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조·미 정치협상이 시작되어야 조·일 평양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조·일 정치협상이 재개될 수 있습니다.
물음 23 - 일본의 지배세력이 추진하고 있는 대북 적대시정책은 일본 인민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조·일 정상회담 직후 일본 정부가 대북 적대시정책으로 돌아선 뒤에, 일본 사회의 분위기는 우리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강도를 더욱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습니다. 재미동포이신 소장님께서도 우리 재일동포들이 겪고 있는 차별과 억압을 보시면서 분노하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해외동포의 견지에서 재일조선인사회에 대한 일본의 민족차별정책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부 악질적인 일본인들은 고이즈미 정권과 일본 언론이 대북 적대감을 충동하는 분위기에 편승하여 총련과 재일조선인들을 박해하고 있습니다. 민족배타주의자들의 박해를 직접 체험하지 못한 본국동포들은, 우리 해외동포들이 남의 나라에서 살면서 민족배타주의자들로부터 박해를 받는 것이 얼마나 뼈아픈 고통인가 하는 것을 잘 모를 것입니다. 민족배타주의자들의 박해를 직접 체험하지 못한 본국동포들은 민족배타주의자들로부터 박해를 받는 해외동포들에게 조국과 민족이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하는 것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오늘날 500만이나 되는 해외동포들 가운데 민족배타주의자들의 박해를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동포들은 재일조선인들입니다.
지금 일부 악질적인 일본인 민족배타주의자들이 재일조선인사회에 가하고 있는 악랄한 박해행위는 한(조선)민족에 대한 일본의 뿌리깊은 민족우월주의의 폭력적 표출현상입니다. 한(조선)민족에 대한 일본의 민족우월주의는 임진왜란 이후 400년의 장구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조선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거치면서 악화되어온 범죄의식입니다.
민족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일본인들은 한(조선)민족이 자기들보다 열등한 민족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북(조선)이 일본이 의존하고 있는 미국에게 맞서 싸우면서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을 보면서 견디지 못합니다. 그들은 한(조선)민족이 자기들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감지하는 순간에는 광적인 증오심과 공격심리를 표출하면서 난동을 부리게 됩니다.
우리 조국이 미국의 강제에 의해 둘로 나뉘어져서 통일을 실현하지 못하는 한, 일본인들의 민족우월주의는 끊임없이 기승을 부리게 될 것입니다. 일본의 민족우월주의는 미국이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악화시킬 때마다 더욱 비열하고 흉악한 민족배타주의로 돌변할 것이며, 북(조선)을 반대하는 적대감을 선동하고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폭거를 자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부 일본인들의 머리 속에 박혀 있는 민족우월주의를 무력화하고, 민족배타주의적 난동과 폭거를 봉쇄하는 길은, 민족자주와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길 이외에는 없습니다. 한(조선)반도에 통일정부를 수립하고 자주강국을 건설할 때, 일본의 민족우월주의는 맥을 추지 못하게 될 것이며 민족배타주의는 봉쇄될 것입니다. 재일조선인사회가 민족자주운동과 조국통일운동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5. 민족공조는 6.15 공동선언을 실현하는 중심축이다
물음 24 - 미국에 의해서 악화되어 있는 조선반도 정세를 풀어내는 데는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의 단합된 힘이 기본역량이 되어야 하며, 조국통일문제는 우리 민족 대 미국의 문제로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6.15 공동선언의 기치를 들고 자주통일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공조를 추구하고 있으며, 또 그 요구대로 실현해가고 있습니다. 민족공조는 6.15 공동선언이 제시한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6.15 공동선언과 민족공조, 그리고 조국통일운동에 관하여 소장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지난 시기 우리 조국통일운동권에서는 민족대단결이라는 개념을 많이 썼습니다만, 요즘에는 민족공조라는 새로운 개념도 많이 쓰고 있습니다. 공조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서로 도와준다는 뜻입니다. 민족공조라는 말은 우리 민족끼리 서로 도와준다는 뜻입니다.
우리 조국통일운동은 현 단계에서 민족공조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지만, 민족공조가 최종목적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끼리 화해, 교류, 협력을 추진함으로써 민족공조는 심화·발전되고 공고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민족대단결을 실현하게 됩니다. 민족공조가 실현되는 과정은 우리 민족끼리 화해, 교류,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민족대단결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해 가는 일련의 사회·역사적 발전과정입니다.
6.15 공동선언에 밝혀져 있는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성은 우리 민족끼리 화해, 교류, 협력을 추진하는 것을 뜻하는데, 민족공조는 그 공통성을 근거로 하여 실현되는 것입니다.
현재 6.15 공동선언에 따라 화해, 교류, 협력을 추진함으로써 실현되고 있는 민족공조가 더욱 심화·발전되면 우리 민족끼리 서로 도와주는 공조화 단계를 넘어서 하나가 되는 일체화 단계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 최고발전단계를 민족대단결이라고 부릅니다. 민족공조는 민족대단결의 낮은 단계를 의미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조국통일운동에서 민족공조라는 새로운 개념을 많이 쓰면서 강조하고 있는 데는 다음과 같은 까닭이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첫째, 6.15 공동선언에 따라서 우리 민족끼리 화해, 교류, 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화해, 교류, 협력이 민족대단결을 실현해 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민중들에게 알려주려면 민족공조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여야 합니다.
둘째, 남(한국)의 집권세력이 미국의 지배 아래 있으면서도 마치 미국과 공조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한·미 공조'를 미화·찬양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민중들에게 '한·미 공조'라는 간판 아래 고착화되어 있는 지배·예속관계의 실상을 알려주려면 민족공조라는 개념을 제시하여야 합니다.
셋째, 민족공조는 민족자주와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민족공조를 실현하지 못하면 민족자주도 실현할 수 없습니다. 남(한국)의 정치권이 말하는 이른바 '국제공조'라는 말은 남(한국)과 외세가 서로 도와준다는 뜻이 아니라 남(한국)이 외세의 지배를 받는다는 뜻이므로, 남(한국)이 '국제공조'를 추진하는 한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민족공조를 실현해 간다는 말은, 우리 민족끼리 서로 도와주면서 민족대단결의 전략목표를 추구함으로써 미국의 지배, 간섭, 개입을 거부하고 민족자주를 실현해 간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화해, 교류, 협력을 통하여 민족공조를 실현하는 주체는 누구입니까? 우리 민족입니다. 화해, 교류, 협력은 우리 민족끼리 추진하는 역사적 과업입니다. 민족공조의 주체는 한(조선)민족입니다.
그러므로 6.15 공동선언에 따라서 우리 민족끼리 화해, 교류, 협력을 추진하고 민족공조를 실현해 가는 전 과정에서 민족을 주체로 내세워야 하고, 민족의 공동이익을 앞세워야 하고, 민족의 의미를 강조해야 합니다. 민족을 앞세우지 않으면서 민족공조를 실현한다는 말은 거짓말이며, 민족의 의미를 강조하지 않으면서 화해, 교류, 협력을 추진한다는 말도 역시 거짓말입니다.
그 어떤 과업이라도 주체를 세우지 않고서 추진할 수는 없으며, 주체의 작용이 없는데 주체의 의사와 요구가 실현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입니다. 화해, 교류, 협력의 주체이며 민족공조의 주체인 민족을 사상의식의 중심에 확고하게 세워야 합니다.
민족이라는 말을 가장 혐오하는 자들은 미국의 정책결정권자들입니다. 그들은 우리 민족끼리 공조하는 것을 절대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민족공조가 실현될수록 남(한국)에 대한 자기들의 지배력이 약화되기 때문입니다.
물음 25 - 그런데 소장님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남측에는 민족공조를 반대하고 외세와의 공조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민족공조를 반대하는 세력이 어떠한 세력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정확한 이해가 요구됩니다.
남(한국)에는 민족이라는 말을 기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입니다. 그들은 아주 의도적으로 민족이라는 말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권이 이처럼 민족이라는 말을 기피하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흉악한 반민족집단이 출몰하여 우리 민족끼리 추진하는 화해, 협력, 교류를 가로막아보려고 날뛰고 있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지난 3월 1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는 종교행사로 위장한 반민족적인 대중집회가 열렸습니다. 그 집회에서는 난데없이 미국 국가가 연주되었고, 참석자들은 미국 국기 앞에 경의를 표하였으며, 그것도 모자라서 미국인들도 하지 않는 '부시 대통령 만세'까지 불렀다고 합니다. 어떤 대상을 위하여 만세를 부르는 것은 절대적 충성심의 정치적 표현입니다. 미국의 우익세력도 부시에 대해서는 만세를 부르지 않는데, 참으로 해괴하게도 남(한국)의 극우세력은 부시에게 충성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서울시청 앞에 수 만 명이 동원된 집회에서 '부시 대통령 만세'를 불렀다는 기가 막힌 소식을 듣고 난 뒤에, 나는 미국에 살고 있는 재미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창피하여 주위의 미국인들 앞에서 고개를 들고 다니기 힘들 지경입니다. 저들의 입에서 '부시 대통령 만세' 소리가 터져 나왔을 때, 백악관도 그들의 충성심에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 사건은 남(한국)의 극우세력이 얼마나 철저하게 대미예속적인가를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었습니다.
남(한국)의 극우세력은 미국에게 충성심을 보이고 있는 철저한 대미예속집단입니다. 민족자주성의 견지에서 보면, 대미예속성은 일종의 집단적 정신착란증으로 표출됩니다. 대미예속성이라는 집단적 정신착란증에 걸려 있는 남(한국)의 극우세력은 우리 민족끼리 화해가 아니라 적대를, 교류가 아니라 봉쇄를, 협력이 아니라 대결을 광적으로 부르짖고 있습니다.
나는 미국에게 충성심을 보이고 있는 남(한국) 극우세력의 우두머리들을 이라크 침략전쟁의 현장에 보내서 그들이 충성심을 보이고 있는 부시가 어떻게 이라크 인민들을 살육하는지를 똑똑히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번에 대미예속적인 우익세력이 일으킨 사건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첫째, 남(한국)의 대미예속적인 우익세력은 차츰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우익세력은 1980년대 우익세력보다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친미우익정권이 대중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하여 이른바 관제집회나 관제시위가 가능하였는데, 오늘은 종교집단이 주도하는 동원형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일요일마다 수 만 명 씩 모이는 대형교회의 신도들을 동원하지 않으면 친미우익세력의 대규모 집회는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대미예속적 극우세력의 약화를 뜻합니다.
둘째, 오늘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친미우익세력은 화해, 교류, 협력을 추진하고 있고, 일부 친미극우세력은 적대, 봉쇄, 대결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집권한 우익세력과 극우세력 사이에서 모순이 발생하였다는 것을 뜻합니다.
셋째, 약화되고 있는 극우세력은 조·미 관계가 정상화되고 주한미군이 단계적으로 철수되는 것과 더불어 궤멸될 것입니다. 남(한국)의 극우세력은 대미예속성이라는 집단적 정신착란증에 걸려있으므로 남(한국)에서 미국의 지배력이 약화되는 과정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결국 궤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족공조가 실현되는 과정은 우리 민족끼리 화해, 교류, 협력을 추진하는 것과 동시에 민족공조를 가로막고 있는 미국과 투쟁하는 과정입니다. 민족공조가 실현되는 과정은, 한(조선)반도가 그려진 통일기를 들고 자주의 궤도를 힘있게 전진하고 있는 우리 민족이 남(한국)에서 미국의 지배력을 제거하는 반미자주화의 과정입니다. 우리 민족끼리 통일기를 들고 전진하는 올해는 민족자주와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승리의 연대가 될 것입니다.
소장님, 중요한 내용을 말씀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올해 2003년은 우리 민족의 의사와 요구대로 민족자주와 조국통일이 귀중한 결실을 얻는 연대로 빛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럼 대담을 여기서 마감하겠습니다.
첫댓글 아무리 그래두....여기는 정치학 관련 까페는 아닌데....
그래도 여러모로 세상을 보는 시선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나요? 글을 쓰는 사람은 모름지기 올바른 역사관, 세상을 올바로 보는 시선을 꼭 필요로 한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좋은 글 올려주시는 노영재님께 감사드려요.
이걸 어쩝니까? 올해 4월자로 한미연합사의 전시작전통제권은 한국군에 반납되어 버렸습니다. 글 쓰느라 수고하셨는데 전부 공치사가 되 버렸군요. 글 쓰신분은 뉴스도 안 보시는지?